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 하우스의 유령 엘릭시르 미스터리 책장
셜리 잭슨 지음, 김시현 옮김 / 엘릭시르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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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섬그늘에 굴 따러 가면
아기가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
바다가 불러 주는 자장 노래에
팔 베고 스르르르 잠이 듭니다

 

(동요 ‘섬집 아기’)

 

 

외딴 섬, 외톨이, 외딴 집 등 그냥 말만으로도 외롭다. 정현종 시인은 ‘사람들 속에 섬이 있다 / 그 섬에 가고 싶다’고 했다. 소설가 제임스 앨런 맥퍼슨은 ‘모두가 외로운 사람들’(All the Lonely People)이라는 단편을 발표한 적이 있다. 사람들 사이에 있어도 외롭고 외롭다는 저 많은 사람.

 

우리는 소통과 사랑의 마음이 향하는 곳, 바로 ‘내 마음의 집’을 찾지 못하고 있다. “집에 안 들어가니?”라는 질문에 흔히 “집에 들어가도 집 같지가 않다”라고 말하는 경우가 있다. 앞의 집은 부동산으로 거래되는 건축물이지만, 뒤의 집은 추위, 더위, 비바람을 막아주고 그 속에 살기 위해 지은 안식처다. 우리가 마음에 되찾아야 하는 '집'은 말하자면 'House가 아니라 'Home'이다. 소통과 사랑의 마음이 향하는 곳, 바로 그곳이 우리가 모두 가야 할 '집'이다. 그곳에 가면 사람의 체온과 숨결을 느낄 수 있다. 주인을 잃어버린 집은 사람의 체온과 숨결의 자취를 찾아볼 수 없다. ‘흉가’로 변해버린다.

 

셜리 잭슨의 소설 『힐 하우스의 유령』에 나오는 힐 하우스는 흉가다. 집을 관리하는 사람이 있어도 이제는 옛 집주인이 남긴 삶의 흔적이 희미해질 정도로 한적하다. 심지어 힐 하우스가 위치한 힐즈데일 사람들도 그 집의 존재를 모른다. 아니면 힐 하우스에 대해 좋지 않은 소문 탓에 애써 집의 위치를 모른 척하고 싶었을 것이다. 오래전부터 힐 하우스는 마을 사람들의 체온과 숨결마저 전달될 수 없을 정도로 저 먼 곳으로 떨어진 채 서 있는 저주 받은 집이 되었다.

 

힐 하우스의 심령 현상에 관심을 가진 인류학자 몬터규 박사는 함께 관찰하고 증인이 될 수 있는 인물을 선택해 초대한다. 몬터규 박사와 함께 힐 하우스에 머물게 될 사람은 세 명이다. 어머니의 병시중 때문에 오랫동안 은둔 생활을 한 엘리너 밴스, 엘리너와 달리 성격이 활발하면서도 격렬한 면이 있는 시어도라 그리고 힐 하우스를 상속받게 될 루크 샌더스. 각기 다른 성격의 세 사람이 힐 하우스에서 같이 생활한다. 몬터규 박사 일행은 낯설고 기이한 현상을 겪기 시작한다. 시어도라가 머무는 방에 온통 붉은 페인트가 뿌려져 있고, 한밤중에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잦아졌다. 수많은 방과 복잡하게 만들어진 구조 때문에 힐 하우스 내부는 음산한 기운이 느껴진다.

 

“이 집은 지켜보고 있어. 모든 움직임 하나하나를. 물론, 다 상상력 때문에 그렇게 느껴지겠지만.” (140쪽)

 

시간이 지날수록 공포의 강도는 더욱 거세지고, 성격이 예민한 엘리너는 몹시 두려워한다. 타인에게 의존적인 성향이 있는 엘리너는 시어도라와 함께 있고 싶어 하지만, 시어도라는 엘리너의 마음을 모른다. 오히려 의기소침한 엘리너를 은근히 무시하기도 한다. 엘리너는 다른 사람들보다 힐 하우스의 초자연적 현상에 괴로워한다. 몬터규 박사의 부인이 힐 하우스 모임에 뒤늦게 합류한 이후부터 엘리너의 마음은 위축된다. 몬터규 박사의 부인은 남편보다 더욱 적극적으로 심령 현상의 비밀을 파헤치려고 노력한다. 집 내부에 ‘도와줘요 엘리너 집으로 와요’라는 글씨가 발견될수록 사람들은 엘리너의 행동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엘리너는 자신이 사람들로부터 소외되고 있다는 생각에 괴로워한다. 그리고 시어도라가 루크를 좋아하는 사실을 알고 나서 질투하게 된다.

