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야 하는 이유 - 불안과 좌절을 넘어서는 생각의 힘
강상중 지음, 송태욱 옮김 / 사계절 / 2012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 나태주 「풀꽃」-

 

 

 

 

사토리 세대를 아십니까?

 

 

 

 

 

 

3포 세대란 말이 유행한 지 제법 됐다. 대학 졸업해도 취업을 못하니 연애도, 결혼도, 출산도 포기한 2030 세대를 일컫는다. 근래엔 4포, 5포 세대까지 생겨났다. 스펙 쌓기와 취업 경쟁에 내몰려 인간관계를 포기했다 해서 4포, 여기에 내 집 마련까지 포기하니 5포다. 이 쯤 되면 포기는 배추 셀 때 쓰는 말이라면서 쉽게 포기하는 젊은이들에게 핀잔이 섞인 우스갯소리가 나올 법하다. 하지만 요즘 현실을 생각한다면 썰렁 유머에 쓴웃음만 나올 뿐이다.

 

재미있게도 이웃나라 젊은 세대들이 처한 현실이 우리와 비슷하다. 사토리(さとり, 득도) 세대. 깨달음을 얻은 세대라는 뜻으로, 물질적 욕심이 그다지 없다는 게 이들의 특징이다. 수도권 명문대학에 진학하는 꿈도 일찌감치 접고, 여행도 가지 않는다고 한다. 자동차나 명품 옷에도 별 관심이 없고, 술도 안 마신다.

 

사토리 세대는 흔히 사회문화적 현상으로 간주되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잃어버린 20년’이라고 불리는 장기불황의 시대적 산물이다. 제대로 직업을 갖지 못한 젊은이들이 세상을 살아가는 나름의 적응방식인 것이다. 저성장 혹은 제로성장 시대에 자라면서 고도성장이 뭔지조차 경험해본 적이 없는 세대가 형성한 집단정체성이기도 하다. 일본의 사토리 세대와 한국의 3포 세대를 같은 맥락에서 보는 건 무리가 있다. 하지만 경제 환경이 젊은 세대의 정신세계와 가치관을 경향적으로 지배한다는 점에선 다르지 않다.

 

한국과 일본은 수십년 전과 비교해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뤘지만,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최고의 자살률을 기록하고 있고 일본은 지난 15년간 매년 3만명이 자살했다. 금융파탄, 고용 불안 등 세계화로 사회 체계가 불안정해지며 우울증 환자가 100만 명이 넘고 연간 수만 명 이상이 자살하는 시대. 이렇게 불안한 사회에서 이제껏 살아왔던 삶의 방식과 행복의 의미는 무엇인가?

 

 

 

  행복의 합격 기준에 맞추면서 사는 삶

 

우리에게 중요한 삶의 보람이나 살아가는 의미, 그리고 행복감은 무엇일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인생의 의미는 막연하게나마 행복감과 거의 같은 것으로 연결돼 있다. 특히 돈이 얼마만큼 소유하고 있느냐에 따라서 우리 삶의 행복에 대한 가치의 지향점이 달라진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월수입이 수억 원까지는 아니더라도 일단 먹고사는 데 곤란을 느끼지 않을 정도의 수입이 있기를 바란다. 이 정도면 우리의 삶은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이 행복의 합격 기준이다.

 

그러나 숭고함이나 위대함이라는 높은 선과 비교하면 평범하고 진부하다. 근대 사회의 가치가 개인의 생명과 안정을 중시하고 일상생활을 소중히 하는 데 있다면, 최근 수십 년 사이에 국민 대다수가 그런 가치를 공통적으로 향유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익부 빈익빈 현상은 여전하며 80%의 국민은 자신들의 삶이 행복하지 않다고 절망한다.

 

재일 한국인 강상중 교수는 행복에 합격 기준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행복은 원래 정의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는 좋은 상태와 나쁜 상태의 차이가 없어지고 주변에서 비교 대상을 찾기 어려워지면 어떤 의미에서는 행복이 어떤 상태를 가리키는 것인지 불확실해지기도 한다고 말한다. 자신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행복이 어떤 내용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주관적인 기준을 공유하고 그것을 행복이라고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행복'이라는 이름만 붙여진 인생의 정형화된 틀에 맞추면서 삶을 살게 된다.

 

또 하나의 불행은 행복의 합격 기준이 굉장히 높다는 것이다. 저성장이 지속되는 사회에서 부의 수준이 어느 정도 충족되고 인생을 보낸다는 것은 평범하지 않다. 중산층의 계단에서 탈락된 사람들에게는 이 정도 인생은 상당히 높은 수준의 삶이다. 기본적일 수도 있는 행복에도 매달리지 못하고 탈락하는 사람들. 그들이 바로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백만 명 이상의 우울증 환자들이다. 들은 인생의 계단에서 스스로 탈락시키고 마는 자살자로 전락한다.

