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마음은 감정이라는 액체에 사려분별력이 떠다니는 용기와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까 머리로 생각하는 것과 가슴으로 느끼는 것이 동시에 작용하는 영혼의 샘이랄까. ‘센스(Sense)’라는 말이 그렇다. 이 말이 형용사로 바뀌면 가슴으로 느끼는 ‘민감한(sensitive)’이라는 뜻과 머리로 생각하는 ‘영민한(sensible)’이라는 의미로 확연히 구분된다. 우리 마음은 이에 더하여 영혼(spirit)까지 담고 있는 듯하다.

 

칸트에 따르면 진리의 인식은 감성과 오성(悟性, 사고능력)의 결합으로 이루어진다. 우리 주변의 다양하고 무질서한 감각자료(sense data)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 ‘질료(質料)’를 내 주관기능인 ‘형식’이 나 자신이 이해할 수 있도록 정리하여 구성함으로써 비로소 그 대상이 ‘인식’되고 ‘존재’하게 된다. 순수이성을 선험적 오성이라 부르며 이 오성에 의해 우리는 밖에 있는 사물을 인식할 수 있다고 말한다. 데카르트는 생각하므로 존재한다고 했다. 이 명제가 가능하려면 인식이 선행되어야 한다. 우리는 인식하므로 생각이 가능하다. 우리에게 인식하는 능력이 없다면 우리는 사물의 숫자, 양, 인과관계를 설정하거나 현상을 종합하며, 공간이나 시간을 이해할 수도 없을 것이다.

 

칸트와 같이 순수이성의 혜안을 갖지 못한 나도 청결한 마음으로 세상만사를 바라볼 때는 나름대로의 이치랄까, 그런 걸 터득하기도 한다. 마음이 탁해졌을 때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주위가 캄캄하게 느껴질 때는, 고교 2학년 때이던가, 복잡한 고등수학문제를 풀고 이해했을 때의 어둠에서 빛을 본 듯한 경험을 떠올리곤 한다. 아무리 어렵고 복잡한 수식이라도 그 원리를 깨쳤을 때는 그것은 매우 쉬운 보편적인 것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사람들이 공동체를 이루며 살고 있는 사회의 여러 문제들이나 꽤 복잡한 경제문제도 깨끗한 마음의 창에는 굴절되지 않고 올바로 비춰지는 법이다. 이기적 욕망이랄지, 편견이랄지, 증오랄지, 그런 것들이 오물이 되어 마음을 뒤덮을 때는 보편적이지도 못하고, 상식적이지도 못하는 생각과 판단을 하게도 된다.

 

우리 사회에 불신이 만연하는 것은 서로 믿지 못하기 때문인데, 사실은 개개인이 자신도 믿지 못하니 남도 믿지 못하는 게 아닌가 생각되기도 한다. 방송이나 신문에서 무슨 사회문제에 관한 여론조사를 실시하여 정치인, 고위 공직자, 기업인과 종교인 등 사회지도층 인사들을 불신하는 정도가 매우 심하다는 결과를 내놓은 걸 보면서 그들을 지도층으로 선출했거나 묵인한 장삼이사(張三李四)는 그럼 스스로를 정의롭고 정직한 인간으로 치부하는지 의심스럽다. ‘인간의 행위란 결과적으로 이기심과 그로 인한 위선에서 비롯된다’고 17세기 프랑스의 잠언작가 라 로슈푸코가 말한 대로 사람들은 가면을 쓴 채 목소리를 높이며 뭘 갈취코자 가면 뒤의 눈을 두리번거리는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옷가지들은 더러워지면 깨끗이 세탁하여 입는다. 오늘날엔 빨랫감에 대한 방망이질 대신에 그냥 주기적으로 전기세탁기에 집어넣어 세탁한다. 더러운 때가 빠지는 걸 손수 보지 못해서 그런지 지난날보다도 마음의 때를 벗기는 데는 아예 관심이 없는 것 같다. 혼탁하고 불공정한 세상을 좀 더 나은 곳으로 만들어 가기 위해서는 사회 구성원 모두가 마음을 정화하는 빨래방망이에 의한 성찰의 아픔을 스스로 겪어야 한다. 옛날 마을 건너 호젓한 개울가에 앉아 빨랫감을 방망이질하는 아낙들처럼 세파에 시달려 우리 마음에 잔뜩 끼어있는 오물들을 종종 깨끗이 닦아내면 사회가 좀 더 정의롭고 공정해지지 않을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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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노코미스 지역에 사는 아메리칸 인디언 히어와서는 태어나자마자 어머니가 죽은 고아였다. 어머니가 죽고 난 뒤 그는 아버지 손에 자라게 된다. 청년이 될 무렵 어느 날 숲을 거닐고 있을 때 나무가 그를 부르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나무는 그에게 ‘안녕, 히어와서!’라고 인사를 했다. 자연에서 생활하고 자연에서 지혜를 얻는 그는 나무뿐만 아니라 숲속에 사는 동물들과 대화를 할 수 있게 되었으며, 숲속의 동물들은 그를 ‘나의 형제’라고 불렀다. 위의 이야기는 미국의 시인인 롱펠로가 쓴 ‘히어와서의 노래’라는 장편 서사시에 나오는 내용이다.

