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근선망과 내 안의 나쁜 감정들 - ‘명색이 페미니스트’ 마리 루티의 신랄하고 유쾌한 젠더 정신분석
마리 루티 지음, 정소망 옮김 / 앨피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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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만족을 얻는 방법이나 대상과 관계를 맺는 방식에서 제각각이다. 그런데 그 방식이 자아 발달의 초기 단계에 머무는 경우가 있다. 프로이트(Freud)는 그 초기 단계를 구강기, 항문기, 남근기로 나눴다(나머지 두 단계는 잠복기, 생식기). 초기의 세 단계가 인간의 성격 형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그러나 이 단계가 모두 성공적으로 척척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 각 발달 단계에서 욕구가 과도하게 충족되거나 억압되면 고착(fixation)이 발생한다. 프로이트는 리비도(libido), 즉 성 충동을 욕망의 실체로 규정했다. 하지만 욕망을 특정 대상에 고착시키게 되면 욕망이 불안을 증식시켜 인간을 집어삼킨다.

 

프로이트가 눈여겨본 단계는 남근기다. 남성 아동은 이성인 어머니에 대한 관심, 동성인 아버지에 대한 적대감을 갖게 되는데, 거세 불안(castration anxiety)을 느끼게 된다. 이때 고착이 발생하면 남근 중심적 성격을 갖게 된다고 한다. 거세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남성 아동은 어머니가 인정하는 남성성을 갖기 위해 노력한다. 힘을 과시하고 숭배하며, 정복욕에 사로잡힌다. 자신에게 남근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여성 아동은 남근을 선망하게 되고(penis envy), 남근을 가진 아버지를 애정의 대상으로 생각한다. 이때 여성 아동은 남근이 없는 것에 열등감을 느끼고, 신체적인 결핍 상태를 어머니의 탓으로 여긴다. 프로이트에게 남근은 생물학적 성기인 페니스(penis)라면, 라캉(Lacan)에게 남근은 상징적인 성기인 팔루스(phallus). 팔루스는 남성이 사회적으로 가질 수 있는 모든 권력을 상징한다. ‘라는 주체는 팔루스를 가지려는 욕망을 느낀다. 그러므로 욕망이란 남근이 없는 상태, 곧 결여를 가리킨다.

 

페미니즘 사상에서 프로이트와 라캉의 정신분석학이 차지하는 비중은 적지 않다. 그러나 남근을 기준으로 자아 발달 과정을 설명하는 그들의 이론은 종종 거부감을 불러일으킨다. 페미니스트 인류학자 게일 루빈(Gayle Rubin)은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이 여성 억압을 남근 중심으로 환원하여 남근 선망을 재생산한다고 비판한다. 젠더와 섹슈얼리티를 연구한 영문학자 마리 루티(Mari Ruti)도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에 거부감을 가진 페미니스트였다. 그랬던 그녀가 프로이트를 조금 너그럽게 바라보면서 남근 선망을 새롭게 해석한다. 그녀의 주장에 따르면 남근 선망은 여성들이 느끼는 불만족의 초기 징후이다(6). 그러므로 프로이트는 남근 자체를 선망의 대상인 양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이성애 가부장제(heteropatriarchy) 사회의 문제점을 감지했다고 볼 수 있다.

 

마리 루티는 자신의 책 남근 선망과 내 안의 나쁜 감정들에서 남근 선망을 포함해 이성애 가부장제 사회가 만든 이분법을 비판한다. 남성은 남근을 가진 존재로, 여성은 남근을 가지지 못한(남근이 없는) 존재로 보는 경직된 이분법적 사고는 여성과 성 소수자를 차별하는 일련의 행위와 관련이 있다. 이 책의 제목에 있는 나쁜 감정들(bad feelings)이란 남근 중심주의에 눌리거나 찢기면서 일어나는 정서 상태를 말한다. 우울, 불안, 자신감 결여, 자기 비하 등의 나쁜 감정들은 충족되지 못한 욕망이나 열등감으로부터 생겨난다. 나쁜 감정은 여성만 느끼는 건 아니다. 남성도 나쁜 감정의 늪에 쉽게 빠지며 이성애 가부장제 사회가 옹호한 남근 중심주의의 그늘에 벗어나지 못한다. 밖에서 소심하고 나약해 보이는 남성도 성폭력의 가해자가 될 수 있다. 그들이 너무 착해서여성을 위협하는 말과 행동을 하지 않을 거라고 보는 건 편견이며 엄청난 착각이다. 그들도 자신보다 약한 자를 괴롭히면서 성취감을 느낀다. 약한 자에게는 강하고, 강한 자에는 약하다. 강한 척하는 남성들의 모습은 자신의 취약한 점을 숨기면서 동시에 권력을 과시하는 거짓 위장(27)이다.

 

루티는 일상에 굳건히 뿌리박고 있는 젠더 이분법을 고집하는 이성애 가부장제를 거부하는 라캉의 이론을 인용하여 자아를 완벽하게 조정하는 절대적 주체가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실현되기 어려운 미래를 꿈꾸도록 부추기는 좋은 삶에 대한 환상을 비판한다. 승자 독식의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필연적으로 양산되는 다수의 소외당한 자는 희망이 보이지 않는 자신의 암울한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 자기 계발에 몰입한다. 이성애 가부장제와 신자유주의가 합작(collaboration) 형태로 이루어진 사회 속에 있는 개인은 남과 비교하면서 자신의 결핍된 상태나 신체적 결함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돈 많고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 뛰어난 외모를 가진 사람, 행복하게 잘살고 있는 부부를 보면 부러워하는 마음이 생기는 건 당연하다. , 학벌, 결혼 등 행복한 삶의 필요조건으로 알려진 것들은 신자유주의 사회의 팔루스다. 이 팔루스들은 욕망의 궁극적 대상이 되고, 개인은 가질 수 없는 팔루스를 욕망한다. 루티가 문제 삼은 팔루스는 신자유주의의 자본주의적 욕망이다.

