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가 평평했을 때 -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과학의 모든것
그레이엄 도널드 지음, 한혁섭 옮김 / 영진.com(영진닷컴)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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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사람들은 지구가 평평하다고 생각했다. 대항해 시대가 오기 전까지 누구도 목숨을 담보로 한 항해를 시도하지 않았다. 사람들의 상상력은 상식이 되었다. 지구가 평평하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바다가 끝나는 지점까지 항해하면 낭떠러지로 추락한다고 믿었다. 하지만 스페인의 항해자 마젤란(Magellan)이 세계 일주에 성공하여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증명해 보였다.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지금도 지구가 평평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안 믿어진다면 유튜브(Yotude)‘flat earth’를 찾아보라. 평평한 지구를 믿는 사람들은 지구가 둥글다는 말을 거짓이라고 주장한다. 그들의 말에 따르면 지구는 평평한 원반 모양으로 생겼으며 그 지구 중심에 북극이 있다. 남극은 원의 가장자리에 있는 거대한 얼음벽이다. 코로나19 관련 소식 때문에 묻혔는데, 지난 달 말에 미국의 모험가가 자신이 직접 만든 로켓을 타다가 추락해 사망했다. 이 모험가는 ‘flat earth’ 지지자다. 지구가 평면이라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서 로켓을 만들었다.

 

가짜 뉴스 중에는 마치 과학적으로 입증된 사실인 체하는 수상한 논리들이 있다. 유사 과학은 그저 우스개로 가볍게 받아들이면 모를까, 다른 사람에게 전파하는 경우도 있다. 유사 과학은 단순한 허위사실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 피해를 주기도 한다. 또 유사 과학을 이용한 상술은 금전적 피해를 준다.

 

지구가 평평했을 때는 과거에 사람들이 과학이라고 믿었던 잘못된 이론들을 보여주는 책이다. 지금은 믿기 힘든 일이겠지만, 담배는 한때 기적의 약초라고 환영받았다. 담배의 효능을 믿은 의사들은 담배 연기로 환자를 치료했다. 예나 지금이나 남자들은 정력 향상에 관심이 많다. 오늘날 아보카도(Avocado)는 건강식품으로 주목받고 있는 과일이다. 대항해 시대의 스페인 탐험가들은 멕시코에 열린 아보카도에 최음제 효과가 있다고 믿었다. 그들이 그렇게 믿은 이유가 황당하다. ‘아보카도는 멕시코어로 고환을 의미한다. 과일 모양이 고환처럼 생겨서 그런 이름이 붙여진 것뿐인데 스페인 탐험가들은 이름만 듣고 지나친 상상을 했다. 책 제목을 보면 알 수 있듯이 ‘flat earth’도 나온다. 미국의 작가 워싱턴 어빙(Washington Irving)은 콜럼버스(Columbus)를 지구가 평평하다고 주장하는 사람으로 묘사한 소설을 썼다. 사실 콜럼버스는 지구가 서양 배 모양처럼 생겼다고 믿었다.

 

지구가 평평했을 때는 교과서에 완전히 퇴출한 이론만 소개하지 않는다. 교과서에 나올 법한 유사 과학도 나온다. 군인들은 다리를 지날 때는 발을 맞춰 걷지 않았다고 한다. 그들은 발걸음에서 나오는 진동과 다리의 고유 주파수(한 번 움직이면 계속 진동하는 빈도수)가 맞아떨어지면 진동이 더 커져 다리가 무너진다고 믿었다. 생각보다 이 가설을 믿는 사람들이 많다. 아마도 그 사람들은 과학책에서 봤다고 말할 것이다. 지구가 평평했을 때를 보기 전까지 나도 군인들의 행군이 다리를 무너뜨리는 원인이라고 믿으면서 살아왔다. 어렸을 적에 사고가 일어난 순간의 장면들만 편집하여 보여주는 방송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다. 내가 본 방송 프로그램에 군악대가 지나가면서 다리가 무너지는 장면이 나왔다. 그 방송 프로그램의 내레이션을 한 성우는 사고 원인을 군악대의 발걸음에서 생긴 진동이라고 말했다. 이 책의 저자는 군인의 행군이 진동의 위력을 과장한 사례로 보고 있다. 사람의 고음으로 유리잔을 깰 수 있다는 믿음도 과장되었다고 한다.

