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도전을 위한 변명 - 혁명가 정도전, 새로운 나라 조선을 설계하다
조유식 지음 / 휴머니스트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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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cene #1  문제적 인간, 정도전

 

물 1g의 온도를 섭씨 1도 올리려면 1㎈의 열량이 필요하다. 그러나 0도의 얼음을 같은 온도의 물로 변화시키기 위한 융해열은 80㎈에 달한다. 즉 1g의 얼음을 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열량은 같은 양의 물의 온도를 무려 80도나 올릴 수 있는 열량과 같다.

 

한 사회에서 벌어지는 각종 변화들은 얼음이 물로 변화하는 과정과 많이 닮아 있다. 갑작스러운 변화처럼 보여도 밑바닥을 살펴보면 이미 오래 전부터 그 변화를 위해 뿌려진 밑밥이 적지 않게 깔려 있는 경우가 많다. 18세기 말 프랑스 혁명의 배경만 들여다보아도 소수가 권력과 부를 독점하는 구체제의 오랜 모순, 과도한 군사비 지출에 따른 국가재정 파탄, 계몽사상의 확산 등 수도 없이 깔린 밑밥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혁명은 대개 아름답고 숭고한 이상을 명분으로 삼지만, ‘혁명은 혁명가와 독재자, 그리고 시민의 피를 먹고 자란다’는 말처럼 결과는 참혹하기 마련. 국가와 체제가 흔들리는 ‘개와 늑대의 시간’은 피아의 구분을 무너뜨리고 긴 시간 믿어온 절대적인 신뢰와 가치마저도 잊게 만든다.

 

정도전은 국사 교육을 받은 사람들에게 꽤 혼란스러운 존재다. 조선을 건국할 때 정도전은 거의 모든 분야에 관여한다. 한양 천도, 조세 개혁, 사병 혁파, 병법서와 법전 편찬 등 빠지는 곳이 없었다. 그런데 정작 조선을 건국한 주인공은 이성계로 나온다. 그뿐만 아니다. 같은 시대를 살았던 정몽주는 끝까지 고려를 지킨 충신으로 등장한다. 이에 비해 정도전은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한 채 역적 누명을 쓰고 역사 무대 밖으로 강제로 퇴장 당했다.

 

백성들을 위한 민본정치를 꿈꾸며 가슴에 품고 있던 웅지를 다 펼쳐보지 못하고 죽은 정도전의 시신은 오늘 현재까지 찾을 길이 없고 묘소도 없다. 역사는 승자에 의해 쓰여지고 더더욱 조선실록은 패자(覇者)의 그늘에서 써져서 일까?

 

2인자는 양날의 검과도 같은 자리다. 2인자는 1인자를 보필하는 책사(策士)이자 실권자이며 후계자로 여겨지지만 1인자의 자리를 넘보는 순간 제거대상에 오른다. 또 2인자는 상황에 따라서 가차 없이 버림받기 일쑤다.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万人之上)’ 정도전. 그는 뛰어났기에 불우했던 2인자였다.

 

왕조시대를 살았던 곡절 많은 정치인들의 생애는 그가 펼쳐보였던 삶의 궤적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유배지에서 한양으로, 멸망 왕조에서 새 왕조의 개국 공신으로, 재상에서 간신으로, 최고 실권자에서 반역자로. 그를 설명해 낼 주제어들은 여럿이다. 그만큼 정도전은 여러 무늬와 결로 해석된다. 역사를 바라보는 입장에 따라 그 폭과 깊이는 더해질 수 있다.

 


 Scene #2  혁명을 위해 스스로 ‘장량’이 되다 

 

그런 정도전을 다시 평가를 위한 무대로 호출했다. ‘변명’이라는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역사 속에서 그려진 정도전의 모습은 나라를 망친 인물이었다. 조선 왕조 500년 기간 동안 나라에 해악을 끼친 역적으로, 말기인 대원군대에 이르러서야 겨우 복권됐던 인물이다.

 

“정도전은 술에 취하면 자신과 이성계의 관계를 중국 한(漢)나라 고조 유방과 참모 장량의 관계에 비유하며 ‘한 고조가 장량을 이용한 것이 아니라 장량이 한 고조를 이용한 것이다’고 했다.” (42쪽)

 

이는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했지만, 그는 형식적인 시조였을 뿐 실질적인 시조는 정도전이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정도전은 요동정벌을 꿈꾸며 나라를 명나라와의 전쟁이라는 위기 속으로 몰아넣은 인물이었으며, 개혁이라는 명분 앞에서 스승과 친구에게도 가차 없는 비판을 가했던 냉혈한이었다. 고려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해 흑색선전도 마다하지 않았던 점에서 철저한 정치인이었기도 했다.
 
21세 때 당시 개혁군주로 인기가 높던 공민왕의 일탈행위를 폭군의 비행에 비겨 신랄하게 꼬집었던 대단한 배포를 가졌지만 한편으로는 정도전 스스로 자신을 치켜세우기 위해 ‘유방과 장량’을 인용했던 모습에서 겸손하지 못한 그의 성격을 알 수 있다. 냉정하고 자존심이 높았던 성격이 주변으로부터 질시와 시기를 야기하였고 이성계와의 관계를 군신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혁명동지로 인식했다는 것이 최대의 부덕이기도 하다.

 

조선의 헌법 초안인 <조선경국전>, 역사책 <고려사>, 불교비판서 <불씨잡변> 등이 그의 손에서 나왔다. 특히 <조선경국전>과 <경제문감>은 이후 조선의 헌법전인 '경국대전'의 기초가 된 것으로, 조선왕조가 그의 손에 의해 기획됐음을 알 수 있다. 경복궁 건축과 수도 한양도 바로 그의 작품이다.

 


 Scene #3  “인심을 얻지 못하면 백성은 인군을 버린다”

 

정도전이 고려를 무너뜨리고 조선을 건국하는 데 앞장섰던 것은 절대왕권의 시대를 끝내고 입헌군주제의 시대로 가야 한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길만이 도탄에 빠진 백성들을 살리고 나라를 구하는 길이라고 믿었다.

 

정도전의 민본위주의 정치사상은 단순히 유교적 정치사상을 도입한 것이 아니라 고려 말 부패한 지배계급 아래에서 신음하던 백성들과 함께 생활하는 과정에서 얻어진 정신이었다. 정도전은 <조선경국전>의 서문에 이렇게 썼다.

 

“인군의 ‘위’는 높기로 말하면 높고, 귀하기로 말하면 귀하다. 그러나 천하는 지극히 넓고 만민은 지극히 많다. 만일 인군이 천하 인민의 인심을 얻지 못하면 크게 염려할 일이 생긴다. 인심을 얻으면 백성이 복종하지만 인심을 얻지 못하면 백성은 인군을 버린다.” (『조선경국전』 한영우 역, 올재클래식스, 36쪽)

 

정도전은 <맹자>의 민본주의를 자기 사상의 근본으로 삼았다. 유교적 민본주의에서는 군주의 정통성을 천명에 두고 있으며 그 천명은 궁극적으로 백성에 의해 확보되고 유지된다. 맹자에게 정치적 행위의 현실적 근거가 민심이라면, 이념적 근거는 하늘이라고 할 수 있다. 바로 이 점이 유교적 민본주의의 두드러진 특징이며, 정도전도 이 틀을 벗어나지 않는다.
 
정도전은 왕권의 세습을 인정하면서도 권력을 감시·통제하고 분산시키는 장치를 마련하는 데 많은 힘을 쏟았다. 왕권은 어디까지나 상징적이고 관념적인 것으로 실제로 절대 권력을 마구 휘두르는 독재자로 군림해서는 안 된다는 게 정도전의 믿음이었다.

