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심리학자의 말에 의하면 기온, 습도 등의 날씨 변화는 사람들의 정서에 민감한 영향을 끼친다고 한다. 봄이 되면 들뜨고, 여름에는 짜증나고 공격적이 되며, 가을과 겨울에 감각과 사고가 또렷해지고 집중력이 높아지는 등의 현상은 바로 햇빛의 강도와 호르몬 분비 및 뇌 구조 기관들의 작용과 상관관계를 갖는 과학성을 근거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원리가 날씨로 인한 우발적 범죄 예방과 소비자 심리 연구에 크게 기여할 정도라고 한다. 한줄기 햇살, 바람 한 점에 마음이 흔들리는 여린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다른 날, 같은 장소를 배경으로 찍은 사진들에서 느껴지는 묘한 기분처럼 각기 다른 계절의 같은 풍경을 담아낸 그림도 많은 느낌의 차이를 전달한다. 날씨와 계절, 시간 등에 의해 변하는 대상에 대한 느낌을 가장 열성적으로 관찰하고 표현했던 화가로 클로드 모네를 떠올릴 수 있다.

 

 

  

 

 

클로드 모네  「양산을 쓴 여인」  1886년

 

 

주로 자연 풍경을 묘사하는데 적극적이었던 모네에게 「양산을 쓴 여인」 3점의 인물화는 드문 주제였지만 ‘빛을 사랑했던 화가’라는 별칭만큼 빛을 좇는 그의 붓놀림이 경쾌하게 살아있는 작품이다.

 

인상주의 화법은 마치 부서지는 햇살을 받아 반사하는 사물의 색채감을 묘사한다. 혼합하지 않은 여러 색채를 그대로 캔버스에 옮겨 놓고 착시현상을 일으키듯 인간의 시선 속에서 용해되어 빛이 터지는 듯한 효과를 낳는 것이다. 자연의 변화에 흔들리는 인간의 마음이 화사한 빛이 맑게 퍼지는 모네의 캔버스 위에서 또 다시 여리게 흔들리고 있다.

 

 

 

 

 

 

 

 

 

 

 

 

 

짧은 붓 터치가 만들어 낸 새털구름과 풋풋한 풀 무더기들이 여인을 받쳐 안는다. 이내 여인의 치마폭을 감싸고도는 바람이 빛과 어둠, 구름과 풀무더기에 자연의 역동성을 불어넣어 준다. 화가는 하늘빛과 잡초의 일렁임을 바람에 맡김으로서 조화의 극치를 추구한다. 바람이 하늘과 대지로 나타나는 삶과 죽음의 경계를 지배하도록 함으로써 여인이 안고 있는 불확실성을 극대화하지만, 멀찍이서 여인을 바라보는 어린 신사의 시선, 바로 모네의 사랑에 찬 눈빛을 등장시킴으로써 그림 전체의 안정감을 도모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이 그림에 가난한 예술가의 작품에의 열정과 애절한 사랑 이야기가 숨겨져 있다.

 

 

 

 

클로드 모네  「양산을 들고 있는 카미유와 아들 장」 1875년

 

 

두 점의「양산을 쓴 여인」을 그리기 전에 모네는 양산을 쓴 여인을 모델로 한 그림을 그린 적이 있었다. 아들인 장 모네와 나오는 그의 아내 카미유다. 모네만큼 자신이 사랑한 여인을 화폭에 자주 담은 화가도 드물다. 그는 지금까지 밝혀진 것만 해도 무려 56점의 작품에서 카미유를 화폭에 담았다. 모네는 다른 모델은 마다하고 오직 카미유만을 불러들였고 카미유도 청년의 순수함에 이끌려 즐거운 마음으로 아틀리에를 방문하곤 했다. 둘은 낮에는 화가와 모델로 만났고 밤에는 연인으로 만나 떨어질 줄 몰랐다.

 

꿈같은 행복의 연속이었지만 그들을 둘러싼 세상은 젊은 커플을 끊임없이 괴롭혔다. 카미유와의 동거 이후로 큰아들 장을 임신했지만 모네의 식구들은 두 사람의 결혼을 반대했다. 모네가 동거를 시작할 때만 해도 그의 집에서 약간의 보조금을 보내줬는데 1870년 카미유와 혼례를 올린 다음부터 아예 송금을 끊어버렸다. 견디기 힘든 고통의 세월이 그의 사랑을 시샘이라도 하듯 앞길을 가로막았다. 며칠 동안 맹물만 마시며 넘기는 때도 있었다.

 

 

 

 

클로드 모네  「정원의 여인들」  1866~1867년경

 

“저는 어느 때보다 행복합니다. 지금 작업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클로드 모네, 이주헌 『화가와 모델』 중에서, 175쪽)

 

그러나 가난의 세월 속에서도 모네의 창작욕은 더욱 뜨거워졌다. 카미유를 향한 사랑의 열정 또한 마찬가지였다. 1866~1867년에 제작된 「정원의 여인들」에 나오는 네 명의 여인은 모두 같은 사람이다. 바로 카미유이다.

 

1871년부터 모네의 그림이 인기를 얻게 되면서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벗어나는 듯했다. 그러나 여느 예술가들이 그렇듯 모네 역시 셈이 흐렸다. 그는 이런 꿈 같은 현실이 마냥 계속될 줄 알고 돈을 물 쓰듯 쓰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듬해 그를 후원한 화랑이 재정난을 겪게 되면서 수입은 순식간에 3분의 1 이하로 줄었다. 카미유는 가난한 시절의 낙태 후유증을 앓고 있었지만 병원비를 마련할 방도가 없었다. 여기저기서 빚을 끌어들였지만 생활비와 치료비를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의사의 수술 권유도 비용 때문에 포기해야 했다.

