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도전을 위한 변명 - 혁명가 정도전, 새로운 나라 조선을 설계하다
조유식 지음 / 휴머니스트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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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cene #1  문제적 인간, 정도전

 

물 1g의 온도를 섭씨 1도 올리려면 1㎈의 열량이 필요하다. 그러나 0도의 얼음을 같은 온도의 물로 변화시키기 위한 융해열은 80㎈에 달한다. 즉 1g의 얼음을 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열량은 같은 양의 물의 온도를 무려 80도나 올릴 수 있는 열량과 같다.

 

한 사회에서 벌어지는 각종 변화들은 얼음이 물로 변화하는 과정과 많이 닮아 있다. 갑작스러운 변화처럼 보여도 밑바닥을 살펴보면 이미 오래 전부터 그 변화를 위해 뿌려진 밑밥이 적지 않게 깔려 있는 경우가 많다. 18세기 말 프랑스 혁명의 배경만 들여다보아도 소수가 권력과 부를 독점하는 구체제의 오랜 모순, 과도한 군사비 지출에 따른 국가재정 파탄, 계몽사상의 확산 등 수도 없이 깔린 밑밥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혁명은 대개 아름답고 숭고한 이상을 명분으로 삼지만, ‘혁명은 혁명가와 독재자, 그리고 시민의 피를 먹고 자란다’는 말처럼 결과는 참혹하기 마련. 국가와 체제가 흔들리는 ‘개와 늑대의 시간’은 피아의 구분을 무너뜨리고 긴 시간 믿어온 절대적인 신뢰와 가치마저도 잊게 만든다.

 

정도전은 국사 교육을 받은 사람들에게 꽤 혼란스러운 존재다. 조선을 건국할 때 정도전은 거의 모든 분야에 관여한다. 한양 천도, 조세 개혁, 사병 혁파, 병법서와 법전 편찬 등 빠지는 곳이 없었다. 그런데 정작 조선을 건국한 주인공은 이성계로 나온다. 그뿐만 아니다. 같은 시대를 살았던 정몽주는 끝까지 고려를 지킨 충신으로 등장한다. 이에 비해 정도전은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한 채 역적 누명을 쓰고 역사 무대 밖으로 강제로 퇴장 당했다.

 

백성들을 위한 민본정치를 꿈꾸며 가슴에 품고 있던 웅지를 다 펼쳐보지 못하고 죽은 정도전의 시신은 오늘 현재까지 찾을 길이 없고 묘소도 없다. 역사는 승자에 의해 쓰여지고 더더욱 조선실록은 패자(覇者)의 그늘에서 써져서 일까?

 

2인자는 양날의 검과도 같은 자리다. 2인자는 1인자를 보필하는 책사(策士)이자 실권자이며 후계자로 여겨지지만 1인자의 자리를 넘보는 순간 제거대상에 오른다. 또 2인자는 상황에 따라서 가차 없이 버림받기 일쑤다.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万人之上)’ 정도전. 그는 뛰어났기에 불우했던 2인자였다.

 

왕조시대를 살았던 곡절 많은 정치인들의 생애는 그가 펼쳐보였던 삶의 궤적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유배지에서 한양으로, 멸망 왕조에서 새 왕조의 개국 공신으로, 재상에서 간신으로, 최고 실권자에서 반역자로. 그를 설명해 낼 주제어들은 여럿이다. 그만큼 정도전은 여러 무늬와 결로 해석된다. 역사를 바라보는 입장에 따라 그 폭과 깊이는 더해질 수 있다.

 


 Scene #2  혁명을 위해 스스로 ‘장량’이 되다 

 

그런 정도전을 다시 평가를 위한 무대로 호출했다. ‘변명’이라는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역사 속에서 그려진 정도전의 모습은 나라를 망친 인물이었다. 조선 왕조 500년 기간 동안 나라에 해악을 끼친 역적으로, 말기인 대원군대에 이르러서야 겨우 복권됐던 인물이다.

 

“정도전은 술에 취하면 자신과 이성계의 관계를 중국 한(漢)나라 고조 유방과 참모 장량의 관계에 비유하며 ‘한 고조가 장량을 이용한 것이 아니라 장량이 한 고조를 이용한 것이다’고 했다.” (42쪽)

 

이는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했지만, 그는 형식적인 시조였을 뿐 실질적인 시조는 정도전이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정도전은 요동정벌을 꿈꾸며 나라를 명나라와의 전쟁이라는 위기 속으로 몰아넣은 인물이었으며, 개혁이라는 명분 앞에서 스승과 친구에게도 가차 없는 비판을 가했던 냉혈한이었다. 고려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해 흑색선전도 마다하지 않았던 점에서 철저한 정치인이었기도 했다.
 
21세 때 당시 개혁군주로 인기가 높던 공민왕의 일탈행위를 폭군의 비행에 비겨 신랄하게 꼬집었던 대단한 배포를 가졌지만 한편으로는 정도전 스스로 자신을 치켜세우기 위해 ‘유방과 장량’을 인용했던 모습에서 겸손하지 못한 그의 성격을 알 수 있다. 냉정하고 자존심이 높았던 성격이 주변으로부터 질시와 시기를 야기하였고 이성계와의 관계를 군신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혁명동지로 인식했다는 것이 최대의 부덕이기도 하다.

 

조선의 헌법 초안인 <조선경국전>, 역사책 <고려사>, 불교비판서 <불씨잡변> 등이 그의 손에서 나왔다. 특히 <조선경국전>과 <경제문감>은 이후 조선의 헌법전인 '경국대전'의 기초가 된 것으로, 조선왕조가 그의 손에 의해 기획됐음을 알 수 있다. 경복궁 건축과 수도 한양도 바로 그의 작품이다.

