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는 알고 있다 - 물속에 사는 우리 사촌들의 사생활
조너선 밸컴 지음, 양병찬 옮김 / 에이도스 / 2017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김민기가 만든 『작은 연못』은 양희은 특유의 청아한 목소리가 돋보이는 동요 느낌의 곡이다. 이 곡은 동요처럼 단순하고 가사 역시 동화를 들려주듯 에둘러 말하지만,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깊은 산 오솔길 옆 자그마한 연못엔

지금은 더러운 물만 고이고 아무것도 살지 않지만

먼 옛날 이 연못엔 예쁜 붕어 두 마리

살고 있었다고 전해지지요 깊은 산 작은 연못

어느 맑은 여름날 연못 속에 붕어 두 마리

서로 싸워 한 마리가 물 위에 떠오르고

여린 살이 썩어 들어가 물도 따라 썩어 들어가

연못 속에선 아무 것도 살 수 없게 되었죠.

깊은 산 오솔길 옆 자그마한 연못엔

지금은 더러운 물만 고이고 아무 것도 살지 않죠.

 

 

박정희 정권의 유신체제 아래에서 금지곡이 쏟아졌다. 전두환 신군부 정부가 출범하고서도 금지곡 지정은 계속됐다. 지금 생각해도 얼토당토않은 이유였다. 『작은 연못』은 노랫말이 불온하다는 이유로 금지곡으로 지정되었다. 그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다. 서로 싸운 붕어 두 마리가 등장하는 노랫말이 남한과 북한의 냉전 구도 혹은 박정희와 김대중의 정치적 대립을 연상케 한다는 이유로 금지곡이 됐다는 추측이 있다.

 

영화 『니모를 찾아서』의 주인공 ‘니모’로 잘 알려진 클라운피쉬(clownfish)는 대표적인 해수관상어다. 클라운피쉬의 또 다른 종류인 토마토클라운피쉬는 니모처럼 귀여운 외모를 가졌지만, 공격적인 성향이 강하다. 같은 종끼리도 영역 다툼을 할 정도로 자신만의 영역을 가지려고 한다. 물고기의 세계에서도 동종 다툼이 간혹 일어난다. 그렇지만 물고기들은 싸우기 위해 힘을 과시하지 않는다. 싸움을 피하고자 자신에게 접근하려는 적에게 위험 신호를 보낸다. 복어는 적을 만나면 입으로 공기를 한껏 빨아들여 자신의 몸뚱이를 크게 팽창시킨다. 이렇게 적에게 과시하는 행동의 전술은 물리적 충돌을 피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암컷들 간의 치열한 서열 다툼이 벌어지면, 수컷 한 마리가 중재에 나서서 활동하는 경우가 있다. 시클리드(cichlidae)의 한 종류인 골든 음부나(golden mbuna) 집단에 평화 유지군 역할을 하는 수컷이 꼭 있다. 그런데 이 녀석의 중재 방식은 누가 봐도 속 보이는 전략이다. 평화 유지군을 맡은 수컷은 싸운 두 명의 암컷 중에 영역에 들어온 낯선 쪽에 손을 들어준다. 평화 유지군에게 인정받은 암컷은 집단의 새로운 일원이 되는 동시에 수컷의 짝짓기 상대가 된다.

 

복어와 골든 음부나의 사례에서 우리가 공통된 한 가지 사실을 알 수 있다. 물고기도 인간처럼 보고, 느끼고 살아간다. 한때 물고기는 새와 함께 지능이 낮은 동물로 오해를 받았다. 최근 새의 지능을 재평가하는 실험 결과가 속속들이 나오면서 새는 인간의 편견에 벗어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물고기는 인간이 만들어낸 ‘어리석은 동물’ 목록에 여전히 포함되어 있다. 《물고기는 알고 있다》는 물고기를 바라보는 인간의 편견을 완벽하게 깨뜨리는 책이다. 우리는 물고기가 단 몇 초 동안만 기억할 것으로 생각하지만, 놀라울 정도의 학습 및 기억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물고기는 되는 대로 헤엄치는 것이 아니다. 대구, 넙치 등의 물고기는 인간의 청각을 뛰어넘는데, 인간이 듣지 못하는 초저주파를 감지한다. 이들은 음향 정보에 따라 장애물을 피하는 등 주도면밀하게 동선을 선택한다. 아울러 젊은 물고기들은 나이 든 물고기들로부터 이동하는 과정 및 방법을 배워 수개월 동안 기억한다.

