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새롭게, 지선아 사랑해
이지선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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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잿더미를 뚫고 나오는 새싹처럼 다시 시작된 삶

 

“어젯밤 11시 반쯤 서울 한강로 1가에서 만취 상태의 운전자가 몰던 갤로퍼가 마티즈 승용차 등 여섯 대와 추돌했습니다. 이 사고로 마티즈 승용차에 불이 나서 차에 타고 있던 스물세 살 이 모 씨가 온몸에 3도의 중화상을 입고 인근 병원으로 긴급 후송됐습니다. 경찰 조사 결과 갤로퍼 승용차 운전자는 혈중 알코올 농도 0.35퍼센트의 만취상태였습니다.”

 

회사에 출근하면서, 학교를 가는 길에, 혹은 친구를 만나러 가는 길에 흔하게 듣는 사건과 사고에 관한 뉴스들. 우리는 어쩌면 이 세상에서 발생하는 불의의 사고에 너무나 무딘 지도 모르겠다. 내성이 생길대로 생겨버린 걸까. 누군가의 자살 소식 앞에서도, 혹은 서울 이편에 살고 있는 한 남성의 죽음의 소식 앞에서도 너무 쉽게 망각하는 우리.

 

불에 데어본 사람만이 불의 뜨거움을 감각적으로, 온 몸으로 알 수 있다. 불에 덴 사람을 지켜보는 타인은 그저 ‘뜨겁겠다’라는 위로의 말만을 건넬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 아무리 진심이라도. 결국은 불이 준 뜨거움으로부터 벗어나는 과제 앞에 나와 불의 잔상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그러나 잔상은 생각보다 너무 오래가고, 그 상처는 깊다.

 

‘대한민국 화상 1등’이라는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심각한 화상을 입은 이지선 씨에게 의료진조차도 ‘살아도 사람 꼴이 아닐 것’이라며 비관적 태도를 보였지만 그녀는 7개월간의 입원과 40번이 넘는 고통스러운 수술, 그리고 재활 치료를 이겨내고 코와 이마, 볼에서 새 살이 돋아나는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된다.

 

하지만 그녀는 제2의 인생을 맞이한다. 잿더미를 뚫고 나오는 새싹처럼 삶은 다시 시작되었다. 그녀의 이야기는 책으로 만들어졌고 최근 다시 한 번 브라운관을 통해 당당히 대중 앞에 섰다. 그녀는 스스로 증거가 되었다. 사람을 아름답게 만드는 건 꽃다운 얼굴이 아니라 삶을 사랑하는 긍정적인 의지임을.

 

 

 

 

 ♣ 그저 행복하기 위해 노력할 뿐

 

그녀의 입술에서는 ‘감사’라는 고백이 많이 나온다. ‘살아있어서 흰 눈도 보고 추운 겨울을 다시 맞을 수 있어’ 감사하다는 것이 그녀가 말하는 고백의 내용이다. 많은 사람들은 그녀를 통해 자신의 삶을 위로받으려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읽다보면 우리는 위로가 아닌 반성을 하게 된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상황이, 마음이 시키는 대로 놔두는 것이 가장 쉬운 일이다. 그러나 그 절망한 사람의 끝은 너무나 자명하다. 지선 씨는 ‘절망은 사람을 죽이는 것’임을 스스로 배웠다. 누가 보아도 절망적인 상황이지만 마음이 시키는 대로, 절망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았던 것이 절망적인 순간들마다 그녀가 해온 일이다. 그것이 절망이 그녀를 죽이지 못하도록 지선 씨 자신을 지키는 방법이었다. 그랬기에 그녀는 지금까지도 이렇게 ‘평범한’ 오늘을 누리며, 오늘보다는 더 달짝지근할 내일을 기대하며 살아갈 수 있었다.

 

마음이 가는 대로 내 버려두지 않는 것,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고통 속에서 절망의 급류에 휩쓸리지 않고 그것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은 정말 쉽지 않다. 슬픔의 폭풍우 속에서 넘어지지 않고 서 있기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외로움의 눈보라 속에서는 눈을 뜨는 것조차 쉽지 않다.

 

그녀 또한 너무 괴로워서 차라리 죽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먹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신앙의 힘으로 이를 극복하고 더 나은 삶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정말 어렵다’는 말보다 더 무게가 실린 ‘쉽지 않다’는 말은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쉽지 않은 일일수록 더 많이 애써야 하기에 더 의미 있다. 쉽지 않은 일이기에 더욱 열심을 내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녀의 삶이 늘 행복한 것은 아니다. 그저 행복하기 위해 노력할 뿐이다. 행복은 노력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기에. 이런 그녀를 일으켜 세운 것은 다름 아닌 바로 가족들의 사랑이다. 가족들 또한 신을 원망하기도 하고 지선 씨와 함께 괴로워하기도 하지만, 결국 강한 믿음과 서로에 대한 무한한 사랑으로 힘든 현실을 극복해 나간다.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지선 씨의 책에서는 칙칙함이나 우울함 같은 건 전혀 찾아볼 수 없다. 그 어떤 정상인보다 밝고 명랑하다. 그녀는 책에서 자신과 같은 중 증장애인을 ‘VIP’라고 표현한다. 맞는 말이다. 장애인들은 우연치 않은 기회에 삶의 비밀을 들여다 본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다 가지지 않고도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다는 걸 깨달은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지선 씨는 죽음의 문턱과 편견의 문턱을 넘은 특별한 사람이다. 그녀의 책은 희망의 메시지로 가득하다. 인생에 대해 감사할 줄 모르는 차가운 마음, 세상을 향한 조소와 냉소로 가득 찬 우리.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것은 문을 꽁꽁 닫는 것이 아니라 모든 문을 활짝 열어놓고, 궂은 날씨든 좋은 날씨든 그것을 음미할 줄 아는 게 진짜임을 알게 하는 이 책은 책꽂이서 10년 20년 꽂아둘수록 깊이 있게 발효될 문장들이다.

