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문학사에서 이상(李箱)이 차지하는 위상은 자신의 시, 소설만큼이나 독특하다. 무엇보다 이상 시의 접근을 막는 것은 특유의 난해성이다. 예컨대 이상이 일본어로 쓴 조감도(鳥瞰圖)-LE URINE[1]은 악명 높은 연작시 오감도(烏瞰圖)보다 먼저 나온 시인데, 이 작품 또한 난해하다.

 

 

 불길과같은바람이불었것만불었건감얼음과같은수정체는있다. 우수는DICTIONAIRE와같이순백하다. 녹색풍경은망막에다무표정을가져오고그리하여무엇이건모두회색의명랑한색조로다.

     

  들쥐와같은험준한지구등성이를포복하는것은대체누가시작하였는가를수척하고왜소한ORGANE을애무하면서역사책비인페이지를넘기는마음은평화로운문약이다. 그러는동안에도매장되어가는고고학은과연성욕을느끼게함은없는바가가장무미하고신성한미소와더불어소규모하나마이동되어가는실과같은동화가아니면아니되는것이아니면무엇이었는가.

     

  진녹색납죽한사류는무해롭게도수영하는유리의유동체는무해롭게도반도도아닌어느무명의산악을도서와같이유동하게하는것이며그럼으로써경이와신비와또한불안까지를함께뱉어놓는바투명한공기는북국과같이차기는하나양광을보라. 까마귀는흡사공작과같이비상하여비늘을질서없이번득이는반개의천체에금강석과추호도다름없이평민적윤곽을일몰전에빗보이며교만함은없이소유하고있는것이다.

     

  숫자의COMBINATION을망각하였던약간소량의뇌장에는설탕과같이청렴한이국정조로하여가수상태를입술위에꽃피워가지고있을즈음번화로운꽃들은모두어데로사라지고이것을목조의작은양이두다리를잃고가만히무엇엔가귀기울이고있는가.

     

  수분이없는증기하여온갖고리짝은마르고말라도시원치않은오후의해수욕장근처에있는휴업일의조탕은파초선과같이비애에분열하는원형음악과휴지부, 오오춤추려므나, 일요일의뷔너스여, 목쉰소리나마노래부르려무나일요일의뷔너스여.

     

  그평화로운식당또어에는백색투명한MEMSTRUATION이라는문패가붙어서한정없는전화를피로하여LIT위에놓고다시백색여송연을그냥물고있는데. 마리아여, 마리아여, 피부는새까만마리아여, 어디로갔느냐, 욕실수도콕크에선열탕이서서히흘러나오고있는데가서얼른어젯밤을막으렴, 나는밥이먹고싶지아니하니슬립퍼어를축음기위에얹어놓아주려무나.

     

  무수한비가무수한추녀끝은두드린다두드리는것이다. 분명상박과하박과의 공동피로임에틀림없는식어빠진점심을먹어볼까-먹어본다. 만도린은제스스로포장하고지팽이잡은손에들고자그마한삽짝문을나설라치면언제어느때향선과같은황혼은벌써왔다는소식이냐, 수탉아, 되도록이면순사가오기전에고개숙으린채미미한대로울어다오, 태양은이유도없이사보타아지를자행하고있는것은전연사건이외의일이아니면아니된다.

 

 

이상 시는 주석과 보충 설명 없이는 도저히 읽을 수 없는 텍스트이다. 하지만 그의 시는 독자와 비평가들을 당혹스럽게 하는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낡은 느낌을 주지 않는다. 자기 정신과 폐병으로 삭은 몸을 학대해가며 빚어낸 사유의 뼈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이상의 시는 강골(强骨)이다. 이상은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자기 세계를 고집했다. 이상(李箱/異常)한 텍스트로 이루어진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수많은 문학인들이 도전했다.

