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여, , 순수한 모순이여,

그리고 많은 눈꺼풀 아래

누구의 것도 아닌 잠이 되고픈[1] 마음이여.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Rainer Maria Rilke)의 묘비명이다. 원래는 릴케가 쓴 시였는데, 그가 죽으면서 시는 묘비명이 되었다. 릴케는 장미를 좋아했고, 장미를 예찬하는 시를 썼다. 그가 쓴 수많은 시에 장미라는 단어가 250번이나 등장한다. 릴케가 장미의 시인으로 알려져서 그런지 몰라도 그가 장미 가시에 찔려 죽었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여자 친구에게 줄 장미를 꺾다가 손가락에 가시가 찔렸는데, 그 상처에 덧나서 생긴 패혈증에 걸려 죽었다고 알려져 있다.

    

 

 

 

 

 

 

 

 

 

 

 

 

 

 

 

 

 

* [절판] 루 알버트 라사르트 내가 사랑한 시인 내가 사랑한 릴케(하늘연못, 1998)

* [절판] 볼프강 레프만 릴케: 영혼의 모험가(책세상, 1997)

* [절판] 미셸 슈나이더 죽음을 그리다(마음산책, 2006)

    

 

 

릴케가 장미 가시에 찔리는 바람에 한동안 통증에 시달린 건 사실이다. 그러나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은 패혈증이 아니라 백혈병이다. 잘 알려지지 않은 유명한 작가들의 최후를 모아놓은 죽음을 그리다(마음산책)는 장미 가시 때문에 영면한 릴케의 낭만적인 최후가 와전된 신화임을 보여준다. 임종에 가까워진 릴케를 진찰한 의사의 증언에 따르면, 릴케는 죽음을 두려워했다. 그는 유서에 죽음이라는 단어를 딱 한 번 썼다. 릴케는 지인에게 보낸 편지에 본인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죽음의 순간을 언급했다.

 

 

나는 의사들에 의한 죽음을 원치 않습니다.

나는 나의 자유를 갖고 싶습니다.”

 

(구디 뇔케 여사에게 보낸 편지중에서, 릴케: 영혼의 모험가에 인용됨, 610)

 

 

릴케가 말한 자유가 육신의 고통에서 해방되는 것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다. 어쩌면 릴케는 젊은 시절에 쓴 시에 나오는 구절처럼 자신이 죽으면 영광의 광채(The radiance of Glory)가 내리길 원했을지도 모른다.[2] 영광의 광채가 찬란하게 내려오는 곳은 자유와 평화를 누릴 수 있는 천국이다. 릴케가 생각한 천국은 장미로 가득한 거대한 정원이 아니었을까.

    

 

 

 

 

 

 

 

 

 

 

 

 

 

 

  

 

* [절판] 루 살로메 선택된 자들의 소망(투영, 2000)

* [절판] 루 살로메 하얀 길 위의 릴케(모티브, 2003)

* [절판] 프랑수아즈 지루 루 살로메: 자유로운 여자 이야기(해냄, 2006)

    

 

 

 

 

 

 

 

 

 

 

 

 

 

 

 

* 릴케 릴케 시집(문예출판사, 2014)

* 릴케 기도 시집들(책세상, 2000)

    

 

 

릴케와 친하게 지낸(또는 연애한) 여성 중 가장 유명한 사람은 루 안드레아스 살로메(Lou Andreas-Salomé)다. 루 살로메는 릴케의 인생과 작품 세계에 큰 영향을 준다. 1899년에 릴케는 루 살로메 부부와 함께 처음으로 러시아를 여행한다. 이듬해에 릴케는 루와 단둘이서 다시 러시아를 여행한다. 릴케의 러시아 여행은 시인으로서의 릴케에게 새로운 전환점이 된다. 선택된 자들의 소망(투영)에 수록된 나와 릴케라는 제목의 글은 릴케를 처음 만난 순간부터 시작해서 그와 함께한 러시아에서의 여정을 상세하게 보여준다. 이 글에서 루는 러시아 여행의 여운이 반영된 릴케의 초기 시집 기도 시집을 분석한다. 이러한 릴케의 시 세계에 대한 루의 지대한 관심은 릴케가 죽은 후에 발표한 하얀 길 위의 릴케(모티브)로 이어진다. 루는 릴케가 자신에 보낸 편지글을 통해 그와의 추억을 되살리고, 정신분석학 관점으로 릴케의 중기 및 후기 시 작품들을 분석한다. 루는 프로이트(Freud)에게 배운 정신분석학을 동원하여 릴케의 시 세계에 반영된 어린 시절 릴케의 모습을 소환한다. 릴케의 어머니는 일찍 죽은 딸을 잊지 못해 어린 릴케를 딸의 대체물로 생각하면서 키웠다. 릴케는 일곱 살 때까지 여자아이처럼 인형을 갖고 놀거나 원피스를 입고 다녔다. 이로 인해 릴케는 성 정체성에 혼란을 겪었을 것이고, 어머니의 보살핌을 많이 받지 못한 어린 릴케의 마음속에는 어머니에 향한 불편한 감정들이 차곡차곡 쌓여만 갔다. 루는 릴케의 글에 어머니의 모습이 다양하게 변형되어 나타나 있다고 주장한다.

