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 - 개정판
피천득 지음 / 샘터사 / 2002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 때 묻지 않은 순수의 파문을 남긴 거문고 소년

 

“오월은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 한 살 청신한 얼굴이다. 하얀 손가락에 끼여 있는 비취 가락지다. 오월은 앵두와 어린 딸기의 달이요, 오월은 모란의 달이다. 그러나 오월은 무엇보다도 신록의 달이다. 전나무의 바늘잎도 연한 살결같이 보드랍다.” (34쪽)

 

오월이 되면 ‘영원한 거문고 소년’ 금아(琴兒) 피천득 선생의 수필이 생각난다. ‘밝고 맑고 순결’해야 할 오월의 세상은 찌뿌듯하지만 선생의 수필은 오랜 세월이 지났음에도 ‘밝고 맑고 순결’한 빛은 여전하다. 마음이 시끄러울 때가 있다. 세상의 아찔한 속도에 질려 중심을 잃고 흔들릴 때도 있고, 목소리 큰 사람들 속에 섞여 교만과 오만으로 가득 찬 또 다른 내가 튀어나올 때도 있고, 그날이 그날 같은 건조한 일상에 지쳐 마음이 버석거릴 때도 있다. 그렇게 세상살이에 숨이 찰 때 찾게 되는 책이 바로 <인연>이었다. 이 책을 처음 만난 것은 지금으로부터 4년 전, 한창 군 복무를 하고 있을 때였다. 책을 읽고 나면 으르렁거리던 전쟁터 같은 마음이 깊은 호흡을 한 것처럼 편안해지곤 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읽은 적만 여섯 번, 책을 꺼내 든 것은 셀 수가 없다. 그때마다 선생의 글은 내게 휴식과 위안을 줬다.

 

선생의 수필은 맑은 시냇물 위로 퐁당퐁당 물수제비를 뜨는 조약돌이다. 거문고 소년은 시냇물 근처를 지나가다가 그 곳 근처에 휴식을 취한다. 반질반질하면서도 납작한 조약돌 하나를 집어 던져본다. 물에 잠기는 듯싶다가 허공으로 튕겨 오르고, 다시 수면을 스쳐 거듭 솟구친다. 사라지는 자취 사이로 은은하게 향기가 뿌려지듯 인생의 깊은 지혜와 성찰이 깔린다. 건너편 기슭에 닿듯 가슴 깊숙이 선명한 흔적을 남긴다. 그리고 때 묻지 않은 순수로 이루어진 파문(波紋)의 흔적은 세월이 지난 지금도 마음의 수면 위에 잔잔하게 남아 있다.

 

 

 

♣ 우리 인연의 끈이 다하니 어찌할 수 없나 보오

 

“그리워하는데도 한 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아사코와 나는 세 번 만났다. 세 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 (137쪽)

 

사랑 감정에 무딘 시절엔 이 글이 그저 만남의 안타까움을 표현했거니 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고 보니, 우리네 인연에 대해서 이보다 더 정확하게 표현한 글이 또 있을까 싶다. 첫사랑은 이렇듯 누구에게나 아름다운 인연이다. 우리는 흐르는 시간만큼이나 무한한 인연과의 숙명적 관계 속에서 산다. 그 속에서 느끼는 아쉬움과 기쁨의 무게는 삶의 일부가 되고 인생이 된다. 사람을 대상으로 한 이별 중에서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을 때다. 그 충격은 삶을 송두리째 부정할 만큼 크다. 불가의 가르침에 따르면 세상사의 괴로움도 인연에서 비롯된다. 그래서 석가모니는 집착을 버리라고 가르치지만 범인(凡人)들은 족탈불급이다. 좋든 싫든 어차피 인연에서 벗어나지 못할 처지라면 좋은 인연은 간직하는 체념의 전환이 필요하지만 쉽지만 않다.

 

 

 

 

이승환의 노래 ‘당부’에 이런 가사가 있다. “우리 인연의 끈이 다하니 / 어찌할 수 없나 보오.” 딱 그 노랫말과 같은 심정이다. 나는 만남보다는 이별에 익숙하지 않다. 아는 사람이 잠시라도 내 곁을 떠날라 손 치면 가슴앓이를 시작하고 한 번 앓으면 오래 가는 편이다. 사별이 아닌 이별은 공간적인 헤어짐을 뜻한다. 그래서 더욱 가슴을 옥죈다. 살아 있으나 한 장소에 머물지 못하는 답답함. 함께할 수 있음에도 아니, 같은 하늘 아래에서 숨을 쉬고 있음에도 대면할 수 없다는 안타까움은 상대적으로 클 수밖에 없다.