 

이상 문학의 정본을 새로이 만들려면 이상이 생전에 발표한 텍스트의 원전(原典)뿐만 아니라 유고, 습작 노트까지 수집, 꼼꼼히 분석하는 작업을 거쳐야 한다. 그리고 원전을 기존에 나온 이상 문학 전집들과 대조하는 작업도 진행된다. 연구자는 원전에 오식이 있는지 검토한다. 왜냐하면, 오식을 바로 잡지 않으면 작가의 의도와 다른 해석이 나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상 문학을 연구하는 다음 사람을 위해서 이상 문학 정본을 만들려면 원전과 우리말로 풀이한 시, 그리고 주석 및 보충 설명 순으로 편집해야 한다. 이 세 가지 구성 요소 중 하나라도 빠지면 이상 문학에 접근하기 어렵다.

 

 

 

 

 

 

 

 

 

 

 

 

 

 

 

 

 

 

 

 

 

 

 

 

 

 

 

 

 

 

 

 

 

 

 

 

 

 

 

 

 

 

 

 

 

 

 

 

 

 

 

 

 

 

 

 

 

 

 

 

 

 

 

 

 

 

 

 

 

 

 

 

 

 

 

 

 

 

 

 

 

 

 

 

 

 

 

 

* 김종년 주해 이상 전집(가람기획, 2004)

* 김주현 주해 정본 이상 문학 전집(소명출판, 2005)

* 김주현 주해 정본 이상 문학 전집 (증보판)(소명출판, 2009)

* 권영민 주해 이상 전집(, 2009)

* 권영민 주해 이상 전집(태학사, 2013)

    

 

 

국내 최초 이상 문학 정본이 무엇인지 연구자마다 의견이 다르다. 김주현 교수는 1956년에 임종국이 엮은 세 권짜리 이상 전집을 가장 먼저 언급했고, 권영민 교수는 1949년 시인 김기림이 엮은 한 권의 이상 전집을 임종국이 선보인 이상 문학 전집보다 앞서 언급했다.

 

 

 

 

 

 

 

 

 

 

 

 

 

 

 

 

 

* 조해옥 이상 시의 근대성 연구(소명출판, 2001)

 

 

 

이상 연구가 본격적으로 진행된 시기는 1950년대이다.[2] 오식을 바로 잡고 믿을 만한 텍스트를 제공하는 것이 정본의 일차적 조건이. 물론 임종국의 <이상 전집>도 오류가 있긴 하나, 이상 문학 연구를 활성화하는 촉매 역할을 한 정본으로 볼 수 있겠다.

 

 

 

 

 

 

 

 

 

 

 

 

 

 

 

 

 

 

 

* 이승훈 주해 이상문학전집 1(문학사상사, 1989)

* 김윤식 주해 이상문학전집 2(문학사상사, 1991)

* 김윤식 주해 이상문학전집 3(문학사상사, 1993)

 

 

 

임종국의 <이상 전집> 출간 이후로 이어령(1977~1978), 이승훈과 김윤식(1989, 1991, 1993), 김종년(2004), 김주현(2005), 권영민(2009)으로 이어지는 이상 문학 정본들이 선보였다. 그러나 이어령, 이승훈, 김윤식 <이상 전집>은 절판되었다. 이상 문학을 연구하는 사람이 아닌 이상 절판된 책을 구할 필요는 없다. 김주현과 권영민 <이상 전집>은 앞서 나온 <이상 전집>들의 오류를 검토하기 위해 정확한 원전 비평과 판본 비교 작업을 거쳤기 때문이다. 사실, 김종년 <이상 전집>정본으로 보기 어려운 점이 있다. 이 책에 원전은 없고, 우리말로 풀이한 텍스트로 편집되어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말로 풀이한 텍스트는 원전보다 가독성이 나은 편이므로 이상 문학을 처음으로 접근하는 일반 독자들이 읽기에 적합하다. 반면, 김주현 <이상 전집>은 원전과 주석으로만 구성된 책이다. 따라서 정확한 원전을 알고 싶으면 김주현 <이상 전집>을(이상 문학 전공자를 위한 책), 깊이 있는 주석을 중심으로 이상 문학을 이해하고 싶으면 권영민 <이상 전집>을 고르면 된다.

