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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네스 포드의 양자물리학 강의
케네스 W. 포드 지음, 김명남 옮김 / 바다출판사 / 2025년 4월
평점 :
2.5점 ★★☆ B-
물리학자들은 괴롭다. 왜냐하면 양자물리학이 그들을 괴롭히니까. 양자물리학은 괴상한 과학이다. 양자물리학은 우리에게 ‘아주 작은 세계’를 보여준다. 아주 작은 세계에 아원자 입자들이 돌아다닌다. 아원자 입자는 원자보다 크기가 작다. 양자물리학은 아원자 입자들에 관심이 많다. 그런데 아주 작은 입자들을 측정하는 일은 상당히 까다롭다. 여전히 정체를 숨기고 있는 입자들도 있다.
과거 물리학자들은 실험과 계산만 잘하면 자연 현상의 실체를 이해할 수 있다고 믿었다. 과학자들이 발견한 법칙들은 늘 정확하고, 안정적으로 돌아가는 세상을 보여주는 근거였다. 확실성의 세계를 보여주는 물리학을 ‘고전 물리학’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양자물리학은 고전 물리학과 정반대로 세계는 불확실하며 정확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특히 아원자 입자들의 세계는 고전 물리학의 법칙으로 설명할 수 없는, 정말로 이상한 세계다. 확률은 이상야릇한 입자들의 세계에서 일어날 현상을 예측하게 해준다. 그러므로 아무리 정밀한 계산을 해도 입자를 정확히 측정할 수 없다.
양자물리학은 고전 물리학을 거스른다. 고전 물리학이 생각하는 빛은 입자 상태다. 하지만 양자물리학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주장을 펼친다. 빛은 ‘입자인 동시에 파동’이라고 말한다. 빛뿐만 아니라 모든 물질은 이중적인 성질을 가지고 있다. 드 브로이(Louis de Broglie)가 발견한 파동-입자 이중성은 양자물리학의 핵심이다. 빛이 입자임을 알 수 있는 증거(아인슈타인의 광전 효과)와 파동임을 알 수 있는 증거(빛의 회절 현상과 간접 현상)가 동시에 있다. 정확성을 선호하는 고전 물리학은 서로 맞지 않는 두 가지 증거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반면 양자물리학은 가능하다고 믿는다.
고전 물리학이 ‘깔끔하게 감긴 실타래’라면 양자물리학은 ‘헝클어진 실뭉치’다. 고전 물리학 실타래는 요령(법칙)을 알면 쉽게 풀 수 있다. 그러나 제멋대로 헝클어진 양자물리학 실뭉치는 요령이 통하지 않는다.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매듭을 천천히 풀어야 한다. 양자물리학은 ‘느리게 배워야 하는 과학’이다.
《케네스 포드의 양자물리학 강의》(The Quantum World: Quantum Physics for Everyone)는 양자 실뭉치를 완벽히 푸는 법을 알려주지 않는다. 양자 실뭉치를 풀지 않고도 가지고 노는 법을 알려준다. 각 장(chapter)이 끝나면 독자와 학생들을 위한 복습 문제와 심화 문제가 나온다. 부록으로 문제 해답이 실려 있다. 모든 문제를 다 풀어봐야 할 의무가 없다. 관심 있는 문제 몇 개 선택해서 풀어보면서 양자물리학을 천천히 배울 수 있다.
학생들에게 물리학을 잘 가르쳐주기로 유명한 케네스 포드(Kenneth W. Ford)도 양자물리학에 두 손을 든 과학자다. 그는 양자물리학을 ‘기괴한 이론’이라고 운을 떼면서도 아원자 입자들을 설명하는 데 성공한 이론이라고 말한다. 사실 고전 물리학자와 양자물리학자들을 괴롭힌 건 아원자 입자들이다. 입자들이 계속 발견될수록 양자물리학은 무럭무럭 자랐다. 고전 물리학의 키를 넘어선 양자물리학은 ‘더 이상 쪼개지지 않는 물질의 기본 입자’라는 오래된 믿음을 무너뜨렸다. 고전 물리학의 편안한 그늘에 벗어난 젊은 과학자들은 물질의 기본 입자인 원자를 쪼개기 시작했다. 그 속에 원자보다 더 작은 입자들이 있었다.

《케네스 포드의 양자물리학 강의》 원서는 2004년에 출간되었다. 번역본은 2008년에 출간되었고, 책 이름은 ‘양자 세계 여행자를 위한 안내서’였다. 2018년에 이름과 앞모습이 바뀐 개정판이 나왔다. 올해가 양자역학이 탄생한 지 100주년이 되는 해다. 이 뜻깊은 해에 맞춰 앞모습만 바뀐 책이 다시 나왔다. 어떻게 보면 ‘개정 2판’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책의 겉모습만 바뀐다고 해서 개정판이 되는 것은 아니다. 저자, 번역자, 편집자는 책 속에 있는 내용 중에 잘못 알려졌거나 시간이 지나서 생명력을 잃은 상식이 있으면 고치거나 새로운 내용을 추가해야 한다. 과거의 책을 단 한 번도 교정하지 않은 채 표지만 바꾼 책은 ‘개정판’이 아니라 독자를 속이는 ‘개판’이다. 구판에 남아 있는 오탈자도 고치지 않고 내놓은 개정판도 대충 만든 ‘개판’이다.
원서는 2012년 거대 강입자 가속기(LHC)가 검출한 힉스 보손 입자가 발견되기 한참 전에 나온 책이다. 원서를 번역한 김명남 번역가는 자신이 직접 쓴 서문에 원서 출간 후에 나온 2012년의 성과를 언급했다. 하지만, 이 책을 ‘딱히 고칠 데가 없이 좋은 양자 교과서’라는 역자의 자화자찬은 동의할 수 없다.
2004년 원서에는 ‘원자 번호 114’와 ‘원자 번호 118’의 이름이 적혀 있지 않다. 당시에 두 원소의 실체가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랜 실험과 관측을 거친 끝에 새로운 원소로 판명되면 원소에 이름이 붙여진다.
* 224쪽

