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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하는 여자가 강하다 - 능력 있는 현대 여성은 왜 무기력한가
레베카 라인하르트 지음, 장혜경 옮김 / 이마 / 2017년 3월
평점 :
절판
“너 바보야? 왜 말을 못 해? 저 남자가 내 사람이다. 저 남자가 내 애인이다. 왜 말을 못하냐고!”
드라마 <파리의 연인>에서 박신양이 핏대를 세우면서 말했던 이 대사는 드라마 방영 당시 최고의 유행어로 등극했다. 이 대사는 십 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게 뇌리에 남아있다. 자타공인 의사소통 전문가들은 애초부터 남자와 여자의 언어 습관이 다르다고 주장한다. 남자는 직설적으로 말하는 것을 좋아하고, 여자는 우회적으로 돌려 말한다. 여자는 과정을 얘기하며 감정을 공유하길 원한다. 반면 남자는 여자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문제를 해결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과정보다는 결론부터 이야기한다. 이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2006, 동녘라이프)의 저자 존 그레이(John Gray)는 “태어날 때부터 남자는 화성인이고, 여자는 금성인이기 때문에 남녀 언어와 사고방식은 다르다”는 비유를 들었다. 그의 책을 감명 깊게 읽은 사람들은 남녀가 대화를 나눌 때 오해와 갈등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거라고 믿는다.
의사소통 전문가들은 남녀가 서로의 차이를 뛰어넘어 서로 원활하게 소통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남자는 여자의 말을 경청해주고 여자는 남자의 언어 방식을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여성이 이해해주는 것도 한계가 있는 법이다. 보통 남자들은 끊임없이 허풍을 떨며 자신을 과시한다. 왜냐하면, 대화를 통해 상하 관계를 설정하기 때문이다. 남녀가 함께 일하는 직장, 특히 남자가 많은 부서에 여직원들과 말이 안 통하는 남자 직원이 꼭 한 명씩 있다. 이런 직원은 툭하면 여자 후배 직원들에게 원성을 낸다. 그리고 여자 직원이 매끄럽게 일 처리를 하지 못하면 “여자들은 안 돼”라고 면박한다. 남자는 자신이 상대방(여자)보다 우위에 있다는 점을 확인하려고 한다.
여자를 깔보고 무시하는 남자의 개소리에 당연히 화를 안 낼 수가 없다. 그러나 여자는 그 자리에 화를 내지 못한다. 만약 여자가 화를 내고 목소리를 높이면 불이익을 받는다. 이 상황에 의사소통 전문가들은 화를 내는 대신 참으라고 말한다. 여자가 그다음에 해야 할 일은 경청이다. 그렇게 되면 정면충돌의 비극을 피할 수 있고, 서로 마음에 상처받는 일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마음의 상처를 가장 많이 받는 사람은 여자이다. 여자들은 자기 의견을 거절당할 수 있다는 강박관념이 심한 편이다. 그래서 자신의 의견을 확실히 말하지 않으면서도 상대방이 자신의 의도를 알아주기를 바란다. 그런데 대부분 남자는 눈치가 없다. 여자들과 말이 통하지 않으면 불만스러운 시선으로 여자를 쳐다본다.
“여자가 정숙해야 남자에게 사랑받아”, “화가 나더라도 여자는 참아야 해”, “남자랑 말이 잘 통하려면 여자가 남자의 대화법을 이해하고 경청해야 해”
이 말들은 남자들이 여자의 귓가에 속삭일 때 하는 악마의 주문이다. 여성이 선택할 수 있는 삶의 다양성이 담보되었다지만 동시에, 여전히 여성의 삶의 형태는 정형화된 ‘여성성’으로 모인다. 매일, 매 순간 여성의 입에 재갈을 물리려고 하는 것은 보이지 않는 억압이다. 레베카 라인하르트(Rebekka Reinhard)의 《철학 하는 여자가 강하다》(이마, 2017)는 입에 재갈을 물린 채 질식하고 있는 현대 여성의 여성성에 대해 알려준다. 현대에 이르러 여성들도 남성 못지않은 경제력을 가질 수 있게 됐다. 그렇지만 레베카 라인하르트는 여전히 현대 여성들은 낡아빠진 과거의 ‘여성성’을 버리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그리하여 저자는 여성도 권력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권력을 사용할 줄 아는 여성은 적극적으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한다. 반대로 권력이 없는 여성은 무력하고 소극적이다. 이들은 ‘남자로부터 인정받는 여자’가 되는 삶을 순순히 받아들인다. 이런 상황 속에 여성은 권력 문제에 무관심하게 되고, 남성을 뛰어넘는 능력이 있음에도 사회적 활동을 하는 기회를 얻지 못한다. 저자의 말대로라면 현대 여성들은 ‘지위 향상’을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권력 향상’에 집중해야 한다.