 

성서에 등장하는 솔로몬은 통일 이스라엘 시대의 왕으로 다윗의 아들이었다. 솔로몬은 하나님께 지혜를 구한 왕이었으며 그의 지혜는 당시의 모든 사람을 능가하는 것이었다. 그의 지혜는 대단하여 자연에 사는 동물들과 대화를 했다는 것이다. 솔로몬 왕이 짐승과 새와 물고기뿐만 아니라 식물, 곤충 등과 대화를 나누었다니, 그의 지혜는 정말 놀라운 것이었다.

 

 

 

 

 

 

 

 

 

 

 

 

 

 

 

 

“아픈 물고기들을 치료하려고 물에다 귀를 대요. 물고기의 말을 듣고 치료해주는 거죠."

 

휴 로프팅의 동화 『돌리틀 선생 항해기』 에 나오는 대사다. 물에다 귀를 대고 물고기들의 말을 들으려는 수의사의 마음을 어떻게 신기한 몽상으로만 생각할 수 있을까.

 

영국에 동물을 좋아하는 존 돌리틀이라는 의학박사가 살고 있었다. 돌리틀 선생은 동물들을 끔찍이 사랑한 나머지 동물들과 말을 주고받을 수 있는, 솔로몬처럼 신통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어느 날 아프리카에서 날아온 제비들로부터 전염병에 걸린 원숭이들이 죽어가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그들을 치료해주려 아프리카로 떠난다. 천신만고 끝에 원숭이 나라에 도착한 돌리틀 선생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원숭이들의 병을 고친다. 돌리틀 선생의 집에는 서커스단에서 탈출한 악어 엘리게이트, 원숭이 치치, 앵무새 폴리네시아, 집오리 대브대브, 새끼돼지 거브거브, 이 밖에도 개, 쥐, 소, 말, 당나귀들이 한 식구가 되어 살아간다.

 

동화 ‘돌리틀 선생 시리즈’는 1920년 출간된 이후 지금까지 사랑을 받아왔고, 아이들은 돌리틀을 실존인물로 믿었다. 매년 1편씩 내놓다가 싫증을 느껴 1927년 ‘달에 간 돌리틀 선생’으로 돌리틀을 달에 보내 사라지게 했다. 그러나 독자들의 요청에 못 이겨 1933년 ‘돌리틀 선생의 귀환’으로 복귀했지만 재미가 예전만 못했다. ‘동화작가’라는 타이틀을 그렇게 싫어해 다른 작품을 여럿 남겼지만 큰 호응을 얻지 못했다. ‘돌리틀’ 하나만으로도 그의 삶은 충분히 행복했다. 돌리틀 선생은 60여 년 뒤에 영화로 재등장한다. 에디 머피가 돌리틀 선생으로 분한, 우리나라에서는 ‘닥터 두리틀’이라는 이름으로.

 

 

 

 

 

 

 

 

 

 

 

 

 

 

 

비록 돌리틀 선생은 실존인물은 아니지만, 동물을 정말 좋아하고 그들의 말을 이해하는 진짜 박사가 있었느니 그가 바로 콘라트 로렌츠다. 콘라트 로렌츠 박사는 오스트리아인으로 동물행동학의 아버지라 불리며 노벨 생리학·의학상을 받은 사람이다. 그는 1973년에 동물행동 분야를 전공하는 사람으로서 최초로 노벨상을 받았으며 또 비교행동학의 창시자이며, 동물행동학과 동물심리학의 세계적 권위자다.

 

그는 또 기러기의 새끼가 알에서 처음 깨어나게 되면 그 때 본 첫 사물이 자신의 어머니로 생각한다는 이른바 ‘각인’(imprinting)이란 용어를 사용했다. 실제로 야외에서 기러기 둥지에 알을 품고 먹이를 먹이고 함께 먹고 자던 사람으로 유명하다. 그의 저서 중 『솔로몬의 반지』라는 것이 있다. 사실 이 책의 제목은 J.R.R. 톨킨의 소설 『반지의 제왕』에서 유래되었다. ‘솔로몬의 반지’는 로렌츠 박사가 기러기 연구를 하면서 그들의 행동을 이해하기 위해 사용한 제목이었다. 자연에서 생활하는 생물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지혜를 얻기 위해 솔로몬의 반지가 필요했다는 것이다. 그의 책에 등장하는 제목인 솔로몬의 반지를 생각하며, 동물과 대화를 할 수 있다니 정말 부러운 능력이다.