 

 

 

 

 

 

 

 

 

 

 

 

 

 

 

 

 

 

* 신범순 주해 이상 시 전집 1 : 원전 주해(나녹, 2017)

* 신범순 주해 이상 시 전집 2 : 수정 확정(나녹, 2017)

 

 

 

필자는 김주현 <이상 문학 전집 1 : >와 권영민 <이상 전집 1 : >(뿔 출판사에서 나온 구판)를 같이 읽고 있다. 최근신범순 교수가 엮은 <이상 시 전집>이 출간되었는데, 아마도 김주현, 권영민 판본의 오류를 비교 · 검토했을 거로 짐작해 본다. (이 책을 아직 안 읽어봤다) 김주현, 권영민 판본을 더듬더듬 번갈아 읽으면서 두 판본에 수록된 원전 텍스트의 미묘한 차이점을 발견했다.

 

 

 

* 파편의 경치

 

 

나는遊戲한다

의슬립퍼어는菓子와같지아니하다

어떠하게나는울어야할것인가

 

(김주현 판본, 35)

 

 

 

나는논다

의슬립퍼어는菓子와같지아니하다

어떠하게나는울어야할것인가

 

(권영민 판본, 190)

 

 

 

김주현 판본의 원전에는 나는遊戲(유희)한다라고 되어 있지만, 권영민 판본은 우리말로 나는논다라고 표기되어 있다.

 

 

 

 

* 신경질적으로 비만한 삼각형

 

나의 生涯는 원색과같하여 豐富하도다.

 

(김주현 판본, 47, 띄어쓰기 허용)

 

 

 

나의 生涯는원색과같하여豐富하도다.

 

(권영민 판본, 47, 띄어쓰기 없음.)

 

 

 

띄어쓰기를 거부하는 글쓰기는 이상 문학의 특징 중 하나이다. 그런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이상은 띄어쓰기를 지키면서 문장을 쓰다가도 갑작스럽게 띄어쓰기를 무시한 문장을 쓴다. ‘기인다운 글쓰기다. 정확한 원전을 공개하려면 띄어쓰기가 된 문장띄어쓰기를 무시한 문장을 확실히 구분해야 한다.

 

 

 

* 거울

 

거울속의나는참나와는反對요만은

또꽤닮앗소

 

(김주현 판본, 83)

 

 

 

거울속의나는참나와는反對요마는

또꽤닮앗소

 

(권영민 판본, 34)

 

 

 

 

* 오감도-시제 3

 

싸훔하는사람은즉싸훔하지아니하든사람이고또싸훔하는사람은싸훔하지아니하는사람이엇기도하니까싸훔하는사람이싸훔하는구경을하고십거든싸훔하지아니하든사람이싸훔하는것을구경하든지싸훔하지아니하는사람이싸훔하는구경을하든지싸훔하지아니하든사람이나싸훔하지아니하는사람이싸훔하지아니하는것을구경하든지하얏으면그만이다

 

(김주현 판본, 88)

 

 

 

싸홈하는사람은즉싸홈하지아니하든사람이고또싸홈하는사람은싸홈하지아니하는사람이엇기도하니까싸홈하는사람이싸홈하는구경을하고십거든싸홈하지아니하든사람이싸홈하는것을구경하든지싸홈하지아니하는사람이싸홈하는구경을하든지싸홈하지아니하든사람이나싸홈하지아니하는사람이싸홈하지아니하는것을구경하든지하얏으면그만이다

 

(권영민 판본, 34)

 

 

 

김주현 판본은 싸훔’, 권영민 판본은 싸홈으로 표기되어 있다. ‘싸움의 옛말은 싸홈이다. 국어사전에 싸홈은 있지만, ‘싸훔은 없다.

 

이상의 글을 읽는 일은 장님 코끼리를 만지는 상황과 같다. 연구자와 독자 모두 이상의 작품 앞에만 서면 장님이 되고 만다. (이상 : 아니, 종이에 문자가 있는데 왜 읽지를 못하니!)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인내심을 가지고 이상의 작품을 더듬더듬 읽어야 한다. 이렇다 보니 하나의 텍스트에서 다양한 해석이 등장한다. 한 사람이 정리한 <이상 전집>을 여러 번 읽어도 이상의 문학 세계를 100%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이상과 관련된 새로운 텍스트 자료들이 발굴된다면 텍스트에 대한 해석의 확장 범위는 넓어진다. 지금도 한 번 들어가면 빠져 나올 수 없다는이상에게 도전하는 비평적 탐험가들이 계속 나오고 있다. 이들의 활약으로 언어와 기호로 만들어진 이상의 텍스트 미로는 자가 번식하는 세포처럼 점점 확대되고 있다. ‘이상이라는 기존의 미로에 새로운 미로들이 만들어지는 셈이다.