이 책을 읽기 전에 먼저 저자가 강조하는 ‘권력’의 의미를 이해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권력’이라 하면 ‘남을 복종시키는 힘’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여자가 남자를 복종하는 상황을 죽어도 싫어하는 남자들은 저자의 주장에 동의하지 못할 것이다. 페미니스트를 싫어하는 형님, 동생들아! 겁먹지 마시라. 때론 지나친 상상도 병이다. 권력을 가진 여성은 남자를 실컷 부려 먹는 이기적인 존재이고, 이들 때문에 남자가 역차별을 받아 불리해질 거라는 믿음은 망상에 불과하다. ‘권력’은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운 단어다. 그러므로 ‘권력’을 무조건 나쁜 의미로만 해석하는 것은 옳지 않다. ‘권력’도 긍정적인 의미의 단어가 될 수 있다. 저자는 ‘권력’을 ‘어떤 일에 영향을 미치고 무언가를 일으키고 변화시킬 수 있는 잠재력’[1]이라고 말한다. 자신의 삶을 바꾸거나 부당한 사회를 개선하려는 사람들은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이들의 행동은 권력 구조를 변화시킨다. 따라서 권력은 한 사람 또는 하나의 거대한 집단이 영원토록 누릴 수 있는 ‘특권’이 아니다.
가부장제는 남성 중심의 시각과 권위를 위해 형성된 사회 형태이다. 가부장적 가족 안에서 남성은 가정사의 모든 일에 좌지우지하는 절대 권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페미니스트들은 가부장적 사고방식이 현실에서 어떤 부정적 결과를 초래하는지 기지적함으로써 남성성에 대한 허상을 발가벗긴다. 그들의 노력은 남성 중심의 권력에 대한 도전이다. 남성의 기득권에 저항하고 도전할 힘이 있는 여성은 남성의 권력에 눈치받지 않고 스스로 목소리를 낸다. 하지만 여성도 권력을 독점하게 되면 ‘여왕벌 신드롬(Queen Bee syndrome)’ 문제가 발생한다. 조직 안에서 인정받는 여성은 자신의 능력 하나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여왕벌이 벌집 안에서 유일한 권력을 갖는 것처럼 출세를 원하는 여성 직원은 조직 내에서 쌓아 올린 자신의 권위를 다른 여성과 나누려고 하지 않는 성향을 보인다. 그 결과 여성 임원은 남성 직원에 대한 지지를 하게 되고, 다른 여성 직원이 겪는 부당한 차별을 묵과한다. 결국, 일하는 현대 여성은 ‘규격화하는 (가부장) 권력’[2]에 동조하게 된다. 나는 이것을 ‘가부장 권력에 동화(同化)된 여성’의 문제점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말하고 싶다. ‘여왕벌’이 많아지면 눈에 보이지 않는 유리천장이 금이 가도 다시 원래 상태로 되돌아 말끔해진다. 깨뜨려도 쉽게 깨질 수 없는 유리천장은 여성의 사회적 지위 상승을 막는다. 가족 내에서도 가부장 권력에 동화된 여성은 자신의 가부장적인 생각이나 가치관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가부장적 위계질서에 익숙한 여성은 ‘갑’의 위치에 서서 부당한 권력을 행사한다. 따라서 가부장 권력은 상대적인 권력 서열화 방식으로 작동되고, 그 과정에서 불합리한 방식의 ‘갑질 문화’ 또는 ‘차별’을 재생산된다.
라인하르트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권력과 도덕의 공존 가능성을 제시한다. 그녀는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의 말을 인용하여 정당하게 사용하는 권력의 장점을 알려준다.
“권력은 행동하거나 무엇인가를 할 뿐 아니라 타인과 단결하고 그들과 협력하여 행동하는 인간의 능력과 부합한다.”[3]
도덕은 권력을 가진 자로서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윤리의식이다. 이것이 빠진 권력은 ‘권력을 가진 자가 독점하는 전유물’이 된다. 권력을 독점하는 자는 상대방이 자신의 권력을 노릴까 봐 전전긍긍하고, 자신에 반대하는 사람을 ‘부정 세력’으로 간주하여 비타협적인 태도를 보인다. 제멋대로 해도 권력 많은 사람이 그러는 것은 괜찮다고 암묵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권력의 불평등성을 일으키는 원인이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 남녀 모두 철학을 공부해야 한다. 철학을 공부하면 ‘권력’이 ‘배타적인 반란을 위한 나쁜 힘’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러므로 ‘철학 하는 여자’는 절대로 나쁘지도, 위험하지 않다.
[1] 《철학 하는 여자가 강하다》 10쪽
[2] 같은 책, 177쪽
[3] 같은 책, 200쪽 (저자가 인용한 한나 아렌트의 책은 《폭력의 세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