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 하우스의 유령 엘릭시르 미스터리 책장
셜리 잭슨 지음, 김시현 옮김 / 엘릭시르 / 2014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엄마가 섬그늘에 굴 따러 가면
아기가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
바다가 불러 주는 자장 노래에
팔 베고 스르르르 잠이 듭니다

 

(동요 ‘섬집 아기’)

 

 

외딴 섬, 외톨이, 외딴 집 등 그냥 말만으로도 외롭다. 정현종 시인은 ‘사람들 속에 섬이 있다 / 그 섬에 가고 싶다’고 했다. 소설가 제임스 앨런 맥퍼슨은 ‘모두가 외로운 사람들’(All the Lonely People)이라는 단편을 발표한 적이 있다. 사람들 사이에 있어도 외롭고 외롭다는 저 많은 사람.

 

우리는 소통과 사랑의 마음이 향하는 곳, 바로 ‘내 마음의 집’을 찾지 못하고 있다. “집에 안 들어가니?”라는 질문에 흔히 “집에 들어가도 집 같지가 않다”라고 말하는 경우가 있다. 앞의 집은 부동산으로 거래되는 건축물이지만, 뒤의 집은 추위, 더위, 비바람을 막아주고 그 속에 살기 위해 지은 안식처다. 우리가 마음에 되찾아야 하는 '집'은 말하자면 'House가 아니라 'Home'이다. 소통과 사랑의 마음이 향하는 곳, 바로 그곳이 우리가 모두 가야 할 '집'이다. 그곳에 가면 사람의 체온과 숨결을 느낄 수 있다. 주인을 잃어버린 집은 사람의 체온과 숨결의 자취를 찾아볼 수 없다. ‘흉가’로 변해버린다.

 

셜리 잭슨의 소설 『힐 하우스의 유령』에 나오는 힐 하우스는 흉가다. 집을 관리하는 사람이 있어도 이제는 옛 집주인이 남긴 삶의 흔적이 희미해질 정도로 한적하다. 심지어 힐 하우스가 위치한 힐즈데일 사람들도 그 집의 존재를 모른다. 아니면 힐 하우스에 대해 좋지 않은 소문 탓에 애써 집의 위치를 모른 척하고 싶었을 것이다. 오래전부터 힐 하우스는 마을 사람들의 체온과 숨결마저 전달될 수 없을 정도로 저 먼 곳으로 떨어진 채 서 있는 저주 받은 집이 되었다.

 

힐 하우스의 심령 현상에 관심을 가진 인류학자 몬터규 박사는 함께 관찰하고 증인이 될 수 있는 인물을 선택해 초대한다. 몬터규 박사와 함께 힐 하우스에 머물게 될 사람은 세 명이다. 어머니의 병시중 때문에 오랫동안 은둔 생활을 한 엘리너 밴스, 엘리너와 달리 성격이 활발하면서도 격렬한 면이 있는 시어도라 그리고 힐 하우스를 상속받게 될 루크 샌더스. 각기 다른 성격의 세 사람이 힐 하우스에서 같이 생활한다. 몬터규 박사 일행은 낯설고 기이한 현상을 겪기 시작한다. 시어도라가 머무는 방에 온통 붉은 페인트가 뿌려져 있고, 한밤중에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잦아졌다. 수많은 방과 복잡하게 만들어진 구조 때문에 힐 하우스 내부는 음산한 기운이 느껴진다.

 

“이 집은 지켜보고 있어. 모든 움직임 하나하나를. 물론, 다 상상력 때문에 그렇게 느껴지겠지만.” (140쪽)

 