 

이 세상에 별의별 사람들이 살았고, 지금도 그런 사람들이 계속 나오고 있다. 그 사람들은 보편적인 상식에 벗어난 황당한 이론을 열심히 전파하고 있다. 이 책의 저자는 시대의 아집으로 만들어진 것이 유사 과학이라고 말한다. 아집에 갇힌 그들만의 이론은 고여서 썩은 물과 같다. 썩은 물을 맛 보는 사람들이 많은 사회일수록 그 사회의 건강은 나빠진다.

 

 

 

 

 

 

Trivia

 

 

* 59

 

실제로 콜럼버스가 살던 시대에 세계가 평평하다고 생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이 이야기는 19세기 중반 미국 작가 워싱턴 어빙의 인기 소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인생과 항해(1928)에서 만들어졌다.

 

본문에 발표 연도가 잘못 적혀 있다. 어빙의 소설이 나온 해는 1828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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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중순에 친구들과 식사한 이후로 식당이나 술집에 가본 적이 없다. 마지막으로 식당에 간 날은 대구에 코로나19 확진 환자가 한 명도 발생하지 않았을 때였다. 식당에 간 지 한 달 지났지만, 식당에서 친구들과 주고받은 대화는 지금도 기억한다.

 

그날 AB라는 친구와 함께 식당에 갔다. 밥 먹고 있다가 A가 사래에 걸려 기침을 했다. B는 기침한 A를 보면서 이렇게 말했다. “, 너 코로나에 걸린 거 아니야? 너 이제 가까이 오지 마.” B는 장난으로 A를 피하는 시늉을 했다. A는 웃으면서 밥 먹다가 기침한 것뿐이라고 말했다. 나는 B“A가 중국에 간 적이 없는데 코로나에 걸렸겠냐? 농담하지 말고 밥이나 먹어라고 말했다. 다행히 B의 말은 씨가 되지 않았다. 현재 AB 모두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다.

 

잔기침하거나 가벼운 발열 증상만 느낀 사람들은 코로나19 확산 때문에 마음이 아찔했을 것이다. 코로나19에 걸리면 확진 환자라는 사회적 낙인이 찍히기 때문이다. 본인 때문에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줄까 봐 외출을 꺼리게 된다. 외출을 꼭 해야 하는 상황이 생기면 마스크를 쓰면 된다. 그렇지만 마스크는 연이어 나오는 기침 소리를 막지 못한다. 감기 환자는 버스나 지하철을 타기가 두렵다. 버스 안에서 기침하면 버스를 탄 사람들의 시선을 한 번에 받는다. 이런 상황은 드라마 <태조 왕건>에서 궁예(김영철 분)가 했던 대사를 떠올리게 한다. 누가 기침 소리를 내었는가?’ 궁예는 기침한 관료에게 네 머릿속에 마군(魔軍: 불도를 방해하는 악을 비유한 말)이 가득 찼다면서 호통을 친다. 그런 다음 관료를 죽이라는 명령을 내린다. 모든 사람이 코로나19에 상당히 예민해진 시기에 잔기침 한 번 했다가는 주변 사람들의 눈총을 받기 쉽다. 누군가가 낸 기침 소리를 듣는 순간 우리 모두 궁예가 된다. ‘이 시국에 누가 기침 소리를 내었는가? 저 사람의 몸에 코로나19가 있다.’ 궁예가 된 사람들은 잔기침한 사람을 죽이지 않는다. 다만 눈빛으로 잔기침한 사람을 쏘아붙인다. ‘집에나 있지 왜 밖에 나온 거야?’