 

『힐 하우스의 유령』은 어둡고 음산한 힐 하우스의 분위기에 압도된 인물들의 심적 변화와 그 미묘한 갈등을 긴장감 있게 묘사했다. 불가사의한 고딕풍 분위기에 하드보일드 문체가 곁들어진 인물의 대화를 읽으면 독자가 그들과 함께 힐 하우스에 머무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흡인력이 있는 문체는 이야기 중반부가 잠깐 지루하게 느껴지더라도 결말이 궁금해서 끝까지 읽게 한다.

 

소설은 ‘The haunting’이라는 제목으로 두 차례나 영화화되었다. 1963년에 로버트 와이즈 감독이, 1999년에 얀 드봉 감독이 1963년 작품을 리메이크했는데 원작 영화를 더욱 높게 평가받고 있다. 영화를 본 독자라면 원작 소설이 진부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영화로 재탄생한 『힐 하우스의 유령』을 잊고, 셜리 잭슨의 『힐 하우스의 유령』으로 읽는다면 영화에서 발견하지 못한 소설의 진면목을 발견할 수 있다.

 

엘리너는 작가 셜리 잭슨의 성격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엘리너처럼 잭슨도 남들과 쉽게 어울리지 못하는 성격이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어릴 때부터 감수성이 남달랐던 잭슨을 이해하지 못했다. 어린 잭슨이 요조숙녀로 성장하기를 바랐지만, 그런 어머니의 기대는 잭슨의 마음을 예민하게 만들었다. 잭슨은 어머니의 지나친 기대와 관심을 피하려고 공상과 상상에 자주 빠졌다.

 

『힐 하우스의 유령』의 배경 힐즈데일은 그녀가 정착했던 노스 베닝턴 마을을 암시한다. 힐즈데일 사람들은 외지인에 불친절하고, 힐 하우스에 관해 물어보면 적대적인 반응을 보인다. 잭슨의 남편이 대학교수로 발령받아 노스 베닝턴이라는 마을에서 살게 된 잭슨은 그곳 주민들과 잦은 불화를 겪었다. 잭슨을 두고 마을에서는 ‘마녀’라는 악의적인 소문도 돌 정도였다. 잭슨은 마을 주민의 편견과 차별을 증오하면서 살았다. 마을 주민들과 융화되지 못한 그녀의 고립된 삶은 고딕 미스터리 작품을 탄생시켰고 그중에 가장 두드러진 인물이 『힐 하우스의 유령』의 엘리너다. 엘리너는 시어도라가 자신으로부터 점점 멀어질까 봐 두려워한다. 자신의 이름이 적힌 불가사의한 글자가 발견된 사건 이후로 일행은 엘리너를 의심한다. 힐 하우스의 공포에 휘말려 혼란스러운 엘리너는 자신이 고립된 존재가 될까 봐 두려워한다. ‘무엇이든 저택 안을 걸어갈 때는 항상 혼자’였다.

 

『힐 하우스의 유령』의 결말에 대해 호불호의 평가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결말까지 다 읽은 독자 중에는 허무하게 느껴질 수도. 그러나 그 결말은 누군가에게는 슬플 것이다. 혼자 지낸 사람은 안다. 엘리너가 힐 하우스에 가장 먼저 도착할 때부터 철저히 혼자였다는 사실을. 새로운 연인과의 만남으로 엘리너의 힐 하우스 여행은 슬프게 끝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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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정가제가 적용되는 날까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디데이가 다가올수록 책을 팔려는 출판사와 책을 사려는 독자의 마음은 심란하다. 출판사는 창고에 남은 재고를 팔기 위해서 할인 행사를 진행하고, 독자는 반값 할인의 마지막 혜택을 누리려고 지갑은 연다. 그러기 위해서 책을 싸게 살 수 있는 온라인 서점 혹은 출판사 이벤트 정보를 놓치지 않는다. SNS 독서 관련 커뮤니티에 간혹 책을 싸게 사는 곳을 알려달라는 글이 보인다. 지금 독자들은 책 살 돈은 없어도 이런 마지막 기회를 그냥 팔짱 낀 채 보고 있을 수 없을 것이다. 도서정가제가 도입되면 낮은 할인율이 적용된 가격으로 책을 사야 하므로 지금이야말로 싸게 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마치 지구가 종말을 앞두는 모습 같다. 1910년에 핼리 혜성의 꼬리가 지구를 스친다는 관측이 알려졌을 때, 전 세계는 공포와 충격에 휩싸였다. 당시 혜성의 꼬리에 치명적인 독가스가 있다는 잘못된 소문까지 떠돌게 되었다. 종말론이 확산하자 사람들은 죽기 전까지 돈을 마음껏 쓰고 다녔다. 지구가 사라진다면 돈 쓸 일이 없어지기 때문에 남은 돈으로 하고 싶은 일에 다 썼다. 그러나 혜성의 꼬리가 지구를 스쳐 지나간 날, 지구는 어제처럼 평온했다.