 

고대 로마인들은 남근 상을 파스키눔(fascinum)이라고 불렀는데 이는 번영, 권력과 더불어 행복의 상징이었다. 지금도 우리 주변 곳곳에 파스키눔이 있다. ‘가진 자만의 특권으로서 말이다. 우리가 신자유주의 시대의 파스키눔을 무너뜨릴 수 있는 방법은 없어 보인다. 우리는 그토록 싫어하는 신자유주의 문화에 연루되어 있기 때문이다(272). 루티는 나쁜 감정들을 불러일으키는 신자유주의적 파시눔을 피해야한다고 주장하지만, '신자유주의에 맞서 저항하자'는 식의 뻔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는다. 그녀는 라캉을 인용하면서 신자유주의 문화가 만들어내는 실존적인 나쁜 감정들을 없앨 방법이 없다고 말한다. 아주 현실적인 해결책이다. 신자유주의 체제에 굴복하는 태도로 보일 수 있지만, 채워도 끝이 없는 욕망을 완전히 없애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분명히 좋은 시도이긴 하나 신자유주의 문화에 완전히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칠수록 스트레스는 더 늘어난다. “행복해야 한다는 행복지상주의는 그 자체로 불만을 낳는다. 행복이 주관적인 것, 실체가 명확하지 않은 것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행복할 수 있다고 믿으며 행복을 추구한다. 행복이 허상임을 깨달을 때, 헛된 욕망에 매달린 집착에서 벗어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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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전인 월요일에 경계 없는 페미니즘함께 읽기를 끝냈다(아쉽게도 그날 나는 개인 사정이 있어서 마지막 모임에 참석하지 못했다). 이 한 권의 책을 읽는 데 걸리는 기간은 4주였다.

 

 

 

 

 

 

 

 

 

 

 

 

 

 

 

 

   

 

* [레드스타킹 추천 도서] 찬드라 탈파드 모한티 경계 없는 페미니즘(여이연, 2005)

    

 

     

레드스타킹 모임 분위기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우리가 일사천리로 책을 읽는 것 같다고 생각하지 싶다.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레드스타킹 멤버 대부분은 책을 읽을 때 밑줄을 긋고 책의 여백에 필기한다. 그분들은 나보다 책을 아주 꼼꼼하게 읽는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었던 책 내용만 언급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가 되지 않는 문장, 본인이 동의하기 힘든 저자의 입장도 언급한다. 여러 사람이 똑같은 책을 읽는다고 해서 무조건 똑같은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니다. 책에 대한 평가는 제각각 다르게 나타날 수있다.

    

 

 

 

 

 

 

 

 

 

 

 

 

 

* [레드스타킹 추천 도서] 케이트 밀렛 성 정치학(이후, 2009)

* [레드스타킹 추천 도서] 미셸 푸코 성의 역사 1(나남출판, 2010)

    

 

 

아무리 뛰어난 페미니즘의 고전이라고 해도 냉정할 정도로 박하게 평가하는 사람도 있다. 내가 그런 유형의 사람이다. 이를테면 나와 몇몇 멤버는 케이트 밀렛(Kate Millett)성 정치학을 비판적으로 읽었고, 미셸 푸코(Michel Foucault)성의 역사1을 읽었을 때도 푸코의 한계를 지적한 멤버들이 있었다.

    

 

 

 

 

 

 

 

 

 

 

 

 

 

 

* [2018년 레드스타킹 추천 도서] 패트리샤 힐 콜린스 흑인 페미니즘 사상(여이연, 2009)

* 벨 훅스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문학동네, 2017)

*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창비, 2016)

    

 

 

서구 중심 페미니즘을 비판하는 책을 주로 펴내는 여성학 전문 출판사 여성문화이론연구소(줄여서 여이연’)도 비판의 칼날을 피하지 못한다. 작년에 여이연 출판사에서 나온 흑인 페미니즘 사상을 읽었을 때 휴머니즘으로 귀결되고 마는 저자의 입장에 이의를 제기한 의견이 있었다. 사실 벨 훅스(Bell Hooks)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Chimamanda Ngozi Adichie)도 그렇고, 몇몇 흑인 여성주의자는 여성을 위한 페미니즘을 넘어 남성을 포용하는 휴머니즘을 얘기한다.

 

 

 

 

 

 

 

 

 

 

 

 

 

 

* 오세라비 《그 페미니즘은 틀렸다》 (좁쌀한알, 2018)

 

 

 

나도 남성을 위한 페미니즘에 동의한다. 그러나 문제는 반 페미니스트들(자신을 여성주의자 또는 페미니스트라고 말하기도 한다)페미니즘은 휴머니즘이다라는 수사를 왜곡하면서 악용하고 있는 점이다. 그들은 페미니즘을 벗어나서 휴머니즘을 추구해야 한다고 말하는데, 그들의 논리 저변에는 페미니즘 자체를 쓸모없는 사상으로 만들려는 의식이 깔려 있다. 또 그들이 말하는 휴머니즘은 남성과 여성 모두 연대하면서 인간다움을 추구하는 것이다. 남녀 모두를 위한 휴머니즘은 인본주의라고 말은 하면서도 젠더 이분법에 포함되지 않는 성소수자를 배제한다. 흑인 여성운동가들이 추구하는 휴머니즘은 인종차별뿐만 아니라 젠더와 섹슈얼리티에 대한 억압을 극복하여 모든 사람이 인간답게 사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휴머니즘과 연관 지으려는 페미니즘은 어떤 맥락에 따라 달리 해석될 수 있다. ‘남성을 위한 페미니즘을 비판한다고 해서 남성을 혐오하자는 것이 아니다. 남성을 위한 페미니즘이 틀렸다고 주장하는 것도 아니다. 시대를 앞서간 페미니즘 이론도 시간이 지나면 모순과 한계를 드러낸다. 페미니즘 이론은 죽을 때까지 믿어야 하는 절대적인 신념이 될 수 없다. 아니, 그렇게 되어선 안 된다. 변치 않는 신념으로 자리 잡은 페미니즘 이론은 독단(dogma)에 빠진다. 경계 없는 페미니즘101쪽에 페미니스트라면 깊이 새겨들어야 할 의미 있는 문장이 나온다. 모순이 전혀 없는, 혹은 순수한페미니즘은 가능하지 않다.”