 

여기서 재미있는 일화를 소개하자면 정도전의 역성혁명의 발판을 마련하게 된 <맹자>를 그에게 소개한 사람이 같이 공부하면서 지낸 지음(知音) 정몽주라는 것이다. 귀양을 가게 된 정도전에게 소일거리삼아 읽으라며 보내준 책 한 권이 고려의 역사를 마무리 하게 된 단초가 되었다는 사실은 역사의 아이러니다.

 

 

 


 Scene #4  “민본주의를 이뤘는가?”  

 

정도전 그리고 조선 건국의 역사를 되돌아보면서 자문해본다. 만약 정도전이 살아 돌아온다면 백성, 즉 국민을 위한 정치를 일으켜 세울 수 있을까? 과연 한국 사회는 정도전에게서 어떤 현실적 가능성을 만날 수 있을까?

 

정도전은 재상 정치론 때문에 왕권 정치를 추구하는 이방원의 역습을 받아 목숨을 잃었다. 정도전이 추구한 민본주의는 자신이 직접 왕이 되거나 백성을 주권자로 내세울 때 실현 가능성이 훨씬 높은 이념이었다.

 

그러나 정도전의 힘과 역사 인식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는 왕권의 원천이 백성에게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백성의 주권이 왕이라는 매개체 없이 작동하는 체제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실천적 한계를 인식하고, 이성계의 아들 가운데 왕의 자질이 가장 뛰어났던 이방원을 후계자로 밀고 그를 통해 민본주의를 구현했더라면 우리가 알고 있는 조선과 전혀 다른 방향 혹은 더 화려하게 발전하는 방향으로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정도전을 위한 변명』을 보면 예나 지금이나 정치하는 모습은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정치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이벤트 정치, 가장 친했던 친구와 스승조차에게도 칼을 겨누는 냉혹함, 인신비방이 난무하는 추악한 모습 등.

 

특히 정도전의 입을 빌려 나라가 안팎으로 위기에 몰려 있을 때 은거하면서 그저 자기 몸 하나 보전할 생각만 하는 이름만 ‘선비’인 관료들의 위선을 꼬집기도 한다. 지금 이 시대에도 자칭 관료라는 사람들이 이러한 정도전의 가르침을 거스르는 삶을 살고 있다면 국민과 나라를 위해서 한번 생각해 볼만한 가르침이다.

 

완벽한 성공은 철저한 실패만큼 길하지 않다. 조용한 가운데 목숨이 다하는 순간까지 초심을 잃지 않고 미리 계획한 대로 한 국가를 부수고 한 국가를 세운 혁명가 정도전이다. 뼈를 깎는 자기혁신과 민본주의, 부국강병의 의지는 21세기 이 땅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특별한 울림을 준다.

 

지금 대한민국에 필요한 정치인이나 관료에게 필요한 덕목은 태평성대를 불러올 마법의 능력이 아니라 바른 가치와 비전, 그리고 이를 끌어낼 통합의 리더십일지도 모른다. 갈등을 조정하고 사회적 합의를 끌어낼 소통의 시스템을 복원하는 과정이 더욱 중요하다. 그게 민주주의의 작동원리다.

 

700여 년 전, 이 땅에서 벌어진 혁명은 오늘날 많은 것을 시사한다. 언제나 그렇듯 역사는 과거를 논하지만, 결국 그 생각의 끝이 닿는 곳은 현재이다. 2014년의  ‘정도전’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결국 누구를 위한 국가인가, 그리고 그 누구를 위한 국가의 모습이 아니라면 혁명조차 기꺼이 감내해야 한다는 가장 불온한 서사이다. 의도했건 의도치 않았건, 부활한 정도전은 우리에게 묻는다. “민본주의를 이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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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자식 더러운 똥오줌도 / 그대 마음 하나도 거리낌 없는데 / 늙으신 부모님 눈물과 침 떨어지면 / 그대는 도리어 미워하고 싫어하네 / 그대의 몸뚱어리 어디에서 나왔는가 / 아버님의 정기와 어머님의 피라네 / 그대여 늙어가는 부모님을 공경하오 / 젊으실 때 그대 위해 살과 뼈가 닳으셨소.” (『명심보감』 ‘팔반가팔수’(八反歌八首) 중 제3절)


 

 

 

 Scene #1  우리는 유태인입니까?

 

유태인은 결혼하면 부모와 한집에 살지 않는다고 한다. 어느 편이 나빠서가 아니라 시어머니와 며느리는 잘 어울리지 못하는 속성을 알기 때문이다. 그들의 속담에도 “고부가 한집에서 사는 것은 고양이 두 마리를 한 가방 속에 넣어 기르는 것과 같다”는 얘기가 있다. “아담은 이 세상에서 가장 행운아였다. 장모가 없었기 때문이다”는 속담도 있다.

 

사람은 누구나 늙는다. 젊어서는 건강함을, 늙어선 백발을 자랑하라고 했다. 그러나 지금 이 나라에서 백발은 자랑거리가 못된다. 이제 자랑할 수가 없다. 많은 어버이는 자식들에게 벌써 천덕꾸러기가 돼 있다. 효(孝)가 미덕이니 하는 말은 박물관에서나 찾아야 할 세상이 다 됐다.

 

어느 결혼정보회사에서 최근 20, 30대 미혼 남녀 회원 천여 명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여자의 90%, 남자의 40% 이상은 시부모(부모)와 같이 살지 않겠다고 대답했다는 이야기다. ‘모시고 살겠다’는 여자와 남자는 각각 4%와 10% 이상이었다. 만약 그들의 부모에게 거꾸로 똑같은 질문을 해봤으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오늘은 어버이날. 붉은 카네이션 물결로 가득하다. 해마다 되풀이되는 요란함은 이 나라가 마치 어른들의 천국임을 확인이라도 해주는 듯하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 땅의 어른과 어버이는 이미 사라졌거나 사라져가고 있다. 그 많은 자식들이 하루 동안의 ‘효도 대열’에 참여하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일이다.

 


 Scene #2  효란 무엇입니까?

 

 

 

 

 

 

 

 

 

 

 

 

 

 

 

 

<논어>에서 공자는 대화를 통해 효의 본질을 명료하게 가르쳐주고는 했다. 위정(爲政)편의 이 대화는 짧지만 공자의 성품을 잘 상상할 수 있게 한다.

 

맹무백이라는 사람은 노(魯)나라 대부(大父)의 맏아들이었는데 마음이 착했다. 그가 “효란 무엇입니까?”라고 묻자 공자는 “부모는 오로지 자식의 질병을 근심한다”(父母 唯氣疾之憂)라고 대답했다. 맹무백은 건강이 좋지 않았나 보다. 그렇기에 건강 때문에 혹 부모에게 걱정을 끼칠 우려가 있으므로 몸을 건강하게 하는 일이야말로 진정한 효라는 진리를 가르친 것이다.

 

효자라 해도 질병에 걸릴 수가 있다. 부모에게는 자식이 질병에 걸릴까 염려하는 걱정만은 어쩔 수 없이 남겨두되 다른 걱정은 일절 끼쳐서는 안 된다. 혹 기질을 부모의 질병으로 풀이한다면 이 구절은 효행이란 자식이 부모가 병에 걸리지 않기만을 늘 걱정하는 마음을 지니는 것이라는 뜻이 될 수도 있다.

 

공자가 살고 있었을 때나 지금이나 부모에게 효를 행할 때 진정 사랑하는 마음 없이 행하는 가식적인 예가 그때도 지금과 같았던 걸까. 위정편에 보면 견마지양(犬馬之養)이라는 말이 있다.

 

오늘날의 효라는 것은 부모를 봉양하는 것을 말한다. 개나 말 따위도 모두 (서로를) 먹여주고 있으니, 공경하지 않는다면 무엇으로 구별하겠느냐?

 

今之孝者 是謂能養 至於犬馬 皆能有養 不敬 何以別乎 (53쪽)

 

부모를 모심에 있어서 집에서 기르는 개나 말처럼 부양하는 정도의 물질적인 것으로 대신하니 이것이 문제가 된 것이다. 요즈음은 맞벌이를 해야 먹고 살 수 있는 세상이니 신혼부부가 결혼을 해서 애를 낳아도 직접 애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육아원에 맡기거나 장모나 시어머니가 키우는 예가 많다.