 

 

 

 잃어버린 행복의 의미를 되살리는 방법

 

강 교수는 어두운 현실 속에서도 진정한 의미가 상실된 행복이란 단어를 다시 한 번 재생시키려고 시도한다. 그의 어둡고 불행한 삶을 생각해본다면 진정한 의미의 행복을 탐색하려는 용기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그 역시 개인적으로 큰 아픔을 겪었다. 사랑하는 아들을 잃고 일본 대지진의 참혹한 현장도 경험했다.

 

불행하게도 젊은 시절, 강 교수가 체험한 뇌의 증상은 아들에게도 되물림되었다. 아들은 자신의 출생을 저주했다. 자신의 파멸과 세계의 파멸을 함께 바랐다. “왜 태어난 것인가? 왜 살아야만 하는가? 인생의 의미는 있는가?”라는 질문에 사로잡혔고, 아버지에게도 수차례 같은 질문을 던졌다. 가까스로 세계, 그리고 자신과 화해하는 모습을 보이던 아들은 끝내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그리고 얼마 뒤 동일본 대지진에 의해 2만명 가까운 생명이 사라졌고, 원전사고까지 이어졌다. 이토록 “납을 삼키는 듯한 고통과 슬픔”을 겪으면서도 강 교수는 왜 우리에게 살아야 하는 이유는 강조하는 것일까?

 

삶의 해답을 구하기 위해 강 교수는 전작 <고민하는 삶>과 같이 다시 한번 일본의 ‘국민작가’ 나쓰메 소세키(1867~1916)를 경유한다. 일본이 조선을 강제 병합하고 본격적으로 제국주의의 야욕을 드러낸 1905년, 나쓰메는 “일본은 멸망한다”고 말했다. 구미 열강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 시작했다는 자신감에 들뜬 당시 일본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비관적 발언이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40년 뒤, 일본은 실제로 한 차례 망했다. 강 교수가 나쓰메를 통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정직한 비관론’이다.

 

 

“‘자기를 찾아라’라고 외치며 우리를 부추기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바로 자본주의입니다. 이 빈틈없는 시스템은 ‘상품이 되는 것’을 찾아내 이용하는 데 뛰어납니다. 특히 ‘불안’의 냄새가 나는 것을 이용하는 데 무척 뛰어납니다.” (p106)

 

 

자의식의 과잉은 고뇌를 낳기 때문에 ‘자기 찾기’가 아니라 ‘자기 잊기’를 통해 인생의 답을 구하라고 조언한다. 소세키는 “자기를 잊는 것보다 마음 편한 것이 없고 무아지경보다 기쁜 것이 없다”면서 ‘자기 찾기’와 거리를 뒀다. 행복의 파랑새를 쫓으려는 ‘자기 찾기’를 넘어 ‘자기 거리’를 둠으로써 자신의 삶을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 수 있다. 강 교수는 여기서 미국의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의 ‘거듭나기(Twice Born)’를 강조한다. ‘건전한 마음’으로 고통의 일생을 끝내는 ‘한 번 태어나는 형(Once Born)’보다 병든 영혼으로 두 번째 삶을 다시 사는 ‘거듭나기’의 인생이 더 중요하다. ‘자기 찾기’에 몰입한 사람들은 그동안 내내 반성 없이 ‘한 번 태어나는 형’으로 만족하면서 살아왔다. 그런 삶은 배후에 있는 문제의 뿌리가 깊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게 되고 마음의 병에 시달리게 된다.

 

 

 

 ♣ 행복의 '파랑새'는 없다

 

행복은 애초에 구할 수도 없고 구한다고 손에 넣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메테를링크의 동화 속에서 주인공 치르치르와 미치르가 찾으려고 하는 행복의 ‘파랑새’는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 인생은 바로 그 인생에서 나오는 물음에 하나하나 응답해가는 것이고, 행복이라는 것은 그것에 다 답했을 때의 결과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즉 행복을 손에 넣기 위해 뭔가 한다는 생각 자체가 처음부터 성립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강 교수의 행복론이 애초부터 노력해도 행복한 삶을 살기가 어렵다는 허무주의적 입장을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행복을 위해 좋은 미래를 추구하기보다 좋은 과거를 축적해가는 마음으로 살아가라고 말한다. 살아가는 데 가장 중요한 가치는 인생을 대하는 ‘태도’에 있다. 두려워할 필요도 없고 기가 죽을 필요도 없이 있는 그대로의 자신으로 괜찮다는 삶의 태도가 필요하다.