    

 

 

 

 

 

 

 

 

 

 

 

 

 

 

* 장 자크 상뻬 얼굴 빨개지는 아이(열린책들, 2018)

    

 

 

소리가 나는 쪽을 쳐다보는 것은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하지만 이 시선이 낙인을 찍기 위한 용도가 돼선 안 된다. 기침과 재채기를 코로나19와 관련된 위험 신호로 단정할 수 없다. 사소한 오해는 타인과의 정서적 거리를 멀게 만든다.

 

장 자크 상뻬(Jean Jacques Sempe)의 그림책 얼굴 빨개지는 아이(열린책들)에 주위 사람들의 시선을 견디지 못해 외톨이가 된 두 소년이 나온다. 마르슬랭 카이유는 시도 때도 없이 얼굴에 빨개진다. 그의 친구 르네 라토는 계속 재채기를 한다. 사람들은 얼굴 빨개진 마르슬랭을 볼 때마다 한마디씩 한다. 저 아이는 병에 걸린 게 틀림없어요.’ 마르슬랭은 남들과 다른 외모 때문에 늘 혼자 다닌다. 그는 자신과 똑같이 남들과 구별되는 아픔을 안고 사는 르네를 만나게 된다. 두 소년은 서로에게 연대감을 느껴 자연스럽게 친구가 된다. 둘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 얘기도 하지 않고 있을 수 있을만큼 친해진다.

 

얼굴 빨개지는 아이는 우리가 잘 보지 못하는 편견을 그림과 텍스트로 보여준다. 코로나19가 언제 사그라질지 알 수 없지만, 코로나19가 만들어 낸 정서적 거리 두기는 오랫동안 지속될 것이다. 감기에 걸리면 코로나19의 증상인지 스스로 의심해야 하고, 확진 판정을 받기도 전에 자신의 몸 상태를 주위 사람들에게 들킬까 봐 노심초사해야 하는 상황이 오는 건 아닌지 우려된다. 날카로운 편견의 시선은 생각보다 아프고, 무섭다. ‘낙인이 된 편견은 상당히 오래 간다. 그것은 한 사람을 외톨이로 만들어 가두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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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18 11: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20-03-18 22:26   좋아요 0 | URL
저는 손님이 많이 없는 식당에 가려고 해요. 오늘 시내에 가야 할 일이 있어서 제가 아는 식당에 갔어요. 역시 가보니 손님이 한 사람도 없었어요.

진주 2020-03-18 1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2월초에 모임을 가진 후론 아무도 못 만났어요.
사람을 안 만나니 식당도 커피가게도 갈 일도 없군요.
뿐만 아니라 출근도 3주째 못 하고 있어요.
확진자도 아니고, 유증상자, 확진자와 접촉자도 아닌데 말이죠.
제 일이 그래요.
간간이 집 앞 언덕배기로 산책을 나갈 뿐이죠.
거리두기에 점점 익숙해지고 있는 저를 발견해요.....


cyrus 2020-03-18 22:27   좋아요 0 | URL
사람들이 많이 모이지 않는 장소에만 가지 않으면 돼요. 사람은 햇볕을 받아야 해요. ^^

레삭매냐 2020-03-18 15: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구니가 아니라 ‘마군‘이었군요...

지금까지 마구니가 끼었어라고 알고
있었네요 ㅋㅋㅋ

코로나 때문에 유일한 낙인 달궁 모
임도 계속 연기되고 있네요 내 참~~

cyrus 2020-03-18 22:30   좋아요 0 | URL
제가 참석하는 우주지감, 레드스타킹 모임 모두 연기되었어요. 확정된 건 아니지만, 이번 달도 독서 모임은 없어요. ^^;;

moonnight 2020-03-19 0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저녁 술자리가 2월 17일이었네요. 오늘 퇴근하는데 술집으로 젊은이들 서너명이 들어가더군요. 젊음은 바이러스도 무섭지 않은 것인가 감탄했어요@_@;;;

cyrus 2020-03-19 16:56   좋아요 0 | URL
아마도 식당에 가는 사람들은 ‘무증상 전염’의 위력을 무서워하지 않는 것 같아요. ^^;;
 