 

지금 ‘도서정가제’라는 혜성이 다가온다. 벌써 도서정가제 도입 이후의 상황에 대해서 독자와 출판사는 걱정과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도서정가제를 도입하면 책을 구매하지 않으려는 독자들의 불만이 많아졌다. 도서정가제 도입을 앞두고 출판사들의 할인 행사에 책을 사들이는 우리 독자들의 모습이 지구 종말이 두려워서 어떻게든 돈을 쓰고 보는 사람들과 같다. 그렇다고 나 또한 출판사의 할인 행사 경쟁에 관심 없는 것은 아니다. 예전부터 살려고 찜을 해둔 책을 미리 사뒀다. 다만, 지름신의 유혹을 달래고 있을 뿐이다. 책을 많이 사 놓고, 안 읽은 채 서가에 그냥 방치한다면 자칫 돈 낭비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내일 지구가 멸망하다 해도 오늘은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스피노자의 마음으로 지름신의 유혹에 굴복하지 않으려고 절제한다. 내일 도서정가제가 도입해도 오늘은 책을 읽겠다는 마음으로 예전에 사 놓은 책을 읽거나 책을 살 것이다. 아니면 좋은 책을 싸게 살 수 있는 헌책방에 좀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생각이다.

 

지난주부터 반값 할인이 적용되는 책 중에 무얼 살까 고민을 많이 했다. 내가 아직 월급을 받는 경제적 활동을 시작하지 않은데다가 모은 적립금 액수도 많지 않기 때문에 신중하게 골라야 했다. 가끔 출판사 대형 창고에 진행되는 할인 판매 행사에 무려 책을 열권씩이나 사서 인증 사진을 올리는 애서가들을 보면 부럽기도 하다. 그렇지만, 경제적 수준을 고려해서 분에 넘치지 않을 정도로 구매하는 것이 더 낫다. 영화 ‘아저씨’의 원빈의 명대사를 약간 변형해서 빌리자면 나는 오늘만 책 사는 놈이 아니다. 난 내일도 책 사는 놈이다. 그리고 내일을 위해서 책을 읽는다. 오래 두고 읽을 수 있는, 나중에 헌책방에 팔게 되는 후회를 하지 않으려고 신중하게 책을 골랐다.

 

 

 

 

 

 

출판사들의 반값 할인 판매 대열에 내가 처음으로 산 책은 토머스 핀천의 『중력의 무지개』 세트(새물결, 2012년)다. 책이 나올 당시에 세트 가격이 무려 99000원으로 책정되어 독자들의 원성이 빗발쳤던 문제작이다. 새물결 출판사 반값 할인 이벤트 덕분에 현재 49500원으로 살 수 있다. 그런데 아무리 반값 할인이 적용되었다 해도 나처럼 이 책을 사는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다. 사실 49500원 정도면 반값 할인이 적용된 2만 원 가격의 책을 두 권이나 살 수 있는 가격이다. 이보다 더 싸게 살 수 있는 책의 소식이 많아지고 있는 지금의 상황을 생각한다면 두 권으로 된 책을 5만 원에 가까운 가격으로 사는 것은 ‘호갱’에 가까운 구매일 것이다. 게다가 핀천이라면 쉽게 읽을 수 있는 작가가 아니다. 그렇지만, 예전에 핀천의 명성을 독서 고수들에게서 익히 들어본 터라 사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특히 『중력의 무지개』는 『V.』와 『제49호 품목의 경매』(민음사, 2007년)와 함께 피터 박스올 추천도서 목록에 포함되어 있어서 이번 기회에 핀천의 작품 세계에 겁 없이 도전(?)하고 싶었다.

 

내가 아는 독서 고수 중에 핀천의 소설을 읽은 분이 있다. 그분은 민음사에 출판되어 현재까지 고가로 거래되는 초 레어템 『V.』를 가지고 있을 정도로, 핀천의 작품 세계에 익숙한 경지에 이르렀다. 핀천을 이해하려면 그의 작품을 연구한 학술논문도 읽어야 한다고 말한 적도 있었다. 핀천은 돈 드릴로, 코맥 매카시, 필립 로스와 함께 미국 현대문학을 이끌고 있는 4대 작가로 거론되고, 노벨 문학상 후보에도 언급될 정도로 평가를 받고 있지만, 유독 우리나라에서는 독자가 쉽게 친해지기 어려운 작가다. J.D. 샐린저처럼 핀천도 자신에 관한 모든 것이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기를 꺼린다. 뉴욕에 사는 것으로 추정될 뿐 어디에 사는지 확인되지 않고 있고, 일절 인터뷰를 하지 않고 사진 촬영도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문학성은 이미 동료, 후배 작가들로부터 인정받고 있으며 (작품의 난해성으로 인해 호불호의 평가가 있지만) 대중적으로 성공했다. 『중력의 무지개』를 독일어로 번역했고, 2004년에 노벨 문학상을 받은 엘프리데 옐리네크가 핀천도 못 받은 노벨상을 본인이 받게 된 것이 우습다고 말할 정도다. 읽기 어려운 작품으로 알려진 『중력의 무지개』가 전미도서상을 받았고, 퓰리처 상 수상자로 선정될 뻔했으니 어마어마한 이력을 가진 작품이다.

