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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봄 - 개정판 ㅣ 레이첼 카슨 전집 5
레이첼 카슨 지음, 김은령 옮김, 홍욱희 감수 / 에코리브르 / 2011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서리 내린 낙엽 위에는 아무 발자국도 없고
두 길은 그날 아침 똑같이 놓여 있었습니다.
아, 먼저 길은 다른 날 걸어 보리라! 생각했지요.
인생 길이 한번 가면 어떤지 알고 있으니
다시 보기 어려우리라 여기면서도.
오랜 세월이 흐른 다음
나는 한숨지으며 이야기하겠지요.
<두 갈래 길이 숲속으로 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사람이 덜 밟은 길을 택했고,
그것이 내 운명을 바꾸어 놓았다>라고.
(프로스트, ‘걸어 보지 못한 길’ 중에서)
로버트 프로스트는 삶이란 숲으로 난 두 갈래 길 가운데 어느 한 길을 선택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가지 못한 첫 번째 길을 아쉬워하며 다음 날을 위해 이 길을 남겨둔다. 길은 언제나 또 다른 길로 이어지기에 누구나 처음으로 다시 돌아오기는 어렵다. 그저 자기가 선택한 길이 더 나은 길이길 바라며 숲으로 계속 걸어 들어갈 뿐이다. 그 결과 모든 것은 달라진다.
그래서 무언가를 처음 시작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다른 사람들이 채 인식하지 못한 것의 중요성을 발견해야 하고 그것이 왜 가치 있는 것인가를 밝혀내야 하며 동시에 그 사실을 다른 사람에게 알려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선구자의 임무이자 그들만이 느낄 수 있는 특별한 기쁨이기도 하다. 또한 그러한 작업은 사람들의 몰이해와 무관심, 빈정거림을 필연적으로 동반하게 마련이다. 우리가 무언가를 처음 말했거나 행하였거나 깨달은 사람을 기억하는 것은 그러한 수고에 대한 당연한 답례일 것이다. 그래서 레이첼 카슨은 우리가 오래도록 기억해야 할 이름 중의 하나이다.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은 인류가 숲으로 난 두 갈래 길 가운데 어떤 길을 선택했는지, 그리고 그 결과 모든 것이 얼마나 달라졌는지를 마치 시인처럼 읊은 책이다. 카슨은 인류가 ‘성장’과 ‘개발’이라는 인간만을 위한 이기적인 길을 선택함으로써 자연에게 무슨 짓을 하게 되었는지 들려준다. 비록 카슨은 화학적 방제로 해충을 박멸하려던 인간의 이기심이 얼마나 자연생태계를 교란시키게 되었는지를 주로 조사했지만 그녀가 들려주는 우화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녀는 인류가 택한 길이 결국은 자기들이 사는 땅을 오염시키고, 나무들을 시들게 하고, 지저귀던 새들마저 떠나게 함으로써 마침내 ‘침묵의 봄’을 불러올 것임을 예언하였다. 나비가 없으니 꽃도 피지 않고, 새들이 없으니 봄도 오지 않는 그런 죽음의 적막만이 가득한 인류의 미래를 말이다.
카슨의 남다른 점은 전체를 볼 줄 아는 그녀의 시적 상상력에 있다. 그녀는 미국 전역의 무차별적인 DDT 방제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수지맞는 시장이 필요했던 화학산업계와 기업과 연결된 미국농무부와 같은 정부 관료들, 또 기업과 정부로부터 연구비를 지원받은 과학자들 간의 불성실하고 무책임한 결탁이었음을 너무도 예리하게 파악하였다. 뿐만 아니라 특정 식물이나 곤충을 박멸하기위해 뿌려대는 살충제가 ‘전문가’들의 주장과는 달리 특정 생물에게만 작용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이 독성물질이 토양과 지하수로 스며들어가 물고기와 곤충, 새들과 인간에게로 순환하며 지구생태계 전체를 파괴시킨다는 것도 볼 줄 알았다.
지금도 생태보호 운운하면 자본주의를 부정하는 ‘좌빨’이라고 몰아세우는 데, 40년이나 전에, 그것도 기업발전으로 풍요로운 미국건설에 여념이 없던 냉전적 상황에서, 더구나 남성중심 과학계의 차별적 분위기 속에서 한 여성의 몸으로 그토록 용기 있게 주류세력들과 맞섰다는 것은 정말로 놀라운 일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
살충제의 광범위한 사용은 독성 성분이 먹이사슬을 통해 축적돼 인류까지 위험에 처하게 된다. 책 출간 10년이 지난 후 비로소 미국 내에서 DDT의 생산과 사용이 금지됐으며 영국에서는 그 몇 년 뒤에 사용이 금지됐다. 카슨의 적들은 말라리아로 수많은 아프리카인들이 죽어가는 것은 DDT 사용 금지 때문이며 그렇기 때문에 카슨을 많은 사람들을 죽인 대량 살육자라 강박한다. 일부 과학자들은 DDT가 먹이사슬에 축적되는 것 때문만이 아니라 DDT에 저항성을 갖는 모기가 출현했기 때문에 생산 및 사용을 금지시켰다며 이들의 주장을 반박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집단은 현재의 말라리아 창궐이 카슨 때문이라고 비난한다. 그러자 세계보건기구(WHO)도 2006년 DDT를 실내 벽면이나 건물 지붕, 축사 등에 뿌리는 것을 권장한다고 발표했다. DDT의 복권이다.