여성화가들이 그린 나체화의 역사
살레안 마이발트 지음, 이수영 옮김 / 다른우리 / 20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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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누드화는 뜨거운 감자다. 예전에는 유명 화가나 사진작가가 누드화를 그리거나 누드사진을 찍으면 예술이 되고 그렇지 않으면 외설이 되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1960년대 이후 페미니즘의 영향이 커지면서 예술계에서 여성의 누드는 논쟁적인 주제로 떠올랐다. 나체 또는 누드 하면 여성 누드모델과 남성 화가를 제일 먼저 떠올리기 쉽다. 페미니즘 미술 비평가들은 걸작으로 알려진 누드화와 누드사진 속에 남성의 음란한 욕망이 반영되어 있다고 비판한다. 남성 중심 미술사를 페미니즘 시각으로 다시 쓰면서 역사의 뒤로 사라진 여성 예술가들의 생애와 작품들을 발굴하기 시작했다.

 

여성 화가들이 그린 나체화의 역사는 여성 예술가(화가, 조각가)들의 손에서 탄생한 누드화와 누드 조각상을 역사적 및 사회적 맥락을 통해 살펴본다. 왜 우리는 누드(남성, 여성)를 소재로 한 여성 예술가들의 작품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던 것일까. 가장 큰 이유는 여성 예술가들의 창작 활동을 막아 버린 시대적 분위기와 여성 예술가에 대한 차디찬 편견이다. 여성 화가들이 그린 나체화의 역사누드화와 누드 조각상을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여성 예술가들에 대한 기록이다.

 

고대 사회부터 남성의 몸은 이성, (), 아름다움의 기준으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여성의 몸은 철저히 열등한 몸으로 취급받았다. 사회의 기득권이 된 남성들은 권력을 계속 유지하려고 여성을 열등한 존재로 인식하도록 만들었다. 남성 신학자들은 뱀의 유혹에 빠진 이브(Eve)의 죄를 잊지 않았고, 그들은 여성의 몸을 욕망과 타락의 상징으로 해석했다. 남성 예술가들은 남성과 여성 누드 모두 그릴 수 있었다. 그러나 여성 예술가들은 그렇지 못했다. 타락하기 쉬운 여성을 통제할 필요성을 느낀 국가와 교회는 여성이 누드를 그리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화가나 조각가가 되려면 제일 먼저 누드를 관찰하면서 습작을 해야 한다. 예술가가 되고 싶은 여성들은 누드를 참관할 기회조차 받지 못했다. 그림을 배우고 그리는 길이 완전히 막혀버린 셈이다. 이런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누드를 그리려는 여성들이 있었다. 하지만 세상은 누드를 보고 그린 여성을 도덕적으로 문제 있다고 비난했고, 해부학 지식이 반영되지 않은 어설픈 누드화를 보면서 비웃었다.

 

여성 화가들이 누드를 그리는 일은 가십거리였다. 남성 화가들만 독점하고 있던 누드화 열풍에 여성 예술가들이 설 자리는 적었다. 남성 화가들은 그녀들을 동료로 인정하지 않았다. 심지어 그녀들의 실험 정신까지 비난했다. 18세기에 활동한 이탈리아의 화가 줄리아 라마(Giulia Lama)는 그림 속 남성의 페니스를 정면으로 향한 상태로 그렸다. 남성 화가들은 그녀가 누드화 제작의 금기를 깨뜨렸다고 비난했다. 프랑스 신고전주의 시대에 활동한 안젤리카 카우프만(Angelica Kauffmann)은 초상화 제작으로 실력을 인정받았고 국제적인 명성을 얻은 화가였다. 그런 그녀도 누드화 제작에 상당히 애를 먹었다. 인기 있는 여성 화가를 바라보는 사교계의 따가운 시선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이렇듯 여성 화가들은 누드화를 그리려면 온갖 비난과 추문을 감수해야만 했다.

