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인조 만화가 집단 CLAMP쵸비츠(학산문화사, 2010)2002년에 나온 만화임에도 불구하고 인간과 인공지능이 공존하는 미래상을 실감나게 잘 그려냈다. 물론, 현재의 과학 수준으로 불가능한 장면도 나온다. 쵸비츠는 인간과 인공지능의 관계에 대해 진지한 물음을 던지는 만화다.

 

 

 

 

 

 

 

 

 

 

 

 

 

 

 

 

 

 

 

 

 

 

 

 

 

 

 

 

 

 

* CLAMP 쵸비츠 애장판(학산문화사, 2010)

 

 

쵸비츠의 세계관은 인간형 컴퓨터의 보급이 이루어진 사회이다. 인간형 컴퓨터는 인간의 노동을 대신할 정도로 똑똑하다. 개인이 직접 인간형 컴퓨터를 사서 소유할 수 있으며 주거공간의 컴퓨터 및 TV와 연동해서 언제 어디서나 사용할 수 있다.

 

 

 

 

우리가 현재 사용하고 있는 컴퓨터보다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성능이 뛰어난 인간형 컴퓨터이다 보니 가격이 비싼 편이다. 그래서 주인공 모토스와 히데키는 쓰레기장에 버려진 인간형 컴퓨터 치이를 집에 가져온다.

 

 

 

 

 

치이는 일반적인 인간형 컴퓨터와 다른 점이 있다. 소프트웨어를 설치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스스로 학습이 가능하다. 치이는 사람처럼 히데키의 말과 행동을 똑같이 따라 배우고 추론하면서 스스로 언어 능력을 발전시켜 나간다. 어떻게 보면 딥러닝(Deep Learning)’ 시스템과 유사하다. 컴퓨터는 따라야 할 특정한 규칙과 코드들이 있어야 사물을 인식한다. 반면 그 규칙이 아주 명료하지 않을 때는 당황하며 대책 없이 혼란스러워한다. 과학자들은 새로운 유형의 인공 지능이 이런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해 딥러닝 시스템을 개발하는 중이다.

 

 

 

 

 

딥러닝 시스템의 핵심은 그 스스로 사물을 인식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는 점이다. 처음에는 인간과 사물을 구별하는 것과 같은 새로운 정보를 접할 때 혼란스러워할 수도 있다. 히데키가 치이에게 자신의 이름을 처음 알려줬을 때 치이는 온갖 사물(압력밥솥, 책상, 시계 등)을 가리켜 히데키라고 불렀다(애니메이션 3). 여러 추측을 하고, 시행착오를 겪은 후에는 생명체가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 정보에 대해 연결을 짓고 추론을 하게 된다.

 

히데키는 치이와 함께 지내면서 치이를 인간처럼 느껴지기 시작하고, 사랑에 빠지게 된다. 치이가 느끼는 감정과 히데키에게 대하는 행동은 프로그램의 작동에 의한 결과다. 만약 미래에 지능은 물론 감정까지 가진 안드로이드(Android) 나온다면 히데키처럼 인간은 이성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게 될까?

 

 

 

 

 

 

 

 

 

 

 

 

 

 

 

 

 

* 레이 커즈와일 특이점이 온다(김영사, 2007)

* 레이 커즈와일 마음의 탄생(크레센도, 2016)

* 닉 보스트롬 슈퍼 인텔리젼스(까치, 2017)

 

 

먼저 결론을 밝히자면,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걱정하는 것은 시기상조다. 안드로이드가 인간의 감정을 표현하려면 초지능(superintelligence)혹은 강인공지능(strong AI, hard AI)’의 시대가 도래되어야 한다. 레이 커즈와일2030년에 지능 면에서 기계와 인간 사이의 구별이 사라진다고 전망했다. 특이점이 온다(김영사, 2007)에서 그는 가속적으로 발전하던 과학이 폭발적 성장의 단계로 도약함으로써 인공지능이 인간을 넘어서는 시점을 뜻하는 특이점(Sigularity)’이라는 개념을 강조했다. 그는 한발 더 나아가 대담한 전망을 펼친다. 2030년 말에는 뇌의 정보를 완전히 스캔(scan)할 수 있는 업로딩(uploading)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커즈와일의 대담한 주장은 닉 보스트롬의 슈퍼 인텔리젼스(까치, 2017)에 언급된다. 이 책에서 닉 보스트롬은 업로딩을 전뇌 에뮬레이션(whole brain emulation)’이라고 부른다.

 

전뇌 에뮬레이션(또는 업로딩[uploading]”이라고도 알려진) 방식은 생물학적 뇌의 연산 구조를 정밀하게 관찰하고, 이를 모형화함으로써 지능적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것이다. 따라서 이 방식은 자연으로부터 영감을 얻는 정도가 아니라 완전한 표절에 가까울 것이다. (닉 보스트롬, 66)

 

인공지능에 대한 커즈와일의 전망은 낙관적이다. 그는 전뇌 에뮬레이션이 가능한 시대가 오면 인공지능이 발달하면 의식을 갖게 되고, 인간의 영적 경험들을 모두 체험할 수 있을 것으로 예측했다. 그러나 그의 주장에 대한 반론이 만만치 않다.