 

 

 

 

 

 

 

 

 

 

 

 

 

 

 

그런데 만약에 솔로몬왕, 돌리틀 선생 그리고 로렌츠에게 동물의 목소리는 어떻게 들렸을까? 도통 알 수 없는 울부짖음을 어떻게 이해했을까?

 

그러나 동물은 소리로만 의사소통을 하지 않는다. 우리가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소리뿐만 아니라 시각 신호, 진동, 전기, 접촉, 속임수 등 동물들은 놀랄 만큼 다양한 의사소통 수단을 갖고 있다. 동물들은 짝을 발견하고, 새끼를 보살피고, 경쟁자를 물리치고, 먹이가 있는 곳을 알아내거나 위험을 경고하기 위해 소리를 이용한다. 시각적 신호는 인간과 마찬가지로 동물에게도 자신을 드러내는 믿을 만한 가장 빠른 방법이다.

 

공작새 꼬리의 화려한 부채형 날개나 붉은 사슴 수컷의 우아한 뿔은 단순한 장식용이 아니다. 참새 수컷의 검은 가슴털은 지위의 상징이다. 검은 털이 클수록 계급이 높다. 참새들은 이렇게 해서 암컷이나 먹이를 두고 벌어지는 싸움을 피한다.

 

신체 접촉도 효과적인 의사소통 방법이다. 새끼의 몸을 핥고 단정하게 손질해 주는 것은 새끼를 깨끗하게 해주려는 이유도 있지만, 애정을 표현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동물들이 서로 코를 비비고, 몸을 문지르고, 치장해주고, 쓰다듬는 것은 서로 인사하거나 상대를 안심시키기 위한 것이기도 하고 공격적인 대상을 달래는 방법이기도 하다.

 

의사소통은 생존을 삶으로 바꿔놓는다. 인간의 눈에는 기계적 행동이나 해부학적 구조로만 보이는 동물들의 의사소통 체계는 의외로 역동적이며 신호와 의미도 계속 진화한다. 단지 생존만을 위한 것이라면 그렇게 놀랄 만큼 다양한 종류의 신호는 필요가 없는 것이다.

 

자연계에 존재하는 동물과 식물은 스스로의 언어로 인간과 대화할 수 없다. 이들이 하고자 하는 말을 생태학자인 우리가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풀어서 설명해 주어야 한다. 동물, 식물을 연구하는 사람은 많은 시간을 들에서 혹은 산에서 보낸다. 이들이 연구하며 알고자 하는 것은 동식물들이 우리에게 하고자 하는 그들의 언어를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그림이나 표로 나타내기 위함이다. 자연계의 동식물은 자신의 서식처가 훼손되며 오염돼가는 모습을 우리에게 그들의 언어로 전하고 있다. 결국 우리 행동의 뿌리는 주변의 많은 동물들에게 있으며 그것은 우리가 더 큰 자연의 일부이고 우리는 그들과 공생해야 한다.

 

자연 파괴는 이들의 삶의 터전을 짓밟는 것과 다르지 않다. 동물과 식물이 말 못하는 생물이라고 해서 이들의 존재가치가 위협받아선 안 된다. 모든 생물은 그 종류대로 장구한 세월을 견디며 생존해 왔기 때문이다. 오늘도 이들의 언어를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야외로 조사를 나간다. 썩어져 가는 강물에 살고 있는 물고기가 우리에게 하고 싶은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솔로몬의 반지’를 선물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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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언자 문예 세계 시 선집
칼릴 지브란 지음, 강은교 옮김 / 문예출판사 / 200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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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1년 4월 10일 시인이자 화가인 칼릴 지브란이 뉴욕의 한 병원에서 사망했다. 48세였다. 사인은 간경화와 결핵 초기 증세, 독신으로 살았던 그가 술로 외로움과 육체의 고통을 달래려 했던 것이 원인이었다.

 

그는 레바논 태생이다. 『예언자』에는 그 영향이 짙다. 12살 때 가족과 미국 보스턴으로 이민 갔던 지브란은 이후 귀국과 미국행을 반복하며 아랍과 서구, 이슬람과 기독교, 조국의 고대 예언자의 세계와 현대 물질문명의 이질성을 넘나드는 체험을 한다. 25살 때는 파리로 가 2년 동안 미술 공부를 하며 로댕을 만났다. 그의 유해가 레바논으로 돌아갔을 때, 베이루트 항에는 개항 이래 최대의 인파가 그들의 나라가 낳은 천재를 조문하기 위해 몰려들었다고 한다.

 

기독교와 이슬람교가 미묘한 갈등 속에서 공존하는 땅 레바논에서 자란 난 지브란은 ‘아름다운 영혼의 순례자’로 불리고 있다. 세상을 떠난 지가 반세기를 훨씬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남긴 메시지는 아직도 독자들의 가슴을 찡하게 울린다.