 

이 책은 중세에서 20세기에 이르기까지 누드화 및 누드 조각을 남긴 여성 예술가들의 삶과 업적을 소개한다. 여기에 페미니즘 미술 비평가들에게 재평가를 받으면서 유명해진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Artemisia Gentileschi), 카미유 클로델(Camille Claudel), 프리다 칼로(Frida Kahlo) 등이 나온다. 이 책은 서양미술사에 잘 언급되지 않은 일화까지 공개한다. 프랑스의 계몽주의 사상가 드니 디드로(Denis Diderot)가 누드모델이 된 이유가 흥미롭고, 독일의 대문호 괴테(Goethe)가 여성을 위한 누드화 수업이 개설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사실도 이채롭다.

 

이 책의 분량은 적다. 그러나 여성이 누드화를 마음대로 그릴 수 있는 시대를 맞이하는 데 걸린 시간은 너무나도 길다. 다행히 그녀들의 도전과 인고의 시간은 역사가 되어 이 한 권의 책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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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전에 대구 시장은 시민 담화문을 통해 ‘328운동을 제안했다. 그는 코로나19의 조기 종식을 위해 모든 대구 시민에게 328일까지 사회적 거리 두기에 동참하자고 호소했다. 과연 자가 생활에 지칠 대로 지친 사람들이 사회적 거리 두기에 동참할. 대구의 코로나19 확진 환자 수가 점점 줄어드는 추세를 보이자 집에만 있던 사람들이 슬슬 밖으로 나와 식당이나 카페에 간다. 식당과 카페도 밀폐된 공간, 사람이 밀집하기 쉬운 공간이라서 그곳도 안전지대라고 장담할 수 없다.

 

 

 

 

 

 

 

 

 

 

 

 

 

 

 

 

 

 

* 그자비에 드 메스트르 내 방 여행하는 법(유유, 2016)

* 그자비에 드 메스트르 한밤중, 내 방 여행하는 법(유유, 2016)

* 알랭 드 보통 여행의 기술(청미래, 2011)

 

 

 

혼자 사는 사람들은 2주를 어떻게 버틸까. 그들은 나름 자기만의 시간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재미있는 것도 반복하다 보면 언젠가 지루해진다. 그렇다고 다시 재미있는 것을 찾아 밖으로 나갈 수도 없는 일이다. 이런 사람들을 위해 집도 여행 장소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면 무슨 소리 하냐고 비웃을 게 뻔하다. 그런데 300년 전에 집, 그것도 자기 방에서 여행을 한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바로 작가 그자비에 드 메스트르(Xavier de Maistre).

 

메스트르는 결투를 벌이다가 체포되어 가택 감금형을 받았다. 그에게 주어진 가택 감금 기간은 총 42이었다. 당시 그의 나이는 스물일곱이었다. 메스트르는 집에서 한걸음도 나갈 수 없는 현실에 절망하는 대신 자신의 방에서 값싸고 알찬 여행을 떠났다. 그리고 내 방 여행하는 법(유유)이라는 여행기를 썼다. 이 젊은 여행자는 가택 감금형을 받기 전에 이미 내 방 여행을 계획하고 있었다면서 여유를 보인다. 그러면서 방 여행이 돈 한 푼 들지 않아서 좋다고 말한다. 여행을 위해 따로 옷을 준비할 필요가 없다. 집에서 입는 파자마면 충분하다. 그는 방 여행을 소심한 사람에게 추천한다. 방 여행을 하면 강도를 만날 일도 없으며 낭떠러지에서 떨어지는 사고도 만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메스트르가 추천한 여행 코스는 방 안에서 마음대로 누비고 다니는 것이 전부다. 처음에 탁자가 있는 곳에서 출발하여 방 구석구석 돌아다닌다. 그러면서 방에 있는 모든 사물을 주의 깊게 관찰한다. 한정된 공간 속을 자유자재로 돌아다니면 평범한 사물들이 특별하게 느껴질 것이다. 계속 걸으면 지친다. 이럴 때 잠시 의자에 앉아 사색한다. 이것은 휴식이 아니다. 메스트르에게는 사색도 내 방 여행의 일부다.