 

우리 삶이 특별해야 할 이유가 없다. 지금 이대로 숨 쉬며 살고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삶이다. 자세히 성찰해야 행복하다. 오래 보아야 우리의 삶이 사랑스럽다는 걸 느낄 수 있다. 당신도 그렇다. 그래서 우리는 살아가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살아야 하는 궁극적인 이유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버지와 함께한 마지막 날들
필립 톨레다노 지음, 최세희 옮김 / 저공비행 / 2013년 3월
평점 :
품절


「바쁜 사람들도 / 굳센 사람들도 / 바람과 같던 사람들도 / 집에 돌아오면 아버지가 된다. / 어린 것들을 위하여 / 난로에 불을 피우고 / 그네에 작은 못을 박는 아버지가 된다. / 저녁 바람에 문을 닫고 / 낙엽을 줍는 아버지가 된다. (중략) 아버지의 눈에는 눈물이 보이지 않으나 / 아버지가 마시는 술에는 항상 / 보이지 않는 눈물이 절반이다. / 아버지는 가장 외로운 사람이다.」 (김현승의 <아버지의 마음> 중에서)

2006년 9월 4일. 사진작가 필립 톨레다노는 사랑하는 어머니를 잃었다. 설상가상으로 아흔이 넘은 아버지가 치매에 걸린 상태였다. ‘네 엄마는 어딨냐’고 끝도 없이 묻는 아버지를 모시는 것은 힘든 시간이었다. 1년여가 지난 후 저자는 아버지의 사진을 찍고 아버지와의 일상을 글로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웹사이트를 만들어 아버지와의 일상을 사진 에세이 형식으로 올렸다.


과거 영화에 출연할 정도로 멋진 외모의 소유자에다 건장한 체격의 아버지는 엄마를 애타게 찾는 아이가 되었다. 아이가 된 아버지는 세상을 떠난 어머니를 찾고 있었다. 아들은 어머니가 파리에 갔다는 식으로 둘러대지만 아버지는 잊을 때만 되면 계속 묻는다. 아들 입장에서는 짜증날 법한데 똑같은 말로 대답한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가 집요하게 똑같은 질문을 하게 되면 묵묵히 답변해주는 아버지처럼.

《집안 곳곳에서 이런 글귀들이 적힌 메모를 볼 수 있다. / 당신의 마음속을 설핏 보여주는 증거이자, 내게 숨기려 하는 불안의 흔적들. / 다들 어디 간 걸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 얼마나 혼돈스러우셨으면...》

하지만 아버지는 치매에 의한 망각 때문에 물어보는 건 아닐 것이다. 아버지도 사랑하는 존재의 상실을 느끼기 시작했다. 상실 뒤에 밀려오는 불안과 외로움의 파도는 연역하고 늙은 아버지가 감당하기에는 힘들었다. 그래도 아버지는 아들 앞에서 강인한 모습을 남기고 싶어했다. 불안한 마음을 가족 앞에서 표현하지 않으려는 아버지 특유의 고집은 여전하다. 아버지는 눈물도 말라 가슴으로 혼자 속으로 울고 있었다.


몸과 마음이 위태위태한 아버지가 얼마 남지 않은 하루하루를 연명할 수 있었던 것은 아직 사그라지지 않은 의욕과 유머 넘치는 기질 그리고 항상 자신 곁에 있는 아들이다. 한창 젊었을 때 아버지는 오페라를 듣고 그림과 조각에 능한 예술가였다. 늙은 아버지는 여전히 예술을 한다. 스케치를 하지 못하지만 풍경 감상 뒤에 그림을 구상하는 시간은 아버지에게는 안락한 시간이다. 구상하기 전에 아버지는 멋진 노을 풍경을 감상한다. 아버지는 노을 풍경으로 연작을 그리고 싶다고 밝혔다. 정정한 시절이었다면 풍경화 그리는 것쯤은 아버지에게는 식은 죽 먹기일 텐데. 세월의 노화가 야속하기만 하다.


세상에는 다양한 아버지상이 존재한다지만, 대부분의 아버지들은 늘 자식들을 마음속에 품고, 정말 열심히 살아왔고, 지금도 살고 계신다. 돈이 많든 적든, 몸이 건강하든 역하든 온전히 자신만을 위한 삶을 사는 아버지는 흔치 않다. 어깨를 짓누르는 삶의 수고를 기꺼이 견뎌내는 세상의 아버지들은 그래서 누구나 존경받기에 충분하다. 아내, 아이들 위해 척추처럼 서야 하는 삶, 때론 강인한 나무처럼 때론 들풀처럼 사셨던 서럽고 강하고 두려운 이름이 아버지다.

아버지는 강하다. 다 큰 자식 앞에서도 강한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한다. 아침마다 맨손체조를 하고 속옷 바람으로 윗몸 일으키기도 한다. 자신만의 건강 보양식이라고 할 수 있는 날계란 넣은 오렌지주스를 마신다.