 

자기를 낳고 키워주신 부모님을 공경하지 않는 사람이 어떻게 아이들을 교육시키고 다른 사람과의 인간관계를 바르게 가질 수 있겠는가.

 

효(孝)는 늙을 노(老)를 아들 자(子)가 업고 있는 모습이다. 이것이 유교의 도덕 사상의 기본이 되는 삼강오륜(三綱五倫)으로 우리나라의 도덕과 윤리를 지켜주는 버팀목이 되어 왔다.

 

 

 

 

 

 

 

 

 

 

 

 

 

 

 

 

<동몽선습>에서 말하기를 어버이는 인자하고, 자식은 효성스러우며, 임금은 의롭고, 신하는 충성스럽고, 남편은 온화하고, 아내는 순하며, 형은 동생을 사랑하고, 동생은 형을 공경하며, 친구는 어짐으로 도와야 사람이라고 했다. 그중에서도 어버이에게 효도를 한 후에야 임금에게 충성하고, 동생은 형에게 공손한 후에야 어른에게 공손스러우니 효가 가장 으뜸이라고 했다.

 

오늘날 삼강오륜에 한 가지라도 위배되지 않는 사람이 없으니 세상이 삭막하고, 악랄스럽고, 이기적이고, 불효와 폐륜으로 세상을 시끄럽게 하는 일이 다반사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Scene #3  진짜 탕자는 누구인가? 

 

효는 시대와 종교와 사상을 가리지 않고 시공을 초월한 최고의 윤리규범으로 지켜져 왔다. 서양문명의 바탕이 되는 기독교는 십계명에서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명하고 있다. 십계명 중 앞에 네 개는 절대자인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연관된 것이고, 나머지 여섯 계명은 인간관계를 규정한 것인데 인간관계의 규범에서 제일 첫 번째를 효에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살아계신 부모님을 섬기지 못한다면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어찌 섬기겠느냐 하는 것이며 부모님이 살아 계신 동안을 정성껏 받들 것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공자가 맹무백에게 강조한 자식을 향한 부모의 마음은 성서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누가복음 15장에 기록되어 있는 ‘탕자의 귀환’에 나오는 아버지가 있다.

 

큰 아들은 신실했고 작은 아들은 제멋대로였다. 하루는 작은 아들이 자기 인생을 살겠다고 아버지에게 유산을 미리 당겨 달란다. 기어이 작은 아들은 자기 몫의 재산을 챙겨 나가 허랑방탕한 생활을 하다 재산을 다 날리고 거지 신세가 되고 말았다. 사람들은 그를 탕자라고 불렀다. 큰 아들은 달랐다. 아버지의 뜻을 어겨본 적이 없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맡겨진 일에 충실했다. 재산을 탕진하지도 않았다. 그는 아버지를 위해 부지런히 일했다. 사람들은 그를 효자라고 칭찬했다.

 

어느 날 작은 아들이 거의 굶어죽을 상황에 처해서야 한 가지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아버지 집에는 종들조차 풍족히 먹고 사는데 자기는 지금 여기서 굶어죽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사실을 깨닫자 아들은 즉시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갈 것을 결심한다. 염치없지만 아버지에게 자기를 품꾼으로 써 달라고 하면 그 정도는 들어주시지 않겠느냐는 생각에서였다.

 

 

 

 

렘브란트  「돌아온 탕자」  1668~1669년

 

 

작은 아들이 집을 나간 후 아버지는 단 하룻밤도 깊은 잠을 자본 적이 없었다. 집 나간 아들을 기다리는 것이 아버지의 일상이 되었다. 얼마 후에 드디어 작은 아들이 집으로 돌아왔다. 몰골은 영락없는 거지지만 아버지는 단번에 아들을 알아보았다.

 

그런 아들을 보고 아버지는 그저 집에 돌아와 준 것만으로도 고맙다며 제일 좋은 옷을 입히고 아들의 신분을 나타내는 금가락지를 끼워주고 살진 송아지를 잡아 동네잔치를 벌인다. 들에서 일을 마치고 돌아온 큰 아들이 상황을 파악하고 심술이 나서 아버지에게 따진다. 아버지는 안타까워하며 간곡히 이른다.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다되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았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누가복음 15:31~32)

 

같이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나 큰 아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자기는 동생처럼 하지 않았다는 것으로 자신은 의롭다고 생각했다. 그것으로 동생을 비난하고 정죄했다. 그러나 큰 아들이 놓친 것이 있다. 바로 아버지의 마음을 몰랐다는 점이다. 작은 아들은 한 때 아버지의 마음을 아프게 한 적이 있었지만 이제는 은혜가 무엇인지를 깨달았다. 큰 아들은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만큼 했다'는 생각에 여전히 은혜가 뭔지 몰랐다. 제일 안타까운 것은 그는 여전히 다른 사람을 은혜로 대할 줄 모르는 사람이란 점이다. 큰아들이야말로 집안의 탕자였다. 그는 못난 자식을 근심하고 따뜻하게 품을 줄 아는 아버지의 깊은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Scene #4  효는 만유 공통의 윤리 

 

부모님을 위하여 하는 일을 귀찮게 여기거나 짜증을 내면서 효도를 한다고 하는 것은 거짓이다. 세상에 태어나게 한 은혜를 생각하면 언제나 기쁨과 즐거움과 감사의 마음으로 실천하는 효도가 되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부모에게 큰 걱정을 끼치지 않는 것이 효의 본질이다. 송나라 때 소옹(邵雍)은 큰 추위, 큰 더위, 큰 바람, 큰 비가 있으면 집밖으로 나가지를 않았다. 게으르거나 자기 몸을 아껴 그런 것이 아니다. 부모에게 걱정을 끼치지 않으려고 자기 몸을 공경했기 때문이었다.

 

살아생전에는 이러한 것을 모르다가 제 자신이 애를 키워보고, 부모가 돌아가신 후에야 비로소 다 못한 죄를 느끼게 된다. 부모님에 대한 공경과 보은은 정성이 깃들고 마음 속 깊은 곳으로부터 우러나오는 감사의 뜻이 있어야 한다.

 

세월은 아무도 기다려주지 않는다. 불효자는 화장터엘 가보라고 했다. 거기에 가면 제 아무리 불효자식도 효자가 될 수밖에 없게 돼 있다. 불구덩이 속으로 어버이를 들여보내는 이승에서의 마지막 작별, 그리고 잠시 뒤 한줌의 재로 말없이 다가온 망자(亡者)를 맞이하는 숙연한 모습들. 그 시작과 끝에서 눈물범벅이 된 울부짖음.

 

만유 공통의 윤리이며 도덕률인 효가 오늘에 이르러서는 구시대의 낡은 유물취급 되고 있는 것은 참으로 잘못된 생각이 아닐 수 없다. 복잡한 고대의 윤리규범을 현대인들이 따라가기에는 시대적 상황이 많이 바뀌어서 그대로 하기에는 무리가 있으나 전통적 가치를 회복시키는 것은 예전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고 새로운 삶의 목표를 추구하고 실현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과거 없는 현재가 없고 현재 없는 미래가 없듯이 우리의 현실은 오랜 전통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우리의 전통적 예절과 풍속은 효를 바탕으로 생활 양식화된 문화로 정착된 것이기 때문에 이것을 잘 가다듬고 회복시켜야 한다. 오늘의 젊은 세대들은 급변하는 세상의 변화와 환경 속에서 사회적, 가정적 연대감으로부터 단절되고 고립되어 소외감마저 들어 어떻게 살아가고 행동해야 하는지를 모르고 방황하고 있는 것이다.