 

 

 

 ♣ 고난을 사랑과 축복으로 여기는 특별한 사람

 

나무를 자세히 살펴보면 굴곡이 심한 나무일수록 당도가 높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사과보다는 배가, 배보다는 감이, 감보다는 포도가 당이 높다. 나무가 자기 몸을 흉하게 하면서까지 굴곡을 만들어 당도 높은 과일을 만들어 내는 것처럼 우리 인생도 굴곡진 인생이 값진 열매를 맺는 것 같다. 고통과 희생 없이 다른 사람을 유익하게 하는 당도 높은 과일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굴곡진 인생의 지선 씨는 화상을 입은 후에 오히려 감사하다며, 베스트셀러를 썼고 다른 사람을 유익하게 하는 일을 많이 하고 있다.

 

특별한 사람이란 남들과 다른 사람이다. 그녀는 일그러진 외모를 지니고 있어서, 화상 사고를 경험하고 이겨내서 특별하다. 그리고 그러한 외모 덕분에 남들이 깨닫지 못하는 것들을 얻을 수 있었고 남들이 하기 어려운 재활 상담학이라는 공부를 선택할 수 있었다. 다른 사람들의 사랑을 좀 더 많이 받을 수 있었고, 그 사랑을 소중히 여길 수 있었다.

 

지선 씨는 자신의 얼굴이 알려진 이후부터 주위 사람들로부터 ‘예뻐요’, ‘참 아름다워요’ 하는 인사를 많이 받는다고 한다. 이는 그를 놀리는 것이 아니고 진정 모든 것에서 자유로워진 한 영혼의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마음의 표현일 것이다. 결코 감당하기 쉽지 않은 시련 속에서도 그녀가 선택한 것은 절망이나 죽음이 아니라 삶에 대한 희망이고 용기였다. 홀로 지내는 어둠이 아니라 이웃과 함께 지내는 밝음이었다.

 

오늘은 미래를 향한 나의 남은 인생의 첫날이다. 사람이 살면서 가장 중요한 시간은 오늘이다. 그녀는 인생을 덤으로 살기 때문에 모든 것이 감사하다고 말한다. 이 책을 통해 그녀는 특유의 밝음과 사랑의 에너지를 아낌없이 발산하고 있다. 나는 염치없이 그녀의 은혜를 넙죽 받았다. 고통 속에서도 희망과 삶에 대한 감사를 붙드는 사람, 이런 사람이야말로 향기를 품은 사람임이 분명하다. 그를 직접 만난 일이 없지만 언젠가 그를 만나면 나도 정답게 인사하리라. ‘지선 씨를 사랑합니다. 그리고 그녀를 사랑해 준 모든 사람들도 더불어 사랑합니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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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잘라 2013-09-27 15: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힐링캠프에 나와서 이야기하는 모습 보면서 많이 울었어요. 상상만으로도 숨이 막히는 고통이기에 책으로는 보지 말아야겠다했는데, 님의 리뷰를 읽으니 아무래도 한 권 사서 책꽂이에 꽂아두어야겠습니다.

cyrus 2013-09-28 22:16   좋아요 0 | URL
원래 힐링캠프를 잘 안 보는데 지선씨가 나온다길래 저도 보게 됐어요. 여전히 명령하고 쾌활한 성격은 여전하더군요. ^^
 
걷기예찬 - 다비드 르 브르통 산문집 예찬 시리즈
다비드 르브르통 지음, 김화영 옮김 / 현대문학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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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가 두발로 걷기 시작한 것이 1백만 년 전이다. 그런 긴 세월을 뒤로하고 불과 수십 년 만에 인간은 인간의 생물학적 특징인 직립보행을 잊고, 속도문명의 경쟁 속으로 뛰어 들었다.

 

그래서 요즘 청소년들은 어딘가를 걸어서 가려는 생각을 거의 안 하는 듯하다. 그들에게 이동은 자신의 두 다리를 움직여 공간을 주파하는 일이 아니라, 운송수단에 실려 수송되는 걸 뜻한다. 앉아 있거나 서 있기만 해도 자동차, 엘리베이터, 에스컬레이터, 무빙워크가 우리를 태우고 다니는 세상이 아닌가. 여기에 일찍부터 길들여져 있는 10대들은 운송수단을 타러 갈 때 걷는 것도 힘들어한다. 그마저 기꺼이 자식의 운전수가 되어 주시는 부모를 둔 10대들은 하루에 단 몇 분도 걷지 않는다. 생각의 속도와 영혼의 속도가 우리 몸의 공명(共鳴)을 따라가지 못하면, 삶이 척박해지고 황폐해진다. 세상이, 우리사회가 참 어지럽고 복잡하다. 오만가지 생각과 상상에 머릿속이 흐트러진 실타래처럼 어수선하다. 이럴 땐 무조건 걷는 게 최고다. 산이든 천변이든 동네길이든 걸어야 한다.