《우리 아버지는 정말 재미있는 분이다. / 저 작은 쿠키들을 아버지 가슴에 올려놓았더니 이러시는 거다. / “내 찌찌 봐라!” / 누군들 웃지 않고 배길까?》

아버지는 젊었을 때보다 더 웃음이 많아졌다. 어쩌면 당신 얼굴에 비쳤을 죽음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을 보여주기 싫어서 웃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장난기 발동하면서 활짝 웃는 아버지가 좋다. 웃음은 건강의 보약이라던데 아버지에게는 정력제다. 많이 웃으면 웃을수록 생명의 힘이 다시 샘솟는다.

죽음을 가슴에 새긴 여생을 산다는 건 너무나 우울하고 힘들다. 그러나 오히려 카메라 렌즈로 바라본 아버지의 모습은 너무나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밤새 안녕한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깊이 감사한 마음이 느껴진다. 가족과의 일상적인 시간도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아들은 아버지의 모습을 작가는 사진에 담았다.


아버지란 단어를 들으면 미안함이 생긴다. 어릴 적, 부족함이 없이 자란 것은 아버지의 피와 땀이 있는 노력이고, 그 노력은 자식을 위한 마음이고, 그 누구에게도 말 못할 사연들이 모여 있었다. 세상을 살다보니 느껴지는 아버지의 마음이다. 어머니의 모성애는 그리움이 있지만, 아버지의 부성애는 미안함이 있다. 어린 나이에 보이지 못한 아버지의 삶이 나이가 들어서 알게 된다.

저자는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눈물을 훔칠 때도 있었지만 평소에는 그냥 지나칠 삶의 소소한 순간들이 너무나 소중했고 그 순간들마다 가슴 깊이 감사했다. 마지막을 생각하니 비로소 그 삶의 소중한 빛나는 순간들이 보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죽음은 모든 삶의 순간과 가치를 재정렬하고 바로 서게 했다. 가장 큰 가르침은 말과 행동을 넘어 삶과 죽음으로 가르친다고 했던가. 아버지의 삶과 죽음으로 전하신 가르침은 작가뿐만 아니라 이 책을 읽은 나 역시 남은 삶의 가장 큰 지표가 됐다. 오늘이 마지막이라면, 내일 세상을 떠난다면, 오늘을 어떻게 살 것인가….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사랑한다고 고백하고 아버지를 꼭 안아주었던 그때 그 마음으로 오늘을 살아가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돈키호테
미겔 데 세르반테스 지음, 박철 옮김 / 시공사 / 2004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1001-16] 돈키호테

 

 

 

 

 

 

 

 

 

“운명이 우리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좋은 길로 인도하는구나. 저기를 보아라. 산초 판사야. 서른 명이 넘는 거인들이 있지 않느냐. 나는 저놈들과 싸워 모두 없앨 생각이다. 전리품으로 슬슬 재물도 얻을 것 같구나. 이것은 선한 싸움이다. 이 땅에서 악의 씰르 뽑아버리는 것은 하나님을 극진히 섬기는 일이기도 하다.” (99쪽)

 

 

이 말을 마친 돈키호테는 창을 곧추들고 애마 로시난테와 함께 적진을 향하다 거대한 풍차에 부딪혀 나가떨어진다. 세르반테스의 소설 《돈키호테》의 대표적 장면이다.

 

때로 요란한 장광사설부터 행간 곳곳에 숨어 접전을 벌이는 유머와 냉소에 이르기까지, 기사 무용담을 변주하며 예술과 사회, 꿈 혹은 광기에 대한 속설과 날선 통찰을 쏟아내는 세르반테스의 입담이 워낙 풍부하고 맛깔스럽다. 특히 그 걸출한 입담을, 크고 작은 대결과 선택의 경험이 좀 쌓인 이후에 다시 만나는 감회는 더욱 남다르다. 어려서 처음 접했던 돈키호테, 다수는 이해 못할 꿈을 노자 삼아 좌충우돌하며 심지어 풍차와도 대결하던 중년 사내는 아무래도 좀 우스꽝스럽지 않았던가 말이다.

 

스페인 시골 마을 라 만차에 살고 있는 알론소 키하노라는 노신사. 그는 밤낮 기사도 이야기에 몰두하다가 정신이상을 일으켜 스스로 이야기의 주인공이 된다. 그는 자기 이름을 ‘돈키호테’라고 고친 뒤 이 세상의 부정을 바로잡고 학대받는 자들을 돕기 위한 편력에 나선다. 중세 기사도에 매료된 돈키호테는 세상의 부정과 맞서 싸우기 위해 모험에 나선다. 그는 풍차를 거인으로 생각하고, 양떼를 교전 중인 군대로 생각하며, 포도주가 든 가죽 주머니를 상대로 격투를 벌이기도 한다. 가는 곳마다 미치광이 취급을 당하지만 그의 용기와 고귀한 꿈은 꺾이지 않는다. 산초 판사라는 농민을 종자로 거느린 돈키호테는 모든 것을 기사도 이야기로 해석하고 그 이상에 따라 살아가려 한다. 그러나 산초는 주인과는 반대로 어떤 경우에도 현실과의 타협을 잊지 않으며, 게으르지만 주인에게 충실한 종자다. 돈키호테는 가는 곳마다 현실세계와 충돌하며 비통한 실패와 패배를 맛본다. 이러한 가혹한 패배를 겪어도 그의 용기와 고귀한 뜻은 조금도 꺾이지 않는다.