 

니체를 투사하는 분신은 차라투스트라이고, 알무스타파는 지브란의 분신이다. 파리의 그림 유학생 지브란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니체에게 흠뻑 빠져 들었다. 그의 열정에 넘친 해박한 논리는 니체를 정신적 스승으로 만들었다.

 

『예언자』는 배가 출범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배는 잔잔한 포구와 항을 거치면서 사랑, 결혼, 아이들과 같은 가족을 대명제로 삼으며 쓰린 가슴을 치유하며 바다로 항해한다. 알무스타파와 알미트라라는 두 명의 남녀 예언자가 질문하고 대답하는 가운데 사랑, 결혼, 슬픔, 기쁨 등 삶의 진리를 들려준다.

 

알무스타파는 인생의 진리를 깨달은 사람이다. 어느 날 그는 자신이 사는 도시 올펄레즈를 떠나리라 결심한다. 마을사람들은 현자(賢者)를 잃지 않으려 막아서지만, 여자 예언가 알미트라의 생각은 다르다. ‘머무름은 굳어버려서 틀 속에 갇히는 것’임을 아는 까닭이다. 그에게 매달리는 대신, 알미트라는 가르침을 청한다. 알무스타파가 깨달은 ‘태어남과 죽음 사이의 모든 것’에 대해서 말이다.

 

그런 다음, 일상에서의 선행, 인간의 일차적 욕구, 소통과 단절, 책무에 대한 탐사를 계속한다. 희로애락과 거주 공간을 얘기하다 보면 소시민들의 생존철학이 등장하고 일탈로 인한 죄와 벌, 선과 악, 이성과 열정은 가치를 다루는 근간이 된다.

 

지브란이 고통을 수반한 법을 사유하다 보면 자유와 자각, 교육은 필수품이 되고, 어느 순간 소통의 단절에서 오는 대화의 중요성, 잊기 쉬운 우정의 소중함, 시간의 순간성과 영속성, 미추(美醜)의 이분법 등을 관념이 아닌 평상심으로 바라보게 된다.

 

작은 것에 일상의 소중함과 가까운 가족과 친지와 같은 인물에서부터 먼 곳의 친구까지의 속정 깊은 마음까지를 두루 관통한 지브란의 항해는 기도, 종교, 죽음이란 커다란 획을 그으면서 마무리된다.

 

‘알무스타파, 선택받은 자이며 가장 사랑받는 자’로 시작된 글은 ‘잠깐, 바람 위에 일순의 휴식이 오면, 그러면 또 다른 여인이 나를 낳으리라.’로 끝나지만 지브란은 인간에 대한 끝없는 믿음의 끈을 놓치지 않았다.

 

용수철처럼 반동하는 인간이 아닌 따스한 정이 모래밭에 쌓이는 낭만적 판타지를 꿈꿔왔던 그는 물에 비친 바람의 섭리를 다 깨우친 것 같다. 영원의 전사 지브란이 인간의 운명을 관장하는 명왕성을 기호로 하여 말하는 악기 인간을 다루는 『예언자』는 예술품이다.

 

이런 배경 때문인지 이 책은 종교적 메시지와 예언자적 외침을 들을 수 있다. 또 삶의 안내자와의 깊은 소통을 가능하게 해 준다. 그래서 사람들로 하여금 삶의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그것에 대한 통찰의 답을 제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책을 읽다 보면 많은 종교들이 한 곳에서 만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때로는 도교적으로, 때로는 불교적으로, 때로는 기독교적인 가치관을 만나게 된다. ‘베풂’에 대해 쓴 글에 이런 표현이 있다.

 

“모자랄까 두려워함이란 무엇인가? 두려워함, 그것이 이미 모자람일 뿐. (중략) 그런데 지금 그대들 움켜쥐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대들 가진 것이란 모두 언젠가는 주어야 하는 것을. 그러므로 지금 주라, 베풂의 때가 그대들 뒷사람의 것이 아니라 그대들의 것이 되게 하라.” (27~29쪽)

 

예언자는 깨달음을 얻기 위해 산을 오르고 먼 곳을 헤매고 다녔단다. 그렇게 일상에서 멀리, 높게 떨어져 있지 않으면 진리는 찾아내기 어렵다. 팍팍한 일상에 휘둘리다 보면 정말 무엇이 소중한지 알기 어렵다. 『예언자』는 우리를 생활에서 떼어내 멀리, 높게 떨어진 위치로 이끈다. 『예언자』는 100쪽을 조금 넘을 정도로 작은 분량이다. 그러나 산문시로 된 이 책은 급한 마음으로는 좀처럼 읽기 힘들다. 진리는 여유와 침착함을 갖춘 이에게만 다가간다. 『예언자』의 가치를 느끼고 싶다면 그런 담담함을 먼저 익혀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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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힘 - 조선, 500년 문명의 역동성을 찾다
오항녕 지음 / 역사비평사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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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cene #1  우리에게 조선이란 무엇인가?