 

 

여이연에 나온 책들은 읽을 만한 가치가 있다. 그러나 만듦새가 조악한 점이 아쉽다. 여이연에 나온 책들을 읽어보면 가독성이 떨어지는 번역문, 사소한 오류나 오자를 발견할 수 있다.

 

 

 

 

 

  

 

 

 

내가 도서관에서 빌려 읽은 경계 없는 페미니즘13쇄이다. 레드스타킹 멤버들이 가지고 있는 책 모두 13쇄이다. 그런데 내 책은 파본이다. 303~304쪽과 320~321쪽 본문 내용이 중복된 채 인쇄되어 있다.

 

경계 없는 페미니즘97쪽에 오자가 있다. 중앙아메리카 카리브 해 동남쪽에 있는 나라인 트리니다드 토바고(Trinidad and Tobago)트리니다드 토바고로 표기되어 있다.

    

 

 

 

 

 

 

 

 

 

 

 

 

 

  

* [절판] 태혜숙 탈식민주의 페미니즘(여이연, 2001)

* [절판] 가야트리 스피박 다른 세상에서(여이연, 2008)

 

    

 

경계 없는 페미니즘탈식민주의 사상에 기반한 페미니즘을 다룬 책이다. 탈식민주의 사상에 대한 이론적 배경 지식이 있으면 누구나 충분히 읽을 수 있다. 여이연 출판사가 처음으로 만든 책이 탈식민주의 페미니즘이다. 탈식민주의 페미니즘가야트리 스피박(Gayatri Spivak)다른 세상에서》(번역본 초판의 출판 연도는 2003년)경계 없는 페미니즘, 흑인 페미니즘 사상으로 이어지는 출판물의 시조라 할 수 있다.

 

경계 없는 페미니즘의 저자인 모한티(Chandra Talpade Mohanty)1986년에 서구의 시선 아래서(Under Western Eyes)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한다. 모한티는 이 글을 통해 서구 페미니즘 담론이 재현하는 3세계 여성과 페미니즘방식을 비판한다. 그녀는 백인 여성의 경험을 강조하는 1세계 페미니즘에 문화제국주의가 스며들어 있다고 주장한다. 경계 없는 페미니즘의 마지막 장은 16년 뒤에 저자가 서구의 시선 아래서를 새롭게 검토하는 글이다. 일종의 보론(補論)인 셈인데 모한티는 이 글에서 국가라는 경계를 넘어 탈식민주의와 반자본주의(그리고 이성애중심주의)에 대항하는 초국적 페미니즘의 필요성을 재차 강조한다.

 

    

 

 

 

 

 

 

 

 

 

 

 

 

 

 

 

* 프라모드 K. 네이어 프란츠 파농, 새로운 인간(앨피, 2015)

* 이경원 파농(한길사, 2015)

* [품절] 알리스 셰르키 프란츠 파농(실천문학사, 2013)

    

 

 

역시 여이연 출판사에서 나온 책이 아니라고 할까 봐 탈식민주의 페미니즘에도 오류가 있다. 서구의 시선 아래서의 발표 연도는 ‘1985으로 적혀 있다(9). 이 논문은 1986에 발표되었다. 반제국주의(anti-imperialism)‘anti-colonialism(반식민주의)으로 잘못 표기되어 있다(32). 탈식민주의 이론가인 프란츠 파농(Frantz Fanon)알제리 지식인이라고 소개했는데(35), 이렇게 대충 소개하면 독자들은 그를 알제리에서 태어난 인물로 오해하기 쉽다. 파농은 프랑스령 마르티니크 섬에서 태어나 자랐으며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알제리로 건너가 알제리 독립 운동에 헌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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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사는 남자의 방에는 퀴퀴한 홀아비 냄새가 진동한다. 내 방도 예외가 아니다. 냄새를 없애려고 실내 방향제와 섬유 탈취제를 뿌려봤지만, 별 소용이 없다. 몸에 나는 체취에 굉장히 많이 신경 쓰는 편이다. 친구, 그것도 절친한 벗으로부터 ‘홀아비 냄새가 난다’라고 농담 섞인 핀잔을 들은 적이 있다. 그 말을 듣고 난 이후부터 한동안 대인관계 형성에 어려움을 느꼈고, 자신감이 떨어졌다.

 

 

 

 

 

 

 

 

 

 

 

 

 

 

 

 

 

 

 

* 피에르 라즐로 《냄새란 무엇인가?》 (민음인, 2006)

* [품절] 마르코 라울란트 《호르몬은 왜?》 (프로네시스, 2007)

 

 

 

남자한테서 풍기는 체취의 가장 기본적인 원인은 땀이다. 특히 겨드랑이처럼 체모가 많은 부위에 ‘아포크린(apocrine)’이라는 땀샘이 있다. 아포크린에 나오는 땀이 ‘암내’의 원인이다. 남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testosterone)이 분해되면 특이한 향이 나는 안드로스테롤(androsterol)과 안드로스테논(androstenone)이라는 화합물이 만들어진다. 안드로스테롤은 남자의 모낭 끝부분, 그중에서도 겨드랑이와 음모에 집중적으로 분포돼 있으며 사향 냄새를 풍긴다. 안드로스테논은 남성 페로몬의 일종으로, 땀으로 체외에 배출된다. 피부에 사는 세균과 만나면 지린 오줌 냄새 비슷한 악취가 생긴다. 여성의 땀 속에도 안드로스테논이 들어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약 30%에 이르는 성인은 안드로스테논이 유발한 냄새를 느끼지 못하며, 사람에 따라서는 바닐라 향기로 느끼기도 한다.