 

릴케는 라는 이름을 가진 두 명의 여성을 만났는데, 한 명이 앞서 언급한 루 살로메다. 또 한 사람은 릴케와 십여 년 동안 친하게 지낸 화가 루 알베르트 라사르트(Lou Albert-Lasard)이다. 릴케는 그녀를 룰루(Lulu)라는 애칭으로 불렀다. 룰루는 1952년에 릴케를 회고한 책 ‘Wege Mit Rlike(릴케와 함께 걸은 길)를 발표했는데, 이 책은 릴케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김재혁 교수의 번역본으로 나왔다. 1993년에 소유하지 않는 사랑(범조사)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본이 처음 출간되었고, 1998년에 내가 사랑한 시인 내가 사랑한 릴케(하늘연못)라는 새로운 제목으로 재출간되었다.

 

이 책에서 룰루는 루와 릴케의 관계를 언급하는데, 그녀의 남자다운 기질과 활동적인 모습을 그리 달갑게 여기지 않는 듯한 어조로 묘사한다. 루 살로메가 악녀의 대명사로 알려지게 된 이유를 알 수 있는 대목이 나온다.

 

 

 그녀는 한 마디로 날카로운 오성과 활기찬 기질을 겸비한 여성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감성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어딘가 지나치게 분석적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루 살로메는 나이나 겉모습에는 거의 신경을 쓰지 않았음에도 그녀 특유의 타오르는 생동감 덕분에 여전히 그녀를 사모하는 사람들을 거느리고 있었다. 루가 내뱉은 한 마디의 경멸조의 말에 눈물을 흘린 나머지 단안경을 땅바닥에 떨어뜨리던 한 사내의 모습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그녀의 눈길은 엄청난 힘을 발하고 있었다.

    

 

(루 알베르트 라사르트, 내가 사랑한 시인 내가 사랑한 릴케중에서, 77쪽과 80)

 

 

김재혁 교수는 라사르트의 회고록이 릴케 연구서로서의 가치가 있다고 평가한다. 볼프강 레프만(Wolfgang Rebmann)이 릴케 평전을 쓸 때 참고한 문헌 목록에 라사르트의 회고록이 포함되어 있다. 당연히 루 살로메가 쓴 회고록도 참고 문헌 목록에 들어있다. 루 살로메와 루 알베르트 라사르트의 책이 세상에 나오지 않았으면 독자는 릴케라는 시인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또 그의 시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몰랐을 것이다. 그런데 이 세 권의 번역본 모두 구할 수 없게 됐다. 예전에 썼던 글에 한 차례 언급한 적이 있는데, 절판된 책을 사람으로 비유하면 고인이나 다름없다. 릴케가 세상을 떠난 날 다음에 아침 신문에 실린 부고 한 줄 빌려 절판된 세 권의 책을 추도하는 짤막한 글을 남겨본다.

 

 

릴케 평전은 죽었고, 그가 쓴 시만 홀로 남아 있다! [3]

 

 

 

 

 

 

[1] 내가 사랑한 시인 내가 사랑한 릴케릴케: 영혼의 모험가를 번역한 김재혁 교수는 묘비명의 마지막 구절을 누구의 것도 아닌 잠이고픈 마음이여라고 썼다. 잠이고픈이라는 표현이 어색하게 느껴져서 잠이 되고픈이라고 고쳐 써봤다.

    

 

[2]

늙은이는 생각하고 있었다.

언젠가 나도 쉬게 되리라, 이렇게 편안히

젊은이도 생각하고 있었다.

내가 죽을 때도 영광의 광채가 내리기를.

 

(해넘이의 마지막 인사중에서, 송영택 옮김, 릴케 시집, 19

 

 

[3] 원문: 릴케는 죽었고, 세상만이 홀로 남아 있다! (Rilke est mort, que le monde reste seul!,내가 사랑한 시인 내가 사랑한 릴케, 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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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9-05-21 19: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궁서체로 물어보는 건데, 이 정도 함량의 글을 돈 한 푼 안 받고 쓰면 손해보는 기분 들고 그런 건 없어요??

cyrus 2019-05-21 19:44   좋아요 1 | URL
글 쓰는 재미로 하는 거죠. 예전에 저도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어요. 그런데 무슨 대가나 인정을 바라면서 글을 쓰면 글 못 써요. 보상(인정)받아야 한다는 욕구를 가지는 것도 좋긴 하지만, 너무 거기에 집착하면 번뇌가 되고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아요. 그래서 저는 해탈하기로 했습니다... ㅎㅎㅎㅎ
 