 

우리는 흔히 좌충우돌식 인간형을 두고 ‘돈키호테‘라고 한다. 물불을 못 가리고 나서지 않아야 할 자리에 나서는 사람을 일컫는다. 그러나 ‘모험적인 방랑 기사’를 다룬 이전의 ‘기사 소설’과는 달리 ‘돈키호테’는 우선 귀족이 아니라 힘없는 자들을 위한 기사도를 보여주고 있다. 이상주의자 돈키호테와 현실주의자 산초에 의해 그려지는 평행선은 바로 우리 인간이 삶 속에서 겪는 끊임없는 투쟁을 상징하고 있다. 돈키호테는 ‘내일’을 신뢰하는 인물이다. 독자들에게는 우리가 패배하면서도 끝내 좌절하지 않고 살아가야 하는 이유를 몸소 보여주고 있다. 그 동안 돈키호테는 억울하게 ‘현실감각이 없는 정신 나간 기사’로 잘못 알려졌던 것이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는 돈키호테가 너무 희화화되어 왔다. 정직한 사람들이 ‘돈키호테적 몽상가’로 취급되는가 하면, 아집과 독선, 한탕주의가 ‘돈키호테적 용기’로 정당화되기 일쑤다.

 

그의 모험 길에 동행할수록 호감보다 연민이 앞설 만큼 엉뚱하다 여겼던 그 모습이, 갈수록 마음 깊이 파고든다. 그 자신의 시대에도 시효 지난 가치 취급을 받는 기사도로 대변되는 정의와 자유, 사랑을 외치는 방랑기사. 무엇이 옳다 그르다 제 기준에 따라 돌진하고, 미친 괴짜 취급을 받아도 자신만의 꿈을 좇는 돈키호테의 여정은, 눈앞의 현실과 다른 이상으로 앓아본 적이 있는 한 그만의 이야기가 아닌 것이다. 돈키호테는 이상에 따른 의무를 다한다. 성패는 중요치 않다. 최선을 다해 앞으로 갈 뿐이다. 그에게 가장 슬픈 것은 실패가 아니라 꿈을 잃고 현실에 안주하는 것이다. 돈과 사회적 성공 등 소위 보편적인 행복이라 설파되는 삶의 궤도나 정치적, 문화적 대세와 다른 선택으로 소심해질 때, 돈키호테는 살가운 동지적 위안을 건넨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노이에자이트 2013-05-17 17: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키아벨리와 돈키호테는 가장 많은 오해를 받은 인물이죠.그만큼 <군주론>과 <돈키호테>를 실제로 읽은 사람이 없다는 거구요.

cyrus 2013-05-17 22:04   좋아요 0 | URL
제가 읽는 책은 1부였어요. 돈키호테가 1, 2부로 구성되어 있다고 아는 사람도 많지 않을거에요.
 

 

 

               

 

로베르트 슈만  「시인의 사랑」제 13곡

'나는 꿈 속에서 울고 있었네' (Ich hab' im Traum geweinet)

 

 

 

 

 

시인의 사랑

 

                                                               진은영

 

 

만일 네가 나의 애인이라면

너는 참 좋을 텐데

 

네가 나의 애인이라면

너를 위해 시를 써줄 텐데

 

너는 집에 도착할 텐데

그리하여 네가 발을 씻고

머리와 발가락으로 차가운 두 벽에 닿은 채 잠이 든다면

젖은 담요를 뒤집어쓰고 잠이 든다면

너의 꿈속으로 사랑에 불타는 중인 드넓은 성채를 보낼 텐데

 

오월의 사과나무꽃 핀 숲, 그 가지들의 겨드랑이를 흔드는 연한 바람을

초콜릿과 박하의 부드러운 망치와 우체통 기차와

처음 본 시골길을 줄 텐데

갓 뜯은 술병과 팔랑거리는 흰 날개와

몸의 영원한 피크닉을

그 모든 순간을, 모든 사물이 담긴 한 줄의 시를 써줄 텐데

 

차 한 잔 마시는 기분으로 일생이 흘러가는 시를 줄 텐데

 

네가 나의 애인이라면 얼마나!