 

국가 장래를 위해서 가정이나 학교, 나아가 사회, 국가 교육을 통하여 전통윤리인 효의 정신을 회복시키는 것은 우리 사회의 윤리적 병폐를 바로잡고 건전한 사회상을 만들기 위함이다.

 

노인은 늘어나고 어버이와 어른이 사라져가는 세상. 물론 지금은 ‘논어 시대’가 아니다. 부모 자식이 함께 사는 것이 만능도 아니다. 세태는 당연히 변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사람 사는 이치와 근본은 그때와 다르지 않다. 여기가 유태인의 나라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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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봄 - 개정판 레이첼 카슨 전집 5
레이첼 카슨 지음, 김은령 옮김, 홍욱희 감수 / 에코리브르 / 2011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서리 내린 낙엽 위에는 아무 발자국도 없고
두 길은 그날 아침 똑같이 놓여 있었습니다.
아, 먼저 길은 다른 날 걸어 보리라! 생각했지요.
인생 길이 한번 가면 어떤지 알고 있으니
다시 보기 어려우리라 여기면서도.

 

오랜 세월이 흐른 다음
나는 한숨지으며 이야기하겠지요.
<두 갈래 길이 숲속으로 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사람이 덜 밟은 길을 택했고,
그것이 내 운명을 바꾸어 놓았다>라고.

 

 

(프로스트, ‘걸어 보지 못한 길’ 중에서)

 

 

로버트 프로스트는 삶이란 숲으로 난 두 갈래 길 가운데 어느 한 길을 선택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가지 못한 첫 번째 길을 아쉬워하며 다음 날을 위해 이 길을 남겨둔다. 길은 언제나 또 다른 길로 이어지기에 누구나 처음으로 다시 돌아오기는 어렵다. 그저 자기가 선택한 길이 더 나은 길이길 바라며 숲으로 계속 걸어 들어갈 뿐이다. 그 결과 모든 것은 달라진다.

 

그래서 무언가를 처음 시작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다른 사람들이 채 인식하지 못한 것의 중요성을 발견해야 하고 그것이 왜 가치 있는 것인가를 밝혀내야 하며 동시에 그 사실을 다른 사람에게 알려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선구자의 임무이자 그들만이 느낄 수 있는 특별한 기쁨이기도 하다. 또한 그러한 작업은 사람들의 몰이해와 무관심, 빈정거림을 필연적으로 동반하게 마련이다. 우리가 무언가를 처음 말했거나 행하였거나 깨달은 사람을 기억하는 것은 그러한 수고에 대한 당연한 답례일 것이다. 그래서 레이첼 카슨은 우리가 오래도록 기억해야 할 이름 중의 하나이다.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은 인류가 숲으로 난 두 갈래 길 가운데 어떤 길을 선택했는지, 그리고 그 결과 모든 것이 얼마나 달라졌는지를 마치 시인처럼 읊은 책이다. 카슨은 인류가 ‘성장’과 ‘개발’이라는 인간만을 위한 이기적인 길을 선택함으로써 자연에게 무슨 짓을 하게 되었는지 들려준다. 비록 카슨은 화학적 방제로 해충을 박멸하려던 인간의 이기심이 얼마나 자연생태계를 교란시키게 되었는지를 주로 조사했지만 그녀가 들려주는 우화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녀는 인류가 택한 길이 결국은 자기들이 사는 땅을 오염시키고, 나무들을 시들게 하고, 지저귀던 새들마저 떠나게 함으로써 마침내 ‘침묵의 봄’을 불러올 것임을 예언하였다. 나비가 없으니 꽃도 피지 않고, 새들이 없으니 봄도 오지 않는 그런 죽음의 적막만이 가득한 인류의 미래를 말이다.

 

카슨의 남다른 점은 전체를 볼 줄 아는 그녀의 시적 상상력에 있다. 그녀는 미국 전역의 무차별적인 DDT 방제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수지맞는 시장이 필요했던 화학산업계와 기업과 연결된 미국농무부와 같은 정부 관료들, 또 기업과 정부로부터 연구비를 지원받은 과학자들 간의 불성실하고 무책임한 결탁이었음을 너무도 예리하게 파악하였다. 뿐만 아니라 특정 식물이나 곤충을 박멸하기위해 뿌려대는 살충제가 ‘전문가’들의 주장과는 달리 특정 생물에게만 작용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이 독성물질이 토양과 지하수로 스며들어가 물고기와 곤충, 새들과 인간에게로 순환하며 지구생태계 전체를 파괴시킨다는 것도 볼 줄 알았다.

 

지금도 생태보호 운운하면 자본주의를 부정하는 ‘좌빨’이라고 몰아세우는 데, 40년이나 전에, 그것도 기업발전으로 풍요로운 미국건설에 여념이 없던 냉전적 상황에서, 더구나 남성중심 과학계의 차별적 분위기 속에서 한 여성의 몸으로 그토록 용기 있게 주류세력들과 맞섰다는 것은 정말로 놀라운 일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

 

살충제의 광범위한 사용은 독성 성분이 먹이사슬을 통해 축적돼 인류까지 위험에 처하게 된다. 책 출간 10년이 지난 후 비로소 미국 내에서 DDT의 생산과 사용이 금지됐으며 영국에서는 그 몇 년 뒤에 사용이 금지됐다. 카슨의 적들은 말라리아로 수많은 아프리카인들이 죽어가는 것은 DDT 사용 금지 때문이며 그렇기 때문에 카슨을 많은 사람들을 죽인 대량 살육자라 강박한다. 일부 과학자들은 DDT가 먹이사슬에 축적되는 것 때문만이 아니라 DDT에 저항성을 갖는 모기가 출현했기 때문에 생산 및 사용을 금지시켰다며 이들의 주장을 반박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집단은 현재의 말라리아 창궐이 카슨 때문이라고 비난한다. 그러자 세계보건기구(WHO)도 2006년 DDT를 실내 벽면이나 건물 지붕, 축사 등에 뿌리는 것을 권장한다고 발표했다. DDT의 복권이다.

 

현재의 시점에서 본다면 그녀의 선구안이 과연 옳았는지 고개를 갸우뚱거릴 수도 있겠다. 그녀가 『침묵의 봄』에서 예측한 미래, 즉 생명이 사라진 텅 빈 지구와 DDT로 인한 암의 증가에 관한 내용은 모두가 빗나갔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녀가 틀렸다고 하기는 어렵다. 카슨의 저작이 가지는 진정한 가치는 인간이 스스로 이뤄낸 것들에 대한 반성과 의심하는 법을 지적했다는 것이다.

 

사실, 카슨의 경고는 DDT와 그 유사 화학약품에 의해 가해진 위협이라는 관점과 인류가 직면한 생태적 위험 모두에 아직까지도 유효하다. 토양에서 씻겨나간 화학물질들은 지류와 강으로 흘러든 다음 궁극적으로 바다 바닥에 축적된다. 그러나 바닥에 사는 물고기를 포획하기 위해 저인망 어선이 바닥을 지속적으로 홅는 관계로 DDT를 포함한 독소들은 끊임없이 물속에서 교반된다. 육상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지금 두 갈림길에 서 있다. 하지만 로버트 프로스트의 유명한 시에 등장하는 갈림길과 달리 어떤 길을 선택하든 결과가 마찬가지이지는 않다. 우리가 오랫동안 여행해온 길은 놀라운 진보를 가능케 한 너무나 편안하고 평탄한 고속도로였지만 그 끝에는 재앙이 기다리고 있다. ‘아직 가지 않은’ 다른 길은 지구의 보호라는 궁극적인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는 마지막이자 유일한 기회다." (305쪽)

 

마지막 장에서 카슨은 프로이트의 시를 인용하면서 우리에게 두 갈래 길이 놓여있다고 말한다. 지금까지 우리가 걸어 온 길은 편하고 반반한 고속도로로 우리는 그 위를 달리며 빠른 속도로 발전해왔지만 그 끝에는 ‘파멸’이라는 끔찍한 도착지가 기다리고 있다. 또 다른 길은 아직 우리가 많이 가보지 못한 길로 지구의 보존이라는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자 마지막 남은 길이다. 그리고 이제 선택은 우리에게 달려있다고 한다.