우주와 아인슈타인 박사
링컨 바넷 지음, 송혜영 옮김, 박병현 감수 / 글봄크리에이티브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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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와 아인슈타인 박사(The Universe and Dr. Einstein). 어느 과학 교양서에 붙여진 평범한 제목이다. 제목만 보면 이 책이 무슨 내용인지 짐작할 수 있으리라. 《우주와 아인슈타인 박사》는 말 그대로 아인슈타인의 우주론(cosmology)을 쉽게 소개한 책이다. 이 책은 아인슈타인이 살아 있을 때인 1948년에 출간되었다. 그때 당시 아인슈타인은 독일 나치를 피해 미국으로 망명하여 프린스턴 고등연구소 교수로 활동하고 있었다. 이 책에 실린 추천사는 아인슈타인이 직접 썼다.

 

 

 나의 상대성이론의 핵심개념이 지극히 잘 소개돼 있으며, 더 나아가 우리가 알고 있는 물리학 지식의 현주소를 아주 적절하게 기술해놓았다.

 

(아인슈타인의 추천사, 6쪽)

 

 

아인슈타인이 언급한 ‘물리학 지식의 현주소’는 원전의 초판이 나온 1948년 당시의 과학 수준을 말한다. 《우주와 아인슈타인 박사》는 네 차례나 개정됐다. 아인슈타인이 세상을 떠나기 5년 전에 개정 2판이 나왔으며 아인슈타인 사후인 1957년에 개정 3판이 나왔다. 《우주와 아인슈타인 박사》의 저자 링컨 바넷(Lincoln Barnett)이 세상을 떠난 후인 1985년, 2014년에도 개정판이 나올 정도로 아인슈타인 물리학의 핵심을 잘 설명한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았다.

 

책 제목은 너무 평범하지만, 부제는 눈길을 끈다. ‘왜 우리는 상대성이론을 철학해야 하나?(Why should we philosophize the Theory of Relativity?)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부제가 번역본 제목으로 정했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부제는 표제보다 더 독자들에게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과학 이론인 상대성이론과 철학은 무슨 관련이 있을까? 혹자는 부제를 보자마자 《우주와 아인슈타인 박사》가 ‘과학철학’을 논하는 책이 아닐까 봐 의구심 들 수도 있겠다. 이 책이 과학철학과 무관하다고 볼 수 없다. 과학철학은 과학에 바탕을 둔 세계관을 인식하는 방식에 관해 고찰하는 철학의 한 분야이다. 과학철학은 부분적으로는 인식론(epistemology)과 관련이 있다. 인식론은 진리를 인식하는 행위의 본질적인 의미와 그 행위의 한계 등을 탐구하는 철학의 한 영역이다. 그러므로 《우주와 아인슈타인 박사》가 말하는 ‘철학’은 인식론을 뜻한다.

 

책의 저자는 상대성이론이 과학적 가치를 뛰어넘어 존 로크(John Locke), 조지 버클리(George Berkeley), 데이비드 흄(David Hume)으로 이어지는 인식론자들의 이론적 체계를 발전시키는 철학적 기반이라고 말한다. 로크는 데카르트(Descartes) 다음으로 근대 인식론의 출발점을 제공한 사상가이다. 로크는 자신의 책 《인간 오성론》에서 ‘위치의 상대성’을 간접적으로 언급했다. 로크가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을 예견했다고는 볼 수 없지만, 그는 시간과 공간의 상태가 그것을 관찰하는 사람의 위치에 따라 상대적으로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특수상대성이론의 핵심은 광속(빛의 속도)과 물체의 등속 운동 등 자연계 내 물체의 모든 운동은 일정하다고 보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특수상대성이론을 어렵게 생각한다.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이 이론에는 우리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사실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미 언급했듯이 관찰자의 위치에 따라서 일정하게 움직이는 광속과 물체의 등속 운동이 달라져 보인다. 로크가 생각한 ‘위치의 상대성’과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은 공통으로 ‘객관적 인식이 가능하다’라고 보는 인간의 합리적인 정신을 흔들어놓는다.

 

《우주와 아인슈타인 박사》는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과 일반상대성이론이 무엇인지 감이 잘 잡히지 않는 독자를 위한 입문서이다. 요즘 나오고 있는 아인슈타인 물리학 입문서들에 비하면 상당히 구식으로 느껴지지만, 이래 봬도 물리학의 달인 아인슈타인이 극찬한 전설의 책이다. 이 책에 인식론을 부연 설명한 내용이 없어서 상대성이론의 철학적 의미를 이해하는 데 조금은 어려울 수 있다. 그래도 이 책을 통해 특수상대성이론과 일반상대성이론을 잘 이해해도 반은 성공이다.