 

 

 

 

 

 

 

 

 

 

 

 

 

 

 

 

 

 

 

* 알랭 코르뱅 《악취와 향기》 (오롯, 2019)

* [품절] 마크 스미스 《감각의 역사》 (수북, 2010)

* [절판] 콘스탄스 클라센 외 《아로마: 냄새의 문화사》 (현실문화, 2002)

 

 

 

악취와 향기를 구분하는 기준은 사회문화적 분위기와 밀접하게 관련이 있다. 후각은 고대로부터 노예 노동, 식민지, 인종과 계급 착취체제가 정착되는 시기까지 중요한 구실을 했다. ‘타자’를 정하고, 그들을 특정 짓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면서, 후각은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을 철저하게 나누는 근거가 됐다.

 

 

 

 

 

 

 

 

 

 

 

 

 

 

 

 

 

 

 

 

* 파트리크 쥐스킨트 《향수》 (열린책들)

 

 

 

파트리크 쥐스킨트(Patrick Suskind)의 소설 《향수》에 나오는 주인공은 후각에 민감하다. 이 소설에서 그는 ‘변태’ 또는 ‘타락한 하층계급’으로 묘사되어 있다. 실제로 근대 유럽인들은 사회적으로 주변부에 속하는 사람들에게서는 악취가 나고, 교양인들에게서는 향기가 난다고 생각했다. 《향수》는 프랑스의 역사학자 알랭 코르뱅(Alain Corbin)《악취와 향기》에 영감을 받아서 쓴 소설이다. 《악취와 향기》는 후각이 역사적이지만, 보편적이지 않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악취와 향기에 대한 학자와 대중의 반응은 특정한 사회 · 역사적 정황에 따라 달라졌다. 《악취와 향기》는 감각이 타자를 어떻게 규정짓는지를 재조명하는 책이다. 예전에도 《악취와 향기》와 비슷한 주제를 다룬 몇몇 책들이 나온 적이 있다. 《감각의 역사》후각을 포함한 ‘오감’이 권위와 서열의 기준으로 자리 잡는 과정에 주목한 책이다. 《아로마: 냄새의 문화사》는 후각이 서구 문화와 비(非)서구 문화에서 어떻게 구성되고, 억압되는지를 흥미롭게 보여준다. “냄새는 정치적인 것이고, 권력이다” 이 세 권의 책을 관통하는 공통의 주제이다.

 

 

 

 

 

 

 

 

 

 

 

 

 

 

 

 

 

 

* 엘리즈 티에보 《이것은 나의 피》 (클, 2018)

* 박이은실 《월경의 정치학》 (동녘, 2015)

* 마사 C. 누스바움 《혐오와 수치심》 (민음사, 2015)

 

 

 

 

 

 

 

 

 

 

 

 

 

 

 

 

 

 

* [품절] 메리 더글러스 《순수와 위험》 (현대미학사, 1997)

* 방원일 《메리 더글러스》 (커뮤니케이션북스, 2018)

 

 

 

후각에 의존한 인간의 평가는 인종 및 계급 문제뿐만 아니라 ‘젠더 문제’와도 연결되어 있다. 과거에 남성의 정액은 남녀의 성적 욕망을 부추기고, 생명체 전체에 영향을 주는 ‘생명의 본질’로 인식 받았다. 정액은 비릿한 밤꽃 냄새가 난다. 18세기 학자들은 활동력이 왕성한 남자일수록 정액 특유의 ‘메슥거리는 냄새’가 심해진다고 생각했다. 반면 고자한테는 정액 냄새가 나지 않는다고 했다. 학자들은 남성의 정액이 품고 있는 ‘영기(靈氣)’를 강조했다.

 

남성 학자들은 여성의 월경혈을 몸에 빠져나오는 ‘나쁜 피’로 생각했고, 그것을 성스러운 것을 오염시키는 위험한 물질로 취급했다. 영국의 문화인류학자 메리 더글러스(Mary Douglas)가 지적했듯이 대부분의 문화권에서 체액은 몸 안에 있을 때는 아무렇지도 않지만, 밖으로 배출되는 순간 불결하거나 위험한 것으로 규정된다. 우리는 우리 몸이 냄새나고, 불결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한다. 스스로가 가지고 있는 ‘몸의 불완전함’을 은폐하려면 ‘불결한 존재’로 규정할 수 있는 또 다른 대상, 즉 타자가 필요하다. 미국의 철학자 마사 누스바움(Martha Nussbaum)의 주장처럼 ‘불결한 타자’에 오랫동안 장애인, 성소수자, 유색인종, 그리고 여성이 자리하고 있었다.

 

 

 

 

 

 

 

 

 

 

 

 

 

 

 

 

 

 