 

조선이란 시대는 때로 찬란한 조명을 받으며 기념되지만, 때로는 일그러진 모습으로 우리의 과거에서 추방당하곤 한다. 조선은 우리의 과거를 밝혀주는 위대한 유산이자, 동시에 우리와 아무 상관없는, (때로는 드러내고 싶지 않은 머나먼 과거의 흔적이기도 하다. 이 기묘한 양면적 얼굴에 드리운 찬란함과 일그러짐, 그 긍정과 부정 사이에서 '조선'을 바라보는 우리의 눈과 마음도 흔들리고 있다. 과연 우리에게 조선이란 무엇인가.

 

조선 500년 왕조를 이끈 역동성은 그것대로 온전히 인정해주고, 편견과 억측으로 인해 왜곡된 조선에 관한 오해들은 그것대로 제자리를 잡아주는 일이 필요하다.

 

 

 

사실, 우리 머릿속 조선의 표상도 정말로 그 당시 조선의 모습이라기보다는 사극에서 보았던 조선의 궁궐 모습부터 일본 게임기에 대해 열광하며 동시에 느끼는 묘한 열등감까지 오늘날 우리가 생활 속에서 접하고 느끼고 행동하는 것을 통해서 형성되었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조선의 표상은 사실 별 볼 일 없는 가장 작은 나라로, 현재의 우리나라 모습과 가장 가깝지만 그마저 조금 더 약하고 간섭 받았고 경직되어 있는 사회라는 인상이다.

 

 

 

 Scene #2  조선을 움직인 역동성 

 

우리들은 500년 왕조를 이끈 조선의 저력을 무시한 채, 조선이 근대로의 전환에 실패했다고 평가하며 조선시대에 ‘봉건’ 이라는 굴레를 씌우고 있다. 물론 여기서 봉건이란 신분적 억압, 부자유, 당쟁으로 대표되는 악(惡)의 이미지로, 근대가 기술의 발달, 사회적 인권신장, 민주주의로 대표되는 선(善)의 이미지와 대조를 이루는 개념이다.

 

그러나 만약에 누군가가 길을 가다가 강도를 만나 상해를 입는다면 그 사람에게 운이 없다고 하지 실패했다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그러한 일을 예견하거나 기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조선시대 사람들은 과연 ‘근대’라는 미래를 예견하고 기대를 했을까?

 

우리가 조선을 근대로의 전환에 실패했다고 평가절하하는 이유는 우리가 아직 식민사관을 극복하지 못한 결과이다. 근대주의는 일제 식민사관의 토양이라는 것이다. 광복 이후에 한국 역사학계는 식민사관의 극복을 기치로 내걸었지만, 근대주의에 빠져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조선은 무력적 통치보다는 언제나 문화적 다스림을 중시하고, 역사적 정당성을 지켜내기 위해 끊임없이 실록을 기록했다. 또한 국가의 법과 개인의 도덕률을 조화시키려고 했고, 백성들에게 가정 절박한 민생문제를 제도적으로 풀기 위해 시스템을 혁신하려고 했다.

 

우선, 대동법을 들여다보자. 대동법은 오늘날의 세금문제와 그 궤를 같이 한다. 현실을 반영하지 않은 세금 부과에 신음하는 백성들을 구제하기 위해 실시한 대동법은 우리가 알고 있는 기존의 이미지와는 달리 혁신적인 방안이었다.

 

대동법은 폐단을 극복하면서 제도를 투명하게 만들었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저자는 오히려 오늘날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당시 대동법 추진 과정을 통해 국정 시스템의 개혁을 본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대동법 추진 주체에 대한 기존의 오해를 바로잡고, 위정자들이 세우는 ‘국가정책’이란 어떤 의미로 존재해야 하는지 생각해 볼 수 있다고 설명한다.

 

따라서 이런 조선의 저력을 이제 다시 평가하기 위해서는, 우선 전근대는 모두 잘못된 과거라는 편견에서 벗어나야 한다. 물론 과거를 과대평가해서도 안 되지만, 단지 옛날이라는 이유만으로 터무니없이 폄하해서도 안 된다. 동시에 식민지와 근대화를 거치면서 조선에 관해 왜곡된 역사적 해석과 평가도 반드시 경계해서 바로잡아야 한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의 과거를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다. 그래야만 조선의 역동성을 읽는 일도, 조선에 대한 오해를 푸는 일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Scene #3  부끄러운 과거의 초상은 없다

 

500년 이상 지속했던 조선 문명에는 그것을 가능케 하는 시스템이 있었고, 그것에는 몇 가지 중심축이 있다. 조선이 지닌 역동성을 발견하는 일은 조선이라는 두터운 지층을 탐사하는 일이다. 이는 우리의 과거가 쌓아온 역사적 사실들을 복기하는 일이자, 동시에 오늘의 우리를 긍정하는 일이기도 하다. 우리가 지닌 문화적 유산의 힘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서는, 우리의 과거도 현재도 결코 제 얼굴을 찾지 못할 것이다.