 

이때부터 모네는 새로운 거처를 마련, 부유한 미술품 수집가의 부인이자 그를 재정적으로 후원한 적이 있었던 알리스 오슈데의 식구들과 한 지붕 아래 생활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오슈데는 예전에 모네를 흠모했던 여인이다. 모네와 카미유의 연애 사실을 알게 되자 자신과 결혼하기 위해서라면 카미유의 사진과 편지를 모두 불에 태워야 한다고 협박할 정도로 질투심을 느끼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슈데는 허약해진 카미유를 정성을 다해 간호해주었고 그녀가 임종할 때까지 끝까지 지켜주기도 했다.

 

카미유는 그렇게 가난 속에서 제대로 치료도 받지 못한 채 서서히 무너져갔다. 카미유는 끝내 회복하지 못하고 1879년 32세의 나이로 숨을 거둔다. 곁을 지키고 있던 모네는 카미유의 지상에서의 마지막 모습을 화폭에 담는다.

 

 

 

 

클로드 모네  「카미유의 죽음」 1879년

 

“내게는 너무도 소중했던 여인이 죽음을 기다리고 있고, 이제 죽음이 찾아왔습니다. 그 순간 나는 너무나 놀라고 말았습니다. 시시각각 짙어지는 색채의 변화를 본능적으로 추적하는 나 자신을 발견했던 것입니다.” (친구 클레망소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이주헌 『화가와 모델』 181쪽)

 

「카미유의 죽음」을 살펴보면 임종 순간에 느껴진 감정의 표현이라고 말했던 모네의 말과는 달리, 그가 후에 여러 차례 터치를 하여 세심하게 매만진 흔적이 보인다. 푸른색에서 흰색으로 점차 창백하게 변하는 그녀의 얼굴은 곳곳에 분홍색이 가미된 긴 붓 터치로 그려진 베일에 싸여있다. 어찌 보면 영원히 자신 곁을 떠나려 하는 연인의 마지막 이미지를 보존하고 싶은 마음은 자연스러운 것일지도 모른다.

 

「양산을 쓴 여인」그림 두 점은 카미유가 죽은 지 7년 후에 그려졌다. 아이러니하게도 카미유가 죽은 후 재혼한 알리슈의 딸 쉬잔이 카미유의 빈 자리에 서 있었다. 먼저 떠나간 그녀를 그리워한 것일까. 얼굴이 묘하게 흐릿한 것을 보면 카미유를 모델로 삼았을 때의 연작을 재현하면서 그녀에 대한 추억과 그리움이 담긴 듯하다. 카미유가 살아있을 때 양산을 들고 있는 그녀의 모습을 그린 1875년의 작품과 비교하면 밝은 색의 자연 풍경은 여전하지만 카미유의 이목구비는 흐릿하기만 하다. 이제 이 세상에 없는 영혼의 모습처럼. 어쩌면 카미유가 사무치게 그립지만 세월에 씻기어 생김새가 흐릿해진 것일지도.

 

카미유는 모네에게 사랑과 창작의 원천이며 힘들고 어렵던 시간마다 힘과 용기를 주는 존재의 근원이었다. 카미유만이 그의 영원한 모델이자 그의 작품에 표현된 빛 그 자체였다. 하나의 작품이 한 사람의 인생이라는 말의 의미를 알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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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인만의 여섯가지 물리 이야기 - 보급판
리처드 파인만 강의, 폴 데이비스 서문, 박병철 옮김 / 승산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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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에 대한 관심이 있어 대중을 위한 과학교양 서적을 읽다 보면 어느 순간 본격적으로 과학 지식을 공략해 보겠다는 생각이 솟을 때가 있다. 하지만 이 때 용감무쌍하게 전공 서적을 들춰보았다간 내 인생과는 아무 관련 없는 수식과 용어들에 다시 기가 죽고 목표를 수정하게 된다.

 

자연과학과 공학의 기초가 되는 물리학이 과학기술 발전에 결정적으로 공헌했음에도 학생들에게 기피대상이 되고 있다. 아마도 어렵고 재미없다는 편견 때문일 것이다. 반면에 물리학자들에게 왜 물리를 선택했느냐고 물어 보면 거의 모든 사람이 물리가 재미있기 때문이라고 대답한다. 이것은 무얼 의미하는가? 물리학은 분명히 재미있는 학문인데 우리가 그것을 재미없게 혹은 어렵게만 대해 온 때문이지는 않는가?

 

아인슈타인은 “쉽게 설명할 수 없다면 당신은 그것을 충분히 잘 안다고 할 수 없다”고 했을 만큼 지식을 전달하는 일은 쉽지 않다. 세계적인 과학 천재들이 모여 공부하는 캘리포니아 공과대학의 물리학과 교수들도 1960년대 초에 이와 비슷한 고민을 했다. 이곳 학부생들이라면 수학, 과학 분야에서 미국 최고의 영재들임에 틀림없는데 왜 물리공부를 힘들어 하는가,고민하다가 그들은 새로운 시도를 했다. 양자전자기학을 완성한 뛰어난 이론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에게 일반물리학 강의를 맡겨보기로 한 것이다.

 

파인만의 강의는 명강의로 소문이 나 있었는데 가장 큰 특징은 남들과 "다르다"는 것이었다. 잘 알려진 주제라도 완전히 자신의 언어로 소화한 후에 전달하기에 항상 새로운 영감과 깨달음의 감동을 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자신의 강의철학을 이렇게 얘기한다.