 

자연은 인간이 만들어 놓은 틀에 순응하지 않는다. 인체건 곤충이건 그 방어벽을 무너뜨리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반드시 상상할 수 없는 재앙으로 인류에게 반격해 온다. 과학에 흠뻑 젖어 편리한 생활과 문명을 누리면서도 한편으로는 과학이 주는 불편한 진실 또한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사람들은 카슨의 교훈을 잊어 가고 있다. 카슨은 우리 자신이 자연과 균형을 이뤄야 한다고 믿었다. 『침묵의 봄』은 자연의 모든 것은 서로서로 연관돼 있다는 명백하고도 중요한 메시지를 제시했다. 그녀 때문에 우리는 야생생물들을 함부로 다루지 않고 먹이사슬의 취약성을 이해하게 됐으며 이러한 것들을 바탕으로 강력한 녹색운동을 펼쳐올 수 있었다. 지금 환경은 더 좋아졌는가? 우리는 지구를 잘 보존하고 있는가? 또는 이전보다 더 위험해졌는가? 『침묵의 봄』이 출판된 지 50년이 지난 지금 지구는 더 온난화됐으며, 해수면은 더 상승하고 산호초는 파괴되고 있다.

 

우리는 스스로 만들어낸 성과에 도취되어 빛이 있으면 반드시 그림자가 있다는 오랜 진실과 대자연 앞에 선 인간이 가지는 겸손을 잊은 채 살고 있었다. 카슨의 예언은 틀렸기에 오히려 여운이 깊게 남는다. 우리는 그녀의 예언으로 인해 파멸로 향하는 길에서 유턴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자연을 통제한다’는 말은 생물학과 철학의 네안데르탈 시대에 태어난 오만한 표현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겸손이다. 과학적 자만심이 자리 잡을 여지는 어디에도 없다. 새로운 접근법은 이 세상이 인간만의 것이 아니라 모든 생물과 공유하는 것이라는 데에서 출발한다.

 

숲이 무성해야 곤충이 살고, 곤충이 살아야 새들이 살고, 새들이 살아야 사람도 산다. 자연계는 승자 독식의 사회가 아니다. 지구위의 모든 생물은 나눠먹고, 같이 살아야 하는 운명 공동체다. 모든 생물은 먹이사슬의 고리를 이루면서 공존 공생하는 자연 생태계의 일원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탐욕이 봄의 침묵을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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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운 오리새끼를 발견한 백조들이 날개를 퍼덕이며 급히 다가왔다. 맑은 물 위에 비친 모습은 못생기고 볼품없는 진회색의 오리가 아니라 우아하고 아름다운 한 마리의 백조가 아닌가? 백조들이 그를 에워싸고 부리로 목을 어루만지며 환영했다.

 

누구든 구박만 받던 미운 오리새끼가 아름다운 백조로 성장한 뒤, 두 날개 펴고 달려온 백조들로부터 환영을 받는다는 안데르센의 동화 <미운 오리 새끼> 결말에 감동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작품이 오늘날 우리가 부정적 가치로 인식하고 있는 ‘닫힌 사회’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면 적잖이 실망할지 모른다.

 

사실 이 동화는 현대 사회철학의 핵심 주제 가운데 하나인 ‘열린 사회’의 역설과 함께 ‘다름’을 수용하지 못하는 닫힌 사회의 모델을 보여 주고 있다. 우연히 오리알들 사이에서 태어난 아기 백조는 그의 ‘다른’ 모습 때문에 구박받고 무시당한다. 더구나 다르다는 이유로 추한 꼴로 보인다. 미운 오리새끼가 된 것이다. 하는 수 없이 그는 무리에서 떨어져 방랑 생활을 한다. 세월은 흘러 겨울이 가고 새봄이 온다. 그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 아름다운 백조가 되고 백조 무리로부터 환영받는다. 백조들의 사회가 그에게 문을 연 것이다. 그렇다면 백조들의 사회는 열린 사회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미운 오리새끼가 성숙한 백조가 되어 자신의 정체성을 완벽하게 되찾았을 때 그를 받아 준 곳도 사실은 백조들의 닫힌 사회였다. 백조로서 그의 정체는 백조들 사이에서는 즉각적으로 동일화될 수 있었다. 백조들은 그를 ‘백조들의 닫힌 사회’의 일원으로서 받아 준 것이다. 그를 향한 열림은 닫힌 사회를 구성하는 한 방식일 뿐이다. 그것은 오리들의 닫힌 사회와 같은 성격의 것으로서 어느 날 자기들과 동일화될 수 없는 ‘미운 백조새끼’를 갖게 된다면 그를 철저히 배척할 사회이다.

 

 

 

 

 

 

 

 

 

 

 

 

 

 

 

 

 

열린 사회 이론은 칼 포퍼의 『열린 사회와 그 적들』로 세계적인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열린 사회의 적들을 추적하는 철학 이론이 놓치는 것이 있다. 열린 사회의 적들은 경계하면서도 닫힌 사회의 친구들은 망각한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얼른 보아 ‘열린 사회의 적’과 ‘닫힌 사회의 친구’는 동의어처럼 보인다. 그러나 현실에서 열린 사회의 적들은 눈에 띄지만 닫힌 사회의 친구들은 그렇지 않다. 사회이론 전개나 문학적 비유에서도 후자는 간과되거나 숨어 있다. 더 나아가 열린 사회의 친구들로까지 나타나 보인다.

 

그러나 오리들과 마찬가지로 백조들도 닫힌 사회의 친구들인 것이다. 다만 미운 오리새끼를 박대하는 오리 가족과 달리 아름다운 백조를 환영하는 백조들은 순간적으로 열린 사회의 친구들처럼 보였을 뿐이다. 우리는 오늘날 열림을 추구한다. 그러나 열림의 추구가 닫힘의 가식과 기만일 경우 또한 적지 않다. 현실에서 열림과 닫힘은 상호 역설로 작용하며 각각 그 본질을 은폐하기도 쉽다.

 

안데르센은 이 작품을 1843년에 썼다. 그는 자기 작품이 하류계급의 닫힌 사회를 비난하면서 상류계급의 닫힌 사회는 옹호한다는 사실을 제대로 의식하지 못했을것이다. 그 시대 자신도 그런 닫힌 사회를 향한 출세를 위해 노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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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cene #1  편히 쉬소서. 가보...

 

남미문학의 큰 별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세상을 떠난 지 2주가 지났다. 그의 유골은 수천 명의 애도 속에 멕시코시티 예술궁전에 안치되었다. 행사는 멕시코와 마르케스의 고국인 콜롬비아 양국이 공동 주관했다. 노벨문학상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소설가 한 사람을 떠나보내려고 대통령 두 명이 모이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그 날 마르케스가 태어난 콜롬비아의 카리브해 작은 마을 아라까따까에서도 따로 장례식이 치러졌다. 아라까따까는 마르케스의 ‘마술적 리얼리즘’을 대표하는 작품 『백년 동안의 고독』의 무대 마꼰도의 영감이 솟아난 곳이다.

 

하지만 이 거국적인 행사에도 불구하고 콜롬비아 정부나 그의 작품을 좋아했던 콜롬비아 국민 입장에서는 ‘마르케스 부재’가 서운했을 것이다. 그의 유골이 콜롬비아가 아닌 30년 넘게 살아온 멕시코에 안장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전 마르케스를 멕시코로 가게 만든 원인은 아이러니하게도 콜롬비아였다. 마르케스는 1954년 ‘엘 에스뻭따도르’라는 신문의 기자로 취직했는데 이 신문은 이듬해 독재정권의 탄압으로 폐간되고 말았다. 유럽에서 주로 영화기사를 보냈던 그는 50년대 말 쿠바로 가 피델 카스트로와 친분이 생긴 뒤 쿠바국영통신사의 보고타 지국장을 지내기도 했다. 마르케스는 소설가로 활동하면서 쿠바 혁명 이후 카스트로를 일관되게 지지했고 중남미 독재정권 및 이를 지원하는 미국에 반대하는 글을 쓰기도 했다.