너는 좋을 텐데

그녀 때문에 세상에서 제일 큰 빈집이 된 가슴을

혀 위로 검은 촛농이 떨어지는 밤을

밤의 민들레 홀씨처럼 알 수 없는 곳으로만 날아가는 시들을

네가 쓰지 않아도 좋을 텐데

 

 

 

 

가정법의 세계는 슬프다. 특히 사랑에 대한 가정법은 가장 슬프다. 가정법은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에 대한 상상이며 위로이며 서글픈 자위다. 어떤 것으로 해결되지 않는 실패의 흔적을 상상으로 메우려는 슬픔에 찬 몸부림들. 가정법은 그래서 슬프다. 이루어지지 않은 현재를 계속 노래하고 있기 때문에.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노이에자이트 2013-05-16 0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랑이 식어서 상대가 웬수처럼 보일 때의 가정법도 있죠.차라리 당신을 만나지 않았다면...

cyrus 2013-05-16 21:56   좋아요 0 | URL
ㅎㅎㅎ 제가 진정한 사랑을 해보지 않아서 사랑 후의 가정법을 생각하지 못했네요.
 

 

 

♣ "생각해보겠습니다"와 '해보겠습니다"의 차이

 

나는 전공이 행정학과다. 그러나 이번 학기에 듣는 수업은 전공 강의만 듣지 않는다. 올해가 졸업반이라서 마지막 대학생활을 정말로 공부하고 싶은 타과 전공과목 강의를 듣기로 결심했다. 그 중 듣는 타과 전공 중에 회화과 3학년 전공필수인 현대미술론을 공부하고 있다. 강의를 듣는 학생은 총 40여명. 그 중에 나를 포함한 남학생은 3명이다. 나머지 2명의 남학생은 회화과 소속이다. 나머지 여학생들 중에도 타과 전공이 있다. 실내디자인학과 소속 1, 생명공학과 소속 1명이다. 과 특성상 여초 현상이 있는데다 타과 학생이 듣는 경우가 드물어서 그 수업에서 유독 눈에 띈다. ‘현대미술론을 가르치는 교수님 또한 여자인데 그렇다고 내가 외모가 출중해서 교수님 눈에 띈다는 의미는 아니다. 우리 학교 내에서 행정대학 소속 학생이 예체능 계열, 그것도 회화과 전공 강의를 듣는 학생은 내가 처음이자 마지막일 것이다. 교수님 입장에서도 나 같은 학생을 처음 봤을 것이다. ‘행정대학이라는 소속의 분류가 이방인이나 다름없는 내가 교수님의 눈에 확 들어올 수 있는 일종의 차별화된 이미지로 굳어져서 좋은 점은 있지만 단점도 있다.

 

가끔 교수님은 내가 행정대학 소속 학생이라서 그런지 미술적 기본지식 수준이 회화과 학생들보다 낮게 볼 때가 있다. 이래봬도 작년 학기에도 같은 회화과 전공과목이며 동일 교수님이 가르치던 서양미술사를 들은 적이 있었으며 그 수업을 듣기 전부터 나름 미술사의 기본적인 흐름을 꿰뚫은 편이다. 잘난 사족 하나 덧붙이지자면 서양미술사수업은 많은 시간 투자하지 않고 공부해서 A+학점을 받기도 했다. 내 성격은 상대방에게 드러내지 못한 또 다른 나의 재능을 은연중에 숨기면서 점층적으로 드러내는 편이다. 내 손으로 직접 양파껍질 하나하나 벗기듯이 말이다. 그럴 때 상대방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지는 걸 느끼는 순간, 기분이 좋다. 하지만 너무 드러나지 않게 되면 이런 오해를 꾹 참고 감수해야 한다. 그래도 기본부터 내실을 다진다는 마음으로 임하여 공부를 하게 되면 미술에 대한 생각과 시야를 확장할 수 있어서 좋다. 예전에 책으로만 읽던 공부와는 학문을 습득하는 과정과 그 기분이 차이가 있다. 회화과 수업을 가르치는 교수님이 화가로 활동하시는 분이라서 최신 현대미술의 트렌드(Trend)를 귀동냥으로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교수님의 학습법이 좋은 또 다른 이유는 과제를 많이 내면서도 현대회화의 흐름에 맞는 주제를 낸다. ‘고전주의 양식을 A4 용지 5장 이상 쓰시오.’라든가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회화에 대해서 논하시오,’와 같은 무리하게 미술론을 작성하라는 식의 고리타분한 과제를 제출하지 않는다. 특정 영화나 미술 관련 다큐 영상을 보여주고 감상문을 쓰라거나 사물을 바라보는 나만의 관점 등을 쓰는 과제를 주로 낸다. ‘현대회화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글로 표현하는 방식을 선호한다. 붓과 팔레트를 쥐는데 익숙한 회화과 학생들은 글쓰기를 어려워하는 편이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현대미술론담당 교수님이 과제 어렵기로 유명하다. 갑작스럽게 교수님이 과제 하나를 제출할 때마다 회화과 학생들이 울상과 탄식을 연발할 때 나는 마음속으로 쾌재를 부른다.