 

핀천이 비밀로 가득한 은둔 작가라서 대중의 이목이 쏠리는 노벨상을 받을 확률은 희박하다. 그렇지만, 아무리 적중률 높은 세계의 도박사들도 100% 맞추기 어려워하는 것이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이다. 수상 유력 확률이 너무 낮은 핀천이 절대로 노벨상을 받지 못할 거라고 장담할 수 없다. 파트릭 모다이노처럼 깜짝 수상이 나올지도 모른다. 그래서 『중력의 무지개』를 구입했으니 핀천의 문학 세계를 믿고 독서를 할 생각이다.

 

핀천의 작품을 발표 연도순으로 읽고 있다. 핀천의 초기작을 모은 단편집 『느리게 배우는 사람』(창비, 2014년)으로 시작해서 『제49호 품목의 경매』『중력의 무지개』 순으로 읽을 예정이다.  『V.』는 핀천의 첫 번째 장편인데 몇 년 전부터 민음사에서 다시 번역 출간한다는 소식이 있었으나 현재 깜깜무소식이다. 『V.』는 학원사와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는데 두 책 다 비싼 가격으로 온라인 중고샵에 나오고 있다. 『V.』 재출간 소식을 믿고 레어템을 사지 않았는데 좀 더 기다려야 봐야 할 것 같다.

 

 

 

 

 

 

 

 

 

 

 

 

 

 

 

 

 

 

 

 

 

 

 

 

 

(장편)
V. (1963년)
제49호 품목의 경매 ※ The Crying of Lot 49 (1966년)
중력의 무지개 ※ Gravity's Rainbow (1973년)

 

 

 

 

 

 

 

 

 

 

 

 

 

 

(단편)
이슬비 ※ The Small Rain (1959년)
로우 랜드 ※ Low-lands (1960년)
엔트로피 ※ Entropy (1960년)
언더 더 로즈 ※ Under the Rose (1961년)
은밀한 통합 ※ The Secret Integration (1964년)

 

 

출판사는 『중력의 무지개』 번역 기간과 비용에 상당액이 투자되었고, 작가 지명도에 비해 대중성이 적다고 판단해 700부만 인쇄했다고 밝혔다. 700부 한정판으로 나왔는데 아마도 구매자가 많지 않을 것이다. 무시무시한 가격이 아니었다면 한정 인쇄본이 동났을지도 모른다. 핀천이 국내에 인지도가 낮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의 명성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는 마니아 독자는 꽤 있다. 많은 노력을 들어간 책을 대중성이 낮다고 자인하는 출판사의 변은 ‘이 책은 많이 팔지 못할 것이다’라고 책을 팔기 전부터 백기를 드는 꼴이다. 책을 많이 팔아서 생기는 수익도 중요하지만, 책의 가치를 독자에게 널리 알리려는 도전 정신이 없다면 출판사의 진정한 역할을 잊은 것과 같다. 출판사는 책을 수익이 되는 돈을 발굴하듯이 만들면 안 된다. 출판 여건이 어렵더라도 독자에게 떳떳하게 인정받을 가치가 있는 작가와 작품을 골라야 한다. 그것이 바로 ‘독자에게 사랑받는 좋은 책’이 될 수 있다. 나 같은 내일도 책을 사는 놈을 위해서 출판사들은 도서정가제에 크게 위축되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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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1-16 18: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6-10-01 16:23   좋아요 0 | URL
잘 안 읽혀도 천천히 읽어보세요. 서평 작성 기간이 짧은 게 흠이지만, 철학을 이해하려면 천천히 읽을 수밖에 없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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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이나 한 끼 하자!”

 

대한민국에서 누구나 나이 들게 되면 가장 많이 듣게 되는 이야기 중 하나가 아닐까. 원하든 그렇지 않든 간에 사회생활은 인간관계의 연속이란 것을 깨닫게 된다. 대개 할 이야기가 있을 때 사람들은 식사자리를 잡는다. “식사나 한 끼 하시죠?”라는 말은 “우리 친밀감을 갖자”라는 뜻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사람은 홀로 살 수 없다. 그래서 한편 고마운 일이다. 좋은 사람들과 한 식탁 위의 같은 음식을 먹으며 쌓아가는 인간관계. 그 속에서 인간은 나 혼자만이 아닌 따스한 ‘우리’가 되어간다.

 

하지만 모든 식사가 그렇게 즐겁기만 할까. 사람과 사람이 만나다 보면 피치 못하게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할 때가 생겨난다. 본인이 해야 할 때도 때론 타인의 은밀한 청탁을 받아야 할 경우도 있다. 그때 밥은 목적이 아닌, 수단이 된다. 그 자체로의 맛과 향을 잃은, 만남의 부속물이다.