 

인생행로라는 말이 있듯이, 산다는 것은 길을 따라 걷는 행위다. 걷기는 오늘날 우리 사회의 온갖 근심걱정과 성급함을 잠시 멈추게 한다. 비록 간단한 동네 산책이라 하더라도, 걷다보면 평소 무심히 지나쳤던 주위의 나무나 돌 혹은 풀꽃 같은 사물이 눈에 잘 보인다. 마음에 여유가 생기기 때문에 오감이 절로 열려, 자연이 전하는 메시지를 받아들이게 한다.걷는다는 것은 모든 주도권이 기계에서 인간에게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스스로 몸을 옮기는 내 다리의 주인으로서, 생각의 주인이 되는 즐거움이다. 아스팔트길은 느낌도 없고 이야기도 없다. 차를 타고 지나가는 것과는 전혀 달리, 발을 놀려 땅을 걷는 사람은 세상 앞에 벌거벗은 존재로 돌아와 나를 만나는 느낌을 갖고 자신에게 말을 건넨다.

 

걷는다는 것은 세계를 온전히 경험한다는 것이다. 이때 경험의 주도권은 인간에게 돌아온다. 기차나 자동차는 육체의 수동성과 세계를 멀리하는 길만 가르쳐 주지만, 그와 달리 걷기는 눈의 활동만을 부추기는 데 그치지 않는다. 우리는 목적 없이 그냥 걷는다. 지나가는 시간을 음미하고 존재를 에돌아가서 길의 종착점에 더 확실하게 이르기 위하여 걷는다. 전에 알지 못했던 장소들과 얼굴들을 발견하고 몸을 통해서 무궁무진한 감각과 관능의 세계에 대한 지식을 확대하기 위하여 걷는다.” (다비드 르 브르통, <걷기 예찬> 중에서)

 

브르통에게 걷기는 자기 몸의 감각을 깨우고 단련시키는 능동적 형식의 명상이다. 기차나 자동차에 의지하여 수동적으로 존재하던 몸이 스스로의 동력으로 움직이기 시작할 때 비로소 세계를 온전히 경험할 수 있다는 것. 우린 천천히 혹은 빠르게 걸으며 자기 몸의 고유한 리듬을 발견하게 된다. 걸음으로 몸의 상태를 살필 수도 있다.

 

몸이 건강하면 발걸음도 가볍고 경쾌하다. 걸을 때 비틀거리거나 몸을 가누지 못하면 몸에 이상이 왔다는 증거다. 숨을 가다듬으며 오직 걸음걸이에만 집중한다. 마음 내키는 대로 멈추고, 생각하고, 가던 길을 계속 가본다. 낯선 사람, 집들, 골목길들을 발견하고 불어오는 바람, 들려오는 소리들을 감각하며 우리가 알지 못했던 세계를 경험할 수 있다. 그렇게 발끝부터 전해지는 미세한 떨림 하나하나에 귀를 기울이며 온몸으로 세계와 마주하는 행위가 바로 걷기다.

 

걷는 것은 분명히 건강에 이롭다. 그렇지만 건강을 위해 걷는 것만은 아니다. 길을 걸을 때 생각들이 가장 잘 떠오른다. 사색하기에 좋은 시간은 방 안에 가만히 앉아 있는 때가 아니라 두리번거리며 걸을 때다. <걷기 예찬>을 읽다 보면 보름 동안 도보여행을 한 청년 루소의 고백을 듣게 된다. ‘나는 한 번도 이렇게 많은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으며 이렇게 뿌듯하게 존재하고 살아본 적이 없었다. (중략) 나는 그때 혼자 걸어가면서 했던 생각들과 존재들 속에서만큼 나 자신이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저자는 걷는 행위에 필요한 것은 시간과 공간이면 충분하다고 말한다. 또한 그 둘이 얼마만큼의 양이냐 하는 것도 중요하지 않다. 다만 생각에 잠기기도 하고 걷기도 하는 그 고즈넉한 즐거움의 초대에 기꺼이 응하기만 하면 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뭔가에 쫓기듯 바삐 살아가는 우리에게 그게 어디 그리 쉬운 일인가? 그렇다면 우리 일상에 걷기가 사라지는 이유는 분명하다. 마음의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걷기예찬>을 읽다보면 여유가 없어 걸을 수 없다는 핑계는 할 수 없다. 왜냐하면 걷는 일은 자신을 세계로 열어놓는 것이기 때문이다. 세상과 단절하여 사는 사람이 아닌 이상 우리에게 길을 걷는다는 것은 일종의 대화이다. 그러므로 걷기 예찬은 삶의 예찬이요, 생명의 예찬인 동시에 깊은 인식의 예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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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3-09-12 2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언제나 멋진 리뷰시네요^^

cyrus 2013-09-14 00:00   좋아요 0 | URL
잘 지내시죠? 카스피님. 읽으면서 생각난 걸 정리해봤는데, 걷는 걸 무척 좋아해서 공감 가는 내용이 많았습니다. ^^

잘잘라 2013-09-13 1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비가 왔고 오늘도 비 예보가 있는데 지금은 햇빛이 반짝반짝해요. 햇빛 받으러 나가려구요. 님의 리뷰를 읽으니 햇빛 받으며 조금 멀리까지 걷고싶어집니다.

cyrus 2013-09-14 00:01   좋아요 0 | URL
오랜만입니다. 메리포핀스님! 잘 지내시죠? 아직 여름이 가을이 온다고 해서 시샘을 부리네요. 여기 대구는 어제 비가 왔는데도 덥하고 습하네요. 날씨가 선선해야 걷을 맛이 나는데 말이죠. ^^
 
그 사람 더 사랑해서 미안해 - 꽃보다 시보다 아름다운 사랑이야기
고민정 글.사진 / 마음의숲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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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받는 것이 행복이 아니라 사랑하는 것이 행복이다. (헤르만 헤세)

 

 

 

 Scene #1  로맨티스트를 만나다

 

 

 

                                    

 

 

무더위의 흔적이 완전히 싹 가시지 않았던 작년 9월 중순인 걸로 기억한다. 특별한 일 때문에 오랜만에 서울에 간 적이 있었다. 고향인 대구로부터 가장 먼 지역이지만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몇 몇 분들이 살고 있어서 시간이 나면 만나기도 한다.