 

“우선 당신이 강의하는 내용을 학생들이 왜 배워야하는지, 그 점을 명확하게 파악하라. 일단 이것이 분명해지면 강의 방법은 자연스럽게 떠오를 것이다.” (머리말에서, 23쪽)

 

1961년부터 2년간 행해진 파인만의 일반물리 강의는 대히트였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 강의를 특히 즐긴 사람들은 정식으로 수강신청을 한 학부 신입생들이 아니라 대학원생과 교수들이었다는 것이다.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라도 새로운 영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파인만 강의의 특징이 아주 잘 나타난 결과일 것이다.

 

파인만 자신이 대학 학부 1학년들을 대상으로 강의한 내용의 일부라 그다지 어렵지 않고, 일상생활에서 체험하는 현상으로 물리 법칙을 설명하는 파인만 특유의 접근법이 녹아 들어있다. 자질구레한 설명을 통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느끼고 경험하는 일상에서 심오한 물리학 이론을 유추해낸다. 원자에서 시작해서 기초 물리학, 물리학과 다른 과학과의 관계, 그리고 에너지, 중력, 양자적 행동 등 여섯 가지 물리 이야기를 소개한다.

 

예를 들면 소금이 물에 녹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파인만을 따라 분자의 시야에서 이를 들여다보면 우리는 주변의 다양한 현상을 ‘진짜 이해하기 시작했다’고 느낄 수 있다. 나트륨과 염소가 전기력으로 단단히 결합되어 있던 소금의 결정은 물에 들어가면 붕괴하기 시작한다. 물에서 산소의 음이온과 수소의 양이온들이 나트륨과 염소이온을 각각 끌어당기기 때문이다. 서로 반대 극성을 가진 이온들이 서로 끌어당기면서 소금 결정이 붕괴돼 물에 녹는다. 하지만 소금의 일부 원자가 결정으로부터 붕괴되는 동시에 다른 원자들은 물속에서 결정으로 되돌아온다. 소금이 물에 녹을 지, 결정이 생길 지는 물과 소금의 양에 달려있다.

 

양자역학은 현실에서 직관적으로 체험하기 어려운 지식이다. 파인만은 전자를 입자 또는 파동으로 볼 수 있는 실험을 통해 양자적 행동의 미스터리를 설명한다. 틈새를 통과하는 전자는 총알과 같은 입자처럼 덩어리로 벽에 도달하지만, 특정 위치에 도달할 확률은 파동처럼 간섭무늬를 나타낸다는 것이다.

 

전자는 입자이면서 파동이라는 결론이 그래서 나온다. 이러한 모순투성이 이론은 ‘불확정성의 원리’를 기둥 삼아 유지되고 있다. 우리의 상식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불확정성 원리’를, 전자의 운동방식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그는 여기서 사수의 의지와 상관없는 방향으로 발사되는 총알을 쏜다. 2개의 철판구멍을 두고 난사되는 총알의 탄착점과 역시 2개의 구멍으로 생겨나는 물결의 간섭, 우리가 ‘입자’라고 알고 있는 전자는 어떤 운동 모델을 따를 것인가. 오늘날 수많은 물리 입문서가 모방해 낯설지 않은 얘기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가 재기 넘친 말투로 생생하게 전하는 설명은 듣는 이에게 분명 다른 감흥으로 다가온다.

 

화학, 생물학, 천문학, 지질학, 심리학 등과 같이 물리학과 깊은 연관을 맺고 있는 다른 과학들을 설명하는 제3강은 특히 흥미롭다. 아니, 이 책에서 제3강의 내용이 제일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물리학과 다른 과학에 대한 개념을 매우 간명하게 설명하고 있어서 이 책을 읽을 때 제3강부터 먼저 읽어도 좋다. 여기에서 파인만은 천문학과 물리학의 관계를 밝히면서 시인들의 게으름과 무관심을 질타한다.

 

“오늘날의 시인들은 목성을 쉽게 의인화하면서도 목성이 메탄과 암모니아로 이루어진 구형의 회전체라는 뻔한 사실 앞에서는 왜 침묵하고 있는가? 이렇게 한정된 소재에만 관심을 기울이는 시인들은 대체 뭘 하는 사람들인가?" (123쪽)

 

과학적인 발견의 축적 때문에 별의 아름다움이 상실되고 있다는 시인들의 불평불만에 대해 파인만은 그것이 전혀 근거 없는 것이라고 일축한다. 새로이 알려진 사실이 오히려 지적이고 서정적인 풍요로움을 선사할 수 있음을 강조하는 것이다.

 

우리가 아는 물리학은 간단한 중력 법칙에 의해 깨끗하게 설명되며 중력 이론이 풀지 못한 수수께끼도 ‘상대성 이론’이 속 시원하게 해결한 듯이 보였다. 그러나 어쩌랴. 오늘의 물리학은 ‘맹목의 우연’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세계의 현상을 설명해주는 양자역학이 확률과 우연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아인슈타인이 ‘신은 주사위놀음을 하지 않는다’며 역정을 낸 것도 당연하다.

 

‘최첨단의 물리학은 한마디로 무식의 전당이다.’ 동료 교수들마저 어려운 과학을 쉽게 이해하는데 성공한 파인만마저도 과학의 한계를 이렇게 고백한다. 우리가 자연에 대해 알면 알수록 풀어야 할 수수께끼 또한 점점 많아진다는 것이다.