 

42일간의 방 여행을 한 지 8년이 지나서 메스트르는 정든 방을 떠나 러시아로 가게 된다. 그는 러시아로 가기 전날 밤, 그것도 단 네 시간 동안 방 여행을 한다. 역시 괴짜답게 그는 창틀을 여행의 동반자 말이라고 생각하면서 여행한다. 고요한 밤은 사색 여행을 할 수 있는 최적의 시간이다. 그는 밤의 어둠과 고요가 흘러가고 있는 시간의 음성을 언어로 옮겨주는 통역사라고 한다. 그래서 속편 한밤중, 내 방 여행하는 법(유유)은 여행기라기보다는 명상록에 가깝다. 이 글은 메스트르가 네 시간 동안 방에 있으면서 생각한 것들에 대한 잡다한 기록이다.

 

작가 알랭 드 보통(Alain de Botton)여행의 기술(청미래)에 메스트르의 방 여행을 언급했다. 우리는 따분한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장소로 향하는 여행을 갈망한다. 그러나 알랭 드 보통은 메스트르의 방 여행이 야외 여행에 대한 편견을 깨뜨렸다고 말한다. 우리에게 방은 가깝고도 먼 여행 장소. 우리는 가장 가까이에 있는 방을 여행 장소로 생각하지 않는다. 여행하고 싶은 우리의 마음은 늘 야외로 향해 있다. 야외 여행만 생각하는 우리는 너무나도 가까운 방이 멀게만 느껴진다. 누군가는 방을 여행할 수 있다는 발상이 우스꽝스럽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방 여행은 특이한 일이 아니다. 익숙한 것들에 대한 특별함과 소중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특별한 일이다. 몇 시간이든 며칠이든 내 방을 관찰하면 새롭게 느껴지는 사물을 발견할 수 있다. 또 살면서 잊고 있었던 추억의 보물을 방에서 찾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방에서 발견한 보물이 예전에 숨겨둔 돈이라면 방 여행은 성공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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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17 20: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20-03-17 23:48   좋아요 0 | URL
요즘 산에 사람들이 많이 오지 않아요? 밀폐된 장소는 아니지만, 산길에 사람들이 많이 지나가니까 아무래도 접촉 감염이 될 가능성이 높아요. ^^;;

moonnight 2020-03-18 1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직장동료들이 요즘 저를 부러워하네요. 원래 틀어박혀서 책읽는 것만 좋아했으니 답답하지 않겠다며^^;

cyrus 2020-03-18 22:35   좋아요 0 | URL
출근해야 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재택 근무하는 사람이나 집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을 부러워할 거예요. ^^;;
 

 

 

스페인의 한 성당에 에케 호모(Ecce Homo)라는 제목의 오래된 벽화가 있었다. 에케 모호는 이 사람을 보라는 뜻의 라틴어. 이 벽화에 가시 면류관을 쓴 예수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성당 신도(그녀는 복원 작업을 해본 적이 없는 수공예 교사였다)는 벽화 복원 작업을 시도했다. 그러나 벽화를 복원하는 데 실패한다.

 

 

 

 

    

 

 

예수의 얼굴은 사라지고 원숭이처럼 생긴 우스꽝스러운 얼굴이 남게 된 것이다. 스페인 언론은 이 벽화를 공개하면서 역사상 최악의 복원이라고 비난했다. 하지만 벽화는 명성을 얻었다. 외국 네티즌들은 복원에 실패한 벽화를 이 원숭이를 보라라는 이름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벽화를 보려고 성당을 찾은 사람들이 많았다.

 

이런 뜨거운 반응에도 예수를 존경하는 종교인들과 예술을 사랑하는 미술 전문가들은 예수의 얼굴이 사라진 벽화를 실패작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들은 치렁치렁한 긴 머리와 수염 없는 예수의 얼굴에 위엄이 사라졌으며 아름답지 않다고 느낀다. 머리카락 잘린 삼손(Samson)이 힘을 잃은 것처럼 수염 없는 예수는 영적인 권위를 잃어버린다.