 

그래, 너무 기가 죽을 필요는 없다. 하지만 그 다음 고민은 그렇다면 왜 그 동안 조선 문명의 역동성을 잘 모르고 자랑스러워하지 못했는지의 문제이다.

 

역사의식은 궁극적으로 자신이 살지 못했던 시대, 살 수 없는 시대를 자신의 삶으로 끌어들임으로써 형성된다는 저자의 말에서 보듯, 지금 우리의 삶에 대한 변명과 합리화를 위해 조선을 끌어들이지 않았나 싶다.

 

마치 전설처럼 남아있는 고구려의 기개를 이어받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책임을 느끼지 않아도 되고, 당파싸움과 사대주의로 물든 조선은 우리의 현실과 시간적으로 가까운 업보이기에 그것을 어느 정도 극복했다는 자기만족을 줄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독도가 우리 땅이라고 주장할 줄은 알아도 역사 속에서 희망을 끌어올리는 제대로 된 성찰을 할 줄 몰랐기 때문이다.

 

사실 이는 국가 단위에서 논하기 전에 조금만 주위를 돌아보면 알 수 있는데, 잘못될 것을 뻔히 알면서도 잘못될 선택을 하는 사람은 없다는 점이다. 즉, 훗날 전혀 이해되지 않더라도 그 상황에서는 최선의 선택이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예를 들자면, ‘실록이 왕의 승하 후 편찬되었다는 한 가지 사실만 알았을 때에는 나 역시 실록에 대해서 ‘그럼 그렇지, 왜곡도 되고 그랬겠지’ 라며 체념하는 부정적인 관점을 가졌다. 하지만 실록의 복잡한 편찬 과정을 알게 되니, 장소 문제와 관직 체계부터 시작한 여러 상황을 통해 조선의 실록편찬 과정이 깊이를 지닌 최선의 선택이었고 역사를 보존하기 위한 방법뿐 아니라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의 하나였다는 점을 알면서 무릎을 치게 되었다.

 

역사적 선택이 최선이었다는 것을 주장하려면 대충 설명하는 것으로는 부족하고 가능한 자세하게 그 상황을 알아야 한다는 점을 깨닫는다. 이것은 현재와 현재의 소통에 있어서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조선에 대해 우호적인 시각을 중심으로 한 저자의 견해가 신선하고 많은 깨달음을 주었지만 모두 동의하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다른 이유를 뒤집어 씌워 정적을 제거하는 일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든 역사에서 빈번했는데도 불구하고, 윤휴의 죽음에 대해서는 성리학의 정신을 강조하다 보니 오히려 너무 예외적으로 생각하지 않았나 싶은 부분도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적어도 역사에 대해 성찰하는 힘과 시각을 얻은 것 같아서 앞으로도 살아가면서 큰 힘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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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sp 2015-10-15 07: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읽고 싶어 리뷰를 살펴보는 책들은 모두 cyrus 님의 식견있는 리뷰가 달려있군요! 대단하십니다

cyrus 2015-10-15 21:24   좋아요 0 | URL
식견을 넓히려고 열심히 책을 읽는 중인데, 여전히 배움의 길은 험난하기만 합니다. 제 글에도 부족한 점이 많이 있습니다. 혹시 잘못된 점이 있으면 알려주셔도 좋습니다. ^^
 
작은 학교의 힘 - 아이의 학력, 인성, 재능을 키워주는
박찬영 지음 / 시공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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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cene #1 우리의 ‘학교’는 정말 희망이 없는가? 

 

우리나라 ‘학교’의 현 주소는 무엇이며,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은 무엇일까? 과연 우리의 학교는 붕괴되었고, 희망은 없는 것일까?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기업의 변화가 시속 100마일이라면, 현재의 학교체제는 10마일에 불과할 만큼 가장 변화에 둔감한 조직이라고 했다. OECD에서는 미래에 ‘학교’라는 제도는 붕괴될 것이라는 시나리오를 제시한 바 있다. ‘학교’는 이렇게 총체적으로 무능한 조직이며, 척결의 대상인가?

 

한국의 교육을 벤치마킹하자는 오바마 대통령의 ‘한국교육 사랑’이 있는가 하면, 한국의 입시과열을 보고, 오히려 ‘한국교육을 배우지 않겠다’고 선언하며 돌아간 스웨덴 정치가가 있다. 15번의 대학입시 개혁으로 세계적으로 유래를 보기 힘든 ‘입시 강국’, 전 국민의 교육열이 세계에서 두 번째 가라면 서러운 우리나라. OECD에서 주관하는 PISA 시험에서는 세계 1, 2위를 다투고 있는 대한민국! 이러한 명예로운 결과에도 불구하고, 교단 붕괴, 공교육 정상화라는 말로, 현재의 학교는 정상 가동이 되지 않은, 비정상적인 기관으로 우리사회에서 암암리에 치부되고 있다.

