청춘의 독서 - 세상을 바꾼 위험하고 위대한 생각들
유시민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9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지식의 이점은 무엇일까? 엘빈 토플러는『부의 미래』에서 가슴에 새길만한 몇 가지를 말했다. 그중에 지식은 원래 비경쟁적이라는 것이다. 즉 지식은 수백만 명이 사용하더라도 감소되지 않으며 수백만 명이 똑같은 지식을 사용할 수 있다. 사실 사용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더 많은 지식을 생성해 낼 가능성이 커진다는 것이다. 또 하나, 지식은 명시적일 수도 암시적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지식은 표현될 수도 표현되지 않을 수도 있다. 혹은 타인과 공유하거나 자기 마음속에 간직할 수도 있다. 하지만 탁자, 트럭이나 다른 유형의 물건들은 마음속에 간직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 시대 스스로를 ‘지식소매상’이라고 부르는 지식인이 있다. 바로 끊임없이 읽고 쓰는 유시민이다. 18세기 이덕무가 스스로를 ‘간서치(看書痴)’라고 자신의 습관적 사고를 말했다면 21세기 유시민은 이러한 관성의 법칙에서 변화해왔다. 다시 말하면 책에서 지식으로, 바보에서 소매상이라는 진보적인 사고방식으로 내면적인 성장을 계속 해왔다는 것이다.

그래서 만약 저자가 단순히 다른 사람의 정신 궤적을 따라가는데 만족했다면 그의『청춘의 독서』는 빛나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이 책에서 밝히고 있듯 그는 아널드 토인비가 말한 ‘역할의 전도’현상에 적응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토인비의 역사는 도전과 순응의 연속이라는 말에 주목했다. 그러면서 그는 시대가 바뀌고 도전의 성격이 달라지면 응전에 성공하는 주체 또한 달라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한편으로 그는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이 얼마나 명확한 지를 반성하면서 앎의 절실함을 고백하고 있다. 가령, 랑케의『젊은이를 위한 세계사』를 읽으며 ‘역사는 발전하거나 진보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이리저리 변화할 따름이라는 것’을 믿었다. 하지만 E. H. 카의『역사란 무엇인가』를 읽게 된 후 비로소 지식인의 고뇌 즉 무지의 자각이 충격적이었음을 밝히고 있다. 그럴수록 그는 더욱 진보적 지식인이 되었다. 

진보는 곧 E. H. 카의『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이성의 이름으로 그 제도와 그것을 떠받치는 공공연한 또는 은폐된 가설에 근본적인 도전을 감행한 대담한 결의’였다. 그래서 그는 알고 있는 사실들에 대한 역사가의 임무는 랑케의 ‘가위와 풀’로 만든 것이 아니라 E. H. 카가 말한 ‘자루’와 같다는 것에 공감했다. 즉 가위로 오리고 풀로 붙이는 것이 아니라 자루에 무엇인가를 넣어주지 않으면 사실은 일어서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국 지식인의 의무는 지식을 일어서게 하는 것이었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저자가 지식의 자루에 담았던 것은 고전 작품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고전을 낡은 지도라고 달리 불렀던 것은 세상의 부조리함에 방법적인 회의를 했던 청춘을 고전 작품들과 동고동락했기 때문이다. 그는 ‘세상을 바꾼 위험하고 위대한 생각들’과 대화하면서 자신의 신념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자신의 신념을 명확하기 위해 또 다른 고전을 읽고 읽었다. 이러한 지나한 독서를 통해 그는 그릇된 편견과 고정 관념을 극복할 수 있었다.

가령, 도스토옙스키의『죄와 벌』을 읽고 사회악을 어떻게 바라 보야 하는지를 묻고 있다. 이 소설에서 라스꼴리니꼬프는 전당포 노파를 살해한다. 이유는 전당포 노파가 사회악이기 때문이었다. 니체의 초인(超人)사상에 따르면 선한 목적은 악한 수단이 정당화될 수도 있다. 혹은 도스토옙스키처럼 “아무리 선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라고 하더라도 인간은 악한 수단을 사용한 데 따르는 정신적 고통을 벗어나지 못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저자가 주목하는 것은 ‘악한 수단으로는 선한 목적을 절대 이루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20대에 마지막으로 읽은 고전이었던 헨리 조지의『진보와 빈곤』에서는 문명이 발전해도 빈곤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를 재조명하고 있다. 이 책에서 헨리 조지는 문명이 발전해도 단순 노동의 임금은 오르지 않으며 오히려 지대(地代) 즉 토지 가치가 오른다고 했다. 그의 지대이론에는 토지의 경제적 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리카도가 말한 토지의 비옥도가 아니라 토지의 위치라고 설득력있게 주장했다.