 

 

 

 

※ Trivia

 

 

* 지구 표면에서 적도 위의 두 점으로부터 북극을 꼭지점으로 그린 커다란 삼각형은 내각의 합이 180도라는 유클리드의 정리를 만족시키지 않는다. (158쪽)

 

‘꼭짓점’이라고 쓰는 게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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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기 힘든 것에 대해 말하기
우치다 타츠루 지음, 이지수 옮김 / 서커스(서커스출판상회)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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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직업과 나이에 상관없이 어느 정도 경력만 쌓이면 ‘꼰대’가 된다. ‘꼰대’ 소리를 듣는 사람들의 특징은 이렇다. 첫 번째, 자신이 모든 걸 알고 있어야 한다(“내가 해봐서 아는데‥…”). 두 번째, 자신보다 어리거나 직위가 낮은 사람에게 반말한다. 세 번째, ‘내가 틀렸다’는 말보다 ‘네가 틀렸다’는 말을 자주 한다.

 

꼰대는 반민주적인 태도다. 권위주의에 기대서 세상을 보는 꼰대의 태도, 그것이야말로 서열에서 우위를 차지한 사람이 당연히 권력을 가지는 걸 합리화하는 태도다. 우리는 ‘나는 꼰대가 아니다’라고 말하지만(생각하지만) 실제로 꼰대 노릇을 즐겨 하고 있다. 나이가 들었어도 열정과 패기를 잃지 않는, 노익장의 정신을 유지하여 꼰대가 되는 것을 피해갈 수만 있다면야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그게 어디 뜻대로 될까 싶다.

 

세상엔 참으로 수많은 형태의 꼰대가 있다. 그중에 나는 ‘생각 있는 꼰대’가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생각 있는 꼰대’는 우리가 흔히 아는 꼰대(융통성 없이 꽉 막힌 늙은이)와 다르다. ‘생각 있는 꼰대’는 누구나 공감하는 ‘맞는 말’을 잘한다. ‘생각 있는 꼰대’도 ‘꼰대’가 되지 말라고 말한다. 우리는 그들의 말에 수긍하고, 일말의 의심을 하지 않는다. ‘생각 있는 꼰대’는 몸소 모범을 보이고, 늘 명쾌한 해답을 제시해주는 ‘참 어른’의 모습과 비슷하다. 그런데 ‘생각 있는 꼰대’가 너무 많아도 문제다. 그들이 하는 말은 100% 옳다. 하지만 ‘100% 옳은 말’이 많아지면 그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사람들도 많아진다. 정작 그 말을 들어야 할 사람은 아예 듣지 않는다. 그렇게 되면 ‘100% 옳은 말’은 ‘수신자(청자)가 없는 메시지’가 되어 떠돈다. 옳은 말만 하는 꼰대의 문제점은 ‘구체적인 말’을 하지 않거나 ‘현실적인 대안’을 내놓지 않는 것이다. ‘생각 있는 꼰대’는 앵무새와 같다. 앵무새는 올바른 말만 골라 듣고 그것을 똑같이 따라 한다.

 

《말하기 힘든 것에 대해 말하기》는 내가 앞서 말한 ‘생각 있는 꼰대’의 특징과 문제점을 짚어낸 책이다. 이 책의 저자 우치다 타츠루(內田樹)는 ‘옳은 말만 하는 어른’의 말하기 방식이 잘못되었다고 말한다. ‘생각 있는 꼰대’는 말 그대로 머릿속에 생각만 가득 차 있는 어른이다. 그들은 자신의 머리 밖에 있는 생각이나 말을 하지 않는다. ‘옳은 말’에 반대하거나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다. ‘생각 있는 꼰대’는 옳은 말만 하면서 얻은 덕망이 조금이라도 손상되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래서 반대 의견이 나올 법한 사회 문제에 소극적인 반응을 보이거나 첨예한 논쟁이 벌어지는 주제에 침묵한다.

 

이 책의 제목이 말하는 ‘말하기 힘든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정론이 틀릴 수 있다는 말’과 ‘무지를 인정하는 말’이다. 저자는 예측 불가능한 세상에서 무엇이 옳은지 확실하게 말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이 깨달음은 훌륭한 어른이 되는 과정의 일부이다. 훌륭한 어른은 자신의 의견이 틀릴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며 명쾌하게 결론을 내리기 힘든 문제에 대해선 모른다고 말한다. 반면에 꼰대는 자신의 과거 고생담 얘기하는 걸 큰 자랑으로 여기고, 스스로 대접받아야 할 사람이라고 착각한다. 꼰대의 ‘무식함’을 참 어른의 ‘무지함’과 똑같은 의미로 봐서는 안 된다. ‘무지를 인정하는 것’은 ‘내 주장이 틀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겸손한 태도이다. 그런 태도를 가진 사람은 자신의 의견을 언제든지 수정한다.

