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키호테
미겔 데 세르반테스 지음, 박철 옮김 / 시공사 / 2004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1001-16] 돈키호테

 

 

 

 

 

 

 

 

 

“운명이 우리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좋은 길로 인도하는구나. 저기를 보아라. 산초 판사야. 서른 명이 넘는 거인들이 있지 않느냐. 나는 저놈들과 싸워 모두 없앨 생각이다. 전리품으로 슬슬 재물도 얻을 것 같구나. 이것은 선한 싸움이다. 이 땅에서 악의 씰르 뽑아버리는 것은 하나님을 극진히 섬기는 일이기도 하다.” (99쪽)

 

 

이 말을 마친 돈키호테는 창을 곧추들고 애마 로시난테와 함께 적진을 향하다 거대한 풍차에 부딪혀 나가떨어진다. 세르반테스의 소설 《돈키호테》의 대표적 장면이다.

 

때로 요란한 장광사설부터 행간 곳곳에 숨어 접전을 벌이는 유머와 냉소에 이르기까지, 기사 무용담을 변주하며 예술과 사회, 꿈 혹은 광기에 대한 속설과 날선 통찰을 쏟아내는 세르반테스의 입담이 워낙 풍부하고 맛깔스럽다. 특히 그 걸출한 입담을, 크고 작은 대결과 선택의 경험이 좀 쌓인 이후에 다시 만나는 감회는 더욱 남다르다. 어려서 처음 접했던 돈키호테, 다수는 이해 못할 꿈을 노자 삼아 좌충우돌하며 심지어 풍차와도 대결하던 중년 사내는 아무래도 좀 우스꽝스럽지 않았던가 말이다.

 

스페인 시골 마을 라 만차에 살고 있는 알론소 키하노라는 노신사. 그는 밤낮 기사도 이야기에 몰두하다가 정신이상을 일으켜 스스로 이야기의 주인공이 된다. 그는 자기 이름을 ‘돈키호테’라고 고친 뒤 이 세상의 부정을 바로잡고 학대받는 자들을 돕기 위한 편력에 나선다. 중세 기사도에 매료된 돈키호테는 세상의 부정과 맞서 싸우기 위해 모험에 나선다. 그는 풍차를 거인으로 생각하고, 양떼를 교전 중인 군대로 생각하며, 포도주가 든 가죽 주머니를 상대로 격투를 벌이기도 한다. 가는 곳마다 미치광이 취급을 당하지만 그의 용기와 고귀한 꿈은 꺾이지 않는다. 산초 판사라는 농민을 종자로 거느린 돈키호테는 모든 것을 기사도 이야기로 해석하고 그 이상에 따라 살아가려 한다. 그러나 산초는 주인과는 반대로 어떤 경우에도 현실과의 타협을 잊지 않으며, 게으르지만 주인에게 충실한 종자다. 돈키호테는 가는 곳마다 현실세계와 충돌하며 비통한 실패와 패배를 맛본다. 이러한 가혹한 패배를 겪어도 그의 용기와 고귀한 뜻은 조금도 꺾이지 않는다.

 

우리는 흔히 좌충우돌식 인간형을 두고 ‘돈키호테‘라고 한다. 물불을 못 가리고 나서지 않아야 할 자리에 나서는 사람을 일컫는다. 그러나 ‘모험적인 방랑 기사’를 다룬 이전의 ‘기사 소설’과는 달리 ‘돈키호테’는 우선 귀족이 아니라 힘없는 자들을 위한 기사도를 보여주고 있다. 이상주의자 돈키호테와 현실주의자 산초에 의해 그려지는 평행선은 바로 우리 인간이 삶 속에서 겪는 끊임없는 투쟁을 상징하고 있다. 돈키호테는 ‘내일’을 신뢰하는 인물이다. 독자들에게는 우리가 패배하면서도 끝내 좌절하지 않고 살아가야 하는 이유를 몸소 보여주고 있다. 그 동안 돈키호테는 억울하게 ‘현실감각이 없는 정신 나간 기사’로 잘못 알려졌던 것이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는 돈키호테가 너무 희화화되어 왔다. 정직한 사람들이 ‘돈키호테적 몽상가’로 취급되는가 하면, 아집과 독선, 한탕주의가 ‘돈키호테적 용기’로 정당화되기 일쑤다.

 

그의 모험 길에 동행할수록 호감보다 연민이 앞설 만큼 엉뚱하다 여겼던 그 모습이, 갈수록 마음 깊이 파고든다. 그 자신의 시대에도 시효 지난 가치 취급을 받는 기사도로 대변되는 정의와 자유, 사랑을 외치는 방랑기사. 무엇이 옳다 그르다 제 기준에 따라 돌진하고, 미친 괴짜 취급을 받아도 자신만의 꿈을 좇는 돈키호테의 여정은, 눈앞의 현실과 다른 이상으로 앓아본 적이 있는 한 그만의 이야기가 아닌 것이다. 돈키호테는 이상에 따른 의무를 다한다. 성패는 중요치 않다. 최선을 다해 앞으로 갈 뿐이다. 그에게 가장 슬픈 것은 실패가 아니라 꿈을 잃고 현실에 안주하는 것이다. 돈과 사회적 성공 등 소위 보편적인 행복이라 설파되는 삶의 궤도나 정치적, 문화적 대세와 다른 선택으로 소심해질 때, 돈키호테는 살가운 동지적 위안을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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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13-05-17 17: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키아벨리와 돈키호테는 가장 많은 오해를 받은 인물이죠.그만큼 <군주론>과 <돈키호테>를 실제로 읽은 사람이 없다는 거구요.

cyrus 2013-05-17 22:04   좋아요 0 | URL
제가 읽는 책은 1부였어요. 돈키호테가 1, 2부로 구성되어 있다고 아는 사람도 많지 않을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