 

 

 

♣ 누추하고 작은 일상 속에서 발견하는 추억과 성찰

 

‘나의 사랑하는 생활’을 읽었을 때, 딸을 바라보는 선생의 따뜻한 시선과 그녀를 아끼는 마음, 그리고 딸과 함께 하는 흐뭇한 시간과 공간이 무척 부러웠다.

 

“나는 젊은 웃음소리를 좋아한다. 다른 사람 없는 방안에서 내 귀에다 귓속말을 하는 서영이 말소리를 좋아한다. (중략) 내가 늙고 서영이가 크면 눈 내리는 서울 거리를 같이 걷고 싶다.” (191~192쪽)

 

금아 선생의 글은 지나간 사람들과 사건들에 대한 추억과 성찰에 기초하고 있다. 길지 않은 문장과 많지 않은 내용을 가지고 우리의 누추한 일상을 돌아보게 한다. 선생의 글쓰기에는 ‘수필’에서 몸소 밝힌 내용들이 그대로 체화되어 있으며, 바로 그런 이유로 글 하나 하나가 잔잔하지만 깊은 맛을 마음속으로 다가온다.

 

“수필은 마음의 산책이다. 그 속에는 인생의 향취와 여운이 숨어있는 것이다. (중략) 수필은 한가하면서도 나태하지 아니하고, 속박을 벗어나고서도 산만하지 않으며, 찬란하지 않고 우아하며, 날카롭지 않으나 산뜻한 문학이다.” (18~19쪽)

 

<인연>에서 내가 가장 눈 여겨 바라보는 대목은 두 여성에 대한 선생의 각별한 마음이다. 선생의 어머니와 딸이다. <인연>은 크게 ‘종달새’, ‘서영이’, ‘피가지변’의 세 부분으로 편집되어 있는데, 어머니와 딸에 대한 이야기는 두 번째 '서영이' 편에 들어있다. 선생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면서 매우 낯익은 느낌이 났다. 주요섭의 단편소설 <사랑 손님과 어머니>의 이야기와 흡사하다. 특히 어린 시절의 선생이 유치원에서 몰래 빠져 나와 벽장에 숨었다가 깜빡 잠들어 늦은 시각에 엄마 품에 안겨 한없이 우는 장면은 어제 본 것처럼 기억에 삼삼하다.

 

선생은 나이 들어 어머니를 회상할 때에도 반드시 ‘엄마’로 표기한다. 너무 일찍 선생을 버리고 아버지 곁으로 영영 떠나버린 어머니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과 사무치는 마음 때문일 것이다. 그런 엄마의 모습이 선생의 경우에는 아내와 겹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딸의 모습과 겹친다는 점이 특히 인상적이다. 수필 ‘엄마’에서 선생은 말한다.

 

“나는 엄마 같은 애인이 갖고 싶었다. 엄마 같은 아내를 얻고 싶었다. 이제 와서는 서영이가 엄마 같은 여성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그리고 또 하나, 나의 간절한 희망은 엄마의 아들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99-100쪽)

 

선생의 엄마와 같은 여성으로 자라기를 바랐던 그 딸이 어린 시절부터 유치원을 거쳐 대학생이 된 이후 유학생이 될 때까지의 기록이 ‘서영이’ 편에 고스란히 들어있다. 선생의 글모음을 바라보면서 현대의 건조하고 삭막한 가족관계를 새삼 반추한다.

 

 

 

♣ ‘괜찮다, 괜찮다’라고 위로해주는 고마운 수필

 

 

<인연>에서 선생은 독자들에게 그 어느 것 하나도 강제하지 않으며, 강력한 어조로 주장하거나 훈계하지 않는다. 그냥 잔잔하고 부드러운 말투로 선생의 지나온 날들과 사념과 경험을 진솔하게 말하고 있을 따름이다. 소박함과 진실함, 부드러움과 넉넉함, 단점보다는 장점을 보려는 노력, 바로 이런 덕목이 <인연>을 오늘날에도 늙지 않고 살아있는 수필의 반열에 오르도록 하는 미덕이라 생각된다. 어쩌면 이것이 수필의 힘이 그런 게 아닐까? 속도에 지친 우리들을 뒤돌아보게 하고, 삶에 지쳐 주저앉고 싶을 때 ‘괜찮다, 괜찮다’라고 위로해 주고, 어딘가 숨어 있을 삶의 보석을 찾아주는 게 바로 수필이다. 생각날 때 읽게 되는 수필집 ‘인연’은 빛이 바랬다. 하지만, 그 안에 들어있는 수많은 문장들은 세월이 갈수록 더 빛이 난다. 그래서 더욱 고마운 마음에 ‘영원한 거문고 소년’이 생각난다. 선생이 이 세상과 처음으로 ‘인연’을 맺었고, 끝으로 ‘인연’을 조용히 접은 그 날(5월 25일은 금아 선생의 생일이자 영면일) 이 열흘 남짓 정도 남았는데도 불현듯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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