 

《말하기 힘든 것에 대해 말하기》는 우리가 그토록 만나고 싶어 하는 ‘참 어른’, ‘훌륭한 어른’의 의미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보게 만든다. 내가 생각하는, 또는 되고 싶은 ‘참 어른’은 프랑스의 사상가 자크 랑시에르(Jacques Ranciere)가 언급한 ‘무지한 스승’에 가깝다. 무지한 스승은 아는 것만을 가르치지 않고 모르는 것도 가르친다. 그들도 그렇고, 우리 또한 스스로가 생각하는 것보다 무지하다. 따라서 가르치는 스승도, 가르침을 받는 제자 모두 지적으로 평등하다. 항상 ‘옳은 말’만 하는 사람을 경계해야 한다. 그들의 말에 무조건 옳다고 생각하는 순간 바보가 되기 때문이다. 지적 능력의 차이는 위계의 차이로 변질되고, 우리가 ‘참 어른’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은 듣는 사람을 편하게 느끼도록 만드는 말만 하는 ‘생각 있는 꼰대’가 된다. ‘참 어른’이 많아진다고 해서 세상이 좋은 방향으로 나아질까? 그들은 우리를 위해서 늘 명쾌한 해답만 주는 구세주가 될 수 없다. 아니, 그렇게 되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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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레트(Colette)프랑스적인 작가가 아니라 파리와 가장 잘 어울리는 작가. 파리는 센강(Seine R.)을 기준으로 북쪽의 우안(右岸, right bank) 지역, 남쪽의 좌안(左岸, left bank) 지역으로 나뉜다. 좌안은 보헤미안적 낭만을 지니고 있는 곳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곳에 값싼 주거지를 찾아 외지에서 모여든 예술가들이 많았다. 이곳의 개방적인 분위기는 자유분방한 보헤미안적 기질의 예술가들에게 해방감을 안겨주었다.

 

 

 

 

 

 

 

 

 

 

 

 

 

 

 

 

 

 

* [품절] 안드레아 와이스 파리는 여자였다(에디션더블유, 2008)

 

    

1920~1930년대 파리 좌안에 터전으로 삼은 여성들이 있었다. 그녀들은 자유와 해방을 만끽했고, 당시 문화와 유행의 흐름을 이끌기도 했다. 미국의 작가이자 다큐멘터리 영화감독인 안드레아 와이스(Andrea Weiss)파리는 여자였다는 멋 좀 부릴 줄 알고,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던 파리 좌안의 여자들(레프트뱅크의 여자들)을 소개한 책이다.

    

 

 

 

 

 

레프트뱅크의 여자들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창작 활동을 펼친 콜레트, 레즈비언 커플 래드클리프 홀(Radclyffe Hall)우나 트루브리지(Una Troubridge), 르네 비비엔(Renée Vivien)나탈리 클리포드 바니(Natalie Clifford Barney) 등은 서로를 알아봤고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 [품절] 래드클리프 홀 고독의 우물(펭귄클래식코리아, 2008)

* 주디스 잭 핼버스탬 여성의 남성성(이매진, 2015)

    

 

 

래드클리프 홀은 남성으로 살아가길 원하는 레즈비언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장편소설 고독의 우물을 발표했다. 그러나 이 책에 묘사된 레즈비언의 사랑이 미풍양속을 해친다는 이유로 금서로 지정됐다. 우나는 트루브리지라는 칭호를 가진 남작의 아내였으나 1919년에 이혼한 후에 홀의 연인이 되었다.

 

 

 

 

 

퀴어 페미니스트 주디스 잭 핼버스탬(Judith Jack Halberstam)여성의 남성성에서 홀이 활동하던 시대의 성 담론을 분석한다. 홀과 우나는 어디든 여행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부유한 레즈비언이었다. 그래서 그녀들은 도덕주의자들의 비난을 조금은 피할 수 있었다. 홀과 우나는 레즈비언들만 모일 수 있는 공동체를 만들었다.

 

    

 

 

    

 

 

 

 

 

 

 

 

 

 

 

 

* [레드스타킹 선정 도서] 게일 루빈 일탈(현실문화, 2015)

* 우리가 키스하게 놔둬요(큐큐, 2017)

    

 

 

나탈리 클리포드 바니 역시 풍족한 삶을 살았던 레즈비언이다. 그녀의 집에서 열리는 살롱은 당대의 예술가들이 모여 들었고, 콜레트도 바니 살롱에 드나든 인물 중 한 명이다. 60년 동안 이어진 바니 살롱에 한 번쯤 다녀간 인물은 이름만 들어도 아는 거물급문학계 및 예술계 인사들이다. 앙드레 지드(Andre Gide), 라이너 마리아 릴케(Rainer Maria Rilke), 에즈라 파운드(Ezra Pound), 거트루드 스타인(Gertrude Stein), 이사도라 던컨(Isadora Duncan) 등이 있다. 간첩으로 발각되기 전에 관능적인 댄서로 명성을 떨친 마타 하리(Mata Hari)도 바니 살롱의 단골이었다. 바니 살롱에 다녀간 남성 작가들은 세계 모더니즘 문학의 흐름을 주도한 인물이었고, 파리 좌안은 시대를 앞서간 문화의 근거지였다.