 

 

 

 

 

[1] ‘LE URINE’의 바른 표기는 L’urine이다. 이 단어는 오줌을 뜻하는 프랑스어다. (권영민, 이상 전집 1236, 2009)

 

[2] 조해옥, 이상 시의 근대성 연구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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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7-12-21 15: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상 연구서가 의외로 많이 나와있구나.
시는 정말 난감해. 이상이니까 봐주는 거지
나 같은 사람이 저렇게 썼다고 하면 단박에
뭐라고 하지 않았을까?ㅋ
그만큼 그의 내면이 예사롭지 않다는 얘기겠지.
그나마 소설이나 산문이 낫긴한데 말야.

cyrus 2017-12-21 17:13   좋아요 0 | URL
네, 이상 연구서가 생각보다 많았어요. 학술논문까지 포함하면 자료가 어마어마할 거예요. 그런데 인터넷 서점에서 이상 연구서를 찾기 어려워요. ‘이상’을 검색하면 ‘이상문학상 수상 작품집’, ‘이상심리학’, 이상 문학과 무관한 책들이 나와요. 그런 검색 결과 내용 속에 이상 연구서를 찾기가 힘들어요. 소설, 수필은 읽을 만해요. 물론, 주석이 달린 가정 하에서요. ^^

붕붕툐툐 2017-12-21 16: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에서 빵 터졌는데, 내용은 이상 문학에 대한 애정과 깊이가 있어 감탄했네요!

cyrus 2017-12-21 17:15   좋아요 0 | URL
눈치를 챈 분들이 있겠지만, 제목은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 속 김첨지의 유명한 대사를 패러디한 것입니다. 그런데 최근에 이상 연구서를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해서 깊이는 없어요. ^^;;

sprenown 2017-12-21 16: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의 시가 미친 놈의 헛소리 같지만 그게 우리 문학의 근대성에 있어 단초라고 많은 연구자들이 달려드는 형국이네요..도대체 이상본인조차도 어떤의도로 썼는지 모를것 같은데..해설서나 연구서가 더 난해해지는것 같아요.^^.

cyrus 2017-12-21 17:18   좋아요 0 | URL
이상의 시가 얼마나 난해했으면 애초에 이상은 ‘의미 없는 시’를 썼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정말로 이상이 아무 생각 없이 시를 썼다면 해석에 매달린 문학인들의 노력이 무의미해져요. ^^;;

2017-12-21 17: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12-21 17:25   좋아요 0 | URL
자신의 글을 해설한 이상의 자필 메모가 발견된다면 국문학 전체를 뒤흔들 획기적인 일이 될 것입니다. 국문학자들은 쾌재를 부를 것이고, 수험생들은 수능 언어영역 시험에 출제될 이상의 글을 부담스러워할 것입니다. 이상의 글을 해석 불가능한 텍스트라서 시 <거울>, <오감도>, 단편소설 <날개>, 수필 <조춘점묘>를 제외한 작품들은 수능 언어영역 지문으로 출제될 확률이 적어요. 나머지 작품들이 완전히 해석 가능하게 된다면 수능 언어영역 지문으로 출제될 거예요. ^^;;

겨울호랑이 2017-12-21 17: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 셜록 홈즈 번역본 비교 페이퍼 때의 예리한 분석이 이번 이상 페이퍼에서도 진가가 드러나고 있네요^^:

cyrus 2017-12-21 17:26   좋아요 1 | URL
홈즈 전집을 완독하지 않은 상태인데, 잊힐 뻔한 책을 언급하셨군요.. ㅎㅎㅎ 아직 안 읽은 작품들은 그냥 즐기면서 읽을 생각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