실제로 몹시 무거운 원소들 가운데 원자 번호 114(아직 이름이 없다)의 수명이 약 30초 정도로 제일 길다. [중략] 현재까지 확인된 가장 무거운 원소는 원자 번호 118번이고, 탐색은 계속되고 있다.
* 242쪽, <도전 문제>

4. 이 책의 출간 이래, 새로운 원소가 발견되거나 명명된 것이 없는지 조사해 보자.
* 414쪽, <부록>

4번 문제 해답: (아쉽게도 2008년 현재는 없다.)
이 책의 문제 중 하나는 ‘새로운 원소’가 발견되었는지를 묻는 것인데, <부록>의 해답에는 ‘2008년 현재는 없다’라고 되어 있다.
2012년에 원자 번호 114의 정식 명칭이 플레로븀(flerovium)으로 확정되었다. 원소 기호는 FI이다. 2016년에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원자 번호 118번의 이름은 오가네손(Oganesson, 원소 기호: Og)이다.[주1]
‘The Amazing Randi’라는 별명을 가진 마술사로 활동한 회의주의자 제임스 랜디(James Randi)는 인쇄된 이야기를 접할 때는 항상 주의해야 한다고 했다.[주2] “전문가가 그렇게 말했다.”, “교과서에 그렇게 적혀 있다.” 우리는 전문가와 그들이 쓴 책을 전적으로 신뢰하면서 사실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회의주의자는 책과 신문에 나온 이야기를 무조건 사실이라고 단정하지 않는다. 권위가 된 지식이 타당한지 의문을 제기하고, 검증해야 한다.
* 46쪽

중력은 본질적으로 약하지만 언제나 인력으로 작용하는 힘이다.
중력은 강한 핵력, 약한 핵력, 전자기력보다 제일 약하다. 하지만 중력은 질량이 있는 물체들이 서로 끌어당기면서 생기는 힘이 아니다. 중력은 질량이 있는 물체가 시공간을 휘거나 구부리면서 생기는 부산물이다.[주3]

포드는 2011년에 양자물리학과 관련된 책을 더 펴냈다. 책 이름은 <101 Quantum Questions: What You Need to Know About the World You Can’t See>. 번역본 이름은 《양자: 101가지 질문과 답변》(이덕환 옮김, 까치, 2015년)이다. 전작 《케네스 포드의 양자물리학 강의》에 다룬 양자물리학의 주요 개념들을 문답 형식으로 풀어 쓴 책이다.

[주1] 참고문헌: 오시마 켄이치, 원형원 옮김, 곽영직 감수 《알수록 쓸모 있는 원소 118》 (Gbrain, 2020년), 171, 173쪽.
피터 워더스, 이충호 옮김 《원소의 이름: 신비한 주기율표 사전, 118개 원소에는 모두 이야기가 있다》 (윌북, 2021년), 58쪽.

[주2] 제임스 랜디, <여전히 사이비 과학과 회의주의의 길> 중에서, 한국 스켑틱 편집부 엮음, 김보은 · 김효정 · 류운 · 박유진 · 장영재 · 하인해 옮김 《나는 의심한다, 고로 존재한다: 스켑틱 10주년 베스트 에세이》 (바다출판사, 2025년), 281쪽.

[주3] 참고문헌: 야우싱퉁 · 스티브 네이디스, 박초월 옮김 《수학의 중력: 일반상대성이론부터 양자 중력까지, 우주를 지배하는 수학의 최전선》 (동녘사이언스, 2025년).

빌 브라이슨, 이덕환 옮김 《거의 모든 것의 역사》 (까치, 2020년), 149쪽. 빌 브라이슨은 중력을 설명하기 위해 미치오 가쿠(加來道雄)의 《초공간: 평행우주, 시간 왜곡, 10차원 세계로 떠나는 과학 오디세이》(박병철 옮김, 김영사, 2018년)를 재인용했다.
<cyrus가 만든 정오표>
2018년 개정판에 있는 오탈자 1개가 개정 2판에 그대로 남아 있었고, 세상을 떠난 과학자들의 사망 연도가 적혀 있지 않다.
하인리히 로러(Heinrich Rohrer)와 존 휠러(John A. Wheeler)는 개정판이 나온 2018년 이전에 세상을 떠났는데, 개정판에는 두 학자의 사망 연도를 표기하지 않았다.
* 76쪽

1058 → 1958
* 130쪽

스티븐 와인버그(1933년 출생)
2021년 별세
* 198쪽

하인리히 로러(1933년 출생)
2013년 별세
* 363쪽

존 휠러(1911년 출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