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의 품격 - 조선의 문장가에게 배우는 치밀하고 섬세하게 일상을 쓰는 법
안대회 지음 / 휴머니스트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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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처럼 글을 쓰면 얼마나 좋을까? 책을 읽고 떠오르는 생각을 블로그에다 쓰다 보니 이런 바람이 어제오늘의 일만은 아니다. 서투르고 빈약한 내 문장에 비해 작가의 문장은 물이 흐르듯 막힘이 없다. 막힘이 없는 탄탄한 문장을 읽으면 답답했던 가슴 한 구석이 시원해진다. 어디 그뿐인가? 어느 순간 무릎을 탁 치게 만들며 잠들어 있던 오감을 깨어나게 한다. 그러니 작가처럼 글을 쓰려고 한 시절을 보낼 때 좋은 문장을 만나는 것은 오랜 벗을 얼싸안으며 눈물을 흘리는 것처럼 기쁘지 않을 수 없다.

 

문장을 좋게 하는 규칙 혹은 기술과 방법은 많다. 하지만 좋은 문장은 설득의 대상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이렇게 다듬고 저렇게 다듬었다면 비록 규칙에는 어긋나지 않겠지만 죽은 문장일 뿐이다. 규칙에 대한 집착이 좋은 문장이 될 것이라는 기대감은 별개의 문제다. 아무리 문장을 좋게 하는 규칙이라고 하더라도 ‘글맛’이 없다고 하면 좋은 문장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글맛이란 글을 읽게 만드는 것이다. 글맛이 나야 책을 읽을 수 있으며 읽고 나서도 충분히 배부를 수 있게 된다.

 

안대회의『문장의 품격』을 읽으면서 ‘글맛’이라는 의미를 깨달았던 것도 이러한 이유가 없지 않았다. 이 책에는 허균, 이용휴, 박지원, 이덕무, 박제가, 이옥, 정약용 등 조선의 문장가들이 시공을 초월하여 소개되고 있다. 이른바 ‘조선의 파워블로그’로 불리는 그들이 말하는 문장의 품격이란 ‘치밀하고 섬세하게 일상을 쓰는 법’이다. 좋은 문장이라고 해서 꼭 논리적으로 써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좋은 문장을 비논리적으로 써야 하는 것도 아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장르를 떠나서 자유롭게 생각한 것을 진실하고 담백하게 쓰는 것이다.

 

조선 명문가의 문장은 파격적이다. 기존의 낡은 사상과 정서를 답습하는 고문(古文)이 아니었다. 대신에 아주 다양한 일상적인 모습을 개성이 넘치며 실험적으로 그려낸 소품(小品)이다. 가령, 문호(文豪)인 동시에 문제적 작가인 박지원의 산문은 그만의 개성이 넘치는 문체를 보여 ‘연암체(燕巖體)’라고 불릴 만큼 큰 영향을 끼쳤다. 박지원에게 글의 격식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런 만큼 글의 소재는 무엇이든지 될 수 있었다. 오직 먹물에 듬뿍 묻힌 법고창신(法古昌新)이라는 창작력으로 독특한 색채를 창조해냈다.

 

한편으로, 스스로를 간서치(看書痴)라 부른 이덕무는 ‘문단을 뒤흔든 낯선 문장’이라는 자기 고유의 색깔을 창작해냈다. 그의 치열한 문학정신을 잘 표현한 ‘나비의 비유’를 잠시 감상해보면 다음과 같다.

 

진짜에 바짝 다가서고 몹시 닮은 것이라 해도 하나같이 제이(第二)의 자리에 머무는 법. 핍진(逼眞)하고 닮았다는 것이 어디서 나왔는지를 다시 한 번 똑똑히 살펴보라! 본연의 바탕을 먼저 볼 수 있어야 가짜에 막힘을 당하지 않는다. 온갖 가지 수많은 물상(物象)은 이 나비의 비유를 법으로 삼을 것이다.

 

이 책을 통해 7인의 조선 문장가의 문장은 모호한 구석이 없다. 인생의 치열함에서 건져올 린 생각이 투명하고 분명하다. 허균은 비판적이며 이옥은 희작적이다. 이렇듯 조선의 파워블로그 7인은 다른 글쓰기를 보이면서 다른 삶을 살았다. 문장은 글쓴이의 생각만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문장은 글쓴이의 인격이며 인격은 곧 문장의 품격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니 좋은 문장은 좋은 인격이며 동시에 좋은 예술이라는 것이다. 고전 산문이라고 예외일 수는 없다. 그래서 좋은 예술이란 박제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입맛’이 나야 한다. 맛이 없으면 우리는 먹을 수 없다. 마찬가지로 글이 아니면 우리는 읽을 수 없다. 그래서 누군가 글맛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입맛’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입맛이 글맛에 대한 최고의 감각이기 때문이다.

 

* 출판사에서 제공해준 책을 읽고 서평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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