 

그가 강의를 한 지도 40년이 흘렀다. 소립자의 계열에 질서를 세운 ‘쿼크’ 이론이나 ‘궁극의 이론’에 한발 다가섰다는 초끈 이론, M이론 등의 최신 내용은 이 책에서 기대할 수 없다. 그러나 파인만이 소개한 물리 이야기는 우리 주위의 자연 현상이나 새로운 기기에 다양하게 적용되거나 세상을 작동하는 과정이다. 과학을 공부하기에 앞서 무엇이 핵심이 되는지를 아는 능력이 전체를 보는 눈이며, 간단하고 쉽게 설명할 수 있는 능력이 자세한 내용을 배우는 자세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세계가 숨겨둔 비밀을 하나씩 벗겨나가는 지적 떨림과 즐거움은 언제까지나 가장 ‘Fine(멋진)’이다. 그리고 우리는 파인만이 남긴 'Fine'(좋은)강의록 덕분에 과학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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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메이징 그래비티 - 만화로 읽는 중력의 원리와 역사 어메이징 코믹스
조진호 글 그림 / 궁리 / 2012년 11월
평점 :
절판


 

 

“중력의 존재를 느끼지 못한 사람은 영혼이 없는 사람이다.”

(리처드 파인만)

 

 

 


 Scene #1 95%의 중력을 우리는 알지 못한다 

 

 

 

 

우리는 우주를 얼마나 아는가?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를 포함해 자연은 신비 그 자체다. 이 신비함이 글과 숫자를 사용할 줄 아는 인간의 호기심을 자극하면서 예술과 문학과 과학이 탄생했다. 신비함 속에 있는 오묘한 자연의 질서를 찾아 나선 인간의 호기심은 결국은 우주탄생의 비밀을 찾아 과거로 미래로 우주로 계속 나아갈 것이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알고 있다는 것은 거대한 우주 물질의 겨우 4%에 해당할 뿐이다. 결국 인간은 우주의 아주 작은 부분만을 안다는 것으로, 우주의 신비를 밝히기까지 아직 갈 길이 멀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우주에 작용하는 중력의 95%는 우리가 전혀 알지 못한다는 의미이다.

 

중력을 논하지 않고는 우주를 논할 수 없을 정도로 우리는 중력이 지배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빅뱅 이후 계속 팽창하던 우주에 별과 행성을 탄생시키는데 주요 역할을 한 중력은 여전히 우주에 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지구에서 생명체가 살 수 있는 것도 적당한 지구의 중력이 대기권을 형성해주기 때문이다. 화성은 중력이 약해 대기권을 붙잡아 둘 수가 없어 삭막한 불모지가 되어버렸다.

 

 

 

 

아인슈타인은 중력의 정체를 ‘시간과 공간이 일체가 되어 이루는 물리적 실체인 시공간의 뒤틀림’으로 파악하는 관점에서 일반상대성이론을 만들었다. 이에 따르면 질량을 가진 물체가 주변 공간에 형성하는 '중력장'은 이 물체 주변의 시공간에 변형이 가해지는 것으로 이해된다. 따라서 질량을 가진 물체가 움직이거나 새로 생겨나거나 파괴되면 이에 따른 파동이 시공간의 일그러짐이라는 형태로 표현되고, 이 물체의 질량이 매우 크다면 이를 관측하는 것도 가능해야 한다. 이런 중력장의 파동을 가리키는 말이 ‘중력파’다.

 

중력파의 존재는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에 따라 예측되는 것이어서 이론적으로는 잘 알려져 있으나 직접 실험을 통한 검출은 성공한 적이 없었다. 그러다가 올해 미국 연구진이 우주 빅뱅 직후 있었던 급격 팽창의 결정적인 증거로 중력파를 확인하는 데 성공했다.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이 세상에 처음으로 발표된 지 98년 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력은 여전히 베일에 가려져있다. 중력의 비밀을 규명하려는 인간의 노력은 오랜 시간 계속돼 왔다. 이후 천문학과 물리학, 관측 기술 등 우주의 역사와 미래를 다루는 학문은 비약적인 발전을 해왔고 중력의 비밀을 규명하려는 노력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Scene #2  무엇이 태양과 지구를 움직이게 하는가?

 

모든 물질 사이의 관계를 설명하는 뉴턴의 만유인력은 당시까지 서구 사상을 지배해 온 관념에서는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발상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든 근본원소들은 자기 자리로 돌아가려는 본성이 낙하현상으로 나타나는 것이라고 주장했고, 이는 중세 천년 동안 서구 사상가의 의식 속에 틀어박혀 있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주창했던 자연관은 16세기 후반 길버트란 영국 내과 의사가 타파하게 된다. 그가 주창한 내용은 지구가 하나의 자석이라는 것이다. 그가 그렇게 주장한 배경 중 하나는 자석과 철광석이 본질적으로 동일한데 철광석은 땅 밑에서 캐내기 때문이다. 그 당시 사람들은 오늘날 중력과 자기력을 서로 같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지동설 옹호론자들도 태양이 지구를 당기는 힘이 자기력이라고 생각을 했다. 그러기 위해선 태양과 지구는 모두 자석이어야만 했던 것이다. 둘 사이에 아무것도 없으면 운동이 일어날 수 없는데 자력이나 중력이 실제로 있다는 것은 당시 과학자들에게는 곤혹스러운 해결 과제였다.

 

이런 길버트의 관점을 가장 깊게 받은 과학자 중엔 케플러가 있었는데 그 또한 태양이 지구를 묶어놓는 힘은 자력이라고 여겼다. 그럼 지구가 이렇게 움직이게 하려면 자석인 태양은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제자리에서 빙글 빙글 돌아야 하는 것이다. 여기서 태양의 자전이란 아이디어가 튀어 나온 것이다.

 

물론 지금의 관점에서 보면 명백히 틀린 내용이지만 이런 내용을 접할 때마다 몹시 반성이 앞서게 된다. 아무리 틀린 내용이라지만 앞 뒤 맥락을 보면 말이 아주 안 되는 것도 아닌데, 선조보다 더 고도의 문명 속에 사는 우리는 왜 이런 의문점을 생각해본 적 자체가 없던가.