 

1960년대 초반부터 영화 제작 등을 위해 멕시코 생활을 했던 그는 콜롬비아 군이 그를 좌익 게릴라들과 엮으려는 것을 눈치 채고 1981년 콜롬비아를 저버리고 멕시코시티로 삶의 터전을 완전히 옮겼다. 콜롬비아는 살았을 동안 마르케스를 내쫓아낸 셈이지만 죽고 난 지금에는 멕시코에 묻힐 화장한 유골의 한줌 재만이라도 돌려주기를 원하고 있다.

 

이렇다보니 콜롬비아에서 마르케스를 추모하고, 기념하는 여러 행사가 열렸다. 멕시코 정부와 함께 공동행사를 주관했으나 콜롬비아 정부는 이와 별도로 수도 보고타의 성당에서 공식 장례식을 열었고 TV로 생중계했다. 콜롬비아 문화부는 해마다 가장 뛰어난 스페인어 단편 소설에 10만 달러의 상금을 수여하는 ‘마르케스 문학상’을 제정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주 4월 23일에는 콜롬비아 전국의 도서관과 공원, 대학에서 그의 작품을 릴레이로 읽는 행사도 열었다. 문화부는 그의 소설 1만 2천부를 공공도서관에 배포하기도 했다. 흥미롭게도 그 날 릴레이 읽기 행사를 위해 배포된 마르케스의 소설은 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백년 동안의 고독』이 아니었다. 그 소설은 바로 작가로서의 마르케스를 본격적으로 알리게 만든 단편소설 『아무도 대령에게 편지하지 않다』였다.

 


 Scene #2  듣보잡 중남미 작가에서 세계적인 작가로

 

 

 

 

 

마르케스의 문학을 오랫동안 접한 독자라면 제목이 긴 단편소설을 알고 있겠지만 ‘『백년 동안의 고독』의 작가 마르케스’라는 영향이 강한 탓에 대부분 독자들에게는 생소한 작품일 것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마르케스가 11년이나 고쳐 쓰면서 완성한, 초기 단편작품이다. 1957년에 탈고해서 1961년에 여러 단편소설들을 모은 한 권의 작품집에 정식 출간되었다. 1967년에 출간된 『백년 동안의 고독』보다 먼저 나왔다. 워낙 『백년 동안의 고독』의 인기가 많아서 흔히 마르케스가 『백년 동안의 고독』으로 정식으로 작가 데뷔한 걸로 오해하는 몇 몇 독자도 있을 것이다. 사실 마르케스는 단편소설로 작가의 길을 걷게 되었다. 작가로 전업하기 전에 마르케스는 신문기자 활동을 하면서 신문논평을 쓰곤 했는데 아마도 짧은 분량의 단편과 중편을 쓰는데 유용한 경력이 되었을 것이다. (여기서 마르케스의 작품 약력에 대해서 첨언을 하자면 『백년 동안의 고독』은 그의 두 번째 장편소설이다. 첫 번째 장편소설이자 생애 두 번째 작품은 『더러운 시간』(La mala hara)이다)

 

 

 

 

 

 

『아무도 대령에게 편지하지 않다』가 최초로 우리나라에 소개된 것은 1977년이다. 마르케스가 1982년에 노벨문학상을 받기 전에, 그것도 세계문학전집 출판으로 유명한 민음사에서 처음 출간됐다. 1977년은 안정효 씨의 번역으로 『백년 동안의 고독』(문학사상사)이 나온 해이기도 하다. 그러나 안정효의 번역이 최초『백년 동안의 고독』번역은 아니다. 일 년 전에 육문사라는 출판사에서 『백년 동안의 고독』이 출간되었다. 이때만 해도 마르케스는 생소한 중남미 출신의 작가였다.

 

지금의 마르케스 독서 열풍과 비교하면 이때 마르케스는 국내 독자들에게 좋은 대접을 받지 못했다. 문학사상사의 안정효 역은 1975년 1월부터 월간 문학사상지에 2년에 걸쳐 연재한 것을 책으로 묶은 것이다. 그러나 판매수입은 저조했다. 민음사판과 함께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은 책의 흑역사라고 해야 될까. 1976년에 이 작품을 먼저 낸 육문사판도 안 팔리는 것도 마찬가지. 육문사판은 초판 3천부를 찍었는데 1천부도 팔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먼지에 파묻힌 마르케스의 작품들은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해인 1982년부터 드디어 빛을 보기 시작했다.『백년 동안의 고독』과 함께 마르케스의 작품들이 서점가를 휩쓸게 되었고, 마르케스는 ‘듣보잡’ 중남미의 작가에서 ‘노벨상’ 수상 작가로 급부상했다.

 

 

 

 

 

 

 

 

 

 

 

 

 

 

 

 

그리고『아무도 대령에게 편지하지 않다』(편의상 줄여서 ‘대령편지’)에 수록된 「마나님의 장례식」은 '마마 그란데의 장례식'이라는 이름으로 민용태 교수의 번역으로 중앙일보사 ‘오늘의 세계문학전집’ 11권에 수록되기도 했다.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한때 절친이었다가 서로 간의 오해로 인해 관계가 틀어져버린 페루 출신의 작가, 2010년 노벨문학상 수상)의 『판탈레온과 특별봉사대』와 함께 출간됐다.

 

민음사 『대령편지』에는 9편의 단편소설이 수록되어 있다. 번역 판본은 확인할 수 없지만, 1962년에 출판된 단편소설집 『마마 그란데의 장례식』에 수록된 작품으로 추정된다. 여기에 수록된 단편소설들은 멕시코로 건너가기 전에 집필한 초기 작품이다. 민음사판에 수록된 작품들은 다음과 같다.

 


* 아무도 대령에게 편지하지 않다
* 화요일의 시에스타
* 그 때 그날
* 날개달린 노인
* 이 마을엔 도둑이 없지
* 발따싸르의 최고의 오후
* 몬띠엘의 미망인
* 토요일 하루 뒤
* 인조(人造) 장미
* 마나님의 장례식 (= 마마 그란데의 장례식)

 

 

민음사판은 홍보업이라는 이름의 역자가 번역한 것인데 약력을 살펴보면 서울대 사대 영문과를 졸업했고, 인하대 사대 교수를 역임했다. 중남미 작가의 글을 영문과 전공자가 번역한 걸로 봐서는 당시 우리나라에 중남미 문학 전공과 전문 번역이 생소했을 것이다. 그래서 번역 문체가 영 매끄럽지 않고, 어색한 문장 구조가 간간이 눈에 띈다.

 

 

 

 

거기에다가 인쇄 형식이 세로쓰기라서 짧은 분량의 중단편임에도 불구하고 집중력을 끌어 모아 읽어내기가 여간 쉽지 않다. 그리고 지금의 책이 펴는 방향과 반대로 된 일본식(세로쓰기 읽기에 적합함)이다. 마르케스의 초기 단편모음집이라는 점에서 본다면 민음사판은 헌책으로서의 가치가 높겠지만 마르케스의 문학적 매력을 음미하면서 읽기 힘든 단점이 있다.

 

중간에 읽다가 포기한 적도 있고, 여러 번 읽었는데도 글의 주제와 내용을 이해하지 못한 작품도 몇 개 있다. ‘대평편지’나 ‘마나님의 장례식’ 같은 경우에는 두세 번 이상 읽었을 정도이다.