 

최근에 또 교수님이 과제를 공시했는데 예전에 낸 것보다 한층 더 창의적인 형식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현대미술의 방식에 근거해서 자신만의 작품을 구상해서 간단하게 포트폴리오 형식으로 소개하는 것이다. 교수님은 또 이번 과제에 학생들의 발표까지 요구하셨다. 회화과 학생들은 졸업하기 전에 자신만의 작품을 제작, 완성해야 한다. 제작하면서 자신이 작업하고 있는 작품을 전공교수에게 설명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작업 과정을 담은 포트폴리오를 만들어야 한다. 쉽게 말하면 일종의 작품 노트라고 보면 될 것이다.

 

처음에 교수님이 그 과제를 언급했을 때는 비 회화과 학생인 내가 불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취업하기 위해 만든다는 취업 포트폴리오 하나라도 만들어 본 적이 없는 내가 어떻게 작품 포트폴리오를 만들 수 있는가? 이번에는 붓을 한 번도 쥐어 본 적이 없는 내가 불리하게 된 셈이다. 잠깐 생각에 빠진 사이에 갑자기 교수님이 나를 향해 말을 건다.

 

“cyrus은 비 회화과 학생이라서 이번 과제가 생소하겠지만 너한테도 미술을 보는 시야를 넓히는데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하는데... 혹시 발표해 볼 생각은 있니?”

 

교수님이 말을 걸기 전까지 발표할 생각이 전혀 없어서 짧게 생각해보겠습니다.”라고 유보적인 대답을 했다. 그러자 교수님의 말. 그래, cyrus가 해보겠단다. 난 네가 발표할 줄 알았어.”

 

생각해보겠습니다.”라는 말을 교수님은 발표를 하겠다는 의미의 해보겠습니다.”라고 잘못 듣고 만 것이다. 본의 아니게 과제에 대한 부담을 떠안고 말았다. 과제 공지한 날 이틀 뒤에 수업이 있어서 작품을 구상하고 포트폴리오를 만드는 데 주어진 시간은 거의 하루뿐이었다. 다행히 그 하루가 강의 한 개도 없는 공강 요일이라서 강의 시간에 구애받지 않게 자유롭게 생각할 수 있었다. , 아쉬운 점이 있다면 편안하게 집에서 휴식을 취하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의외로 고민은 쉽게 풀렸다. 내가 미술 지식이 정말 문외한이었다면 하루 이상 구상하고 만드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특별히 좋아하고 관심이 있는 화가 한 명을 염두하고 있다는 것도 과제를 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 마그리트를 위한 오마주(Hommage)

 

 

 

 

cyrus  「마그리트의 달걀」 2013년, 포토샵으로 제작

 

 

벨기에의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의 회화 기법에 빌려서 '마그리트의 달걀'이라는 제목의 그림을 만들었다. 이 하나의 그림을 만드는 데 구상에 공들인 시간이 많았을 뿐 제작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10분 정도 밖에 안 들었다. 마그리트는 일상적인 관계의 사물을 추방하여 이상한 관계에 두는 일탈의 사고를 그림으로 표현하는 것이 그 특징이다. 이러한 기법을 '데페이즈망' (dépaysement)이라고 한다.

 

 

 

 

 

 

 

 

 

 

 

 

 

 

 

 

 

 

 

 

 

 

마그리트의 회화에서 사물은 일반의 상식과 기대를 저버리는 방식으로 관객에게 등장한다. 전혀 어울리지 않는 두 대상이 결합되어 나타나거나, 사물이 그 고유의 성질을 상실한 채 묘사된다. 흔히 보는 일상적 사물의 크기를 변형하여 특유의 초현실주의적 효과가 나타난다. 본질적인 사물의 의미가 상실되어도 그의 그림은 아름다우면서도 매혹적이다. 낯설게 느껴지는 아름다움이다. 

 

 

 

 

 

르네 마그리트  「피레네의 성」 1959년

 

 

내가 만든 그림을 보면 벌써 눈치 챘겠지만 그림의 배경은 마그리트의 유명한 그림 「피레네의 성」에서 인용했다. 혹자는 이러한 방식을 패러디(parody), 짖궃게 말하면 표절이라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패러디가 아니라 오마주(hommage)에 가깝다고 보면 된다. 패러디는 원전을 모방하면서도 그것이 안고 있는 의미의 문제점을 폭로하고 희화화하는 데 중점을 둔다면 오마주는 원작의 존경과 경의에 대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hommage는 프랑스 어로 '존경' '감사', '경의'라는 뜻이다)

 

 

 

♣ 깨지지 일부 직전 달걀의 의미는?