 

뉴턴의 시기에도 사람들은 자기력과 중력을 구별하지 못했다. 아니 동일한 것으로 생각을 했다. 하지만 이런 현상을 보고 한심하게 생각 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오늘날 벌어지는 많은 사항들 중에 과거 및 후세 사람들이 보기엔 동일한 것들을 우리는 다른 것으로 여기는 실수도 범하기 때문이다.

 

길버트는 아리스토텔레스 이후의 굳어진 정적인 지구상을 특이하고 탁월한 힘을 가진 고귀하고 생명적인 존재로 바꾸어 놓았다. 현대 과학의 눈으로 보면 받아들일 수 없는 논리지만, 당시 사고방식을 돌아가 보면 이처럼 황당한 논리가 사실은 서양의 근대 과학을 형성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결국 지구는 자성 때문에 스스로의 운동 원리를 가질 뿐 아니라, 활성적이고 능동적이며 고귀한 존재로 간주된다. 따라서 이런 관점을 고수한 후로는 지동설을 어렵지 않게 받아들일 수가 있게 된 것이다.

 

프톨레마이오스 이후 1400년 동안 우주의 중심은 지구였다. 하지만 이 이론대로라면 금성과 수성이 가끔씩 태양으로부터 멀어질 때가 있어야 하는데 그런 현상은 전혀 관측할 수 없었다.

 

1500년대 초 코페르니쿠스는 이 점을 지적하며 고대 그리스 천문학자 아리스타르코스가 주창했던 지동설을 지지했다. 그는 각각의 천체들은 제각기 고유한 무게를 갖고 있는데 그 무게는 중심으로 향하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고 주장했다. 코페르니쿠스의 이런 생각은 200년 후 뉴턴의 만유인력으로 계승된다.

 

 

 

 

뉴턴은 지구가 사과를 끌어당겼다고 생각했다. 질량이 있는 물체 사이에는 서로 끌어당기는 만유인력이 작용한다. 혹자는 묻는다. 만유인력과 중력이 어떻게 다르냐고. 중력은 만유인력에 지구 자전에 따른 원심력을 더한 힘이다. 만유인력과 원심력이 일치하는 공간이기에 사과는 지구가 자전하는 속도로 지구 주위를 돌게 된다. 그의 중력이론은 당시로서는 가히 혁명적인 것이었다.

 

만약에 지구가 한 순간이라도 공전을 멈춰버리면 어떻게 될까? 지구는 태양의 인력에 의해 순식간에 태양 속으로 빨려 들어가 녹아버릴 것이다. 반대로 지구가 지금의 속도보다 빠른 속도로 공전한다면 지구는 원심력에 의해 공전궤도가 더 커지게 되든지, 태양의 영향권을 벗어나 영원히 멀어지게 될 것이다. 아무튼 지구가 지금의 속도로 태양주위를 공전하는 동시에 자전하는 덕분에 우리는 4계절과 밤낮이 있는 세상에서 살 수 있는 것이다.

 


 Scene #3  “중력은 아무것도 아니에요... 전부입니다.”

 

 

 

 

결국 모든 존재는 위에서 아래로 떨어진다. 중력이라는 미처 알지 못했던 힘에 의해서. 중력은 가장 기본적인 우주의 질서 체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물체의 추락함을 당연하게 여기며 살아가지만 중력이 가지는 절대적인 힘을 확인해 본 적이 없다. 그래서 중력이 무엇이라고 누군가가 물어본다면 우리는 이렇게 답하는 것이 그럴 듯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정답이 될 지도 모르겠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전부입니다.”

 

우리가 어디에 있든 바로 그곳에는 중력이 존재한다. 하늘의 구름, 그리고 구름과 빌딩 사이의 공기 속에도 중력이 있으며, 우리가 흔히 무중력 공간이라고 이야기하는 우주 공간에도 그 크기가 작을 뿐 어김없이 중력은 존재하고 있다.

 

이처럼 모든 곳에 존재하는 중력은 태양과 달의 위치에 따라 매 순간 그 크기를 달리 한다. 세상에 태어난 순간부터 함께 있어왔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당연한 중력의 존재를 쉽게 의식하지 못하고 살아간다.

 

뉴턴의 중력 발견 이후 과학은 급격한 속도로 발전하기 시작했고, 인간은 마침내 지구의 중력에서 최대한 멀리 도망칠 수 있는 방법을 얻게 됐다. 지구 탈출의 꿈을 실현시켜준 거대한 비행체인 로켓. 지구 중력의 구속력을 이겨내고 지구 밖의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하고 싶던 인간에게 로켓은 우주에 도달할 수 있는 단 하나의 통로가 되었다.

 

수많은 물음표를 느낌표로 바꾸어왔던 인류의 노력은 과학을 거듭 발전시켜왔다. 중력이라는 미지의 세계를 거부할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인정하고 이해할수록 과학은 더욱 발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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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4-05-15 07: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태양의 자전'이라니, 왜 지금까지 한번도 그 생각을 못했을까요.

cyrus 2014-05-15 2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 hnine님. 이 책이 만화라서 기본적으로 알아두면 좋은 과학상식이 쉽게 소개되고 있어요. 만화책으로 오랜만에 고등학생 때 배운 과학 수업 내용을 복습하는 기분이 들었어요. ^^
 

 

실언은 국어사전엔 “하지 않아야 할 말을 실수로 잘못 말함, 또는 그 말”이요, 영어사전엔 “부적절한 말(an impropriety in speech) 혹은 혀의 미끌어짐(a slip of the tongue)”으로 풀이되어 있다. 정언(正言)은 “도리에 어긋나지 않는 바른말을 함, 또는 그 말”이다.