 

시 낭독 소모임은 그리 넓지 않은 카페에서 진행되었다. 여기 모임에 참석한 사람들은 열 명도 채 되지 않았다. 내 기억에 의하면 나를 포함한 7명일 것이다. 여기에는 시 낭독에 관심이 많은 일반인만 있는 것이 아니라 시인 두 분도 참석했다. 낭독 모임에 참석한 시인 중 한 사람은 고민정 아나운서의 남편으로 알려진 조기영 씨였다.

 

사실 조기영 시인과 고민정 아나운서의 러브 스토리는 인터넷을 통해서 이미 알고 있었다. 둘 다 경희대 중문학과 11년 차 선후배로 처음 만나게 되었다. 고민정 아나운서가 조기영 시인을 좋아하게 돼서 오랜 연애 끝에 부부의 연을 맺었다. 개인적으로 아나운서와 시시인의 러브 스토리를 낭만적으로 여겼던 터라 로맨티스트 조기영 시인을 직접 보게 될 줄이야 꿈에도 몰랐다. 그것도 우연히 친한 누님의 모임에 따라간 것뿐인데.

 

시인의 첫인상은 나랑 비슷하게 마른 체구였다. 올해 초에 시인이 강직성 척추염이라는 희귀병에 고생하고 있다는 소식이 매스컴에 소개됐지만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이 때 시인이 병 때문에 자신의 건강 상태가 좋지 않음을 살짝 언급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상은 무척 좋았다. 행복의 향기를 주변 사람들에게 널리 퍼뜨리는 참한 웃음이 매력적이었다.

 

아쉽게도 고민정 아나운서가 이 모임에 참석하지 않았지만 활자로만 보던 시의 창작자를 만나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시인 특유의 문학적 감수성을 오감(五感)으로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조기영 시인은 아이패드로 자신이 연애 시절 고백할 때 쓴 시 ‘청혼’을 방송에서 낭독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리고 이제 막 세상에 나온 지 얼마 안 된 따끈따끈한 감수성이 살아 숨 쉬는 시 몇 편을 접할 수 있었다. 시 낭독 모임은 지방에서 사는 나에게는 단 하루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한 여름 밤이 되면 가끔 오랫동안 떠올려보는 꿈결 같은 순간이다.

 

 

 

 Scene #2 - 그런 사랑 또 없습니다

 

MBC <황금어장-라디오스타> ‘연하남 사용 설명서’ 편을 보며 새삼 세상 참 요지경 속이라는 생각을 했다. ‘이상형’은 그야말로 이상(理想)일 뿐이지만 ‘100만 원이라도 더 벌 수 있는 남성’을 이상형으로 꼽는 여자 연예인의 말을 듣고 있자니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10만 원도 아니고 무려 100만 원이란다. 한 달에 100만 원을 벌기 위해 온갖 풍파와 부대끼며 사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데 저런 소리를. 나름 힘들게 벌고 있다고는 변명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결혼은 사랑보다 현실이다.” 다소 씁쓸하게 느껴지지만 틀린 말은 아니다. 실제 현실이 뒤받쳐 주지 않은 결혼생활은 양쪽 모두를 힘들게 한다. 돈 마다하는 사람 없고 돈 때문에 좋던 관계가 금이 가고 소원해진다는 걸 모르는 나이가 아니다.

 

하지만 나보다 경제력이 월등하지 않으면 존경심이 일지 않는다는 가치관, 매우 위험하면서도 경솔한 발상이다. 부부 사이에 있어 서로에 대한 존중은 기본이다. 인연을 맺은 후 실직을 할 수도 있고 병을 얻을 수도 있는 노릇이 아닌가. 살면서 생기는 변수는 부지기수, 그런 뜻밖의 상황이 전개되면 존경심이 사라져 버릴까 봐 두렵다.

 

 

 

 

 

내 주위에 그런 생각을 하는 친구가 있다면 따끔하게 일침을 가하고 싶지만, 인생경험 짧은 내가 잔소리하고 열변을 토해봤자 소용없을 것이다. 그 대신 고민정 아나운서가 쓴 책을 권하고 싶다. 『그 사람 더 사랑해서 미안해』 차분하면서도 담백스러운 글 속에는 사랑을 가볍게 여기는 독자의 심장을 꼬집는다. 그렇다고 심하게 아플 정도는 아니다. 세상을 잘 모르는 순수한 아이를 타이르듯이 친절하다. 그녀의 달달한 문체는 기성 세대의 잔소리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가난한 시인과의 결혼을 반대하지 않은 고민정 아나운서의 부모님도 존경스럽지만 자신의 증세를 잘 알고 있기에 가족에게 폐가 되지 않기 위해 철저히 건강관리를 하고 있다는 조기영 시인도 존경스럽다. 고민정 아나운서는 그가 존경할 수 있는 남자여서 좋았다고 했다. 잘생긴 남자, 돈 많은 남자, 여러 종류의 남자가 많았지만 존경이라는 단어를 쓸 수 있는 남자는 지금의 남편 하나뿐이라고 했다. 바로 ‘존경’이라는 단어는 이런 곳에 써야 하는 거다.