 

현대인에게 주어지는 식사 시간의 소중함이야 따로 말할 필요가 없다. 조직과 여러 인과관계에서 놓여나는 유일한 자유 시간. 하지만 자기 뜻과는 무관하게 희생을 당해야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때의 식사는 잘 차려진 정찬인 경우가 많다.

 

이따금 홀로 즐기는 식사는 무엇보다 편하다. 식당에서 모처럼 외식을 하는 날이면 으레 접하는 광경 중의 하나가 바로 홀로 식사를 하러 오는 손님을 보는 것이다. 과거보다 ‘나 혼자 산다’는 사람이 확실히 많아졌다. 곧 ‘나 혼자 밥 먹는 세상’이 올지도 모른다.

 

몇 달 전에 인터넷 커뮤니티에 ‘혼밥 레벨’이라는 제목의 글이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혼밥'이란 '혼자 밥 먹기'의 줄임말이다. 총 9단계로 이루어진 ‘혼밥 레벨’은 1단계 편의점에서 혼자서 라면 먹기부터 2단계 푸드코트에서 먹기, 3단계 분식집에서 먹기 등 일상생활 도중 누구나 한 번쯤을 겪어봤을 법한 난이도에서 시작한다.

 

Level 1 - 편의점에서 혼자서 라면 먹기. 누구나 가능한 쉬운 수준
Level 2 - 3천 원짜리 선불 식당, 푸드코트에서 밥 먹기. 누구나 가능하고 테이블도 전부 다 벽보고 먹는 테이블
Level 3 - 분식집에서 먹기. 24시간 분식집에서 야간에 혼자 밥 먹기. 쉬운 수준
Level 4 - 패스트푸드점에서 먹기. 그룹․연인이 많이 와 용기를 필요로 하나 빠르게 먹고 가는 분위기라 수월
Level 5 - 중국집에서 먹기. 약간의 용기를 요하지만 아저씨들 혼자 먹는 경우 많아 쉬움
Level 6 - 전문요리집에서 먹기. 대부분 연인이나 그룹이 많아 약간의 용기를 요함
Level 7 - 피자가게,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먹기
Level 8 - 찜닭, 닭갈비, 고깃집, 전골집에서 먹기. 이건 애당초 그룹이 간단한 술 한 잔까지 하기 위해 가는 곳이며 약간의 조리도 필요로 하기 때문에 혼자 먹기 대단히 힘든 코스
Level 9 - 술집에서 혼자 술 먹기. 종업원이 “몇 분이세요?”라고 물었을 때 답변하기까지 대단한 용기가 필요함

 

하지만 이어진 4단계부터는 패스트푸드점에서 먹기, 중국집에서 혼자 먹기, 세련된 라면집에서 혼자 먹기 등 대부분 그룹으로 손님이 방문하는 식당 등을 제시해 약간의 용기가 필요하다. 더욱이 7단계는 피자가게, 스파게티, 패밀리 레스토랑 등 100% 그룹이 찾는 곳을 제시하고 있으며, 8단계는 고깃집 등 애초에 그룹을 받기 위해 만들어진 식당을 제시해 ‘혼자 왔느냐고 다질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덧붙이고 있다. 마지막 9단계는 술집에서 혼자서 술 마시기로 혼자서 안주를 맛있게 먹으며 즐거운 표정을 짓는 ‘상식에 벗어난 용기’를 요구하고 있다.

 

‘백지장마저도 맞들면 낫다’는 세계관이 사회 전반을 지배하고 있는 판국에 식사를 혼자 해결하러 오는 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그리 곱지 않다. 혼자 먹되 남들 특히 아는 사람들 눈에 뜨일까 봐 두려워한다는 점이다. 바빠서, 혹은 다른 사람과 함께 식사할 때의 부담을 덜기 위해서 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혼자 밥을 먹는다는 게 사회성 부족이나 성격 이상 등으로 여겨질까 겁낸다.

 

이웃 나라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심하다. 일본 대학생들 가운데 화장실에서 식사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다. 이유는 간단하다. 혼자 밥 먹는 모습을 남에게 보이기 싫다는 것이다. 일본 사람들의 나 홀로 식사 자체는 딱히 뉴스랄 것도 없다. 점심시간에 혼자 산책하면서 빵을 먹거나 칸막이가 쳐진 식당에서 식사하는 ‘런치메이트(점심동료) 증후군’이 거론된 게 10년 전인 까닭이다.

 

 

 

 

 

그런데 이 남자는 주변 사람들의 눈치에 신경 쓰지 않고 어디서든 식사를 하는 대범한 용기를 가졌다. 심지어 음식의 맛을 음미하면서도 식당 안에 있는 손님들의 대화를 몰래 엿듣기도 한다. 그 사람은 바로 독신주의자 이노가시라 고로.