유시민의『청춘의 독서』를 유쾌하게 읽으면서 고전 작품들의 실체를 만날 수 있었으며 그 가치를 새삼 깨달았다. 흔히 고전이라고 하면 꼭 읽어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마크 트웨인이 “고전 문학을 누구나 다 읽고 싶어 했으면서도 실제로는 아무도 읽고 싶어 하지 않는 것들”이라고 지적했던 고전콤플렉스에서 누구나 자유롭지 못한 게 우울한 현실이다.

저자는 이점을 우려하면서 고전을 읽지 않는 것도 문제지만 동시에 고전에 나와 있는 단편적인 주요 사상하나만으로 마치 고전을 다 앍고 있다는 착각의 오류에 대해 따끔한 충고를 아끼지 않고 있다. 이것은 훌륭한 독서가 아니며 ‘좋은 책은 그 자체가 기적이다.’라는 저자의 진심을 거부하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우리의 삶을 치유하고 변화시킨 책들은 많다. 이러한 책 속에 담긴 지혜와 지식은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고 앞으로 삶의 나침반이 되어 줄 것이다. 유시민이『청춘의 독서』에서 언급했던 고전 작품들은 여전히 녹슬지 않는 주옥같은 책들이다. 그렇기에 세계를 보다 열린 눈으로 사유할 수 있도록 있게 해준다. 그리고 이러한 사유의 힘을 자신의 머릿속에만 담아두지 않고 타인과 소통하고자 하는 저자를 보면서 지식은 탁자가 아니다, 라는 강한 인상을 볼 수 있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룩스 - 외모 상상 이상의 힘
고든 팻쩌 지음, 한창호 옮김, 황상민 감수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9년 9월
평점 :
품절


증오 발언(hate speech)이라는 것이 있다. 인종, 성별, 종교, 성적(性的)취향 따위에 근거해 상대방을 모욕하는 발언이다. 가령, 어떤 잘못을 한 사람에게 잘못에 대한 것을 비판하는 것은 상관없다. 그러나 그 사람이 못생겨서 그렇다고 하는 것은 문제시된다. 이러한 증오 발언에 대하여 법학자 로드니 스몰라는 ‘정신에 대한 강간’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우리는 상대방의 가시적 효과에 집착하고 있다. 흔히 상대방이 가지고 있는 내면의 아름다움을 알고자 한다면 눈(目)을 보라고 권한다. 하지만 눈보다 얼굴을 먼저 보는 게 다반사다. 보여 지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약점에도 불구하고 외모는 “예쁘면 모든 것이 용서된다.”는 강력한 힘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고든 팻쩌는 외모, 상상의 힘이라는 부제가 달린『룩스(LOOKS)』에서 ‘외모지상주의 (lookism)’이라는 육체적 매력을 명쾌하게 서술하고 있다. 이 책에서 저자는 다채로운 재능을 과시하는 매력적인 외모를 보고 왜 우리가 끌리는가? 에 대해서 흥미롭게 접근하고 있다. 그러나 저자는 육체적 매력이라는 단순한 본능을 밝혀내는 것은 아니다. 그 보다는 육체적 매력이 어떻게 우리의 행동과 사고를 지배하는지 이해를 돕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우리는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키, 몸무게, 크기, 얼굴 형태의 대칭성 등으로 평가받기 때문이다.