 

그녀는 '존경'할 수 있는 사랑으로 자신의 삶을 꾸려 가고 있다. 물질에 끌려 다니기보다는 가치를 우선시하며 가벼운 사랑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절대 흔하지 않은 사랑의 진정성을 찾아가고자 노력하고 있다. 또한, 그들에게 허락된 아이 은산을 향한 사랑도 담겨 있다. 남들에게 내색하지 못했던 자신의 고통과 사랑에 대해서도 담담히 풀어냈으며, 흔들리지 않기 위해 서로를 의지했던 사랑의 흔적들이 곳곳에 묻어난다. 꽃보다, 시보다 아름답다.

 

 

 

 

 Scene #3   ‘친밀함’과 ‘책임’이라는 좋은 양분

 

 

 

 

당신은 향해

아주 오랫동안 서 있었습니다

 

한 번의 비와

한 번의 추위와

가을은 쓰러지고

겨울이 어깨 위로 내려와 있는

지금 이 시간에도

나의 마음은 온통

당신을 향해 서 있습니다

 

당신의 눈빛을 찾아

당신의 얼굴을 찾아 방황했던,

길고 길었던, 때문에

그리움이라는 한마디 말로는

부족한 시간들 속에서

당신과 나는 언제나

하나의 공간에서

함께 있지 못하였습니다.

누군가 그러했듯이.....

 

(중략)

 

아마도 내가

당신과 더불어

시라는 조금은 특별한 연인을

알고 있지 않았더라면

매일 밤을 달려

 

당신의 아파트 창문이 보이는

공원의 한 켠에서

당신의 모습을 찾아서

헤메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밤

당신이 아무것도 모르고

고이 잠들었을 이 시간에

 

고백합니다

 

당신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조기영 ‘오래된 사랑 고백’ 중에서,『사람은 가고 사랑은 남는다』88~90쪽) 

 

 

조기영 시인은 지금까지 현재 시집 한 권을 출판했다. 출판연도는 좀 오래됐다. 구입한 시집은 2000년에 나온 초판이다. 시집에 수록된 ‘오래된 사랑 고백’이라는 시는 이제 막 두 사람의 심장에 사랑의 씨앗이 움트기 시작했을 때 썼을 것이다. 그러나 그 하나의 아름다운 씨앗을 틔기까지 두 사람 앞에는 크고 작은 어려움을 마주했다.

 

“당신과 나는 언제나 / 하나의 공간에서 / 함께 있지 못하였습니다.” 시 구절처럼 두 사람은 공간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함께 있는 시간이 많지 않았다. 서로 멀리 떨어져 있을 때, 두 사람이 느꼈던 심정을 짐작할 수 있다.

 

오랜 시간 사람들의 사랑의 감정을 연구해온 심리학자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사랑의 유효기간은 짧으면 6개월 길면 30개월이라고 한다. 길어도 30개월이 지나면 상대방을 향한 고귀함이나 환상은 산산조각 나고, 이상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상대 역시 불완전한 인간이라는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맞닥뜨리게 된다.

 

 

 

 

 

그래서 사랑의 온기가 30개월을 넘어서 지속적으로 유지되기 위해서는 ‘친밀함’과 ‘책임’이라는 두 가지 요소가 필요하다. 심리학자들은 이것을 ‘동반자적인 사랑’이라고 명명한다. 서로에게 친밀함과 책임이 있을 때 두 사람의 관계가 지속성을 유지할 수 있다.

 

고민정 아나운서와 조기영 시인이 ‘존경’할 수 있는 사랑의 씨앗을 마음 속 깊이 오랫동안 간직할 수 있었던 것은 ‘친밀함’과 ‘책임’이라는 좋은 양분을 먹고 자랐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공유하는 ‘친밀함’과 ‘책임’의 양분은 사랑의 온기를 더욱 따뜻하게 만들었고 결국 사랑의 씨앗은 '은산'이라는 귀여운 생명으로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Scene #4  그 사람 더 사랑해서 고맙습니다

 

돈은 사랑도, 심지어 사람까지도 사고판다. 가난하기에 이별을 하고, 가난하기에 피눈물을 흘린다. 그러나 가난하고 인생에 큰 어려움에 봉착되었을 때 사랑을 버려야 한다고 돌아설 때 사랑은 오히려 죽지 않고 뜨겁게 가슴에 각인된다.

 

돈에 팔릴 사랑이라면 진즉 헤어지는 것이 좋다. 함께 할 수 있다면 풀잎에 맺힌 이슬에서도 진주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가진 것 없어도 함께 있다는 사실만으로 주위 모든 것에 감사할 수 있어야 한다.

 

밀물과 썰물이 이어지고 끊어지길 반복하듯 가난과 부유함도 이어지고 끊어지길 반복한다. 그러나 한번 깨어진 사랑은 뒤바뀌는 법이 없다. 돈으로는 영원히 빛나는 사랑을 할 수가 없다. 진실한 사랑을 하려면 가난까지도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 행복은 돈으로 살 수 없다.

 

가난하다고 사랑의 꿈조차 가난해져서는 안 된다. 자신이 힘들다고 사랑하는 사람을 방관하거나 포기해서도 안 된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 아니 솟아날 구멍이 있는 하늘만 무너지게끔 되어 있다. 가난하다고 그리움을, 살아가기가 힘들다고 사랑을 버려야겠는가. 순수한 마음 끝까지 변치 않는다면 가난뿐만 아니라 살아가면서 만나는 모든 인생의 장애물을 극복할 수 있다. 맑은 영혼 지켜가며 서로가 서로를 받쳐준다면 못할 일이 없다. 오염되지 않은 사랑은 부패하지 않는다. 가난까지 보듬을 수 있는 맑은 사랑이라야 영원히 빛날 수 있다.