 

우리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정언보다는 실언을 헤아릴 수 없이 허다하게 하는 것을 보고 나 자신이 깜짝 놀란다. 그만큼 바른말하며 살아가기란 여간 어렵지 않다. 실은 나 역시 상대방을 배려하지 못한 실언을 해서 곤혹을 치른 적이 꽤 있다.

 

바른말을 하려면 우선 양심이 정의롭게 서야 하고 그래야만 올바른 행동으로 귀결될 수 있다. ‘정언정행’이란 정(正)으로 ‘언행일치’이어야만 명분을 얻을 수 있으며 모든 길로의 소통이 가능한 법이다. 거침이 없고 막힘이 없는 사통팔달(四通八達)한 시원한 정직이다. 그것이 정도(正道)다.

 

그러나 실상, 현실을 놓고 볼 때 실언을 통한 자기 과오를 은근히 면하려고 한다. 영어로 ‘혀의 미끌어짐’이 아주 적절할 것이다. ‘혓바늘이 돋아서, 혀에 상처가 나서’ 등으로 핑계를 대면서 ‘말이 헛 나왔다, 미안하다’ 하면 실수에 따른 자신의 귀책사유치고는 빠져나갈 이유가 많다.

 

옛 선인들은 말을 함에 신중하게 말하고, 간략하게 말하고, 때에 맞게 말하는 것을 아주 중요한 덕목으로 여겼다. 말을 잘하고 못하고는 그리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또한, 자신의 행실을 돌아보면서 자신의 행실에 맞게 말을 해 언행일치가 되도록 하는 것을 아주 중시했다. 자신의 행실은 엉망이면서 말만 뻔지르르하게 잘하거나,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많은 말을 늘어놓는 것을 못난 사람의 전형으로 보았다.

 

최근엔 실언을 넘어 망언을 일삼는 정치인들을 보면서 착잡하기 그지없다. 특히 세월호 사건에서 개탄스러운 일은 몰지각한 사람들과 이른바 사회 지도층 일부가 깊은 생각 없이, 아니 현상에 대한 부정적 해석으로만 무장하여 실수 차원을 넘어 망동과 망언을 저지른다는 것이다. 사고 초기에 한 망동꾼이 “해경이 민간 잠수부를 막았다”는 허위 사실 유포로 놀라게 한 것서부터 어느 청년의 ‘국민 정서 미개’ 발언이 또한 그러하다. 심지어 교수라는 직함을 가진 사람이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을 비난하는 발언을 페이스북에 게재하는 경솔한 행동을 저질렀다. 결국 문제의 교수는 문제의 글을 삭제하고 사과문을 올렸고, 교수직에서 물러났다.

 

 

 

 

 

현재 교수의 페이스북 페이지에는 문제의 글을 볼 수 없지만, 이번에 문제가 된 발언 외에도 세월호 침몰 사고와 관련해 너무 비정상적인 글들이 많았다. 특히 가관인 것은 교수의 글에 대한 ‘페친’(페이스북에서 친구로 관계를 맺은 사람)들의 댓글 반응이다. 문제의 글이 페이스북에 게재되었을 때 유가족을 비하하는 발언에 동조하는 내용의 댓글이 있을뿐더러 교수의 사과문에도 여전히 그의 발언을 옹호하는 페친이 있었다.

 

 

 

 

 

 

 

실언을 한 사람은 사과 한 마디 하면 책임을 질 수도 있지만, 그 실언의 내용에 동조하거나 잘못인 것을 알면서도 지적을 하지 않은 주변 사람들도 책임을 피할 수 없다. 친밀한 관계가 높은 상대방일수록 우리는 그 사람의 단점과 잘못을 지적하는 것이 쉽지 않다. 괜히 상대방의 행동에 시시비비를 따지다가 한순간에 관계가 멀어질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상대방에 대한 친밀한 진심을 가지고 있다면 그의 잘못을 알려주고 바로잡아주는 것이 진정한 예의가 될 수 있다. 이와 관련해서『논어』술이(述而)편에 노나라 임금에 대한 공자의 태도를 지적하는 무마기의 일화가 있다.

 

 

진나라의 사패(법을 관장하는 벼슬)가 물었다.

 

“(노나라 임금) 소공은 예를 아는 자입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예를 아는 자입니다.”

 

공자께서 물러나시자 (사패가) 무마기(공자보다 서른 살 연하의 제자)에게 예를 표하며 들어오게 하고는 말했다.

 

“나는 군자는 편을 가르지 않는다고 들었는데, 군자도 편을 가릅니까? 소공은 오씨를 아내로 맞이했는데 같은 성이기 때문에 그녀를 오맹자라고 하였습니다. 이런 임금이 예를 안다면 누가 예를 모르겠습니까?

 

무마기가 그 말을 알려주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운이 있구나. 만약 허물이 있어도 남이 그러한 점을 반드시 알려준다.”

 

 

陳司敗問. “昭公知禮乎.” 孔子曰 “知禮.” 孔子退, 揖巫馬期而進之, 曰 “吾聞君子不黨, 君子亦黨乎? 君取於吳爲同姓, 謂之吳孟子. 君而知禮, 孰不知禮. 巫馬期以告.” 子曰 “丘也幸, 苟有過, 人必知之.” (김원중 역, 145~146쪽)

 

 

오나라는 주왕조의 희성(姬姓) 중의 한 사람인 태백(泰伯)이 세운 나라로, 노나라와 함께 같은 희성의 나라였다. 진나라 사패가 공자를 비판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소공이 같은 성의 오나라 여인과 결혼한 사실은 비난받을만한 일이지만 공자는 소공의 잘못은 말하지 않으면서 소공 편을 든다는 것이다. 후에 진사패가 자신을 신랄하게 비판했다는 사실을 듣고, 공자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했다. 오히려 남이 자기의 잘못을 지적하는 것을 다행이라 말하고 있다. 내나라 임금의 잘못을 제대로 지적하지 못했던 자신의 고뇌에서 벗어나는 순간이기도 하다.