시간이 지날수록 공포의 강도는 더욱 거세지고, 성격이 예민한 엘리너는 몹시 두려워한다. 타인에게 의존적인 성향이 있는 엘리너는 시어도라와 함께 있고 싶어 하지만, 시어도라는 엘리너의 마음을 모른다. 오히려 의기소침한 엘리너를 은근히 무시하기도 한다. 엘리너는 다른 사람들보다 힐 하우스의 초자연적 현상에 괴로워한다. 몬터규 박사의 부인이 힐 하우스 모임에 뒤늦게 합류한 이후부터 엘리너의 마음은 위축된다. 몬터규 박사의 부인은 남편보다 더욱 적극적으로 심령 현상의 비밀을 파헤치려고 노력한다. 집 내부에 ‘도와줘요 엘리너 집으로 와요’라는 글씨가 발견될수록 사람들은 엘리너의 행동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엘리너는 자신이 사람들로부터 소외되고 있다는 생각에 괴로워한다. 그리고 시어도라가 루크를 좋아하는 사실을 알고 나서 질투하게 된다.

 

『힐 하우스의 유령』은 어둡고 음산한 힐 하우스의 분위기에 압도된 인물들의 심적 변화와 그 미묘한 갈등을 긴장감 있게 묘사했다. 불가사의한 고딕풍 분위기에 하드보일드 문체가 곁들어진 인물의 대화를 읽으면 독자가 그들과 함께 힐 하우스에 머무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흡인력이 있는 문체는 이야기 중반부가 잠깐 지루하게 느껴지더라도 결말이 궁금해서 끝까지 읽게 한다.

 

소설은 ‘The haunting’이라는 제목으로 두 차례나 영화화되었다. 1963년에 로버트 와이즈 감독이, 1999년에 얀 드봉 감독이 1963년 작품을 리메이크했는데 원작 영화를 더욱 높게 평가받고 있다. 영화를 본 독자라면 원작 소설이 진부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영화로 재탄생한 『힐 하우스의 유령』을 잊고, 셜리 잭슨의 『힐 하우스의 유령』으로 읽는다면 영화에서 발견하지 못한 소설의 진면목을 발견할 수 있다.

 

엘리너는 작가 셜리 잭슨의 성격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엘리너처럼 잭슨도 남들과 쉽게 어울리지 못하는 성격이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어릴 때부터 감수성이 남달랐던 잭슨을 이해하지 못했다. 어린 잭슨이 요조숙녀로 성장하기를 바랐지만, 그런 어머니의 기대는 잭슨의 마음을 예민하게 만들었다. 잭슨은 어머니의 지나친 기대와 관심을 피하려고 공상과 상상에 자주 빠졌다.

 

『힐 하우스의 유령』의 배경 힐즈데일은 그녀가 정착했던 노스 베닝턴 마을을 암시한다. 힐즈데일 사람들은 외지인에 불친절하고, 힐 하우스에 관해 물어보면 적대적인 반응을 보인다. 잭슨의 남편이 대학교수로 발령받아 노스 베닝턴이라는 마을에서 살게 된 잭슨은 그곳 주민들과 잦은 불화를 겪었다. 잭슨을 두고 마을에서는 ‘마녀’라는 악의적인 소문도 돌 정도였다. 잭슨은 마을 주민의 편견과 차별을 증오하면서 살았다. 마을 주민들과 융화되지 못한 그녀의 고립된 삶은 고딕 미스터리 작품을 탄생시켰고 그중에 가장 두드러진 인물이 『힐 하우스의 유령』의 엘리너다. 엘리너는 시어도라가 자신으로부터 점점 멀어질까 봐 두려워한다. 자신의 이름이 적힌 불가사의한 글자가 발견된 사건 이후로 일행은 엘리너를 의심한다. 힐 하우스의 공포에 휘말려 혼란스러운 엘리너는 자신이 고립된 존재가 될까 봐 두려워한다. ‘무엇이든 저택 안을 걸어갈 때는 항상 혼자’였다.

 

『힐 하우스의 유령』의 결말에 대해 호불호의 평가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결말까지 다 읽은 독자 중에는 허무하게 느껴질 수도. 그러나 그 결말은 누군가에게는 슬플 것이다. 혼자 지낸 사람은 안다. 엘리너가 힐 하우스에 가장 먼저 도착할 때부터 철저히 혼자였다는 사실을. 새로운 연인과의 만남으로 엘리너의 힐 하우스 여행은 슬프게 끝나고 말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