* 이화여자대학교 아시아여성학센터 《우리들의 목소리 1》 (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2015)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월경과 월경혈은 금기와 억압의 대상이었다. 유대인들은 남성 할례의 피를 성스럽다고 생각하는 반면 월경혈은 끔찍한 것이라고 여겼다. 네팔에 거주하는 여성들은 생리 기간에 격리 생활을 해야 한다. 네팔 서부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월경을 ‘차우파디(chhaupadi)라고 부른다. 월경 중인 여성은 자기 집에 들어갈 수 없고, 우유와 유제품을 먹지 못한다. 종교와 관련된 건물 안에도 들어가지 못한다. 네팔 사람들은 ‘월경 금기’를 믿는다. 그들에게 월경은 음식을 부패하게 만드는 원인이고, 신을 모독하는 현상이다. 월경 중인 여성은 집에서 멀리 떨어진 움막 속에 혼자 산다. 그녀는 월경기가 끝날 때까지 소금 묻힌 빵으로 연명하면서 움막 안에 지내야 한다. 네팔 정부는 여성을 차별하는 악습을 금하라는 명령을 내렸지만, 여전히 월경 금기를 믿는 네팔 사람들이 많다. 네팔의 젊은 남녀들로 구성된 ‘사마비카스 네팔(Samabikas Nepal)이라는 사회단체는 차우파디 전통을 폐지하는 일이 앞장서고 있으며 ‘차우파디 없는 지역 만들기’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냄새를 맡을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냄새를 맡지 못하면 음식 맛도 느낄 수 없고 다른 감각도 둔해져 삶이 울적해진다. 그렇지만 ‘냄새에 스며든 권력’은 누군가에게는 저주가 된다. ‘냄새에 스며든 권력’을 가진 자는 자기보다 아래인 타자를 ‘불결한 냄새가 나는 존재’로 규정하여 자신의 우월한 지위를 확인한다. 이 과정에서 타자에 대한 혐오와 수치심이 확산한다. 냄새에 대한 부끄러움은 내 몫이 아니다. 냄새가 조금 난다고 해서 스스로 ‘죄인’ 취급하지 말자. ‘죄인’이 되는 순간, 누군가에게 종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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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09 15: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9-04-10 18:44   좋아요 0 | URL
겨울에 샤워를 자주 안 합니다. 2주에 한 번씩 합니다. 그래서 겨울에 유독 홀아비 냄새가 자주 나는 것 같습니다. 날씨가 좋아지면 샤워를 자주 해야겠어요.. ^^;;

syo 2019-04-09 2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홀아비냄새가 난다˝는 말은, 방에서 난다는 게 아니라 바깥에서 만났는데 들은 거라면 ‘솔로 생활 청산하고 애인 만들어라/결혼해라‘로 번역되는 대사 아닌가요..... 진짜 난다는 뜻이었단 말인가....

cyrus 2019-04-10 18:45   좋아요 0 | URL
syo님의 말씀처럼, 말 한 마디에 두 가지 의미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ㅎㅎㅎ
 

 

 

이번 주 목요일인 11일에 낙태죄(형법 269)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나온다. 헌법재판소는 작년 2월부터 낙태죄 처벌 조항이 위헌인지 확인해 달라는 헌법소원을 심리해왔다. 인공 임신중절(낙태)을 형법으로 금지한다는 것은 시민의 재생산권(reproduction rights), 즉 임신과 출산 전 영역을 국가가 통제하고 관리해야 한다는 입장을 반영하는 것이다. 낙태죄 폐지를 찬성하는 사람들은 재생산권이 그 당사자인 개인, 여성에게 있다고 주장한다. 재생산이란 임신, 출산, 양육 등 가사노동을 하는 여성의 활동이다. 재생산권은 말 그대로 여성 자신이 재생산 여부를 주체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권리. 성관계, 임신, 피임, 출산 그리고 임신 중절 등이 이 권리에 포함된다.

 

임신중절은 형법상으로 1953년부터 불법이다. 다만 1973년부터 모자보건법(母子保健法, 141)에 의해 임산부 또는 그 배우자가 대통령령으로 정한 우생학적 ·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 질환, 혹은 전염성 질환이 있는 경우, 강간 혹은 근친상간에 의해 임신한 경우, 마지막으로 임산부 건강에 위험이 있을 때 제한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여러 가지 사회경제적인 이유(원치 않는 임신, 양육에 대한 경제적 부담감 등)로 임신중절을 하려는 행위는 허용하지 않아서 대부분의 임신중절은 법을 어기면서 행해진다. 무허가 임신중절 시술은 시술자 여성의 건강을 해치거나 목숨을 잃게 만드는 원인이다.

 

2010년에 임신중절 근절 운동을 주도하는 산부인과 의사들의 모임인 프로 라이프(pro-life) 의사회가 불법 낙태 시술을 한 산부인과 병원 3곳을 고발한 일이 있었다. 프로 라이프는 태아의 생명을 중시하여 낙태 범죄화를 옹호하는 입장이다. 임신중절을 찬성하고 여성의 선택권을 중시하는 입장은 프로 초이스(pro-choice)이다. 미국에서는 오래전부터 프로 라이프 대 프로 초이스논쟁이 사회적으로 중요한 이슈가 돼 왔다.

 

 

 

 

 

 

 

지난달 마지막 날인 일요일(331)에 대구에서 열린 페미니즘 이어 달리기 14탄의 강연 주제는 낙태죄 폐지에 관한 것이었다. 이 날 강연자는 녹색병원 산부인과 과장인 윤정원 님이다.

 

 

 

 

 

 

 

 

 

 

 

 

 

 

 

 

 

 

* ‘성과 재생산 포럼기획 배틀그라운드(후마니타스, 2018)

* 이은의, 윤정원, 은유, 박선민, 오수경 불편할 준비(시사인북, 2018)

 

    

 

사실 지금도 그렇지만, 우리나라 낙태죄 폐지 운동은 모자보건법의 낙태죄 적용 예외 규정을 사회경제적인 이유에 의한 인공 임신중절로 개편해야 한다는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앞서 설명했듯이 낙태죄 폐지 운동을 통해 성취하고자 하는 목표는 여성의 재생산권과 자기 통제권이다. 장애을 뜻한다. 그렇기 때문에 낙태라는 단어를 자주 쓸수록 마치 임신 중 여성 인권 단체인 장애여성공감은 이러한 논의만으로는 장애 여성의 재생산권을 충분히 다룰 수 없다면서 비판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것이 바로 ()과 재생산 포럼이다. ‘성과 재생산 포럼은 장애 여성의 재생산권과 이것이 가지는 사회적 의미, 여기서 발생하는 다양한 연대의 가능성을 논의했다. 그러한 논의가 담긴 책이 바로 배틀그라운드. 이 책에 윤정원 님이 쓴 글 인권과 보건의료의 관점에서 본 임신 중지가 실려 있다. ‘낙태죄 폐지 논란문제를 이해하기에 앞서 가장 먼저 알아야 할 것이 바로 재생산권의 의미이다. 불편할 준비에 실린 윤정원 님의 글 산부인과 사용 설명서 생리에서 낙태죄까지를 읽어 보면 재생산권의 의미뿐만 아니라 정부와 사회가 여성의 재생산권에 얼마나 무관심했는지 알 수 있다. 여성의 재생산권은 건강권과 직결되어 있다. 여성의 몸을 출산을 위한 도구로 여기는 인식의 틀은 예나 지금이나 별로 달라진 게 없다.