 

 

 

 

              

 

 

 

 

바니와 르네 비비엔의 연인 관계는 당대 모더니즘 작가들의 작품에 간접적으로 묘사될 정도로 유명했다. 두 사람은 고대 그리스의 시인 사포(Sappho)의 레즈비언 정신을 이어받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있었고, 사포가 태어난 곳인 레스보스 섬(Lesbos I.)에 레즈비언 학교를 세우려고 했었다. 비록 이 계획은 실패했지만, 바니는 파리에 여성들을 위한 공동체를 만들어 레즈비언 문화를 전파했으며 르네 비비엔은 바나의 후원을 받으면서 시와 소설을 발표했다.

    

 

 

 

 

 

 

 

 

 

 

 

 

 

 

* [No Image, 절판] 레미 드 구르몽 색 색 색(문지사, 1993)

* [절판] 루 알버트 라사르트 내가 사랑한 시인 내가 사랑한 릴케(하늘연못, 1998)

 

    

 

바니는 낙엽을 쓴 시인 레미 드 구르몽(Remy de Gourmont)의 연인으로도 알려졌는데, 구르몽은 그녀를 아마조네스(amazones)라고 불렀다. 두 사람은 문학 및 철학적인 주제를 가지고 대화를 나누거나 편지로 주고받았다.[1] 릴케도 바니와 편지를 주고받은 문인이다. 바니는 릴케에게 받은 편지를 수록한 정신의 모험(Aventures de l’Esprit)을 발표했다.

 

동성애자 시인 및 작가들의 시 선집인 우리가 키스하게 놔둬요》에 비비엔이 쓴 시 네 편이 수록되어 있다(물론, 사포의 시와 래드클리프 홀이 쓴 시도 있다). 퀴어 페미니스트 게일 루빈(Gayle Rubin)은 비비엔이 쓴 유일한 소설의 서문을 썼다. 이 서문은 일탈에 수록되어 있다.

    

 

 

 

 

 

 

 

 

 

 

 

 

 

 

 

* [번역 예정작] 콜레트 Le Pur et lImpur(Distribooks Inc, 2003) [2]

* [e-Book] 김인환 외 프랑스 문학과 여성(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2018)

[3]

* 엘렌 식수 메두사의 웃음 / 출구(동문선, 2004)

    

 

 

한편 콜레트는 파리의 동성애자(게이, 레즈비언)들의 일상을 기록한 순수와 불순(Le Pur et lImpur)을 신문에 연재했다. 이 책에 바니와 비비엔의 관계에 대한 내용이 있다. 그러나 동성애를 성적 일탈로 보는 독자들은 콜레트의 글을 비난했고, 결국 연재 4회 만에 중단되었다. 순수와 불순20세기 초 파리의 퀴어 문화를 알 수 있는 중요한 책이다. 콜레트 본인이 이 책을 높게 평가했을 정도면 순수와 불순 콜레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프랑스의 페미니즘 연구가 엘렌 식수(Helene Cixous)가 정의한 여성적 글쓰기를 충실히 따른 작품으로 볼 수 있는데,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콜레트의 순수와 불순을 분석한 논문이 실린 프랑스 문학과 여성》에서 확인할 수 있다.

 

파리 좌안은 여성의 삶을 구속하는 전통적 인습에서 벗어난 여성들을 위한 공간이었다. 이혼이나 인공 임신 중절(낙태)을 경험한 여성 예술가가 있었고, 예술에 향한 열정이 가득한 그녀들은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살았다. 파리 좌안의 여자들은 여러 가지 면에서 차이가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녀들이 파리 좌안에 모여 산다고 해서 동질감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국적, 계급, 정치적 견해, 섹슈얼리티의 차이에 의해 대립하는 양상이 전개되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과 다른 사람의 삶에 일절 간섭하지는 않았다. 프랑스에 정착한 미국 출신의 작가 거트루드 스타인의 말을 빌리자면 파리 좌안은 내 삶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는이었다. 파리 좌안의 여자들은 남들의 시선에 개의치 않고 자신의 삶을 오로지 자신의 것으로 만들면서 살아왔다. 예술에 향한 열정으로 똘똘 뭉친 파리 좌안 여자들의 우정은 파리를 예술의 도시로 성장하게 만든 중요한 힘이었다.

 

 

      

    

[1] 2015년에 구르몽의 색 색 색리뷰를 쓴 적이 있다. 색 색 색의 역자 해설에 구르몽과 바니의 연인 관계를 언급한 내용이 있다.

