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노코미스 지역에 사는 아메리칸 인디언 히어와서는 태어나자마자 어머니가 죽은 고아였다. 어머니가 죽고 난 뒤 그는 아버지 손에 자라게 된다. 청년이 될 무렵 어느 날 숲을 거닐고 있을 때 나무가 그를 부르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나무는 그에게 ‘안녕, 히어와서!’라고 인사를 했다. 자연에서 생활하고 자연에서 지혜를 얻는 그는 나무뿐만 아니라 숲속에 사는 동물들과 대화를 할 수 있게 되었으며, 숲속의 동물들은 그를 ‘나의 형제’라고 불렀다. 위의 이야기는 미국의 시인인 롱펠로가 쓴 ‘히어와서의 노래’라는 장편 서사시에 나오는 내용이다.

 

성서에 등장하는 솔로몬은 통일 이스라엘 시대의 왕으로 다윗의 아들이었다. 솔로몬은 하나님께 지혜를 구한 왕이었으며 그의 지혜는 당시의 모든 사람을 능가하는 것이었다. 그의 지혜는 대단하여 자연에 사는 동물들과 대화를 했다는 것이다. 솔로몬 왕이 짐승과 새와 물고기뿐만 아니라 식물, 곤충 등과 대화를 나누었다니, 그의 지혜는 정말 놀라운 것이었다.

 

 

 

 

 

 

 

 

 

 

 

 

 

 

 

 

“아픈 물고기들을 치료하려고 물에다 귀를 대요. 물고기의 말을 듣고 치료해주는 거죠."

 

휴 로프팅의 동화 『돌리틀 선생 항해기』 에 나오는 대사다. 물에다 귀를 대고 물고기들의 말을 들으려는 수의사의 마음을 어떻게 신기한 몽상으로만 생각할 수 있을까.

 

영국에 동물을 좋아하는 존 돌리틀이라는 의학박사가 살고 있었다. 돌리틀 선생은 동물들을 끔찍이 사랑한 나머지 동물들과 말을 주고받을 수 있는, 솔로몬처럼 신통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어느 날 아프리카에서 날아온 제비들로부터 전염병에 걸린 원숭이들이 죽어가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그들을 치료해주려 아프리카로 떠난다. 천신만고 끝에 원숭이 나라에 도착한 돌리틀 선생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원숭이들의 병을 고친다. 돌리틀 선생의 집에는 서커스단에서 탈출한 악어 엘리게이트, 원숭이 치치, 앵무새 폴리네시아, 집오리 대브대브, 새끼돼지 거브거브, 이 밖에도 개, 쥐, 소, 말, 당나귀들이 한 식구가 되어 살아간다.

 

동화 ‘돌리틀 선생 시리즈’는 1920년 출간된 이후 지금까지 사랑을 받아왔고, 아이들은 돌리틀을 실존인물로 믿었다. 매년 1편씩 내놓다가 싫증을 느껴 1927년 ‘달에 간 돌리틀 선생’으로 돌리틀을 달에 보내 사라지게 했다. 그러나 독자들의 요청에 못 이겨 1933년 ‘돌리틀 선생의 귀환’으로 복귀했지만 재미가 예전만 못했다. ‘동화작가’라는 타이틀을 그렇게 싫어해 다른 작품을 여럿 남겼지만 큰 호응을 얻지 못했다. ‘돌리틀’ 하나만으로도 그의 삶은 충분히 행복했다. 돌리틀 선생은 60여 년 뒤에 영화로 재등장한다. 에디 머피가 돌리틀 선생으로 분한, 우리나라에서는 ‘닥터 두리틀’이라는 이름으로.

 

 

 

 

 

 

 

 

 

 

 

 

 

 

 

비록 돌리틀 선생은 실존인물은 아니지만, 동물을 정말 좋아하고 그들의 말을 이해하는 진짜 박사가 있었느니 그가 바로 콘라트 로렌츠다. 콘라트 로렌츠 박사는 오스트리아인으로 동물행동학의 아버지라 불리며 노벨 생리학·의학상을 받은 사람이다. 그는 1973년에 동물행동 분야를 전공하는 사람으로서 최초로 노벨상을 받았으며 또 비교행동학의 창시자이며, 동물행동학과 동물심리학의 세계적 권위자다.