 

 

 

 

 

 

 

 

 

 

 

 

 

 

 

 

 

 

 

 

 

 

그렇다면 하늘 위에 둥둥 떠다니는 커다란 달걀은 무슨 의미일까? 자세히 보면 달걀에 깨진 흔적이 있다. 이제 막 부화할 조짐이 보이는 상태다. 깨지기 직전 상태의 달걀을 보자마자 '아프락사스'(Abraxas)가 연상되었다면 정말 대단한 미적 감성의 소유자라고 칭찬하고 싶다. 그림 속 달걀은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에 나오는 아프락사스를 의미한다.

 

 

 

 

 

 

르네 마그리트  「천리안(투시)」 (1936년)

 

“새는 알에서 빠져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해야만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

 

 

사실 알의 상징은 마그리트의 또 다른 작품들에도 무수히 등장한다. 그 중 아프락사스의 의미를 가장 잘 나타낸 그림이「천리안」이다. 새가 태어나 위해 알을 깨고 나오는 것처럼 낡은 구세계(알)를 극복하고 새로운 세계(아프락사스)로 향해야 한다. 우리는 알의 상태, 즉 자고 있다. 가능성으로서의 존재이며 자고 있는 상태인 알(인간)에게 깨어 있는 결과로서의 새(자유, 생명, 목표)가 되어야 한다. 새가 알을 깨는 고통을 느끼지 않고서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없듯, 사람 역시 어떠한 일을 성취하기 위해 그만큼의 고통을 느끼고 인내해야 한다. 새는 아프라삭스라는 신을 향해 날아가듯 사람 역시 저마다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비상하고 있다. 저 커다란 알은 결국 나를 포함한 우리 모두의 모습이기도 하다.

 

 

 

♣ 그림을 그린다고 해서 미술이 되는 건 아니다

 

 

 

 

 

 

 

 

 

 

 

 

 

 

 

 

 

 

"뭐야, 이것도 그림이야?"라고 반문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과제로 한 번 만들어 본 장난스러운 합성사진으로 보일 수도 있겠다. '그림'이라고 생각하지 않다고 좋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오늘의 현대미술은 붓을 잡고 대상을 똑같이 재현해서 그린 그림을 환영하지 않는다. 고전적인 재현의 그림은 피카소가 괴상한 형태의 인물을 그리기 시작하면서부터 쇠퇴의 길을 걷기 시작했고 마르셀 뒤샹이 전시회에 소변기를 출품한 그 순간부터 종말을 고했다고 볼 수 있다.

 

 

 

 

 

 

마르셀 뒤샹  「샘」 1917년

 

 

1917년 어느날 한 하드웨어 상점에서 구입한 변기에 리처드 머트(R.Mutt)라는 이름을 서명한 뒤 뉴욕 앙데팡당전에 출품한 후 심사위원들로부터 배척당한 이 작품은 현대미술의 향방을 결정한 미술사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 작품이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에게 있어서 그의 변기 작품 ‘샘’은 여전히 현대미술이 얼마나 기괴하며 현학적인 것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물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반 고흐나 피카소의 작품을 귀히 여기는 것은 천재적 예술가의 손을 거쳐서 완성된 유일무일한 것이기 때문인데 이 변기작품 ‘샘’처럼 기계로 만들어진 대량 생산품인 변기를 선택한 후 예술가가 ‘이것도 예술이다’라고 선언한다면 과연 그것을 예술로 인정할 수 있는 것일까?

그러나 작품의 오리지널리티에 반기를 든 뒤샹에게 있어서 직접 자신의 손으로 만들었느냐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우리 주위에 존재하는 평범한 생활용품을 선택하여 전시함으로써 물건의 실용성은 사라지고 그저 ‘사물’로 돌아가는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예술가의 선택행위 즉, 아이디어인 것이다. 눈에 보이는 사물이나 풍경을 그림으로 그리는 수공적 기술의 재현행위가 아닌 선택한다는 정신적 행위가 예술가의 본질이라는 그의 이론은 기존미술에 도전하는 개념미술의 기초를 이루었다.

 

사람들은 현대미술이 어렵다고 생각하고 전시장의 작품들을 보며 이것도 작품인가 의아해한다. 그러나 우리 주위의 일상적 사물을 상식의 눈으로 바라보면 그저 의자, 병, 조그만 달걀 등등일 뿐이지만 소변기조차도 일상적 사물로서의 인식을 단절하고 순수한 형태적 의미만으로 바라본다면 대칭적이며, 부드러운 곡선을 가졌고, 우아한 기하학적 오브제로 새로운 모습으로 발견하게 된다. 비루한 내 합성사진 작품도 그렇다. 고정관념의 의미로 구분하려는 사고를 조금만 벗어난다면 또 하나의 미술로 볼 수 있다. 이렇게 이해한다면 현대미술은 어렵지만 않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