 

다양한 정서와 특성을 지닌 청소년기 학생들. 나만의 장점과 어려움을 동시에 갖춘 아이들이 갖는 학교 선택권은 얼마나 될까. 여기에 관계 회복과 더 세심한 케어가 필요한 경우는 기존 학교 환경에서 공부하기에는 그 한계 또한 뒤따른다.우리의 ‘학교’는 정말 희망이 없는가?

 

 

 

 Scene #2  폐교 위기 직전의 산골학교의 변신

 

억압적인 입시교육에서 벗어나 자연친화적이고 다양한 교육을 가르치기 위해 설립된 대안학교가 주목받고 있다. 부모들은 대안학교에서 교육의 해답을 찾으려 하고 있다. 사람들은 왜 대안학교를 꿈꾸고 찾아다닐까.

 

대안학교마다 가지고 있는 색깔은 제각기 지만, 모두 아이들을 공교육에 맡기기 어렵다는 생각으로 출발한 학교들이다. 배움과 사랑의 공동체가 되어야 하는 학교가 경쟁과 재 없는 시험 준비로 매몰되어 버린 현 상황에서 아이들을 조금이라도 행복하고 의미 있는 삶을 준비하도록 새로운 교육의 장을 제공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공교육은 국가가 모든 국민을 위해 바람직하다고 간주하는 교육내용을 차별 없이 균형 있게 제공하기 위해 만든 대중교육의 성격을 지닌다. 이러한 공교육이 사회적 인력을 공급하는 역할을 하게 되면서 좋은 학교 출신들이 좋은 직장을 가게 되고 그러면서 학교간 서열화가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결국 선발과 밀접하게 관련하여 운영되는 학교는 아이들의 다양한 능력을 균형감 있게 다뤄주기보다는 획일적인 지식을 기준으로 서열화되는 결과를 낳았다. 그러다 보니 학생들이나 교사들 모두가 학교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어하는 환경이 만들어졌다. 이러한 경향은 1990년대 들어와 더욱 심화되었고 자연스럽게 공교육이 아닌 대안을 스스로 만들자는 운동이 일어났다.

 

『작은 학교의 미래』를 쓴 저자 박찬영 선생님도 15년 동안 교직 생활을 했는데 처음 교직 생활을 한 곳이 충남 논산에 위치한 도산초등학교였다. 저자가 처음으로 부임했을 당시 도산초는 전형적인 농산촌형 벽지학교로 인근에 학교 외에 교육관련 시설이 전혀 없다. 상대적으로 열악한 교육환경은 학생 수 감소로 이어져 2009년에는 폐교 위기에까지 몰렸었다.

 

폐교 위기의 학교를 살리기 위해 교사와 학부모 그리고 지역사회 구성원들이 선택한 자구책은 방과 후 활동 특성화였다. 학교는 자체 예산으로 방과 후 교육 활동 인프라를 구축하고, 우수한 강사 유치를 위해 노력했다. 이런 노력 덕분에 도산초는 도시에서도 배우기 힘든 골프와 승마 강좌를 비롯해 발레, 축구교실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여기에 자기주도적 학습능력을 높일 수 있는 다양한 과목별 캠프, 수월성과 창의력 향상을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함으로써 참여율을 높였다. 도산초는 교사, 학부모, 지역사회가 협력해 농촌형 방과 후 학교 모델을 성공시킴으로써 2009년 전교생 37명에서 2012년 107명으로 학생 수가 증가하는 등 3년 전 폐교 위기의 산골학교에서 명품학교로 변신했다.

 

도산초는 기존의 학교 교육 방식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다. 교사는 적은 수의 전교생 한 명 한 명에게 깊은 관심을 기울일 수 있어서 다양한 경험을 쌓도록 도와준다. 즉, 모든 학생들 다 방과 후 활동에 참여하는 것이다. 어느 누구도 활동 프로그램에 배제되는 일이 없다. 이러한 교육 방식 덕분에 학생들은 자존감뿐만 아니라 모든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려는 동기 부여도 높여준다. 이러한 환경 속에 공부는 성적을 얻기 위한 지긋지긋한 시간이 아니라 좋아서 하게 되는 즐거운 시간이다.