 


 Scene #3  대령이 기다리는 편지

 

 

 

 

 

 

 

 

 

 

 

 

 

‘대령편지’는 피터 박스올의 『죽기 전에 읽어야 할 책 1001권』에 소개될 정도로 마르케스 문학을 논할 때 절대로 빠질 수 없는 작품이다. 죽기 전에 읽어야 할 책 정도는 아니지만 마르케스 마니아라면 이 초기작은 꼭 읽어봐야 한다. 이 작품에 대해서 『1001권』은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두 번째 출간작인 이 중편 소설은 폭력과 불의, 고독과 침체에 관한 이야기이다. 때는 막 20세기로 접어든 무렵, 내전에 참가했던 한 대령이 천식을 앓고 있는 아내와 함께 거의 잊히다시피 하여 콜롬비아의 작은 마을에서 배고픈 삶을 살고 있다. 대령의 삶은 언젠가 15년째 받지 못하고 있는 정부의 연금을 받아 가난과 고통에서 헤어날 수 있으리라는 희망으로 점철되어 있다. 그러나 매주 금요일 우체부가 “아무도 대령에게 편지하지 않았다.”라고 말할 때마다 더 나은 삶에 대한 그의 소망은 산산조각이 난다.

 

대령이 겪는 고난의 아이러니—혁명에 참가한 그의 맹목적인 믿음이 오직 그 자신과 그의 농부 아버지를 가난에 빠뜨리고 말았다는—와 그의 핵심적인 투쟁, 즉 죽은 아들이 남긴 마을 품평회에서 상을 딴 투계용 장닭을 팔 것인가 하는 문제가 나란히 놓여 있다. 아들은 금지 서적 유포라는 비밀 활동의 결과 죽고 말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장닭은 상실이 지나간 자리에서 승리를 상징하게 된다. 장닭은 또한 시민들이 굶주림과 희망의 광기 속에서 살아가는, 고독 속의 고통에서 비롯된 침체를 떨치는 또 다른 전쟁터의 가능성을 상징한다. 이 고독이야말로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트레이드마크가 된다.

 

『1001권』에서 소개한 내용에서도 알 수 있듯이 마르케스 특유의 고독한 분위기가 ‘대령편지’에 함축적이면서도 아주 짙게 배어 있다. 그리고 『백년 동안의 고독』의 무대 배경 마꼰도와 소설 속 주인공 아르까디오 부엔디아의 아버지 호세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도 잠깐 언급된다. 『백년 동안의 고독』을 집필하기 전부터 이미 초기작부터 마르케스가 마꼰도를 중심으로 한 이야기를 구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소설 제목처럼 주인공 퇴역 대령은 한 통의 편지를 기다린다. 그것도 무려 60년 동안이나. 매주 금요일 하나뿐인 정장을 차려입고 선착장에 나가 연금 지급에 대한 정부의 소식을 기다리지만 연금에 대한 편지는 결코 오지 않는다. 소설 마지막 부분쯤 “그 편지는 반드시 오게 돼 있어”라고 말하는 그에게 우편배달부는 이렇게 말한다. “반드시 오는 것은 죽음뿐입니다. 대령님.” 고독하고 빈곤한 퇴역 대령의 말년을 더욱 쓸쓸하게 묘사하는 장면이다.

 

그나마 그에게는 자존심이라 할 수 있는 것은 대령 계급장과 장닭(민음사판에서는 수탉) 한 마리뿐이다. 가난에 지친 아내는 대령에게 돈이 되는 장닭을 팔 것으로 종용하고, 하릴없이 편지를 기다리는 남편의 모습에 불평을 늘어놓는다. 혁명의 영웅으로서 자존심이 센 대령 입장에서는 아내를 사랑하는 마음에 그녀를 달래보지만 마음으로는 굴욕적일 수밖에 없다. 그저 아내 눈치를 보는 가난과 고독의 그늘에 갇혀버린 늙은 사내가 되고 말았다.

 

결국 그가 기다리면서 맞이하는 것은 편지 한 통이 아닌 오직 죽음뿐이다. 그러나 여기서 ‘죽음’은 혼이 육체에서 완전히 벗어나 생명활동이 정지되는 현상이 아니다. 완전히 죽지 못한 채, 죽음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죽음 아닌 죽음’이다. 생전 혁명의 영웅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죽어서도 대접을 받지 못하게 되는 실존적인 존재가 상실된 것이다. 아마도 대령은 죽어서도 이승을 떠나지 못할 것이다. 편지를 기다리기 위해서. 그에게 편지 한 통은 연금 이상의 의미를 뛰어넘는다. 그것은 대령으로서의 ‘명예’이자 ‘자존심’이며 무엇보다도 얼마 남지 않은 무기력한 삶을 회복, 재생시킬 수 있는 ‘생명 연장’으로서의 의미가 강하다. 이 편지 한 통만 받으면 거의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대령의 고독은 끝난다.

 

마르케스가 군인의 고독함을 묘사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취재 경험 덕분이다. 그는 신문기자로 활동하면서 6.25 전쟁 관련 기사를 쓰기도 했다. 취재하면서 6.25 참전 콜롬비아 병사들의 고통을 알게 된다. 그들의 경험을 ‘대령편지’에 투영했다. 그래서 대령의 모습은 6.25 전쟁에 참전했으나 명예로운 대접을 받지 못하는 우리나라 퇴역 군인의 쓸쓸한 모습이 연상된다.

 

 

 Scene #4  그 외 초기 단편소설들

 

그 밖에 다른 몇 편의 작품들을 소개하자면 ‘그 때 그날’  콜롬비아의 군사 정권 사회를 통렬하게 비판 의식을 담은 무척 짧은 내용의 소설이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에스꼬바르는 무면허 치과 의사이지만 자신의 일을 묵묵히 수행하고 권력에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는 정의로운 시민이다. 한편은 그의 환자로 등장하는 시장은 군인 출신으로 많은 사람을 고문하고 죽인 폭력적인 권력자의 모습이다. 어금니를 뽑아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에스꼬바르에게 권총으로 한 빵 쏘겠다고 협박을 할 정도로 상당히 강압적인 태도를 보인다.

 

결국 에스꼬바르는 마취를 하지 않고 시장의 어금니를 뽑는다. 그러자 그는 시장에게 뼈 있는 말 한 마디 내뱉는다. “우리 중 스무 명이 죽은 벌을 이제 받을거요.” 마취를 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빨을 뽑으면 상당힌 진통이 느껴진다. 여기서 에스꼬바르는 강자의 입장이 된다. 스무 명의 죽음에 대한 대가를 치르기 위해서 마취 없이 이빨을 뽑은 것이다. 평범한 치과 치료 장면에서 통쾌한 권력의 역전 관계를 보여주고 있다.

 

‘화요일의 시에스타’는 아들의 무덤을 찾는 어머니의 고독함을 묘사하고 있다. 그녀의 아들은 어느 마을에서 절도죄로 사살된 도둑이다. 어머니는 아들의 무덤을 찾기 위해 무더운 날씨 속에서 기차를 타고 마을로 찾아갔지만 하필 그 시간이 모든 사람들이 낮잠을 자는 시에스타였다.

 

시에스타로 인해 사람 흔적을 찾아볼 수 없는 황량한 마을 배경은 쓸쓸한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켜 준다. 한편 군사 정권이 지배하는 콜롬비아의 무기력한 사회적 분위기를 상징하기도 한다.