 

신이 준 최고의 축복은 돈이 아니라 빛나는 사랑이다. 그런 사랑을 해보아야 삶이 아름답고 풍요로워진다. 그렇기에 그 사람 더 사랑한다고 해서 미안해 할 필요 없다. 만약에 언젠가 또 다시 조기영 시인이나 운 좋게 고민정 아나운서도 만나게 된다면 그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그 사람 더 사랑해서 고맙다고. 지금도 여전히 빛나고 살아 숨쉬는 사랑을 두 눈으로 볼 수 있고 따뜻한 사랑의 온기를 느낄 수 있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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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함께한 마지막 날들
필립 톨레다노 지음, 최세희 옮김 / 저공비행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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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쁜 사람들도 / 굳센 사람들도 / 바람과 같던 사람들도 / 집에 돌아오면 아버지가 된다. / 어린 것들을 위하여 / 난로에 불을 피우고 / 그네에 작은 못을 박는 아버지가 된다. / 저녁 바람에 문을 닫고 / 낙엽을 줍는 아버지가 된다. (중략) 아버지의 눈에는 눈물이 보이지 않으나 / 아버지가 마시는 술에는 항상 / 보이지 않는 눈물이 절반이다. / 아버지는 가장 외로운 사람이다.」 (김현승의 <아버지의 마음> 중에서)

2006년 9월 4일. 사진작가 필립 톨레다노는 사랑하는 어머니를 잃었다. 설상가상으로 아흔이 넘은 아버지가 치매에 걸린 상태였다. ‘네 엄마는 어딨냐’고 끝도 없이 묻는 아버지를 모시는 것은 힘든 시간이었다. 1년여가 지난 후 저자는 아버지의 사진을 찍고 아버지와의 일상을 글로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웹사이트를 만들어 아버지와의 일상을 사진 에세이 형식으로 올렸다.


과거 영화에 출연할 정도로 멋진 외모의 소유자에다 건장한 체격의 아버지는 엄마를 애타게 찾는 아이가 되었다. 아이가 된 아버지는 세상을 떠난 어머니를 찾고 있었다. 아들은 어머니가 파리에 갔다는 식으로 둘러대지만 아버지는 잊을 때만 되면 계속 묻는다. 아들 입장에서는 짜증날 법한데 똑같은 말로 대답한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가 집요하게 똑같은 질문을 하게 되면 묵묵히 답변해주는 아버지처럼.

《집안 곳곳에서 이런 글귀들이 적힌 메모를 볼 수 있다. / 당신의 마음속을 설핏 보여주는 증거이자, 내게 숨기려 하는 불안의 흔적들. / 다들 어디 간 걸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 얼마나 혼돈스러우셨으면...》

하지만 아버지는 치매에 의한 망각 때문에 물어보는 건 아닐 것이다. 아버지도 사랑하는 존재의 상실을 느끼기 시작했다. 상실 뒤에 밀려오는 불안과 외로움의 파도는 연역하고 늙은 아버지가 감당하기에는 힘들었다. 그래도 아버지는 아들 앞에서 강인한 모습을 남기고 싶어했다. 불안한 마음을 가족 앞에서 표현하지 않으려는 아버지 특유의 고집은 여전하다. 아버지는 눈물도 말라 가슴으로 혼자 속으로 울고 있었다.


몸과 마음이 위태위태한 아버지가 얼마 남지 않은 하루하루를 연명할 수 있었던 것은 아직 사그라지지 않은 의욕과 유머 넘치는 기질 그리고 항상 자신 곁에 있는 아들이다. 한창 젊었을 때 아버지는 오페라를 듣고 그림과 조각에 능한 예술가였다. 늙은 아버지는 여전히 예술을 한다. 스케치를 하지 못하지만 풍경 감상 뒤에 그림을 구상하는 시간은 아버지에게는 안락한 시간이다. 구상하기 전에 아버지는 멋진 노을 풍경을 감상한다. 아버지는 노을 풍경으로 연작을 그리고 싶다고 밝혔다. 정정한 시절이었다면 풍경화 그리는 것쯤은 아버지에게는 식은 죽 먹기일 텐데. 세월의 노화가 야속하기만 하다.


세상에는 다양한 아버지상이 존재한다지만, 대부분의 아버지들은 늘 자식들을 마음속에 품고, 정말 열심히 살아왔고, 지금도 살고 계신다. 돈이 많든 적든, 몸이 건강하든 역하든 온전히 자신만을 위한 삶을 사는 아버지는 흔치 않다. 어깨를 짓누르는 삶의 수고를 기꺼이 견뎌내는 세상의 아버지들은 그래서 누구나 존경받기에 충분하다. 아내, 아이들 위해 척추처럼 서야 하는 삶, 때론 강인한 나무처럼 때론 들풀처럼 사셨던 서럽고 강하고 두려운 이름이 아버지다.

아버지는 강하다. 다 큰 자식 앞에서도 강한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한다. 아침마다 맨손체조를 하고 속옷 바람으로 윗몸 일으키기도 한다. 자신만의 건강 보양식이라고 할 수 있는 날계란 넣은 오렌지주스를 마신다.


《우리 아버지는 정말 재미있는 분이다. / 저 작은 쿠키들을 아버지 가슴에 올려놓았더니 이러시는 거다. / “내 찌찌 봐라!” / 누군들 웃지 않고 배길까?》

아버지는 젊었을 때보다 더 웃음이 많아졌다. 어쩌면 당신 얼굴에 비쳤을 죽음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을 보여주기 싫어서 웃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장난기 발동하면서 활짝 웃는 아버지가 좋다. 웃음은 건강의 보약이라던데 아버지에게는 정력제다. 많이 웃으면 웃을수록 생명의 힘이 다시 샘솟는다.