 

 

 

 

 

 

 

 

 

 

 

 

 

 

 

 

* 로저 펜로즈 황제의 새 마음(이화여자대학교출판문화원, 1997)

* 로저 펜로즈 마음의 그림자(승산, 2014)

 

 

로저 펜로즈는 인간의 마음을 가진 안드로이드의 존재를 부정한다. 그는 황제의 새 마음(이화여자대학교출판문화원, 1997)마음의 그림자(승산, 2014)라는 두 권의 책에서 강인공지능 지지자들의 의견에 반대 견해를 밝혔다. 펜로즈는 인간의 마음을 컴퓨터 알고리즘(Algorithm)을 이용하여 표현하는 과정 및 작업을 컴퓨팅(computing)’이라고 명명한다(마음의 그림자54). 그렇지만 그는 인간의 마음, 즉 의식은 어떠한 인공지능으로도 재현될 수 없는 그 무엇을 가지고 있으므로 컴퓨팅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지금까지 뇌가 어떻게 의식을 일으키는지 설명하는 적합한 이론이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의식의 기원을 설명할 수 없는 상황인데도 초인공지능 지지자들은 모호한 의식보다는 지능에 더 관심을 가진다(황제의 새 마음 하권616). 의식하고 있다는 것, 내가 나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들은 굉장히 신비로운 일이다. 하지만 철학 하는 사람, 신경생리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에게는 의식을 이해하는 일은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문제이다. 초인공지능 지지자들은 의식을 가진 인공생명체의 등장을 기대하지만, 여러 가지 면에서 요원한 점이 있다.

 

 

 

 

 

 

 

 

 

 

 

 

 

 

 

 

* 닉 켈먼 완벽한 호모 사피엔스가 되는 법(푸른지식, 2017)

 

 

비록 안드로이드가 인간만큼 배려하고, 따뜻하게 대한다고 해도 기계는 인간처럼 이성에 의해 움직이지 않고 알고리즘의 배치에 따라 움직일 뿐이다. 인간이 안드로이드와 사랑에 빠지면 복잡하고 중요한 문제들을 마주해야 한다. 안드로이드의 대화 능력이 가장 중요한데 특히 안드로이드가 유머를 이해하는 일은 다른 분야들에 비해 가장 뒤처져 있다. (레이 커즈와일은 《마음의 탄생》[크레센도, 2016]이라는 책에서 컴퓨터가 유머와 같은 '인간의 미묘한 영역'도 이해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유머는 우리 안드로이드로서는 사람처럼 흉내 내기가 아주 어려운 영역이다. 사람들조차도 유머를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한다. 언제 웃고 언제 웃지 말아야 할지를 제대로 결정하기는 정말 어렵다.

 

(닉 켈먼의 책, 172, 176)

 

그리고 사랑이라는 감정은 조건 없는 것도 아니며 영원한 것도 아니다. 과연 안드로이드는 복잡한 사랑의 감정을 이해할 수 있을까? 그리고 금지된 불장난의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 안드로이드에게 더 이상 사랑의 감정이 느껴지지 않으면 일방적으로 이별 통보를 할 수 있다. 안드로이드의 전원을 끄면 된다. 이 때문에 안드로이드와의 이별에도 예의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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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alia 2017-07-11 0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이렇게 흥미진진한 글에 왜 댓글이 없을까요? 물론 아직 읽지 않은 분들이 많아서 그렇겠지만서도 말입니다. 저는 이런 유형의 글에 (알라딘 블로거들 글뿐만 아니라 네이버 기삿글, 다음 기삿글 등등에) 수많은 댓글을 달아왔기 때문에 제가 또 댓글을 달면 식상해 하실 분들이 많을 것 같아서요. 제 의견은 비주류인 데다가 실제로 좀 식상하기까지 하니까요. 마음 · 의식 · 감정 · 인공지능 등등에 대해 새롭고도 참신한 시각으로 얘기해주는 댓글을 기다려 봅니다.

cyrus 2017-07-11 09:18   좋아요 0 | URL
저는 qualia님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인공지능에 가장 많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이 qualia님이니까요. ^^

블랙겟타 2017-07-11 18: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CLAMP의 쵸비츠라는 애니를 참 오랜만에 듣는군요. 한창 일본 방영시기에 유명했었습니다만.. 저한텐 그시절 거대로봇이나 학원물 같은 애니나 만화를 보던 시기라 눈길이 안갔던 기억이 나네요.. 그래서 인지 저는 안드로이드 로봇하면 ‘아톰‘이 가장 먼저 떠오르네요.. ㅎㅎ cyrus님의 글을 읽으니 최근 주목받고 있는 딥러닝시스템과 유사한 시스템이 나온다던지..현재의 모습과 비슷하게 그리고 있다는 것에서 쵸비츠가 놀라운 애니였군요.

cyrus 2017-07-12 15:33   좋아요 0 | URL
<아톰>도 보고 싶은데, 오래된 만화라서 그런지 찾기가 힘들었습니다. 원래는 <은하철도 999>와 인공지능에 관한 글을 쓰고 싶었습니다. 제가 생각했던 내용의 글을 겨울호랑이님이 먼저 써서 계획을 변경했습니다. 그래서 <쵸비츠>를 보게 됐습니다. 생각보다 재미있었습니다. ^^

yamoo 2017-07-11 2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쵸비츠...이 만화를 여기서 다시 만나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전 애니로 봤는데, 이거 대작은 아니라도 충분히 잘 만든 작품이죠. 이걸 인공지능과 연결시키시다니....퀄리아님 말씀마따나 흥미진진하네요.^^

cyrus 2017-07-12 15:36   좋아요 0 | URL
<쵸비츠>를 아는 알라디너가 얼마나 될지 궁금했습니다. yamoo님이 이 만화를 아실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ㅎㅎㅎ <쵸비츠>가 <카드캡터 체리>을 그린 클램프의 작품이라서 기대하고 봤습니다. 역시나 기대 이상의 만화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