 

그날 강연은 인공 임신중절에 대한 이해와 공감을 높이는 시간으로 꾸며졌다. 낙태죄 폐지를 찬성하는 페미니스트들은 낙태대신에 임신 중절이라는 단어를 주로 많이 쓴다. 낙태(落胎)배 속에 있는 아기를 떨어뜨리는 것(없애버리는 것)을 뜻한다. 그렇기 때문에 낙태라는 단어를 자주 쓸수록 마치 임신 중절을 선택한 여성들이 생명을 존중하지 않는 것으로 인식하게 만든다. 인공 임신중절이 안전한 의료서비스로 보장하지 못한다면, 여성의 건강권은 위협받는다. 외국의 경우를 보면 음성적인 임신 중절 시술이 오히려 여성들의 건강을 심각하게 훼손하기 때문이다. 불법 임신 중절 시술은 여성들에게 정신적 육체적으로 심각한 후유증을 남길 뿐만 아니라 사망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불법 임신 중절 시술로 인한 불의의 사고는 의료 사고로 인정받지 못한다.

 

임신 중절의 방법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지금까지 언급한 수술 유산(surgical abortion)이다. 또 하나는 약물 유산(medical abortion)이다. 약물 유산은 약을 먹으면서 유산을 유도하는 방식이다. 가장 많이 알려진 유산 유도약(언론에서는 먹는 낙태약이라고 쓰던데, 이 단어 역시 낙태처럼 임신 중절에 대한 부정적인 의미를 상기한다)미페프리스톤이다. 흔히 우리나라에서는 미프진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미프진은 여성의 몸에서 나오는 호르몬인 프로게스테론을 억제하여 임신할 수 없게 한다. 미프진을 복용하면 생리통과 비슷한 복통이 일어나거나 하혈 증세가 발생할 수 있다. 그러나 미프진 복용 후의 치사율은 극히 낮으며(미국에서 2000~2011년 동안 미프진을 처방받아 복용한 152만 명 중 패혈증으로 사망한 사례는 단 8건에 불과했다[]), 이미 2005년에 필수의약품 목록에 포함되었을 정도로 약의 안전성은 입증되었다. 하지만 낙태를 범죄로 보는 우리나라에서는 미프진은 국내에 반입할 수 없다. 2000년에 미프진 도입 논의가 잠시 있었지만, 보건복지위의 식약청 국정감사에서 먹는 낙태약은 생명 경시 풍조를 조장하고 청소년의 성생활 문란을 부추길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오면서 정식으로 도입되지 못했다.

 

여성에게 출산과 양육은 인생을 바꿀 만큼 중요하다. 여성이 임신을 지속할 것인지 또는 임신 중절을 선택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선택의 문제다. 나는 프로 초이스를 지지한다. 이번 주 목요일에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좋게 나오길 바란다. 그러나 임신 중절을 전면적으로 허용하든, 제한적으로 허용하든 그날의 결론은 길었던 논쟁의 끝이 아닐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낙태죄 폐지는 끝이 아닌 또 다른 논의의 시작이다.

    

 

 

 

 

 

 

 

 

 

 

 

 

 

  

* 장애여성공감 기획 어쩌면 이상한 몸(오월의봄, 2018)

* [레드스타킹 선정 도서] 수전 웬델 거부당한 몸(그린비, 2013)

 

 

     

낙태에 반대하면서도 장애를 가진 아이라면 낙태가 가능하다고 보는 모자보건법은 장애인의 몸과 생명권을 철저하게 배제하는 사고방식을 강화한다. 프로 초이스가 합법적 임신 중절을 강조하면서 장애인 낙태를 허용하는 것 또한 문제가 있다. 두 가지 입장 모두 철저하게 우생학적으로 태아의 생존을 결정하는 것이다. 그래서 장애인 인권 운동가와 장애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낙태죄 폐지를 신중하게 접근한다(물론, 이들도 낙태죄 폐지를 찬성한다). 장애여성공감은 장애인을 낙태시킬 수밖에 없는 모자보건법의 문제점을 인정하면서도 문제의 근원인 사회적 차별을 도외시한 채, 임신 중절을 전면 허용해야 한다고 외치는 ()장애 여성들의 피상적인 입장을 비판하고 있다. 장애인은 이 세상에 태어날 권리가 있으며 이것 또한 장애 여성의 재생산권에 달린 문제이다. 이런 점에서 장애 여성의 재생산권을 이야기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인간을 정상/비정상으로 나누는 우리 사회의 이분법적 사고를 폭로하는 것이며, 이는 낙태죄 폐지 운동에 장애 여성도 함께 할 수 있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 원 출처: Ushma D Upadhyay et al.(2005), Incidence of Emergency Department Visits and Complications After Abortion, Obstetrics & Gynecology. 본 내용은 윤정원 님의 강연 글을 참고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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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08 15: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9-04-08 18:29   좋아요 1 | URL
임신과 피임은 남성, 여성 모두 선택할 수 있는 행위인 만큼 그에 따른 책임을 져야 합니다. 하지만 아이를 낳은 순간, 여성이 모두 짊어지게 됩니다. 대표적인 예는 미혼모 여성입니다. 피임의 중요성을 모르거나 임신 문제를 온전히 여성에게 떠넘기는 남성들이 문제입니다. 이러니 혼자 남은 여성은 임신 중절을 선택하게 되고, 임신 중절을 선택한 여성은 ‘성적으로 문란한 여자’, ‘아이를 돌보기를 포기하는 여자’라는 낙인이 찍힙니다.