 

우리의 눈은 자기 허물은 보지 못하고 남의 허물만 보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남의 눈에 티끌을 보지 말고 내 눈에 있는 들보를 보라.’는 교훈의 말이 있지 않은가. 다시 말해 누구나 남의 허물이나 단점은 잘 보면서 정작 자기 자신의 허물이나 단점은 잘 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공』에 이런 우화가 나온다. 두 사람이 굴뚝 청소를 했는데 내려와 보니 한 사람은 얼굴에 검댕이 묻었고 한사람은 깨끗했다. 과연 누가 얼굴을 씻었을까? 답은 얼굴이 깨끗한 사람이었다. 얼굴이 깨끗한 사람은 상대방 얼굴에 검댕이 묻은 것을 보고 자기 얼굴도 검댕이 묻었을 거라 여기고 씻었다.

 

하지만 검댕이 묻은 사람은 상대방의 얼굴이 깨끗 하자 자기 얼굴도 검댕이 묻지 않았을 거라 여기고 얼굴을 씻지 않은 것이다. 이처럼 남의 얼굴에 묻은 검댕은 잘 보이지만 자기 얼굴에 묻은 검댕은 보이지 않는 것처럼 남의 허물은 잘 보면서 자기 허물을 잘 보지 못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자기 허물이나 잘못에 대해서는 관대하나 남의 허물이나 잘못에 대해서는 아주 야박한 속성을 지녔다. 시체말로 ‘남이 하면 불륜이요. 자기가 하면 로맨스’라는 말과 같다.

 

상대방의 허물이나 잘못을 너그럽게 이해하고 포용하는 자세도 덕이 있는 사람으로서 누구와도 원만한 대인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포용이 상대방의 허물을 용인하고 치부를 숨길 정도로 관대하게 대한다면 옳은 대인관계라고 할 수 없다.

 

상대방의 실언에 관대하고 묵인하는 잘못 또한 자신의 허물을 보지 못하는 경우와 같다. 이런 사람들이 자신과 친분이 전혀 없는 사람 혹은 유명인사의 실언에 지적하고 발끈한다면  자기 편 사람만 편드는 당동벌이(黨同伐異)에 가깝다. 공자는 그런 태도를 경계했다. 친하든 안 친하든 상대방의 얼굴에 검댕이 묻어 있으면 얼굴을 씻을 수 있도록 알려주거나 서로 닦아주면 좋다. 상대방을 진정으로 위하고 아끼는 마음이 있다면 엄격하게 허물을 꾸짖을 줄도 알아야 하는 것이다.

 

이번 발언 때문에 곤혹을 치른 문제의 교수는 자신의 사과문에 달린 페친의 위로와 응원의 댓글을 확인했을 것이다. 이번 일을 계기로 교수가 깊이 반성하면 좋겠지만, 친구의 허물을 너무 관대하게 대하는 페친의 행동 때문에 괜한 자기위안을 할까봐 걱정된다. 그 교수는 자신을 지지하는 페친은 많겠지만, 그 중에 교수의 단점을 헤아리고 고쳐줄 수 있는 훌륭한 벗은 단 한 명도 없을 것 같다. 공자의 표현처럼 교수는 관계 운이 없다고 해야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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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타적 유전자
매트 리들리 지음, 신좌섭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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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걀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 오래된 이 논쟁과 관련, 생물학자들은 대부분 달걀 쪽 손을 들어준다고 한다. 그 이유는 『이기적 유전자』의 저자 리처드 도킨스의 이론 때문이다.

 

닭은 잠시 이 세상에 태어났다 임기를 다하면 사라져버리는 일시적인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 태초부터 지금까지 끊임없이 생명의 숨을 이어온 알 속의 DNA야말로 진정 닭이라는 생명의 주인이다. 적어도 이 지구라는 행성에 살고 있는 닭이라는 생명에게는 말이다. 닭은 알이 더 많은 닭을 낳기 위해 잠시 만들어낸 기계일 뿐이다.

 

달걀 속의 DNA는 물론 이 지구상에 사는 모든 생물의 DNA는 기본적으로 동일한 구조를 지닌다. 모두 태초에 우연히 생성된 어느 성공적인 한 복제자로부터 분화되어 나왔기 때문이다. DNA은 오로지 자기의 분신을 만드는 일밖에 모르는 존재이다. 그래서 그들을 가리켜  도킨스는 ‘이기적 유전자’라 불렀다.

 

이제 ‘이기적 유전자’는 우리들에게 그다지 생소한 표현이 아니다. 하지만 그 이기적인 유전자가 어떻게 이타적 인간을 만들어내는가를 설명하는 일은 결코 간단하지 않다. 도킨스는 유전자 차원에서 자기 자신과 동종의 유전자가 번식할 수 있도록 한 개체가 혈연관계에 있는 다른 개체를 돕는 혈연선택 가설을 주장하지만, 나와 전혀 혈연관계에 놓이지 않은 사람들에게 베푸는 선행이나 친절에 대해 설명하지 못하는 결점이 있다.

 

 

 

이에 대해서 매트 리들리는 인간이 과연 이기적 존재인가, 이타적 존재인가라는 해묵은 논란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이타적 인간은 이기적 인간과의 경쟁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는가라는 질문을 제기한다.