이 책의 내용은 크게 외모가 우리의 삶에 미치는 영향과 화려한 외모의 이면 모습들 그리고 외모지상주의 극복하기로 나누어져 있다. 가령, 외모가 연애와 결혼에 미치는 영향을 보면 에리히 구드의 ‘자격부여’에서 찾고 있다. 자격부여는 주관적 자격부여와 객관적 자격부여가 있다. 전자는 자격이 있다고 느끼는 사람이 스스로 기대하는 경우다. 예를 들면 부유하지만 매력 없는 여성과 미남이지만 무일푼의 남성과의 관계가 성립된다. 반면에 후자는 사회나 해당 공동체가 특정인이 자격을 누릴 만하다고 인정하는 경우다. 예를 들면 매력적인 여성이 덜 매력적인 남성과 데이트하는 경우다.

또 하나 외모가 정치에 미치는 영향은 ‘이미지’에 있다. 저자에 따르면 이미지는 진실이면서 거짓이고, 정확한 지각이면서 동시에 실제와 지각 사이의 간격이라는 것이다. 매력과는 거리가 먼 링컨이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것은 탁월한 연설가였지만 그만큼 그의 육체적 외양이 덜 노출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날 이미지의 연금술사로 불리는 TV같은 미디어의 발달로 인하여 '우세한 얼굴(facial dominance)'를 지닌 후보자가 능력과 지도력에서 높은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다.

다음으로 화려한 외모의 모습들에는 외모에 목숨을 거는 부작용을 보여주고 있다. 무식욕증과 대식증이 여성의 질병이라면 아도니스 콤플렉스(Adonis Complex)는 남성의 신체적인 강박이었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나쁜 건강은 아름다움을 사라지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그리고 외모를 개선하기 위한 가격은 곧 성형중독자를 불러일으켰다. 성형중독자들은 어떤 수술을 받아도 행복하지 않은 성격의 소유자들이다.

그러면 외모지상주의를 어떻게 하면 극복할 수 있을까? 저자는 자기 외모에 대한 견해, 태도, 행동을 살펴보라고 한다. 그래서 “나는 단지 더 나은 외모를 보여주기 위해 다이어트할 마음을 먹기보다는 더 나은 건강을 위한 음식에 초점을 맞추는 식단을 짤 필요가 있다.”는 현실적인 방법으로 현실에 도전하라고 한다. 또한 “나는 거울 속에서 내 모습을 보거나 가게 유리창에 비친 내 모습을 볼 때 언짢아하지 않도록 정서를 조율할 필요가 있다.”는 긍정적인 사고와 태도를 당부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인간 딜레마 - 인간에 대한 절망, 혹은 희망
이용범 지음 / 생각의나무 / 2009년 7월
평점 :
품절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는 건 고개를 돌리지 않고 뒤를 바라보는 일만큼 어렵다.”이 말은 19세기 미국 수필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한 말이다. 자기 자신을 좀 더 보편적으로 확대해보면 인간일 수 있다. 그래서 매트 리들 리가『붉은 여왕』의 서문에서 “인간은 단지 포유동물의 한 종일 뿐인데 자신의 본성을 캐기 위해 2,000여 년 동안 노력했음에도 아직 궁금증은 풀리지 않았다.”고 토로한 것을 우리는 충분히 공감하게 된다.

이용범의『인간 딜레마』는 질량이 높은 책이다. 제목에 나와 있는 대로 ‘인간의 딜레마’에 관한 모든 것을 소개하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딜레마는 개인들의 일상사에서 얻어진 것이다. 저자는 ‘인간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딜레마 이론을 간단명료하게 풀어쓰고 있다. 뿐만 아리라 저자는 심리학, 뇌 과학, 문학, 신화 등 마음에 접근하려는 다양한 학문을 두루 살피면서 ‘인간의 딜레마’의 구성요소에 대한 질문들을 풀어 놓고 있다.

가령, 왜 선량한 여섯 사람이 폭력배 한 사람을 당해내지 못하는 것일까? 저자는 이것을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것인가’라는 딜레마로 풀이하고 있다. 즉 저자는 이 문제에 있어 ‘방관자의 효과’에 접근하고 있다. 이러한 효과는 사람이 많을수록 오히려 책임이 분산되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러한 상황에서 어떤 누구도 3분 안에 행동을 취하지 않았다. 이와 반대로 그중에 한 사람이 3분 안에 위험에 빠진 사람을 도와주려고 행동했다면 나머지 5명도 기꺼이 동참하게 있다. 이러한 까닭은 ‘사회적 증거 효과’에 있다.