죽음을 가슴에 새긴 여생을 산다는 건 너무나 우울하고 힘들다. 그러나 오히려 카메라 렌즈로 바라본 아버지의 모습은 너무나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밤새 안녕한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깊이 감사한 마음이 느껴진다. 가족과의 일상적인 시간도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아들은 아버지의 모습을 작가는 사진에 담았다.


아버지란 단어를 들으면 미안함이 생긴다. 어릴 적, 부족함이 없이 자란 것은 아버지의 피와 땀이 있는 노력이고, 그 노력은 자식을 위한 마음이고, 그 누구에게도 말 못할 사연들이 모여 있었다. 세상을 살다보니 느껴지는 아버지의 마음이다. 어머니의 모성애는 그리움이 있지만, 아버지의 부성애는 미안함이 있다. 어린 나이에 보이지 못한 아버지의 삶이 나이가 들어서 알게 된다.

저자는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눈물을 훔칠 때도 있었지만 평소에는 그냥 지나칠 삶의 소소한 순간들이 너무나 소중했고 그 순간들마다 가슴 깊이 감사했다. 마지막을 생각하니 비로소 그 삶의 소중한 빛나는 순간들이 보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죽음은 모든 삶의 순간과 가치를 재정렬하고 바로 서게 했다. 가장 큰 가르침은 말과 행동을 넘어 삶과 죽음으로 가르친다고 했던가. 아버지의 삶과 죽음으로 전하신 가르침은 작가뿐만 아니라 이 책을 읽은 나 역시 남은 삶의 가장 큰 지표가 됐다. 오늘이 마지막이라면, 내일 세상을 떠난다면, 오늘을 어떻게 살 것인가….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사랑한다고 고백하고 아버지를 꼭 안아주었던 그때 그 마음으로 오늘을 살아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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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 - 개정판
피천득 지음 / 샘터사 / 200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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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때 묻지 않은 순수의 파문을 남긴 거문고 소년

 

“오월은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 한 살 청신한 얼굴이다. 하얀 손가락에 끼여 있는 비취 가락지다. 오월은 앵두와 어린 딸기의 달이요, 오월은 모란의 달이다. 그러나 오월은 무엇보다도 신록의 달이다. 전나무의 바늘잎도 연한 살결같이 보드랍다.” (34쪽)

 

오월이 되면 ‘영원한 거문고 소년’ 금아(琴兒) 피천득 선생의 수필이 생각난다. ‘밝고 맑고 순결’해야 할 오월의 세상은 찌뿌듯하지만 선생의 수필은 오랜 세월이 지났음에도 ‘밝고 맑고 순결’한 빛은 여전하다. 마음이 시끄러울 때가 있다. 세상의 아찔한 속도에 질려 중심을 잃고 흔들릴 때도 있고, 목소리 큰 사람들 속에 섞여 교만과 오만으로 가득 찬 또 다른 내가 튀어나올 때도 있고, 그날이 그날 같은 건조한 일상에 지쳐 마음이 버석거릴 때도 있다. 그렇게 세상살이에 숨이 찰 때 찾게 되는 책이 바로 <인연>이었다. 이 책을 처음 만난 것은 지금으로부터 4년 전, 한창 군 복무를 하고 있을 때였다. 책을 읽고 나면 으르렁거리던 전쟁터 같은 마음이 깊은 호흡을 한 것처럼 편안해지곤 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읽은 적만 여섯 번, 책을 꺼내 든 것은 셀 수가 없다. 그때마다 선생의 글은 내게 휴식과 위안을 줬다.

 

선생의 수필은 맑은 시냇물 위로 퐁당퐁당 물수제비를 뜨는 조약돌이다. 거문고 소년은 시냇물 근처를 지나가다가 그 곳 근처에 휴식을 취한다. 반질반질하면서도 납작한 조약돌 하나를 집어 던져본다. 물에 잠기는 듯싶다가 허공으로 튕겨 오르고, 다시 수면을 스쳐 거듭 솟구친다. 사라지는 자취 사이로 은은하게 향기가 뿌려지듯 인생의 깊은 지혜와 성찰이 깔린다. 건너편 기슭에 닿듯 가슴 깊숙이 선명한 흔적을 남긴다. 그리고 때 묻지 않은 순수로 이루어진 파문(波紋)의 흔적은 세월이 지난 지금도 마음의 수면 위에 잔잔하게 남아 있다.

 

 

 

♣ 우리 인연의 끈이 다하니 어찌할 수 없나 보오

 

“그리워하는데도 한 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아사코와 나는 세 번 만났다. 세 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 (137쪽)

 

사랑 감정에 무딘 시절엔 이 글이 그저 만남의 안타까움을 표현했거니 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고 보니, 우리네 인연에 대해서 이보다 더 정확하게 표현한 글이 또 있을까 싶다. 첫사랑은 이렇듯 누구에게나 아름다운 인연이다. 우리는 흐르는 시간만큼이나 무한한 인연과의 숙명적 관계 속에서 산다. 그 속에서 느끼는 아쉬움과 기쁨의 무게는 삶의 일부가 되고 인생이 된다. 사람을 대상으로 한 이별 중에서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을 때다. 그 충격은 삶을 송두리째 부정할 만큼 크다. 불가의 가르침에 따르면 세상사의 괴로움도 인연에서 비롯된다. 그래서 석가모니는 집착을 버리라고 가르치지만 범인(凡人)들은 족탈불급이다. 좋든 싫든 어차피 인연에서 벗어나지 못할 처지라면 좋은 인연은 간직하는 체념의 전환이 필요하지만 쉽지만 않다.