 

그는 19세기 후반 러시아의 무정부주의자 크로포트킨이 저술한 『상호부조 : 진화의 한 요소』』에 대한 언급으로 책을 시작한다. 귀족계급 출신이자 혁명가였던 크로포트킨은 삶이 피투성이의 난투 또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라고 본 당대의 홉스나 헉슬리와는 달리, 삶의 특징은 경쟁이 아니라 협동이라는 것을 강조했다. 그가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된 결정적 일화가 있는데 자신의 책에서 그 사례를 들고 있다. 1876년 상트 페테르부르크 교도소에서 수감 중이었던 크로포트킨은 동료와 지인들의 도움으로 극적인 탈옥에 성공했다. 도저히 벗어날 수 없을 것 같던 감옥으로부터 그를 탈출시킨 것은 바로 ‘상호부조’였고, 이것은 그 자신이 혁명가로서의 활동을 통해 획득한 ‘신뢰’의 산물이었다고 기술했다.

 

그래서 크로포트킨은 ‘이기성은 동물성의 유산이며 도덕성은 문명의 유산’이라는 생각을 거부했다. 협동은 태곳적부터 내려오는 동물적 전통으로서, 다른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인간에게도 부여되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리들리는 크로포트킨이 절반은 옳다고 인정하면서도, 인간 사회의 뿌리는 그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깊은 곳에 존재한다고 본다.

 

이처럼 이타주의적 본능이 어떻게 삭막한 경쟁과 도태의 이기적 세계에서 살아남았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기 때문이다. 이타주의로 똘똘 뭉친 무리는 다른 무리들과 싸우거나 먹이를 찾는 데 더 유리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타주의가 단지 전체의 이익을 위해서만 필요한 것은 아니다. 배신을 선호하는 이기주의자들과 이타주의자들이 경쟁할 때를 생각하면 당연히 이기주의자들이 이길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경제학을 비롯한 여러 학문에서도 쓰이고 있는 게임이론은 배신과 협력을 하는 경쟁자들 간의 갈등을 수학적으로 풀어내는 이론인데, 이타주의가 전투에서는 질 수 있지만 전쟁에서는 이기는 효과적인 전술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물론 한 번만 볼 것 같은 사이라면 이기적인 것이 훨씬 유리하다.

 

인간의 두뇌는 게임이론이 보여준 자연의 법칙을 그대로 반영한 회로를 갖추고 있다. 우리는 서로 만나면 잘 웃고 호의를 베풀며 대화를 하는 습성이 있다. 함께 술자리를 같이하며 뭉치자고 외치는 이상한 습관도 이 때문이다. 또한 적대적인 배신행위에도 민감하다. 회사에서도 일을 제대로 하지 않거나 관례나 규칙을 어기는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잘리거나 따돌림을 당한다.

 

리들리는 네가 주면 나도 준다는 식의 이 같은 상호호혜주의 원칙은 관계가 안정적이고 지속적이며 또한 경쟁적이어야 가능하다고 말한다. 만약 두 개체의 만남이 일회적이고 우연성이 높으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어쩌다 마주친 녀석한테 뭘 줘 봤자 언제 그것을 되돌려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애초에 거래가 성사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리들리의 주장과 비슷한 반복-호혜성 가설은 반복되지 않는 상황, 다시는 마주칠 것 같지 않은 사람에게 보이는 호의에 대해 설명하지 못한다. 세월호 사고 당시 학생들을 먼저 구하다가 목숨을 잃은 승무원 故 박지영 씨가 그렇다. 헌혈도 내 피가 누구에게 수혈될지 모르는 상태에서 이뤄진다.

 

덕망 있는 이들을 칭송하고 희생과 협동을 사회 제일의 덕목으로 존중하지만 우리 사회가 늘 아름다운 것만은 아니다. 우리 주변에는 아직도 박지영 씨 같은 이들보다는 남의 불행을 나의 기회로 삼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은 것 같다. 아는 사람들에게는 아직도 동방예의지국의 체면을 유지하고 있는 듯 보이지만 한 다리만 건너면 철저하게 ‘동방무례지국’으로 전락한 우리 사회의 변화는 또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유전자들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이제는 비록 한 몸 속에 들어앉아 있지만 제가끔 다른 족보를 가진 유전자들이 언제나 일사불란하게 협동하는 것은 아니다.

 

일본의 화장품 회사 긴자마루칸의 회장이자 유명 저자인 사이토 히토리는 “먼저 자기 앞가림을 해야 남을 도울 방법이 떠오른다. 인간의 뇌는 자신을 먼저 지키는 구조로 만들어다.”라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어쩌면 DNA는 자신을 먼저 지키는 구조로 만들어졌을지도 모른다. 하나의 DNA안에 있어도 제각기 자기만의 복제를 꿈꾸기도 한다. 그래서 흔히 유전자를 국회의원에 비유한다. 자신의 지역구만 챙기기에 급급하다 보면 나라의 앞날은 어찌 될 것인가. 유전자들은 필요할 때마다 서로 손을 잡을 줄 안다. 즉 개체의 장기적인 이익을 위해 이기적 유전자가 일시적으로 이타적 행동을 하는 것이다.

 

이기적인 유전자의 눈높이에서 바라보는 생명의 모습은 언뜻 허무해 보인다. 그러나 그 약간의 허무함을 받아들이면 내 스스로가 철저하게 겸허해지는 경험을 할 것이다. 그리곤 자연의 일부로 거듭나게 된다.

 

겸허한 자세를 갖는다면 인간의 이러한 특성은 우리에게 사회를 선물한 미덕이다. 이타적 유전자가 나타난 것도 결국 종족 보전을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사회가 지속적으로 유지되기 위해서는 자신의 이익만 챙기고 자신은 전혀 남을 위해 희생하지 않는 이기적 돌연변이체가 나타나지 않아야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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