 

그는 또 기러기의 새끼가 알에서 처음 깨어나게 되면 그 때 본 첫 사물이 자신의 어머니로 생각한다는 이른바 ‘각인’(imprinting)이란 용어를 사용했다. 실제로 야외에서 기러기 둥지에 알을 품고 먹이를 먹이고 함께 먹고 자던 사람으로 유명하다. 그의 저서 중 『솔로몬의 반지』라는 것이 있다. 사실 이 책의 제목은 J.R.R. 톨킨의 소설 『반지의 제왕』에서 유래되었다. ‘솔로몬의 반지’는 로렌츠 박사가 기러기 연구를 하면서 그들의 행동을 이해하기 위해 사용한 제목이었다. 자연에서 생활하는 생물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지혜를 얻기 위해 솔로몬의 반지가 필요했다는 것이다. 그의 책에 등장하는 제목인 솔로몬의 반지를 생각하며, 동물과 대화를 할 수 있다니 정말 부러운 능력이다.

 

 

 

 

 

 

 

 

 

 

 

 

 

 

 

그런데 만약에 솔로몬왕, 돌리틀 선생 그리고 로렌츠에게 동물의 목소리는 어떻게 들렸을까? 도통 알 수 없는 울부짖음을 어떻게 이해했을까?

 

그러나 동물은 소리로만 의사소통을 하지 않는다. 우리가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소리뿐만 아니라 시각 신호, 진동, 전기, 접촉, 속임수 등 동물들은 놀랄 만큼 다양한 의사소통 수단을 갖고 있다. 동물들은 짝을 발견하고, 새끼를 보살피고, 경쟁자를 물리치고, 먹이가 있는 곳을 알아내거나 위험을 경고하기 위해 소리를 이용한다. 시각적 신호는 인간과 마찬가지로 동물에게도 자신을 드러내는 믿을 만한 가장 빠른 방법이다.

 

공작새 꼬리의 화려한 부채형 날개나 붉은 사슴 수컷의 우아한 뿔은 단순한 장식용이 아니다. 참새 수컷의 검은 가슴털은 지위의 상징이다. 검은 털이 클수록 계급이 높다. 참새들은 이렇게 해서 암컷이나 먹이를 두고 벌어지는 싸움을 피한다.

 

신체 접촉도 효과적인 의사소통 방법이다. 새끼의 몸을 핥고 단정하게 손질해 주는 것은 새끼를 깨끗하게 해주려는 이유도 있지만, 애정을 표현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동물들이 서로 코를 비비고, 몸을 문지르고, 치장해주고, 쓰다듬는 것은 서로 인사하거나 상대를 안심시키기 위한 것이기도 하고 공격적인 대상을 달래는 방법이기도 하다.

 

의사소통은 생존을 삶으로 바꿔놓는다. 인간의 눈에는 기계적 행동이나 해부학적 구조로만 보이는 동물들의 의사소통 체계는 의외로 역동적이며 신호와 의미도 계속 진화한다. 단지 생존만을 위한 것이라면 그렇게 놀랄 만큼 다양한 종류의 신호는 필요가 없는 것이다.

 

자연계에 존재하는 동물과 식물은 스스로의 언어로 인간과 대화할 수 없다. 이들이 하고자 하는 말을 생태학자인 우리가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풀어서 설명해 주어야 한다. 동물, 식물을 연구하는 사람은 많은 시간을 들에서 혹은 산에서 보낸다. 이들이 연구하며 알고자 하는 것은 동식물들이 우리에게 하고자 하는 그들의 언어를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그림이나 표로 나타내기 위함이다. 자연계의 동식물은 자신의 서식처가 훼손되며 오염돼가는 모습을 우리에게 그들의 언어로 전하고 있다. 결국 우리 행동의 뿌리는 주변의 많은 동물들에게 있으며 그것은 우리가 더 큰 자연의 일부이고 우리는 그들과 공생해야 한다.

 

자연 파괴는 이들의 삶의 터전을 짓밟는 것과 다르지 않다. 동물과 식물이 말 못하는 생물이라고 해서 이들의 존재가치가 위협받아선 안 된다. 모든 생물은 그 종류대로 장구한 세월을 견디며 생존해 왔기 때문이다. 오늘도 이들의 언어를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야외로 조사를 나간다. 썩어져 가는 강물에 살고 있는 물고기가 우리에게 하고 싶은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솔로몬의 반지’를 선물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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