그런가 하면 이타주의라는 인간 본성은 어떤가? 맹자의 성선설(性善說)과 순자의 성악설(性惡說)은 익히 알고 있다. 이것을 서양에서 찾아보면 ‘루소의 딜레마’가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은 철학적이며 윤리적인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저자는 흥미롭게도 생물학 영역으로 확대하고 있다.

우리가 생물학적인 유기체로서 콜턴이 말한 ‘본성과 양육’이라는 오랜 논쟁과 마주하게 한다. 본성이 유전결정론이라면 양육은 환경결정론이다. 유전결정론이 진화의 결과라고 한다면 환경결정론은 문화의 결과였다. 그러나 본성과 양육이라는 대립을 직시하면서도 저자는 진화와 문화의 상호관계의 산물이 곧 인간일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간과해서는 안 될 마음의 비밀을 푸는 열쇠가 있다. 저자는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의 목적을 주목하고 있다. 즉 생명체의 목적은 다름 아닌 자신의 유전자를 퍼뜨리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결국 유전자는 복제를 가장 잘하는 이기적인 복제자를 선택하게 된다. 하지만 DNA에는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래서 이기적인 유전자가 곧 이기적 인간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인간의 딜레마’에 대한 참신한 안목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견해를 바탕으로 하며 얻어진 지식은 인간에 대한 이해의 폭을 더욱 넓게 하고 있다. 인간이 자연과 다른 점은 선악(善惡)의 개념을 가진 생물체라는 것이다. 즉 자연이 도덕적으로 중립적인 과정이라고 한다면 인간은 딜레마의 과정이다. 더구나 이 과정에서 문화적인 요소가 우리를 좀 더 도덕적으로 존재하게 한다는 것이다. 비록 생존과 번식이라는 효율성으로 우리의 본성이 진화해왔지만 문화적 존재라는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인간의 특성에 있어 문화는 ‘독자적인 것이 아니라 생물학적 현상과 결부’되어 있다는 것, ‘문화도 우리의 본성까지 완전히 바꾸지 못한다.’고 말한다. 저자의 주장을 따라가 보면 인간의 자연적 본성에 탐구는 ‘인간의 딜레마’를 밝혀내는 데 있어 훨씬 더 앞으로 나아간 느낌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왼쪽으로, 더 왼쪽으로 - 당신들의 대한민국 세 번째 이야기
박노자 지음 / 한겨레출판 / 2009년 6월
평점 :
절판


비폭력 운동으로 널리 알려진 간디는『마을이 세계를 구한다』에서 ‘수탁자 이론’을 다음과 같이 제시했다.

 

만일 내가 유산을 받거나 장사나 일을 해서 상당한 돈을 갖게 된다면 나는 그 모든 돈이 내게 속하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된다. 내게 속한 것은 대다수 다른 사람들이 누리는 것보다 나을 것 없는 명예로운 생계수단의 권리이다. 내 재산의 나머지는 공동체에 속하고 공동체의 복지를 위해 쓰여야 한다.

오늘날 산업 자본주의 위기 속에 ‘복지’는 제국을 넘어서는 하나의 시스템으로 작용하고 있다. 적어도 인간의 생존권을 억압하는 방식에 맞서는 진보적인 가능성이라고 해도 좋다. 그래서 인지 우리 사회의 민감한 부위를 적나라하게 자극해왔던 박노자는『왼쪽으로, 더 왼쪽으로』에서 미래사회를 ‘복지 자본주의’라고 역설했는데 결코 우연한 일만은 아니었다.