    

 

 

 

 

 

 

 

 

 

 

 

 

 

 

 

* [절판] 다니엘라 마이어, 클라우스 마이어 (작가정신, 2004)

 

 

 

남자의 인상을 만드는 가장 중요한 것은 머리 모양과 수염이다. 그러나 털의 중요성은 그 정도로 단순하지만 않다. 남성의 털은 남성성의 상징으로, 남성성은 힘의 상징으로, 그 힘은 권위의 상징으로 점점 복합된 이미지를 형성한다. ‘체모의 문화사라는 부제가 달린 (작가정신)은 털에 얽힌 인간의 문화와 미적 가치가 시대별로 어떻게 변하는지 보여준다.

 

수염은 단순히 인상을 만들어주는 털에 그치지 않는다. 수염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남자들의 체면과 권위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서구에서 수염 옹호론자면도 옹호론자는 오랜 기간 동안 서로 힘을 겨뤄왔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수염이 권력의 상징이었기 때문에 파라오(Pharaoh)만이 수염을 기를 수 있었다. 남성 종교인들은 예수의 남성성과 권위를 향상하기 위해 수염을 예찬했으며 자신들도 수염을 길렀다. 반면 면도를 지향하는 종교인들도 있었다. 고대 이집트 사제들은 털을 세속적인 것으로 인식하여 머리카락과 눈썹을 밀었다고 한다. 그들은 신의 몸에 털 한 올이 없다고 믿었다. 학자들도 수염 대 면도의 대립에 동참했다. 수염을 지성의 상징으로 보는 학자들의 주장이 대세를 이루었지만, 한때 수염 기르기를 거부하는 학자들의 주장도 인기를 얻었다.

    

 

 

 

 

 

 

 

 

 

 

 

 

 

 

 

* 크리스토퍼 올드스톤-모어 수염과 남자에 관하여(사일런스북, 2019)

 

 

 

은 현재 절판된 책이다. 체모에 관한 흥미로운 역사를 보여준 의 빈자리를 채운 책이 수염과 남자에 관하여(사일런스북)이다. 수염과 남자에 관하여도 체모의 문화사를 다루고 있지만, 이 책의 저자는 수염과 면도에 중점을 맞춘다. 수염과 남자에 관하여보다 분량이 작다. 하지만 의 공동 저자는 주류 역사가 외면한 여성의 체모, 머리카락, 대머리에 관심을 보인 옛사람들의 기록에 주목한다.

    

 

 

 

 

 

 

 

 

 

 

 

 

 

 

* [절판] 베아트리스 퐁타넬 치장의 역사(김영사, 2004)

 

 

 

남자들은 자신의 얼굴에 기른 수염을 과시했지만, 여성이 수염을 기르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남자들은 여자의 아름다움을 위해 수염뿐만 아니라 체모를 기르지 않는 것을 권장했다. 이로 인해 여성은 체모를 언제나 수치스럽고 아름답지 못한 것으로 인식했다. 치장의 역사는 여성의 체모 제거가 가장 오래된 화장 문화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로마 귀부인들은 온 몸과 얼굴에 난 털은 물론 콧구멍에 난 털까지도 모조리 뽑았다.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의 부인들은 고귀함의 상징이었던 넓은 이마를 만들고자 눈썹과 두개골 상부 머리카락을 뽑았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의 작품 <모나리자>를 보면 르네상스 시대의 미인상을 확인할 수 있다. 여인의 입가에 띤 은은한 미소를 주목한 사람들은 여인의 얼굴에 눈썹이 없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차린다.

    

 

 

 

 

 

 

 

 

 

 

 

 

 

    

 

* 쉴라 제프리스 코르셋(열다북스, 2018)

    

 

 

의 공동 저자는 모든 문화권에 나타난 여성의 제모 제거 풍습을 고문이라고 표현한다. 따라서 제모는 길고 긴 여성 억압의 역사에 대한 하나의 상징으로도 볼 수 있다. 이러한 입장은 탈 코르셋을 지향하는 급진 페미니스트들이 주장하고 있다. 국내 급진 페미니스트들이 선호하는 호주의 여성학자 쉴라 제프리스(Sheila Jeffreys)는 미용 관습이 여자의 순종을 표시한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그녀가 말한 순종은 여자가 남자를 위해 성적으로 복무하려는 의지와 성적 복무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의지 모두를 의미한다. 대부분 남자는 여성의 매끄러운 피부를 선호한다. 그리고 털이 없는 여성 겨드랑이와 음부 페티쉬(fetish)가 있는 남자들이 있다. 쉴라 제프리스를 포함한 탈 코르셋 지지자들은 여자는 이런 남자들을 위해 제모를 하게 되고, ‘아름답고 순종적인 여성성을 실천할 것을 강요받는다고 주장한다.

