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중순에 친구들과 식사한 이후로 식당이나 술집에 가본 적이 없다. 마지막으로 식당에 간 날은 대구에 코로나19 확진 환자가 한 명도 발생하지 않았을 때였다. 식당에 간 지 한 달 지났지만, 식당에서 친구들과 주고받은 대화는 지금도 기억한다.

 

그날 AB라는 친구와 함께 식당에 갔다. 밥 먹고 있다가 A가 사래에 걸려 기침을 했다. B는 기침한 A를 보면서 이렇게 말했다. “, 너 코로나에 걸린 거 아니야? 너 이제 가까이 오지 마.” B는 장난으로 A를 피하는 시늉을 했다. A는 웃으면서 밥 먹다가 기침한 것뿐이라고 말했다. 나는 B“A가 중국에 간 적이 없는데 코로나에 걸렸겠냐? 농담하지 말고 밥이나 먹어라고 말했다. 다행히 B의 말은 씨가 되지 않았다. 현재 AB 모두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다.

 

잔기침하거나 가벼운 발열 증상만 느낀 사람들은 코로나19 확산 때문에 마음이 아찔했을 것이다. 코로나19에 걸리면 확진 환자라는 사회적 낙인이 찍히기 때문이다. 본인 때문에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줄까 봐 외출을 꺼리게 된다. 외출을 꼭 해야 하는 상황이 생기면 마스크를 쓰면 된다. 그렇지만 마스크는 연이어 나오는 기침 소리를 막지 못한다. 감기 환자는 버스나 지하철을 타기가 두렵다. 버스 안에서 기침하면 버스를 탄 사람들의 시선을 한 번에 받는다. 이런 상황은 드라마 <태조 왕건>에서 궁예(김영철 분)가 했던 대사를 떠올리게 한다. 누가 기침 소리를 내었는가?’ 궁예는 기침한 관료에게 네 머릿속에 마군(魔軍: 불도를 방해하는 악을 비유한 말)이 가득 찼다면서 호통을 친다. 그런 다음 관료를 죽이라는 명령을 내린다. 모든 사람이 코로나19에 상당히 예민해진 시기에 잔기침 한 번 했다가는 주변 사람들의 눈총을 받기 쉽다. 누군가가 낸 기침 소리를 듣는 순간 우리 모두 궁예가 된다. ‘이 시국에 누가 기침 소리를 내었는가? 저 사람의 몸에 코로나19가 있다.’ 궁예가 된 사람들은 잔기침한 사람을 죽이지 않는다. 다만 눈빛으로 잔기침한 사람을 쏘아붙인다. ‘집에나 있지 왜 밖에 나온 거야?’

    

 

 

 

 

 

 

 

 

 

 

 

 

 

 

* 장 자크 상뻬 얼굴 빨개지는 아이(열린책들, 2018)

    

 

 

소리가 나는 쪽을 쳐다보는 것은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하지만 이 시선이 낙인을 찍기 위한 용도가 돼선 안 된다. 기침과 재채기를 코로나19와 관련된 위험 신호로 단정할 수 없다. 사소한 오해는 타인과의 정서적 거리를 멀게 만든다.

 

장 자크 상뻬(Jean Jacques Sempe)의 그림책 얼굴 빨개지는 아이(열린책들)에 주위 사람들의 시선을 견디지 못해 외톨이가 된 두 소년이 나온다. 마르슬랭 카이유는 시도 때도 없이 얼굴에 빨개진다. 그의 친구 르네 라토는 계속 재채기를 한다. 사람들은 얼굴 빨개진 마르슬랭을 볼 때마다 한마디씩 한다. 저 아이는 병에 걸린 게 틀림없어요.’ 마르슬랭은 남들과 다른 외모 때문에 늘 혼자 다닌다. 그는 자신과 똑같이 남들과 구별되는 아픔을 안고 사는 르네를 만나게 된다. 두 소년은 서로에게 연대감을 느껴 자연스럽게 친구가 된다. 둘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 얘기도 하지 않고 있을 수 있을만큼 친해진다.

 

얼굴 빨개지는 아이는 우리가 잘 보지 못하는 편견을 그림과 텍스트로 보여준다. 코로나19가 언제 사그라질지 알 수 없지만, 코로나19가 만들어 낸 정서적 거리 두기는 오랫동안 지속될 것이다. 감기에 걸리면 코로나19의 증상인지 스스로 의심해야 하고, 확진 판정을 받기도 전에 자신의 몸 상태를 주위 사람들에게 들킬까 봐 노심초사해야 하는 상황이 오는 건 아닌지 우려된다. 날카로운 편견의 시선은 생각보다 아프고, 무섭다. ‘낙인이 된 편견은 상당히 오래 간다. 그것은 한 사람을 외톨이로 만들어 가두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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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18 11: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20-03-18 22:26   좋아요 0 | URL
저는 손님이 많이 없는 식당에 가려고 해요. 오늘 시내에 가야 할 일이 있어서 제가 아는 식당에 갔어요. 역시 가보니 손님이 한 사람도 없었어요.

진주 2020-03-18 1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2월초에 모임을 가진 후론 아무도 못 만났어요.
사람을 안 만나니 식당도 커피가게도 갈 일도 없군요.
뿐만 아니라 출근도 3주째 못 하고 있어요.
확진자도 아니고, 유증상자, 확진자와 접촉자도 아닌데 말이죠.
제 일이 그래요.
간간이 집 앞 언덕배기로 산책을 나갈 뿐이죠.
거리두기에 점점 익숙해지고 있는 저를 발견해요.....


cyrus 2020-03-18 22:27   좋아요 0 | URL
사람들이 많이 모이지 않는 장소에만 가지 않으면 돼요. 사람은 햇볕을 받아야 해요. ^^

레삭매냐 2020-03-18 15: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구니가 아니라 ‘마군‘이었군요...

지금까지 마구니가 끼었어라고 알고
있었네요 ㅋㅋㅋ

코로나 때문에 유일한 낙인 달궁 모
임도 계속 연기되고 있네요 내 참~~

cyrus 2020-03-18 22:30   좋아요 0 | URL
제가 참석하는 우주지감, 레드스타킹 모임 모두 연기되었어요. 확정된 건 아니지만, 이번 달도 독서 모임은 없어요. ^^;;

moonnight 2020-03-19 0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저녁 술자리가 2월 17일이었네요. 오늘 퇴근하는데 술집으로 젊은이들 서너명이 들어가더군요. 젊음은 바이러스도 무섭지 않은 것인가 감탄했어요@_@;;;

cyrus 2020-03-19 16:56   좋아요 0 | URL
아마도 식당에 가는 사람들은 ‘무증상 전염’의 위력을 무서워하지 않는 것 같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