 


 Scene #3  “인심을 얻지 못하면 백성은 인군을 버린다”

 

정도전이 고려를 무너뜨리고 조선을 건국하는 데 앞장섰던 것은 절대왕권의 시대를 끝내고 입헌군주제의 시대로 가야 한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길만이 도탄에 빠진 백성들을 살리고 나라를 구하는 길이라고 믿었다.

 

정도전의 민본위주의 정치사상은 단순히 유교적 정치사상을 도입한 것이 아니라 고려 말 부패한 지배계급 아래에서 신음하던 백성들과 함께 생활하는 과정에서 얻어진 정신이었다. 정도전은 <조선경국전>의 서문에 이렇게 썼다.

 

“인군의 ‘위’는 높기로 말하면 높고, 귀하기로 말하면 귀하다. 그러나 천하는 지극히 넓고 만민은 지극히 많다. 만일 인군이 천하 인민의 인심을 얻지 못하면 크게 염려할 일이 생긴다. 인심을 얻으면 백성이 복종하지만 인심을 얻지 못하면 백성은 인군을 버린다.” (『조선경국전』 한영우 역, 올재클래식스, 36쪽)

 

정도전은 <맹자>의 민본주의를 자기 사상의 근본으로 삼았다. 유교적 민본주의에서는 군주의 정통성을 천명에 두고 있으며 그 천명은 궁극적으로 백성에 의해 확보되고 유지된다. 맹자에게 정치적 행위의 현실적 근거가 민심이라면, 이념적 근거는 하늘이라고 할 수 있다. 바로 이 점이 유교적 민본주의의 두드러진 특징이며, 정도전도 이 틀을 벗어나지 않는다.
 
정도전은 왕권의 세습을 인정하면서도 권력을 감시·통제하고 분산시키는 장치를 마련하는 데 많은 힘을 쏟았다. 왕권은 어디까지나 상징적이고 관념적인 것으로 실제로 절대 권력을 마구 휘두르는 독재자로 군림해서는 안 된다는 게 정도전의 믿음이었다.

 

여기서 재미있는 일화를 소개하자면 정도전의 역성혁명의 발판을 마련하게 된 <맹자>를 그에게 소개한 사람이 같이 공부하면서 지낸 지음(知音) 정몽주라는 것이다. 귀양을 가게 된 정도전에게 소일거리삼아 읽으라며 보내준 책 한 권이 고려의 역사를 마무리 하게 된 단초가 되었다는 사실은 역사의 아이러니다.

 

 

 


 Scene #4  “민본주의를 이뤘는가?”  

 

정도전 그리고 조선 건국의 역사를 되돌아보면서 자문해본다. 만약 정도전이 살아 돌아온다면 백성, 즉 국민을 위한 정치를 일으켜 세울 수 있을까? 과연 한국 사회는 정도전에게서 어떤 현실적 가능성을 만날 수 있을까?

 

정도전은 재상 정치론 때문에 왕권 정치를 추구하는 이방원의 역습을 받아 목숨을 잃었다. 정도전이 추구한 민본주의는 자신이 직접 왕이 되거나 백성을 주권자로 내세울 때 실현 가능성이 훨씬 높은 이념이었다.

 

그러나 정도전의 힘과 역사 인식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는 왕권의 원천이 백성에게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백성의 주권이 왕이라는 매개체 없이 작동하는 체제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실천적 한계를 인식하고, 이성계의 아들 가운데 왕의 자질이 가장 뛰어났던 이방원을 후계자로 밀고 그를 통해 민본주의를 구현했더라면 우리가 알고 있는 조선과 전혀 다른 방향 혹은 더 화려하게 발전하는 방향으로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정도전을 위한 변명』을 보면 예나 지금이나 정치하는 모습은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정치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이벤트 정치, 가장 친했던 친구와 스승조차에게도 칼을 겨누는 냉혹함, 인신비방이 난무하는 추악한 모습 등.

 

특히 정도전의 입을 빌려 나라가 안팎으로 위기에 몰려 있을 때 은거하면서 그저 자기 몸 하나 보전할 생각만 하는 이름만 ‘선비’인 관료들의 위선을 꼬집기도 한다. 지금 이 시대에도 자칭 관료라는 사람들이 이러한 정도전의 가르침을 거스르는 삶을 살고 있다면 국민과 나라를 위해서 한번 생각해 볼만한 가르침이다.

 

완벽한 성공은 철저한 실패만큼 길하지 않다. 조용한 가운데 목숨이 다하는 순간까지 초심을 잃지 않고 미리 계획한 대로 한 국가를 부수고 한 국가를 세운 혁명가 정도전이다. 뼈를 깎는 자기혁신과 민본주의, 부국강병의 의지는 21세기 이 땅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특별한 울림을 준다.

 

지금 대한민국에 필요한 정치인이나 관료에게 필요한 덕목은 태평성대를 불러올 마법의 능력이 아니라 바른 가치와 비전, 그리고 이를 끌어낼 통합의 리더십일지도 모른다. 갈등을 조정하고 사회적 합의를 끌어낼 소통의 시스템을 복원하는 과정이 더욱 중요하다. 그게 민주주의의 작동원리다.

 

700여 년 전, 이 땅에서 벌어진 혁명은 오늘날 많은 것을 시사한다. 언제나 그렇듯 역사는 과거를 논하지만, 결국 그 생각의 끝이 닿는 곳은 현재이다. 2014년의  ‘정도전’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결국 누구를 위한 국가인가, 그리고 그 누구를 위한 국가의 모습이 아니라면 혁명조차 기꺼이 감내해야 한다는 가장 불온한 서사이다. 의도했건 의도치 않았건, 부활한 정도전은 우리에게 묻는다. “민본주의를 이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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