 

 

 

 

 

일 때문에 끼니 놓치는 게 다반사인 고로는 공복을 못 참는다. 늘 일 때문에 끼니를 놓친다. 허기진 배를 안고 주변의 식당을 찾는다. 무얼 먹고 싶은 기분인지, 위장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특별한 기준이 있는 건 아니지만, 맛집을 찾는 데 어떤 ‘촉’이 작동한다. 적당히 마음에 드는 식당에 들어가 이것저것 주문한다.

 

 

 

 

 

 

혼자 먹지만 뭘 먹어도 많이 먹는다. 결과는 언제나 대체로 만족한다. 가끔 자신의 입맛에 맞지 않은 음식을 만나기도 하지만, 주인공은 일단 먹기 시작한 음식은 절대로 남기지 않는다. 만화는 뭘 많이 먹지도 않고 해설보다는 먹는 행위에 집중하는데 그 자체로 식욕을 자극한다. 이것저것 빼고 먹는 것 자체를 담백하게 묘사했다.

 

 

 

 

 

 

 

최근 외식문화의 보급과 서구식 식습관의 확산 등으로 여러 사람과 함께 그리고 빠르게 먹는 식습관이 자리 잡았다. 이렇다 보니 음식 자체가 주는 즐거움을 오히려 잊어버린다. 우리는 모든 맛을 잊어버린 채 음식을 먹으면서 살았다. 음식이 주는 즐거움은 어떻게 누릴 수 있을까? 음식을 어떻게 먹는가에 따라 식사의 즐거움은 크게 좌우된다. 여건이 허락한다면 때때로 나 자신만을 위한 식사를 즐기는 것도 좋다. 적어도 식사시간만큼은 세상사 시비에 휘말리지 않고, 부담스러운 대화에서 벗어나 보는 것은 어떨까.

 

물론 조금은 불편할 때도 있다. 4명씩 앉게 되어 있는 대부분 식당들, 바쁜 시간이면 합석을 피할 수 없다. 게다가 1인분을 주문하면 안 되는 메뉴를 먹고 싶지만, 선택 자체를 거부당하는 것은 슬프다. 그렇지만 요즘은 싱글족을 위한 테이블이나 메뉴를 준비하는 식당이 늘어나고 있어 다행이다.

 

그래도 왠지 이상하거나 남의 눈치가 보인다고? 혹시 자신에게 쓸데없는 주술을 거는 것은 아닐까. ‘혼자 식사하는 사람은 외로운 사람이야. 그래서 나는 외로운 사람이야.’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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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사랑하는현맘 2014-11-14 0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혼자 밥 먹는거 전혀 거리낌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었거든요. 근데 5단계까지는 자연스럽게 할 수 있을지 몰라도 그 이상은 생각 좀 해 봐야겠네요 ㅎㅎㅎ
근데 맛있는 것들은 주로 2인분 이상 시켜야 하더라구요. 장사하시는 분 입장에선 이해가 가나 그럴땐 참 아쉽죠. 혼자 밥 한 번 먹는다고 이상할 것도 없는데 다른 사람의 시선이 문제네요~

cyrus 2014-11-15 00:21   좋아요 0 | URL
저는 6단계입니다. 그래도 요즘은 혼자 먹어야 할 상황이면 장소나 주위 사람들 눈치에 구애받지 않고 아무데나 먹는 편입니다. 요즘은 싱글족이 늘어나서 1인용 메뉴나 식당이 생겼는데, 제가 사는 지역에는 그런 곳이 많지 않더군요.

조선인 2014-11-14 09: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레벨9까지 클리어네요. 히죽.

cyrus 2014-11-15 00:23   좋아요 0 | URL
조선인님은 혼밥 고수였군요. ㅎㅎㅎ 만화 주인공 고로는 술을 마시지 않는 성격이라서 술을 혼자 마시지 않거든요. 저도 마음이 적적할 때 식당에 혼자 술을 마시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펭귄클래식 6
프란츠 카프카 지음, 홍성광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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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1-302] 성

 

 

 

 

‘내가 아무런 목적도 없이 그냥 어쩌다 이곳에 서 있는 거라면 약간 절망적인 경우가 되겠지.’ 문득 이런 생각이 K에게 떠올랐다. (프란츠 카프카 『성』, 26쪽)

 

 

 

카프카가 구축한 ‘성’의 세계는 그다지 아름답지 않다. 근거를 알 수 없는 어떤 힘이 무력한 인간들을 지배하고 고립과 단절, 절망이 퍼져 있다. 주인공인 K는 정부의 측량기사로 일하게 되어 성 아랫마을에 도착했다. 그러나 성에 들어가는 것도, 마을에 머무는 것도 허락되지 않는 곤경에 빠진다. 이 수수께끼 같은 상황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 치던 K는 결국 어떤 단서도 찾지 못한다. 환상적인 성의 풍경 이면에는 이 같은 악몽이 숨어 있었던 것일까?