그러면 그의 ‘왼쪽으로’는 혁명인가? 아니면 급진적 개혁주의인가? 이 책의 내용을 들여다 보면 급진적 개혁이 최선(最善)이고 혁명은 차선(次善)이라는 구분이 명확해진다. 그가 말하는 급진적 개혁은 피를 흘려 이 체제를 무너뜨리지 않고 쟁취할 수 있는 최대한을 의미하는 것이다. 가령, 대형 기업의 국유화, 토건 국가 예산을 교육, 복지 예산으로 전환, 부유층을 집중 겨냥하는 각종 부유세, 대학 평준화와 명문대 개념의 불식, 국방 예산 감축 등이다. 이를 위해서는 촛불집회나 총파업 같은 밑으로부터의 직접적 압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명박 정권에 대한 국민의 면도날은 날카롭다. 한국의 민주주의와 인권이 어느 때보다 후퇴하고 있는 탓에 “모든 게 이명박 탓”이라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그래서 촛불집회는 국가권력에 맞서는 대중들의 건전한 참여 방법이다. 그런데도 이명박 정권은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더구나 좌파적으로 오도하고 그것도 모자라 토끼몰이 식으로 인권을 탄압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가인권위원회를 대통령 직속으로 개편하려고 했던 것이 단순한 해프닝만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이명박 정권이 녹색성장이라고 그럴듯하게 포장하고 있는 ‘4대강 살리기’는 정말로 우리의 경제를 살리는 것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결과적으로 4대강 살리기는 시대착오적이며 권위적이다. 저자 말대로 세계는 이미 수출국이 선진국이 되는 시대는 과거에 불과하다. 그 보다는 식량 위기 시대에서 식량 자급률을 높이는 것이 대세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경제 살리기’라는 구호아래 삽질 공화국으로 억척스럽게 땜질하고만 있다. 결과적으로 4대강 살리기에는 천문학적 예산을 집행하면서도 초등생 무료급식은 완전 삭감이라는 불균형 발전의 안타까운 현실을 마주할 수밖에 없다.

많은 사람들은 이명박만 당선되면 좋은 세상이 올 것이라고 낙관했다. 자영업자가 상대적으로 많은 한국에서 경제 대통령을 선택하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하지만 경제 대통령에 잠재된 박정희 시대에 성공주의 이데올로기 및 죽은 독재자의 망령이라는 모순을 비판하는데 우리는 실패했다. 이로 인해 ‘식민지근대화론’을 긍정할 수밖에 없는 불행한 현실을 절감하게 되었다.

이러한 부작용이 가속화되는 현실에서 저자는 ‘왼쪽으로’ 저항해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왼쪽이 지금의 ‘자본주의적 위계질서’에서 벗어날 수 있는 최선의 대안임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거듭 주장하고 있다. 그래서 저자는 왼쪽이라는 ‘대듦’의 대중적 반란을 생각해보라고 우리에게 호소하고 있다. 즉 대중들이 현실의 문제를 외면하지 말고 제대로 인식하면서 자신감을 가질 때 비로소 다양한 방식의 저항과 비판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모순이 반복되는 한국 사회를 향하여 거침없이 쓴 소리를 쏘아대는 박노자의 진실은 불편했다. 하지만 저자 말대로 한국 사회가 미래로 나아가고자 한다면 왼쪽으로 행진해야 한다는 각성은 의미심장했다. 더불어 왼쪽으로의 방향이 단순한 분노가 아니라 비판하고자 하는 대상에 대한 좀 더 정밀하게 다듬어져야 한다는 것을 다시금 일깨워주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책읽기의 달인, 호모 부커스 인문학 인생역전 프로젝트 5
이권우 지음 / 그린비 / 2008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책만 보는 바보 즉 간서치였던 이덕무는 스스로를 오우아거사(吾友我居士)라고 했다. 내가 나의 벗이라는 뜻인데 책에 파묻혀 살았던 자신의 심정을 고백했다. 정도의 차이가 있겠지만 앙드레 지드는 “나에게 한 권의 책을 읽는 다는 것은 그 저자와 함께 15일 동안 집을 비우는 일이다.”라고 했다.

예나 지금이나 많은 사람들이 책을 읽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우리는 호모 부커스다. 책을 통해 우리는 자신을 새롭게 변화시킬 수 있다. 지식에 대한 이해의 폭이 상승하면서 사고방식에까지 많은 혜택을 받는다. 즉 어떤 문제에 있어 적극적으로 생각하고 정리할 수 있어 무지의 답답함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책에 대한 이런저런 찬사는 많은데 정작 어떻게 책을 읽어야 하는지? 어려움과 대면하기 일쑤다. 또한 사회적 양서(良書)와 개인적 양서의 충돌에서 발생하는 책의 눈높이도 빼놓을 수 없는 문제다. 가령 니체의 『차라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머리를 싸매고 전전긍긍하며 읽어야 하는가? 라는 회의가 앞선다.