 

도산초와 오늘날의 교육현장을 비교하면 지금까지 익숙했던 공교육에 상식이 통하지 않는 경우는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창의적인 아이들이 눈총을 받고, 교사의 권력이 휘둘러지는 교실, 경쟁사회에서 성공하기 위해, 서울대에 가기 위해서 친구를 밟고 올라가라고 속삭이는 학교, 학습능력이 평가의 잣대가 되어 다양성을 꺾어버리는 학교, 지식과 정보 전달에 주력하는 모범 정답을 가지고 “너는 뭘 몰라, 틀렸어.”라고 말하는 교실에서 아이들의 사고는 닫히고, 창의성과 자발성과 자존감은 죽어간다.

 

작은 학교는 현재의 아이들 그러니까 행복한 세계를 만들어갈 미래의 어른들을 위한 것이기도 하고, 동시에 화해조정을 받지 못한 학교의 기억이 순간순간 아픔으로 떠올라 우리 안에 울고 있는 아이들, 과거의 아이들을 위로하고 그 아픔을 치유하는 과정 속에서 탄생했다.

 

자기 자신과의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면서 만나는 모든 존재들과 관계를 맺을 줄 알고, 자기분야에서 실력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주위 사람들이나 자기 자신과 건강한 관계를 맺을 줄 알고, 무엇보다 자기 내면의 소리를 들을 줄 알고 다른 존재의 말에 공감할 수 있는 사람으로 자라날 수 있다. 가치나 환경을 정화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고 자기 세계를 창조해갈 수 있는 행복한 사람이 된다.

 

 

 

 Scene #3  교육의 ‘대안’이 아닌 좋은 교육의 학교로 발전해야 할 때 

 

아이를 일반학교에 보냈다가 여러 가지 부적응을 보여서 다시 대안학교 문을 두드린 부모들은 대안학교에 대한 기대가 더 클 수 있다. 특히 학습보다도 친구나 교사와의 관계로 인해 상처를 받았던 아이라면 대안학교에 가면 그런 상처들을 안 받으리라고 믿고 싶을 것이다. 학생들을 인격적으로 대하는 교사들, 무엇보다도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법을 제일 강조하고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환경이라면 아이 상처도 치유되고 즐겁고 행복한 학교생활을 하리라고 기대하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많은 경우 일반학교에서 대안학교로 바꾸는 것만으로도 아이가 겪고 있던 문제들이 해결되기도 한다. 학습 스트레스에서 풀려나서 교사와 친구들과 더 깊은 소통을 나누며 충분히 놀 수 있는 환경 자체가 아이에게 치유가 된다. 그러나 대안학교에 보냈다고 모든 아이가 다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다. 어떤 아이들은 오히려 더 힘들어지기도 한다. 대안학교가 일반학교보다 더 나은 점이 많은 것은 분명하지만 작은 학교이기 때문에 문제가 부각될 수도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대안학교마다 성격이 많이 다르다. 인격수양을 강조하는 학교도 있고, 자유학교를 지향하는 곳도 있고, 노동의 가치를 강조하기도 하고, 경건한 신앙을 강조하기도 하고, 지역과 함께 하는 시민정신을 강조하기도 하고, 사회적 비판정신을 강조하기도 하고, 심지어 대학진학을 강조하는 곳도 있다. 그러니 자녀들의 특성에 맞춰 아이들이 희망하는 학교를 함께 찾아보고 상담을 통해 결정하는 것이 제일 바람직하다.

 

학교 아이들과도 수시로 만나면서 내 아이의 특성 및 상처받기 쉬운 면들을 이야기해 주면서 더 잘 소통할 수 있는 방법들을 알려주다 보면 서서히 내 아이를 대하는 아이들의 태도가 변하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단번에 될 리는 없다. 대안학교는 아이의 성장과 특성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서 부모 교육 및 모임을 계속 열면서 공동체를 통해 지속적인 도움을 받도록 노력해야 한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적극적인 참여와 관심이 필수적인 만큼 특히 부모들의 노력이 더 필요하다.

 

학생들이 자존감을 가질 수 있도록 교사와 학부모가 기다려주는 인내심이 필요하고, 교사의 자율성이 보장되고, 맡기는 교육에서 참여하는 교육으로 학부모의 인식이 전환되어야 하며, 학구제의 제한을 풀어야 하는 행정적 지원이 뒤따라야 한다. 이제는 공교육의 ‘대안’이 아닌 좋은 학교로 발전할 수 있는 현실적인 역량을 키워야 하는 것이다.

 

스스로 열정의 불씨를 다시 살리고파 하는 간절함이 교사들에게 있고, 교사의 관심과 칭찬을 먹고 사는 맑은 눈망울의 학생들이 여전히 우리 학교에는 많다. 이제는 학교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큰 희망의 불길을 다시 일으키기 위한 작은 열정과 감사의 불꽃들을 찾고 살려야 할 때이다. 숨 막힌 공교육이 아닌 정작 공교육에 숨 막힌 학생들 숨통을 틜 수 있게 하는 것이 우선이다. 그것이 작은 학교, 즉 좋은 학교가 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선결조건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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