현재의 시점에서 본다면 그녀의 선구안이 과연 옳았는지 고개를 갸우뚱거릴 수도 있겠다. 그녀가 『침묵의 봄』에서 예측한 미래, 즉 생명이 사라진 텅 빈 지구와 DDT로 인한 암의 증가에 관한 내용은 모두가 빗나갔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녀가 틀렸다고 하기는 어렵다. 카슨의 저작이 가지는 진정한 가치는 인간이 스스로 이뤄낸 것들에 대한 반성과 의심하는 법을 지적했다는 것이다.
사실, 카슨의 경고는 DDT와 그 유사 화학약품에 의해 가해진 위협이라는 관점과 인류가 직면한 생태적 위험 모두에 아직까지도 유효하다. 토양에서 씻겨나간 화학물질들은 지류와 강으로 흘러든 다음 궁극적으로 바다 바닥에 축적된다. 그러나 바닥에 사는 물고기를 포획하기 위해 저인망 어선이 바닥을 지속적으로 홅는 관계로 DDT를 포함한 독소들은 끊임없이 물속에서 교반된다. 육상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지금 두 갈림길에 서 있다. 하지만 로버트 프로스트의 유명한 시에 등장하는 갈림길과 달리 어떤 길을 선택하든 결과가 마찬가지이지는 않다. 우리가 오랫동안 여행해온 길은 놀라운 진보를 가능케 한 너무나 편안하고 평탄한 고속도로였지만 그 끝에는 재앙이 기다리고 있다. ‘아직 가지 않은’ 다른 길은 지구의 보호라는 궁극적인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는 마지막이자 유일한 기회다." (305쪽)
마지막 장에서 카슨은 프로이트의 시를 인용하면서 우리에게 두 갈래 길이 놓여있다고 말한다. 지금까지 우리가 걸어 온 길은 편하고 반반한 고속도로로 우리는 그 위를 달리며 빠른 속도로 발전해왔지만 그 끝에는 ‘파멸’이라는 끔찍한 도착지가 기다리고 있다. 또 다른 길은 아직 우리가 많이 가보지 못한 길로 지구의 보존이라는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자 마지막 남은 길이다. 그리고 이제 선택은 우리에게 달려있다고 한다.
자연은 인간이 만들어 놓은 틀에 순응하지 않는다. 인체건 곤충이건 그 방어벽을 무너뜨리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반드시 상상할 수 없는 재앙으로 인류에게 반격해 온다. 과학에 흠뻑 젖어 편리한 생활과 문명을 누리면서도 한편으로는 과학이 주는 불편한 진실 또한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사람들은 카슨의 교훈을 잊어 가고 있다. 카슨은 우리 자신이 자연과 균형을 이뤄야 한다고 믿었다. 『침묵의 봄』은 자연의 모든 것은 서로서로 연관돼 있다는 명백하고도 중요한 메시지를 제시했다. 그녀 때문에 우리는 야생생물들을 함부로 다루지 않고 먹이사슬의 취약성을 이해하게 됐으며 이러한 것들을 바탕으로 강력한 녹색운동을 펼쳐올 수 있었다. 지금 환경은 더 좋아졌는가? 우리는 지구를 잘 보존하고 있는가? 또는 이전보다 더 위험해졌는가? 『침묵의 봄』이 출판된 지 50년이 지난 지금 지구는 더 온난화됐으며, 해수면은 더 상승하고 산호초는 파괴되고 있다.
우리는 스스로 만들어낸 성과에 도취되어 빛이 있으면 반드시 그림자가 있다는 오랜 진실과 대자연 앞에 선 인간이 가지는 겸손을 잊은 채 살고 있었다. 카슨의 예언은 틀렸기에 오히려 여운이 깊게 남는다. 우리는 그녀의 예언으로 인해 파멸로 향하는 길에서 유턴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자연을 통제한다’는 말은 생물학과 철학의 네안데르탈 시대에 태어난 오만한 표현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겸손이다. 과학적 자만심이 자리 잡을 여지는 어디에도 없다. 새로운 접근법은 이 세상이 인간만의 것이 아니라 모든 생물과 공유하는 것이라는 데에서 출발한다.
숲이 무성해야 곤충이 살고, 곤충이 살아야 새들이 살고, 새들이 살아야 사람도 산다. 자연계는 승자 독식의 사회가 아니다. 지구위의 모든 생물은 나눠먹고, 같이 살아야 하는 운명 공동체다. 모든 생물은 먹이사슬의 고리를 이루면서 공존 공생하는 자연 생태계의 일원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탐욕이 봄의 침묵을 만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