 

 

[2] 큐큐읻다출판사가 만든 퀴어 문학 출판 브랜드다. 이 출판사가 언급한 출간 예정 작품들에 순수와 불순이 포함되어 있다.

출처: https://www.jungle.co.kr/magazine/27177

 

 

[3] 2003년에 이미 종이책으로 나온 적이 있다. 알라딘에 검색하면 종이책에 대한 정보가 나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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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레트(Colette)의 소설 《파리의 클로딘》(민음사) 번역본 뒤표지에 보면 <뉴욕 타임스>의 추천 평이 있다. 그 추천 평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 시도니 가브리엘 콜레트 《파리의 클로딘》 (민음사, 2019)

 

 

 사랑은 여성의 자유를 앗아가기도 하고, 또 여성을 아름답게 만들고 성장하게도 한다. 가장 프랑스적인 작가 콜레트가 그 사랑을 직조한다.

 

 

 

나는 이 문장을 보자마자 ‘가장 프랑스적인 작가’라는 표현이 무슨 뜻인지 곰곰이 생각해봤다. 그리고 이내 그 뜻을 찾는 것을 포기했고, 나만의 결론을 내렸다. 콜레트는 ‘가장 프랑스적인 작가’가 아니다.

 

프랑스는 ‘자유, 평등, 박애(Liberte, Egalite, Fraternite)를 상징하는 나라로 알려져 있다. 프랑스의 국기인 삼색기를 구성하는 청색, 백색, 적색은 각각 자유, 평등, 박애를 뜻한다. 일단 여기까지는 우리가 알고 있는 삼색기의 의미다.

 

 

 

 

 

 

 

 

 

 

 

 

 

 

 

 

 

 

* 김응종 《서양의 역사에는 초야권이 없다》 (푸른역사, 2010)

 

 

 

‘자유, 평등, 박애’는 프랑스 혁명과 직집적인 연관이 없다. 프랑스 혁명 시대에 나온 구호가 아니라 1848년 제2공화국 헌법에 있는 문구였다. 삼색기가 프랑스 혁명 시대에 처음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맞다. 프랑스 혁명이 일어난 지 사흘 뒤인 1789년 7월 17일에 삼색기가 등장했다. 하지만 세 가지 색의 의미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다르다.

 

파리를 상징하는 깃발은 빨간색과 파란색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파리 시민들은 이 깃발을 들고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했다. 감옥을 점령한 이후에 혁명을 주도한 라파예트(Lafayette) 장군은 파리국민군 사령관에 임명되었다. 라파예트 장군은 파리를 상징하는 깃발에 왕실을 상징하는 흰색을 추가한 삼색기를 국기로 제안했다. 이것이 바로 삼색기의 시초이다.

 

삼색기의 의미가 ‘자유, 평등, 박애’로 와전된 것도 문제지만, ‘fraternite’를 오역한 점도 분명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이다. ‘fraternite’는 ‘형제애’, ‘연대감’을 뜻하는 프랑스어다. 이 단어는 ‘박애’의 의미와 거리가 멀다. 혁명에 동참하는 자를 ‘형제(동지)’로, 그렇지 않으면 ‘적’으로 간주한다는 의미를 띠고 있기 때문이다.

 

 

 

 

 

 

 

 

 

 

 

 

 

 

 

 

 

 

 

* 제랄드 게를레 그림 《여성 권리 선언》 (문학동네, 2019)

* 올랭프 드 구주 《여성의 권리 선언》 (동글디자인, 2019)

* 브누아트 그루 《올랭프 드 구주가 있었다》 (마음산책, 2014)

 

 

 

 

 

 

 

 

 

 

 

 

 

 

 

 

 

 

 

 

 

 

 

 

 

 

 

 

 

 

 

 

 

 

 

 

 

 

 

 

* 케르스틴 뤼커, 우테 댄셸 《처음 읽는 여성 세계사》 (어크로스, 2018)

* 피에르 부르디외 외 《페미니즘과 섹시즘》 (르몽드코리아, 2018)

* 조앤 월라치 스콧 《페미니즘 위대한 역사》 (앨피, 2017)

* 안체 슈룹 《페미니즘의 작은 역사》 (숨취는책공장, 2016)

* 주명철 《오늘 만나는 프랑스 혁명》 (소나무, 2013)

* 이세희 《프랑스대혁명과 여성. 여성운동》 (탑북스, 2012)

* [품절] 최재인 외 《서양 여성들, 근대를 달리다》 (푸른역사, 2011)

 

 

 

 