우리 시대의 책벌레인 이권우는 『책읽기의 달인, 호모 부커스』에서 이중환 선생의 글을 인용하면서 책읽기의 두 종류를 이야기하고 있다. 먼저 비타민적 읽기다. 당장의 효과를 노리고 읽는 것이 아니라 은근짜하게 지속적으로 영향력을 발휘하는 읽기다. 다음으로 아스피린적 읽기다. 빠르게 효과를 얻을 수 있는 실용적 독서다.

이중에서 어느 정도 책 냄새를 아는 사람이라면 비타민적 읽기가 중요하다는 것을 안다. 그러려면 먼저 천천히 읽어야 한다. 이른바 속독(速讀)은 주마간산(走馬看山)에 비유할 수 있다. 제대로 읽을 수 없으니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반면에 정독(正讀)은 주자(朱子)가 말한 격물치지(格物致知)라고 할 수 있다.

두 번째로 깊이 읽고 겹쳐 읽는 것이다. 한 분야의 책을 두루 섭렵하여 지식을 깊게 하는 것이 깊이 읽기다. 그리고 같은 주제를 각각 다른 분야에서 다른 책들을 서로 비교하며 읽는 것이 곧 겹쳐 읽기다.

마지막으로 쓰기 위한 독서술(讀書術)이다. 읽는 것 못지않게 글쓰기를 위해서라는 것이 확실시해야 한다. 그래야 문자향(文字香)이 예사롭지 않다. 한 편의 글이나 한 권의 책에서 주제의식나 논리 전개의 방식, 은유나 직유 같은 수사학을 눈여겨보고 그것을 자기 것으로 만들고자 애써야 한다.

저자가 말하는 책읽기의 달인 방법은 독서를 가늠할 수 있는 작은 단면에 그치지 않는다. 책이 사람을 만든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더 할 나이 없이 효과적인 방법론이다. 우리가 호모 부커스일지라도 거장(巨匠)들의 독서론을 엿보고 싶은 까닭은 독서의 희열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저자의 독서론은 ‘각주와 이크의 책읽기’라고 할 수 있다. 각주라는 말이 본문의 어떤 부분을 보충하여 설명하기 위하여 본문의 아래쪽에 베푼 풀이라고 한다. 이로 인해 자신의 세계관과 감성을 옹호하고 보충하고 지지하는 책을 읽는 행위가 바로 각주의 책읽기다. 반면에 이크는 “놀랐다.”라는 감탄사인데 저자는 지적 충격으로 해석한다. 즉 나를 깊고 넓게 만드는 것이 이크의 책읽기다. 전자가 행복한 책읽기라면 후자는 고통의 책읽기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책읽기의 달인에 있어 진정한 발견은 애들러 말대로 하자면 “더 적게 이해하는 상태에서 더 많이 이해하는 상태로 스스로를 고양하는 것”이다. 그래서 “책읽기는 고통”이라는 저자의 주장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덧붙이면 과정은 고통이나 그 결과는 행복한 것이 책읽기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댓글(0) 먼댓글(1)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 [호모 쿵푸스 실사판 : 다른 십대의 탄생] 공부는 셀프!
    from 그린비출판사 2011-04-06 17:35 
    ─ 공부의 달인 고미숙에게 다른 십대 김해완이 배운 것 공부의 달인 고미숙 선생님. 몸으로 하는 공부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적절한 계기(혹은 압력?)를 주시곤 한다.공부가 취미이자 특기이고(말이 되나 싶죠잉?), ‘달인’을 호로 쓰시는(공부의 달인, 사랑과 연애의 달인♡, 돈의 달인!) 고미숙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공부해서 남 주자”고. 그리고 또 말씀하셨다.“근대적 지식은 가시적이고 합리적인 세계만을 앎의 영역으로 국한함으로써 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