 

이처럼 상징으로 가득한 작품을 한 가지 주제로 이해하는 것은 위험스럽지만, K의 상황이 당시 사회의 심각한 관료주의와 그 폐해를 풍자하고 있다는 해석도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다. 요행히 성에 들어간 K가 우연히 민원서류들이 무너질 정도로 높이 쌓인 채 방치되고 있는 장면을 목격하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그야말로 한 인간의 생사가 달린 절실한 문제들조차 서류철 속에 사장되고 있는 끔찍한 광경은 우리를 놀라게 하고 좌절시킨다.

 

작품에서 주인공이 단지 K라고만 불린다. 그것은 K가 맞서는 관료조직 속에서 그가 어떤 의미 있는 존재가 아닌 하나의 의미 없는 단순한 기호 K로서 존재할 뿐이다. K는 자신의 생존을 위해 절박한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성에서는 절박한 개인의 사정은 행정 처리에 있어 고려의 요소가 되지 않았다.

 

이것이 비단 작가가 경험한 현실만은 아니라는 것이 '성'의 핵심 주제일 것이다. 근대국가에서 공무를 수행하는 관료는 존재할 수밖에 없고, 법과 절차의 이름으로 진행되는 모든 일에 서류가 필요한 것도 어쩔 수 없다. 관료제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K의 운명은 모든 시민의 운명이 될 수 있다는 데 그 끔찍함이 있다.

 

관료제는 대단히 합리적이고 체계적이지만, 그 조직 속의 각 개인은 거대조직 내에서 급격히 무의미해지고, 단순히 비인격적인 기계의 톱니바퀴로 전락하게 된다. 막스 베버는 개인의 삶이 규제와 관리적 억압이라는 철창 속에서 이루어지게 된다고 분석했다. 그리고 그러한 관료조직 속에서 인간 삶의 무의미함을 잘 보여주는 가장 위대한 작가가 바로 카프카다. 베버가 당시 관료제의 모습을 이론적으로 고찰했다면 카프카는 관료제의 모습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했다.

 

카프카의 작품은 그 시대 점증하는 관료화에 대한 불안을 극적으로 표현했다고 평가받고 있지만, 이것으로 다 해석되는 것은 아니다. 그의 작품은 압축적이고 따라서 폭넓게 해석될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하나의 거대한 미로와 같다. 카프카 작품의 주인공들은 미로와 같은 세계를 헤맨다. 『소송』의 주인공 요제프 K는 자신의 서른 살 생일 아침 돌연 죄명도 모른 채 낯모르는 사나이들에게 체포되어 무언지도 모르는 소송 때문에 1년 동안 동분서주 고민하다가 서른한 번째 생일 전날 밤에 의문의 죽음을 맞는다. 느닷없는 사건 속에 던져져 당황하고, 자신의 힘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 상황 속을 맴돌다가 영문도 모르고 사라져 간다. 그들에게는 탈출구가 없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카프카의 소설 자체도 뭐가 뭔지 제대로 모르겠고, 이해를 돕기 위해 읽어본 해설서도 알듯 모를 듯하다. 카프카의 장편소설, 특히 ‘고독 3부작’(『소송』, 『성』, 『소송』)을 도전하려면 따분함을 참고 끝까지 읽어야 한다. 그러나 한 가지 얻은 것은 있다.카프카는 ‘절망과 불안의 기운이 감도는 미로를 만든 고독의 작가’ 라는 점이다.

 

독자도 K처럼 카프카가 만든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무의미한 미로의 세계에 길을 잃어버리기 쉽다. 심지어 ‘고독의 미로’를 만든 카프카는 테세우스가 크레타의 미궁을 탈출할 수 있도록 몸에다 실을 매준 아리아드네가 되지 못한다. 오히려 미로의 설계자 다이달로스와 같은 상황이 되고 만다. 카프카는 자신이 설치한 'Kafkaeask'(카프카적인) 미로에 갇혀 버린 채 세기말의 문명으로부터 고립된 현대인의 표상이기 때문이다. 절망적인 세계를 벗어나기 위해서 탈출을 시도해보지만, 구원의 날개가 상실된 이카루스의 비극적 운명처럼 카프카는 쓸쓸히 최후를 맞이한다. 날개가 위축된 한 마리의 까마귀(Kafka)에 불과했다. (카프카는 자신과의 대화를 책으로 펴낸 구스타브 야누흐에게 날개가 잘린 까마귀라고 말했다)

 