‘fraternite’는 동지와 적을 구분하는 단어일 뿐만 아니라 혁명에 참여한 남성과 여성을 구분하고, 차별하는 기준이 되기도 했다. 여성들도 혁명에 참여한 ‘시민’이었고 ‘동지’였으나 혁명이 성공한 이후 ‘fraternite’ 정신에 투철한 남성들은 여성 동지들을 집으로 돌려보냈다. 프랑스 혁명의 정신이나 인권 선언에 있는 내용과는 달리 여성들은 정치 활동에 참여할 수 없었다. 여전히 학교에서는 프랑스 혁명을 ‘민주주의를 이끈 가장 중요한 역사적 사건’으로 가르치고 있지만, 프랑스 혁명의 인권 선언문은 ‘남성 인권을 강화한 남성 역사적인(historical) 선언문’이었다. 이를 날카롭게 지적한 사람이 프랑스 혁명에 뛰어든 올랭프 드 구주(Olympe de Gouges, 1748~1793)였다. 그녀는 혁명이 진행되던 시기에 여성에게 참정권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혁명에 참여하거나 열렬히 지지한 남성 지식인 및 정치인들은 그녀의 주장을 반기지 않았고, 평등의 권리가 여성까지 확대되지 않는 현실을 비판하기 위해 구주는 1791년에 ‘여성 권리 선언문(Declaration of the Rights of Woman and of the Female Citizen)을 썼다. ‘여성 권리 선언문’은 프랑스 혁명 인권 선언문에 반기를 든 글이다. 여성의 이혼 권리를 옹호하고, 결혼을 거부한 구주는 1793년에 로베스피에르(Robespierre)의 공포 정치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처형당했다. 단두대에 오르기 전 그녀는 “여성이 사형대에 오를 권리가 있다면 의정 연단 위에 오를 권리도 가져야 한다”는 말을 남겼다.

 

구주는 한동안 잊힌 인물이었으나 여성사 연구가 활발히 전개되면서 그녀를 재평가하는 연구가 나오기 시작했고, 이제는 ‘여성 권리 선언문’을 누구나 읽을 수 있게 됐다. 《여성 권리 선언》 (문학동네)《여성의 권리 선언》 (동글디자인)은 ‘여성 권리 선언문’ 전문을 실은 책이다. 《올랭프 드 구주가 있었다》 (마음산책)는 ‘여성 권리 선언문’을 포함한 그녀의 정치적인 글들을 선별하여 수록한 책이다.

 

《페미니즘과 섹시즘》 (르몽드코리아) 2부에 구주의 삶과 업적을 정리한 글 두 편이 수록되어 있다. 다섯 명의 프랑스 여성 참정권론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페미니즘 위대한 역사》 (앨피)는 구주에 대한 이야기로 포문을 연다. 《프랑스대혁명과 여성. 여성운동》 (탑북스)은 구체제(ancien régime)부터 프랑스 혁명 시대까지의 여성관과 여성운동의 궤적을 상세하게 정리한 책이다. 프랑스 혁명 시대에 구주 이외에도 ‘남성 구체제’에 맞선 여성이 있으니 ‘자유의 아마존(Amazone de la Liberté)라는 별명으로 알려진 테르외뉴 드 메리쿠르(Théroigné de Méricour, 1762~1817)이다. 그녀는 혁명 투사로 이름을 날렸으나 구주와 마찬가지로 남성들로부터 철저히 외면을 받았다. 《서양 여성들, 근대를 달리다》 (푸른역사)는 메리쿠르의 삶을 유일하게 소개한 책이다.

 

글을 쓰다 보니 콜레트를 잊고 있었다. 지금까지 콜레트를 ‘프랑스적인 작가’로 보지 않는 이유를 설명했다. 이 글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은 분들이 있을 것 같지 않지만, 어쨌든 참을성이 있는 그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뉴욕 타임스>의 추천 평에 동의하지 않는 이유를 요약하면 이렇다. 남성의 권위에 굴복하지 않은 콜레트의 자유로운 삶은 남성들만 누릴 수 있는 자유, 공허한 구호에 불과한 평등, ‘박애’로 잘못 알려진 형제애로 시작된 프랑스와 어울리지 않는다. 그렇다면 콜레트에게 잘 어울리는 찬사는 뭐가 있을까? 나는 콜레트가 ‘파리 그 자체’였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파리와 가장 잘 어울리는 예술가였다. 무슨 말인지 감이 오지 않을 것이다. 이에 대한 설명은 다음 글에 밝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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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9-05-16 1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은 1인입니다. ㅋ
여성을 배제한 박애는 정말 모순이네요.
여성을 제외하고 남성들이 쓴 역사가 대부분이기에 왜곡될 수밖에 없다는 생각입니다. 누구의 관점에서 볼 것인가 하는 것은 아주 중요한 문제지요.

cyrus 2019-05-20 11:42   좋아요 0 | URL
“우리”라는 말이 누가 쓰느냐에 따라서 “우리”에 배제되거나 포함되지 못한 존재가 나옵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 모두를 위한”이라고 시작되는 말을 신뢰하지 않아요. 그 말 속에 있는 “우리”가 구체적으로 느껴지지 않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