 

 

 

 

 

 

 

 

 

 

 

 

 

 

 

 

 

 

 

* [품절] 키레네의 시네시오스 《대머리 예찬(21세기북스, 2005)

 

   

 

수염 대 면도의 역사가 상당히 오래돼서 그런지 머리카락 대 대머리의 역사가 그다지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국내 네티즌들의 키보드 배틀(온라인 언쟁)을 부추기는 주제 중 하나가 바로 대머리 또는 탈모 인에 대한 차별 문제이다. 대머리와 탈모 인을 긍정하는 사람들은 탈모를 희화화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머리카락 없는 사람의 심리를 위축시킨다고 주장한다. 사실 머리카락 대 대머리논쟁은 탈모 환자가 급격히 일어나기 시작한 시기부터 시작된 것은 아니다. 머리카락 대 대머리의 역사도 수염 대 면도의 역사만큼 오래 됐다. 고대 그리스의 신플라톤주의 철학자 키레네의 시네시오스(Synesios of Cyrene)는 탈모와 대머리를 예찬한 최초의 인물이다.

 

시네시오스는 대머리였다. 그는 자신의 스승이자 경쟁자인 황금 입의 디온(golden-mouthed, ‘황금 입은 별명이고, 본명은 ‘Dio Chrysostom’이다)이 쓴 글인 <머리카락 예찬>을 보자 분노한다. <머리카락 예찬>은 말 그대로 머리카락이 풍성한 사람을 예찬한 글이다. 시네시오스는 <머리카락 예찬>에 대한 반론으로 대머리 예찬(21세기북스)을 쓴다. 그는 이 글에서 대머리가 지성의 상징인 이유를 열거한다. 그런데 그가 내세운 몇 가지 이유를 지금 보면 억지스럽고 논리적이지 않다. 시네시오스는 일 년 내내 태양에서 나오는 빛을 쬔 대머리는 강철 같이 단단해져서 모든 질병을 물리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태양 자외선 때문에 피부가 상할 수 있어서 오히려 건강에 좋지 않다.

 

강철 대머리의 우수성을 주장한 시네시오스의 주장을 재반박할 수 있는 사례가 있다. 비록 구전된 일화이지만, 고대 그리스의 비극작가 아이스킬로스(Aeschylos)의 최후에 대한 이야기다. 아이스킬로스는 하늘에 떨어진 거북 등껍질에 맞아 죽었다. 독수리는 포획한 거북의 딱딱한 등껍질을 깨기 위해 거북을 바위에 떨어뜨렸고, 하필 거북이 아이스킬로스의 머리를 명중한 것이다. 아이스킬로스는 햇볕을 받으면 반짝반짝 빛나는 대머리였다고 한다. 아마도 독수리는 아이스킬로스의 대머리를 단단한 바위로 보였던 것 같다. 위대한 비극 작가답게 그는 최후의 작품인 대머리의 비극을 만들고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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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2020-03-17 0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같은 날짜에 저도 털에 대한 페이퍼를 쓴거로군요~저는 머리털^^
그런데 성당 벽화는 종교를 떠나서 봐도 복원 너무 못 한 거 아닌가요? ㅎㅎ
복원이 아닌 자신만의 새로운 작품을 탄생시켜 버렸네요..화풍은 앤서니 브라운 풍?

cyrus 2020-03-17 18:06   좋아요 0 | URL
저는 예수를 남성도, 여성도 아닌 무성의 존재로 묘사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요. 그동안 남성 종교인들은 예수가 남성이라는 근거를 내세워 권위를 획득했어요. 물론 기독교인들은 제 생각에 동의하지 않을 거예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