 

 

“거의 2시였다. 그 시각엔 졸림에 눌리어 시가가 낮잠을 자고 있었다. 상점, 관공서, 공립학교는 11시에 문을 닫았고 4시 직전에야 다시 열었다. 4시는 기차가 돌아가는 시간이었다. 정거장 건너편에 있는 술집과 당구장이 달려 있는 호텔과 광장 한쪽에 있는 전신전화국만이 문을 열고 있었다. 바나나 회사를 모델로 한 것이 대부분인 집들은 문을 안쪽에서부터 잠그고 휘장을 내려 놓았다. 어떤 집안에서는 너무나 무더워서 거기 사는 이들은 앞마당에 나와서 점심을 먹었다. 어떤 이들은 편도나무 그늘이 진 담에 의자를 기대놓고 바로 거리에서 낮잠을 잤다.” (마르케스, ‘화요일의 시에스타’ 중에서)

 

 

이 소설 이외에도 마르케스의 다른 작품에서도 유독 등장인물이 낮잠을 자는 장면이 묘사된다. 어린 시절 마르케스가 목격한 시에스타는 작품의 소재 중의 하나인데 자서전에 의하면 낮잠 자는 시간을 부정적으로 생각했다. 낮잠 자는 시간의 마을은 그에게는 ‘황량한 거리에 드러누워 있는 죽은 마을’이었다.

 

 

 

 

 

 

 

 

 

나는 할 일이 없다는 이유로 그렇게 무기력한 낮잠이나 자는 것을 어렸을 때부터 혐오했다. “우리 지금 낮잠 자고 있으니까, 조용히들 해.” 사람들이 잠결에 투덜거렸다. 가게, 관공서, 학교들은 12시에 문을 닫아 오후 3시 조금 못 미처 문을 열었다. 집들의 내부 분위기는 지옥과 천당 사이의 무기력 상태와 같았다. 더위와 졸음을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사람들은 마당에 해먹을 걸어 놓거나 편도 나무 그늘 아래에 걸상들을 놓기도 하고, 길거리에 앉아 잠을 자기도 했다. 역 앞에 있는 호텔과 호텔에 딸린 선술집, 당구장과 교회 뒤 전신국만이 문을 열어 놓았다. (중략) 문 한 짝도 어느 담의 틈새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고, 내게 아무런 감흥도 추억도 주지 못했고 인간의 흔적 하나 느껴지지 않았다. (마르케스 『이야기 하기 위해 살다』중에서, 36~37쪽)

 

 

콜롬비아 사람들에게 시에스타는 무더위를 잊고 달콤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시간은 아닐 것이다. 군사 정권의 강압적인 정치와 끊임없는 내전의 공포를 잊을 수 있는 시간이다. 그러나 집 주변에 울리는 내전의 총성과 포탄 소리는 집 안에 숨어 있어도 공포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마을 사람들은 제 목숨 살기 위해서 완전히 문을 닫은 채 살아야만 했다. 어린 마르케스는 그렇게 힘없이 위축되고 삶의 기운이라고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시에스타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날개 달린 노인’은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환상적인 분위기가 나는 작품이다. 천사에 대한 기존의 관념을 뒤집고, 날개 달린 노인이 정말 천사였는지 여부는 미확인 상태로 남겨 놓는다. 결국 노인은 날개를 퍼덕이는데 성공하지만, 그의 모습은 우리가 생각하는 신비스럽고 초자연적 느낌의 천사와 거리가 멀다. 하늘에서 갑자기 내려온 천사라면 신성한 존재로 생각하지만 날개 달린 노인을 발견한 농부 부부는 오히려 서커스단에서 나올법한 신기한 동물처럼 여긴다. 게다가 그를 구경하기 위해서 찾아 온 신부는 꾀죄죄하고 볼품없는 노인의 모습을 보면서 천사가 아니라 사기꾼이라고 생각한다. 노인은 농장 부부의 탐욕을 채우는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하고 만다. 집에 갇힌 노인을 구경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은 돈을 내야만 했다.

 

그러나 부부의 사업(?)은 오래가지 못한다. 이야기는 점점 현실과 동떨어질 정도로 전개된다. 카리브해에서 건너온 유랑극단이 거미로 변해버린 여자를 데리고 장사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재미있게도 거미 여자는 어릴 적 부모 몰래 춤추면서 놀다가 집에 돌아오는 도중에 하늘에서 내린 번개를 맞고 거미로 변해버렸다. 사연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알 수 없지만 이제 사람들의 눈은 날개 달린 노인이 아니라 거미 여자로 향하게 되었다. 그러나 날개 달린 노인 덕분에 모아놓은 돈으로 부부는 발코니에 정원 딸린 이층집을 살 수 있었다. 그 후로 노인은 다시 날아다니기 전까지 쭉 집에서 갇혀 지내야만 했다.

 

노인의 모습은 한때 자본을 끌어들일 정도로 가치가 높았으나 이제는 전혀 쓸모없는 상품을 떠올리게 한다. 즉, 모든 상품을 자본화시키고 인간성이 상실되는 자본주의의 단점을 풍자하고 있다. 이러한 자본주의의 풍경은 외국 자본들의 유입으로 도시화가 이루어지는 콜롬비아의 모습이기도 하다.

 


 Scene #5  마술적 리얼리즘 세계를 들어가기 위한 문

 

 

 

 

 

 

 

 

 

 

 

 

 

 

 

 

 

마르케스가 국내에서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중남미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마르케스의 단편소설을 접하기에는 그 출간된 작품의 수가 많지 않다. 절판된 책을 제외하고 현재 그의 이름으로 나온 단편선집으로는 『꿈을 빌려드립니다』가 유일하다. 1995년에 국내에 출간된 또 다른 마르케스의 단편선집인 한나래 출판사의 『이방의 순례자들』은 절판되었다.

 

나머지 마르케스의 단편은 다른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들의 단편을 모은 앤솔러지에서 볼 수 있으며  ‘날개 달린 노인’은 창비세계문학 단편선집 『날 죽이지 말라고 말해줘!』에 ‘거대한 날개 달린 상늙은이’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다.

 

마르케스의 ‘마술적 리얼리즘’ 입문 독서를 위한 작품으로는 마르케스의 단편소설이 적합하다. 특히 1950년대에 집필한 초기 작품들은 마술적 리얼리즘을 형성하게 만드는 마르케스의 문학적 가능성과 실험성을 엿볼 수 있다. 사실 『백년 동안의 고독』을 처음 읽었을 때만 해도 복잡한 인물에 환상과 사실의 경계가 없는 독특한 이야기의 전개 방식에 혼란을 겪은 적이 있었다. 전혀 준비 운동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거대한 스케일의 작품 속으로 뛰어든 격이다. 장편소설을 읽기 전에 마르케스의 초기작들로 구성된 단편집 『아무도 대령에게 편지하지 않는다』를 읽는다면 마르케스가 세운 마술적 리얼리즘의 세계에서 길을 잃어버리는 일이 없을 것이다.

 

비록 노벨상 때문에 마르케스가 국내에 유명해진 것도 있지만 그의 인기 덕분에 제3세계문학에 대한 관심이 놓아졌고, 그 후로 마르케스의 뒤를 잇는 라틴 아메리카 작가들이 소개되기 시작했다. 마르케스 사망 이후로 그의 문학세계를 되짚어보고 추억하는 의미에서 『아무도 대령에게 편지하지 않는다』가 중남미 문학 전공 번역자의 손에서 다시 태어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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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14-05-03 16: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앙일보사에서 나온 세계문학전집은 저도 갖고 있는데 제11권에 <판탈레온과 위안부>는 있습니다만 마르께스 단편들 중에 <아무도 대령에게 편지하지 않았다>는 없네요.혹시 몇 년도에 나온 것인지 확인할 수 있을까요?

cyrus 2014-05-03 22:38   좋아요 0 | URL
노자님. 제가 글을 쓰다보니 잘못 쓰고 말았군요. 중앙일보사 세계문학전집 11권에 수록된 마르케스의 작품은 <마마 그란데의 장례식>입니다. 방금 잘못 쓴 내용을 수정했어요. ^^

노이에자이트 2014-05-03 23:35   좋아요 0 | URL
오..역시 제 것과 동일한 책이군요~

레삭매냐 2018-11-18 0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령편지가 이미 예전에 나왔던 책이로군요...

cyrus 2018-11-19 12:01   좋아요 0 | URL
네, 그런데 구판에는 다른 단편들도 함께 수록되었는데 신판에서는 <대령편지>만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