K가 머무는 마을은 미로로 이루어진 거대한 감옥이다. 마을에서 성으로 통하는 길은 없다. 성으로 통하는 것 같은 마을을 이리저리 돌아서 언제나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올 뿐이다. 성 안에서 헤매는 K를 도와주는 자도 없다. 그가 가까이 오면 마을 사람들은 두려워하거나 철저하게 외면하거나 회피한다. 그의 측량 작업을 도와주기 위해서 찾아온 조수 또한 K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한다. 게다가 조수 예레미아스는 K의 유일한 믿음이자 한때 성의 권력자 클람의 애인이었던 프리다를 호시탐탐 노린다. 그는 K와 프리다 사이를 이간질시키는 행동도 한다. 그렇지만, 프리다 역시 아리아드네 같은 존재가 되지 못했다. K와 프리다를 연결해준 사랑이라는 이름의 실은 마을을 탈출하고 성으로 향할 수 있는 희망의 실이 될 수 없었다. 프리다는 점점 성으로 가기 위한 욕망이 강해지는 K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고, 정작 이곳을 떠나고 싶어 한다. 성의 실체를 알고 싶은 K의 외로운 투쟁이 처량하다. K는 자신이 거대한 감옥에 갇힌 사실을 알면서도 자신을 묶고 있는, 눈에 보이지 않는 사슬을 끊지 못한다.

 

“예컨대 나는 지금 집에 가죠. 그렇지만 단지 그렇게 보일 뿐이에요. 실제로는 특별히 나를 위해 설치된 감옥으로 올라가는 거예요. 이 감옥은 정말 보통 시민의 집과 유사하고 나를 제외하고는 누구도 감옥으로 인식하지 않기 때문에 더욱 견고하죠. 그 때문에 탈출 시도는 차츰 줄어들죠. 눈에 보이는 사슬이 없다면, 사슬이 끊어질 수 없는 법이에요. 따라서 감금은 아주 평범한 일상의 존재, 지나치게 안락하지는 않은 일상의 존재로 체계화되어 있어요. 모든 것이 튼튼한 재료로 만들어지고 견고한 것처럼 보이죠. 그런데 그것은 지옥으로 추락하는 승강기예요. 사람들은 승강기를 보지 못하죠. 그러나 눈을 감으면, 사람들은 승강기가 자신들 앞에 굉음을 내고 솨솨 소리를 내는 것을 듣게 되죠.” (구스타브 야누흐 『카프카와의 대화』, 문학과지성사 / 129~130쪽)

 

마을 사람들은 성을 알고 싶은 K의 욕망을 알지 못한다. 그들에게는 성은 함부로 범접하거나 거부할 수 없는 무시무시한 권력의 세계다. 마을과 전혀 다른 미지의 세계다. 성의 관리가 내린 명령을 거부하는 것은 권력자를 모독하는 것과 같다. 권력자를 복종하지 않는 자는 살아 있어도 공동체에서 완전히 배제되고 단절된 망자가 된다. 마을 사람들에게는 이런 생활이 평범하게 보일지 몰라도, 보이지 않는 권력자가 만든 사슬로 영원히 자유를 속박한다. 그러나 견고하게 만들어진 사슬이 끊어지더라도, 마을 사람들 그리고 K도 이곳에서 절대로 자유를 쟁취할 수 없다. 그곳은 ‘지옥으로 향하는 승강기’와 같다. 권력의 사슬을 풀고 자유를 갈망하는 자를 기다리는 것은 죽음이나 다름없는 무서운 고독과 절망이다. 지금쯤 성으로 향하는 마을 입구에 가면 이런 글귀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여기 들어오는 너희들은 모든 희망을 버릴지어다.”

(단테 『신곡: 지옥 편』제3곡, 열린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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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나르 포콩  「첫번째 사랑의 방」

 

 

 

그것은 일생에 세 번 또는 네 번 이상 오지 않으리라. 눈을 뜨면, 행복이 지나간 통로인양 완강히 남아 있는 한 꿈의 추억. 행위는 모두 사라지고, 남은 것은 사랑하는 이에 대한, 빛살처럼 느껴지는 인상뿐이다. 그의 곁에 있었고, 그의 존재가 줄 수 있는 모든 은혜를 다 받았다는 무한한 향수가 이어지는 아침나절을 술렁이게 한다. 천사의 그림자, 전부(全部)의 옆을 지나가는 느낌.

 

(베르나르 포콩  『사랑의 방』에서, 32쪽)

 

 

 

 

 

 

 

 

 

 

 

 

 

 

 

 

 

 

 

내 언젠가 히스나무 이 가녀린 가지를 꺾어 두었지
가을도 가버렸으나 잊지는 말아라
우리는 이 땅에서 다시 보지 못할 거야
시간의 이 향기 히스나무의 이 가녀린 가지
그래 내 너를 기다리니 잊지는 말아라

 

(아폴리네르, '고별')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만질 수도, 볼 수도, 소유할 수도 없고, 다시 오지 않는다. 그러나 잊히지 않는다. 그것이 바로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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