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관펌프, 생각을 열다 - 대니얼 데닛의 77가지 생각도구
대니얼 데닛 지음, 노승영 옮김, 장대익 해설 / 동아시아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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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수와 대장장이의 차이점은 뭘까? 둘 다 도구를 사용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런데 목수가 자기가 쓸 톱과 망치를 만들지 않지만 대장장이는 여러 가지 재료를 가지고 자기가 쓸 톱과 망치를 만든다. 우리가 지식인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생각 도구를 만들어 내는 대장장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최고의 지식인은 최고의 생각도구를 만든다. 대니얼 데닛의 『직관펌프, 생각을 열다』를 주목한 이유는 어렵지 않았다. 마빈 민스키 교수에 따르면 데닛은 지구를 대표해 외계인과 지적 대결을 펼칠 사상가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 책의 추천사를 쓴 장대익 교수는 ‘지구 최고의 지식 요리사’라고 말하면서 이 책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이 책에서 다시 발견하게 되는 생각은 제목에 나와 있듯 ‘직관펌프’다. 저자에 따르면 직관펌프(intuition pump)란 직관을 불러일으키는 명제를 논파하며 “그래, 당연히 그래야지!”라고 진심으로 무릎을 치게 하는 사소한 이야기들이다. 이솝 우화의 철학자 버전이라고 거듭 말한다. 하지만 직관펌프는 이솝 우화의 철학자 버전이라는 명제는 매우 ‘심오로워’라고 할 수 있다. 뻔한 거짓임에도 만일 사실이라면 놀랄 만하다. 한편으로는 참이라고 하면 별것 아닌 말이 되고 마는 것. 이렇게 직관펌프가 심오로워 되는 까닭은 바로 철학자들이 즐겨 쓰는 메타 수법 때문이다. 메타 수법이란 ‘생각에 대한 생각, 말에 대한 말, 추론에 대한 추론’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단순히 생각에 대한 생각만 한다고 해서 직관을 펌프질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어느 정도는 복잡해야 한다. 이유인즉 철학에서 말하는 지향성(intentionality) 때문이다. 우리가 대상을 대하는 태도는 크게 세 가지다. 하나, 물리적 태도다. 손에서 돌멩이를 놓으면 땅바닥으로 떨어지는 것이다. 둘, 설계적 태도다. 자명종이 설계된 대로 울리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셋은 지향성 태도다. 어떤 대상의 행동을 해석할 때 그 대상이 스스로의 믿음과 욕구를 고려하여 선택과 행위를 제어하는 ‘합리적 행위자’인 것처럼 대하는 전략이다. 가령, 체스를 두는 컴퓨터를 생각하면 된다. 체스를 두는 컴퓨터는 합리적으로 최선의 수를 찾는다. 그래서 컴퓨터를 예측하기 위해서는 우리 또한 ‘합리적 행위자’가 되어야 한다.

 

이 책에는 77가지 생각도구가 있다. 12개의 일반적 생각도구에서부터 컴퓨터, 의미, 진화, 자유의지 그리고 철학자가 된다는 생각도구까지 다루고 있다. 77가지 생각도구는 우리가 이미 알고 있거나, 알고는 있었지만 관심이 없었거나, 관심이 있었는데 접근하기 어려운 것들이 있다. 어떤 참신한 생각도구를 발견하고자 했다면 우리는 실수를 하는 셈이다. 하지만 같은 내용이라도 어떻게 해석하는 데 따라 달라진다. 만일 해석하는 능력이 없다면 기존의 시스템이 해석해준 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서 데닛처럼 생각해보기는 우리를 ‘ㅅㅂㄸ(jootsing)’, 즉 시스템 밖으로 뛰쳐나오게 한다. 이것이 저자가 바라는 모든 이의 길을 밝혀줄 ‘좋은 실수’라는 것이다.

 

그러면 좋은 실수를 다윈의 개념으로 이해하는 것은 어떨까? 저자는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다.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라는 개념은 모든 전통적 관념을 무너뜨리고 전혀 새로운 관념이되었다. 다윈의 개념이 얼마나 강했으면 ‘만능산(酸)’이라고 부를 정도였다. 그리고 진화를 이끄는 자연선택에 대한 독창적인 생각은 다음과 같다.

 

자연선택은 자동으로 이유를 찾는다. 여러 세대에 걸쳐 이유를 ‘발견’하고 ‘승인’하고 ‘집중’시킨다. 따옴표에서 보듯 자연선택에는 마음이 없으며 그 자체로는 이유도 없지만, 설계를 다듬는 이 ‘작업’을 수행할 능력은 있다. 이것 자체가 이해 없는 능력의 예다(p290).

 

이 책을 통해 직관펌프가 자연선택의 성격을 띠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해 없는 능력이다. 77가지 생각도구들 하나하나에는 분명한 설계가 되어 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설계된 목적을 알 필요는 없다. 이해 없는 능력에 따라 우리가 모르거나 관심이 없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셈이다. 그러니 우리가 이해 없는 능력만큼 77가지 생각도구를 이해하는 것은 아주 효율적이며 뛰어난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비록 실수하더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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