카스피 2019-04-09 1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실 결혼전의 남녀가 서로 사랑을 나눌수는 있습니다.하지만 결혼을 전제로 하지 않는다면 남녀 모두 피임에 신경을 써야하는 것이 상식이 아닐까 싶습니다.물론 여기에는 남성의 책임이 좀더 크지 않나 싶어요ㅡ.ㅡ

cyrus 2019-04-09 12:16   좋아요 0 | URL
남자가 실천할 수 있는 피임 방법은 콘돔입니다. 그런데 콘돔 착용이 불편하다고 여기거나 착용하는 과정이 귀찮다는 이유로 콘돔 없이 섹스를 하려는 남자들이 있습니다. 이러니까 피임을 하지 못하면 온전히 여성에게 책임이 전가됩니다.

카스피 2019-04-15 15:57   좋아요 0 | URL
뭐 조만간 먹는 남성용 피임약이 나온다고 하니 그떄까지 남녀모두 자세하면 좋을듯 싶습니다^^

AgalmA 2019-04-14 16: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번 <스켑틱> vol 17 에서 프로라이프와 프로초이스 논점이 각각 틀린 게 있다고 말하죠. 태아의 의식이 발동하는 시점부터는 흐음...정말 낙태를 하기 어려운 상황이라 고려되더군요. 왜 여자만 임신이 돼 가지고! 페미니즘 관련한 사항이기도 하니 cyrus님도 그 칼럼 꼭 읽어 보셔야 할 듯/

cyrus 2019-04-17 13:40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꼭 읽어봐야겠어요. 낙태죄 위헌 판결 이후부터 태아의 의식이 발동하는 시점에 대한 논쟁이 생길 것으로 보입니다.
 

 

 

난 행복해지거나 사랑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야.” 낮은 자존감 때문에 괴로운 사람들이 흔히 하는 생각이다. 상대방의 말 한마디에 쉽게 상처받거나 다른 사람의 시선이 신경 쓰여 눈치 보일 때, 스스로 초라하게 느껴진다. 자존감이 바닥까지 내려가면 숨이 막힌다.

    

 

 

 

 

 

 

 

 

 

 

 

 

 

* 너새니얼 브랜든 자존감의 첫 번째 계단(교양인, 2018)

* 너새니얼 브랜든 자존감의 여섯 기둥(교양인, 2015)

    

 

     

2014년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40여 년 동안 자존감(self-esteem)을 연구한 캐나다 출신의 심리학자 너새니얼 브랜든(Nathaniel Branden)은 자존감의 정의를 자신에게 행복해질 권리가 있다는 믿음이라고 말했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상대방에게 휘둘리지 않는다. 상대방보다 못하다고 주눅 들지도 않으며 상대방보다 많이 잘났다고 자만하지도 않는다. 어제보다 성장한 오늘의 자신을 자랑스러워하고, 오늘보다 나아질 내일이 오길 기대한다. 브랜든은 건강한 자존감이 유지하도록 받쳐주는 두 가지 요소로 자기 효능감(self-efficacy)자기 존중(self-respect)을 꼽는다. 자기 효능감이 능력에 대한 믿음이라면, 자기 존중은 자신의 가치에 대한 확신이다.

 

브랜든은 자존감을 결정짓는 여섯 가지 실천 방식여섯 기둥(또는 계단)으로 비유한다. 그중 첫 번째 실천 방식은 의식하기(consciousness). 의식하며 산다는 것은 자신이 어떤 능력을 갖췄든 간에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목표를 이루기 위한 삶을 말한다. 이런 사람들은 내면을 관찰하고 들여다본다. 자신의 가치관과 목표에 부합하지 않는 행동을 하면 스스로 개선한다.

    

 

 

 

 

 

 

 

 

 

 

 

 

 

 

* 김태형 가짜 자존감 권하는 사회(갈매나무, 2018)

 

    

 

반면 경계해야 할 자존감이 있다. 그게 바로 가짜 자존감(pseudo self-esteem)이다. ‘가짜 자존감은 겉으로는 자기 효능감과 자기 존중을 꾸며내지만 정작 그 실체는 없다. 그렇다면 자기를 속이는 가짜 자존감은 개인의 행동에서 비롯된 일탈인가? 오로지 개인의 내면을 의식하는 데 초점에 맞춘 자존감 높이는 연습을 한다고 해서 낮아진 자존감이 회복될 수 있을까? 가짜 자존감 권하는 사회는 자존감 문제로 고통받는 이유를 개인이 아닌 사회에서 찾는다. 가짜 자존감 권하는 사회는 낮아진 자존감 문제를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고 있으며 이 문제를 반드시 고쳐야 할 인 것처럼 떠들어댄다. 아무래도 자존감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하는 세상의 조언을 따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강박마저 느낀다. 날마다 거울 앞에 우두커니 서서 혼잣말로 나는 행복해, 나는 정말 좋은 사람이야라고 중얼거린들 이상과 현실의 괴리는 사라지지 않는다. 실제로는 자신의 사회적 가치가 높지 않은데도 그것을 높게 평가하는 것은 모래 위에 집을 짓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 권력, 건강 등의 가치가 행복한 삶을 위한 객관적인 기준으로 강조하는 지금 이 사회에서 개인 스스로 자존감을 지켜내기란 쉽지 않다. 따라서 사람의 가치를 평가하는 기본적인 사회적 가치관이 변하지 않는 한 자존감을 높이려는 개인적인 노력은 헛된 수고에 불과하다.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건강한 자존감을 가질 수 없다.