 

 

 

 

이승환의 노래 ‘당부’에 이런 가사가 있다. “우리 인연의 끈이 다하니 / 어찌할 수 없나 보오.” 딱 그 노랫말과 같은 심정이다. 나는 만남보다는 이별에 익숙하지 않다. 아는 사람이 잠시라도 내 곁을 떠날라 손 치면 가슴앓이를 시작하고 한 번 앓으면 오래 가는 편이다. 사별이 아닌 이별은 공간적인 헤어짐을 뜻한다. 그래서 더욱 가슴을 옥죈다. 살아 있으나 한 장소에 머물지 못하는 답답함. 함께할 수 있음에도 아니, 같은 하늘 아래에서 숨을 쉬고 있음에도 대면할 수 없다는 안타까움은 상대적으로 클 수밖에 없다.

 

 

 

♣ 누추하고 작은 일상 속에서 발견하는 추억과 성찰

 

‘나의 사랑하는 생활’을 읽었을 때, 딸을 바라보는 선생의 따뜻한 시선과 그녀를 아끼는 마음, 그리고 딸과 함께 하는 흐뭇한 시간과 공간이 무척 부러웠다.

 

“나는 젊은 웃음소리를 좋아한다. 다른 사람 없는 방안에서 내 귀에다 귓속말을 하는 서영이 말소리를 좋아한다. (중략) 내가 늙고 서영이가 크면 눈 내리는 서울 거리를 같이 걷고 싶다.” (191~192쪽)

 

금아 선생의 글은 지나간 사람들과 사건들에 대한 추억과 성찰에 기초하고 있다. 길지 않은 문장과 많지 않은 내용을 가지고 우리의 누추한 일상을 돌아보게 한다. 선생의 글쓰기에는 ‘수필’에서 몸소 밝힌 내용들이 그대로 체화되어 있으며, 바로 그런 이유로 글 하나 하나가 잔잔하지만 깊은 맛을 마음속으로 다가온다.

 

“수필은 마음의 산책이다. 그 속에는 인생의 향취와 여운이 숨어있는 것이다. (중략) 수필은 한가하면서도 나태하지 아니하고, 속박을 벗어나고서도 산만하지 않으며, 찬란하지 않고 우아하며, 날카롭지 않으나 산뜻한 문학이다.” (18~19쪽)

 

<인연>에서 내가 가장 눈 여겨 바라보는 대목은 두 여성에 대한 선생의 각별한 마음이다. 선생의 어머니와 딸이다. <인연>은 크게 ‘종달새’, ‘서영이’, ‘피가지변’의 세 부분으로 편집되어 있는데, 어머니와 딸에 대한 이야기는 두 번째 '서영이' 편에 들어있다. 선생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면서 매우 낯익은 느낌이 났다. 주요섭의 단편소설 <사랑 손님과 어머니>의 이야기와 흡사하다. 특히 어린 시절의 선생이 유치원에서 몰래 빠져 나와 벽장에 숨었다가 깜빡 잠들어 늦은 시각에 엄마 품에 안겨 한없이 우는 장면은 어제 본 것처럼 기억에 삼삼하다.

 

선생은 나이 들어 어머니를 회상할 때에도 반드시 ‘엄마’로 표기한다. 너무 일찍 선생을 버리고 아버지 곁으로 영영 떠나버린 어머니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과 사무치는 마음 때문일 것이다. 그런 엄마의 모습이 선생의 경우에는 아내와 겹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딸의 모습과 겹친다는 점이 특히 인상적이다. 수필 ‘엄마’에서 선생은 말한다.

 

“나는 엄마 같은 애인이 갖고 싶었다. 엄마 같은 아내를 얻고 싶었다. 이제 와서는 서영이가 엄마 같은 여성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그리고 또 하나, 나의 간절한 희망은 엄마의 아들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99-100쪽)

 

선생의 엄마와 같은 여성으로 자라기를 바랐던 그 딸이 어린 시절부터 유치원을 거쳐 대학생이 된 이후 유학생이 될 때까지의 기록이 ‘서영이’ 편에 고스란히 들어있다. 선생의 글모음을 바라보면서 현대의 건조하고 삭막한 가족관계를 새삼 반추한다.

 

 

 

♣ ‘괜찮다, 괜찮다’라고 위로해주는 고마운 수필

 

 

<인연>에서 선생은 독자들에게 그 어느 것 하나도 강제하지 않으며, 강력한 어조로 주장하거나 훈계하지 않는다. 그냥 잔잔하고 부드러운 말투로 선생의 지나온 날들과 사념과 경험을 진솔하게 말하고 있을 따름이다. 소박함과 진실함, 부드러움과 넉넉함, 단점보다는 장점을 보려는 노력, 바로 이런 덕목이 <인연>을 오늘날에도 늙지 않고 살아있는 수필의 반열에 오르도록 하는 미덕이라 생각된다. 어쩌면 이것이 수필의 힘이 그런 게 아닐까? 속도에 지친 우리들을 뒤돌아보게 하고, 삶에 지쳐 주저앉고 싶을 때 ‘괜찮다, 괜찮다’라고 위로해 주고, 어딘가 숨어 있을 삶의 보석을 찾아주는 게 바로 수필이다. 생각날 때 읽게 되는 수필집 ‘인연’은 빛이 바랬다. 하지만, 그 안에 들어있는 수많은 문장들은 세월이 갈수록 더 빛이 난다. 그래서 더욱 고마운 마음에 ‘영원한 거문고 소년’이 생각난다. 선생이 이 세상과 처음으로 ‘인연’을 맺었고, 끝으로 ‘인연’을 조용히 접은 그 날(5월 25일은 금아 선생의 생일이자 영면일) 이 열흘 남짓 정도 남았는데도 불현듯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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