    

 

 

 

 

 

 

 

 

 

 

 

 

 

 

* 김진영 아침의 피아노(한겨레출판, 2018)

 

    

 

자존감 문제를 환자장애인에게 적용하면 자존감 연습은 그들을 위한 대안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픈 환자의 몸은 장기 근무를 피하는 게으른 몸으로 낙인찍히고, 늘 노동시장에서 배제된다. 암 투병 생활을 하면서 자신의 몸과 정신을 관통하는 크고 작은 외부의 시선들을 단상 형식으로 기록한 김진영 철학아카데미 대표암 환자로서 살아가는 자신의 무기력한 정체성을 의식하는 듯한 글을 남겼다.

 

 

이런 무기력 상태는 어리석다.

무엇이든 노동이 필요하다.

 

(아침의 피아노, 19)

       

자꾸 사람들을 피하게 된다. 위안을 주려는 마음을 알면서도 외면하게 된다. 병을 앓는 일이 죄를 짓는 일처럼, 사람들 앞에 서면 어느 사이 마음이 을의 자세를 취하게 된다. 환자의 당당함을 지켜야 하건만…‥

 

(같은 책, 30)

 

 

아프고 장애가 있는 몸은 정상/비정상을 구분하는 사회 체계안에서 타자로 살아간다. 국가와 사회는 온전한 몸을 가진 건강한 비장애인을 (노동력과 재생산 능력을 모두 갖춘) 국민에 부합하는 정상의 표준으로 만든다. 이로 인해 환자와 장애인은 이등 국민’, ‘비정상적인 타자’, ‘문제 있는 타자가 된다. ‘정상의 표준에 맞지 않는 그들은 경제적 자립 생활이 불가능하고, 재생산 능력이 없는 무기력한 존재로 차별받는다.

 

 

 

 

 

 

 

 

 

 

 

 

 

 

 

 

 

 

 

 

 

* 비사이드 콜렉티브 퀴어 페미니스트, 교차성을 사유하다(여성문화이론연구, 2018) / 전혜은 아픈 사람정체성수록

 

* 장애여성공감 어쩌면 이상한 몸(오월의봄, 2018)

 

    

 

거대한 의료 시스템은 질병이나 장애 유무 여부에 상관없이 개인에게 건강이라는 이름으로 몸의 정상화를 요구한다. 비장애인은 의료기술에 의존하면서 자신의 몸이 정상임을 인정받고 싶어 한다. 의료 시스템을 주도하는 의사와 의학 전문가들은 환자와 장애인에게 조금 더 나아질 수 있을 거라는 기약 없는 희망, 조금 더 노력하면 정상인(건강한 비장애인)이 될 수 있다는 기대감을 심어준다. 그들의 위안은 장애를 고유한 삶의 방식으로 인정하지 않고, ‘정상인의 범주로 편입시키려는 위장 수사에 가깝다. ‘의 위치에 있는 의료 전문가는 장애 문제를 소외하고, 환자와 장애인은 의 위치가 되어 결핍된 존재’, ‘거부되어야 할 존재로 남는다. 장애를 극복하는 장애인 서사는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은 장애인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것 같지만, 이 역시 장애를 개인의 문제로 규정하는 인식을 불러일으킨다. ‘장애 극복인 장애인의 몸이 의 비장애인의 몸과 비슷하게 만드는 과정이다. 인간의 한계를 극복한 장애인서사의 이면에는 장애인의 몸을 비정상적인 을로 바라보는 의 시선이 전제되어 있다.

 

퀴어 이론과 페미니즘 장애학을 연구한 전혜은환자장애인이라는 호칭이 아프거나 몸이 불구인 사람들의 정체성을 온전히 설명하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그녀는 자신의 글 아픈 사람정체성에서 퀴어 이론과 장애학 이론을 접목시켜 아픈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탐색하는 시도를 선보인다. 그녀가 제안한 아픈 사람정체성은 장애인과 환자들이 받는 차별 및 부정적 낙인 이미지를 덜어내고, ‘정상이라는 표준에 가려져야했던 그들의 질병 · 장애 경험을 한층 더 부각시켜준다. 따라서 아픈 사람정체성은 자신의 방식으로 자신의 삶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 악셀 호네트 인정 투쟁(사월의책, 2011)

* 이현재 악셀 호네트(커뮤니케이션북스, 2019)

* 철학아카데미 처음 읽는 독일 현대철학(동녘, 2013) / 문성훈 악셀 호네트의 인정 이론과 병리적 사회비판수록

    

 

 

아픈 사람정체성을 가진 사람들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으려면 아픈 몸장애의 몸을 그대로 인정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그러한 사회로 발전하게 되면 아픈 사람정체성을 가진 사람은 질병 · 장애 경험을 마음껏 이야기할 수 있으며 타인과 관계를 맺는 주체가 된다. 독일의 철학자 악셀 호네트(Axel Honnet)가 주장한 대로 내 경험을 이야기할 수 있는 삶은 개인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사회적 존재로서 다른 사람들의 인정을 받을 때 건강한 자아가 형성된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긍정적 자기의식과 정체성, 그리고 건강한 자존감을 가지기 위해 인정 투쟁(recognition struggle)을 한다. 장애인들이 몸을 차별하는 권력과 크고 작은 편견들에 도전하여 자신들의 경험 서사를 알리는 것 또한 인정 투쟁의 한 방식이다. 장애인을 소외시키는 차별과 배제의 권력은 그들의 삶과 목소리를 은폐하고 침묵시킬 뿐만 아니라 그들의 정체성과 자존감마저 박탈시킨다. 장애가 자존감이 될 수 있는 가치가 되려면 장애인들에게 어떻게 나를 사랑한 것인가[]를 묻는 자기의식을 강요해선 안 된다. 바꿔야 할 사람은 장애인이 아니라 비장애인이다. 비장애인은 다양하고 복잡한 장애인의 정체성과 경험 서사가 어떤 것인지 의식하면서 살아가야 한다.

 

      

     

[] 너새니얼 브랜든의 책 자존감의 여섯 기둥의 부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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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18 13: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9-03-18 16:12   좋아요 0 | URL
돈의 힘 앞에 장사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