 

그런데 인간은 이 훌륭한 능력을 갖춘 물고기를 ‘원시적인 존재’로 생각한다. 동물에 대한 인간의 편견은 포획을 일삼는 행위를 정당화하는 위험한 근거가 된다. 《물고기는 알고 있다》의 저자 조너선 밸컴(Jonathan Balcombe)물고기가 인간처럼 감각을 느끼지 못하고, 학습 능력이 떨어진다고 믿는 지독한 편견이 물고기의 생태계를 파괴하는 원인으로 지적한다. 어부들은 물고기를 남획할 때 다 자란 성어(成漁)만 잡고, 치어는 바다로 돌려보낸다. 물고기 개체 수가 확 줄어드는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치어만 남아있는 물고기 집단은 다 자란 물고기에게 이동 방법을 배우는 기회가 없다. 한 집단에 공유되는 생존법을 학습하지 못한 물고기는 생존 확률이 떨어진다.

 

《물고기는 알고 있다》를 읽으면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는 수조 속에서 살아가는 물고기의 실체를 다시 보게 된다. 그리고 지구라는 '우주의 연못' 속에 사는 인간의 존재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물고기는 자신의 목숨을 낚아채는 낚싯바늘의 실체를 알고 있다. 물고기가 갈고리로 된 낚싯바늘에 걸리다가 운 좋게 살아남으면, 낚싯바늘이 자신의 목숨을 노리는 위험한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물고기는 위험천만한 결과를 초래하는 실패를 잊지 않는다. 한 번 당한 이후부터 갈고리처럼 생긴 것만 봐도 피한다. 인간은 실패를 학습으로 바꾸어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같은 실패를 반복한다. 최악의 상황을 여러 번 겪고 나서야 실패의 교훈을 뒤늦게 깨닫는다. 인간의 어리석음은 끝이 없고, 같은 실패를 반복한다. 물고기는 절대로 멍청한 동물이 아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한 번 크게 당하고도 위험한 상황을 또 겪는 우리 인간이야말로 멍청하다.

 

《물고기는 알고 있다》는 생선회를 좋아하는 미식가, 낚시꾼들로서는 불편할 것 같다. 조너선 밸컴은 여가용 낚시를 물고기의 죽음과 부상을 초래하는 행위로 규정한다. 그는 ‘미늘 없는 낚싯바늘’ 사용을 제안한다. 낚시꾼 입장에서는 저자의 제안이 어이없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런데 잘 생각해 보면 저자의 말에 일리 있다. 물고기 대신에 시간을 낚았다는 주나라의 공신 강태공은 곧은 낚싯바늘을 사용했다고 한다. 낚시와 관련된 강태공의 전설적인 일화가 허구에 가깝지만, 곧은 낚싯바늘도 물고기를 잡기 위한 도구이다. 영국에는 이미 미늘 없는 낚싯바늘이 유행이라고 한다. 강태공 소리를 듣는 낚시꾼이라면 미늘 없는 낚싯바늘로 물고기 한두 마리를 잡아 봐야 한다. 하루 동안 낚시를 해서 물고기 한 마리 못 잡을 때가 있다. 낚시꾼들이여, 자책하지 마시라. 낚시꾼 당신의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물고기는 당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아주 똑똑하다.

 

 

 


댓글(18) 먼댓글(0) 좋아요(2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7-05-23 12: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5-23 21:28   좋아요 0 | URL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로 방사능과 오염수 일부는 바다로 유출되었습니다.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물고기 생태계에 악영향을 줄 수 있어요. 당연히 방사능에 오염된 물고기를 섭취한 인간도 위험해요. 이런 문제를 생각한다면 물고기 남획을 긍정적으로 볼 수 없습니다.

페크pek0501 2017-05-23 2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진이 일어나기 전에 우리 인간보다 먼저 동물들이 땅의 변화를 알아챈다고 하지요.
이것만 봐도 인간이 가장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건 우리의 착각이겠지요?

cyrus 2017-05-24 08:57   좋아요 0 | URL
동물들의 감각은 풀어야 할 게 많은 연구 대상이지만, 확실히 인간의 감각보다 뛰어난 건 사실입니다. ^^

AgalmA 2017-05-24 04: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원시 시대 수렵생활 본능을 낚시로 대체하는 많은 남성 인류와 생선회, 초밥 좋아하는 식객들 그래도 잡을 건 잡겠죠-,-;

cyrus 2017-05-24 08:59   좋아요 0 | URL
생선 없는 식탁은 상상하기 싫습니다. 저는 생선회를 좋아해서 이 책을 읽고 마음이 복잡했습니다. ^^;;

레삭매냐 2017-05-24 14: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한 십년 쯤 전에 낚시 엄청하러 다녔었는데 말이죠.
어신이 손에 전해질 때 그 짜릿함은 정말 ~~~

지금은 낚시 줄 매는 법도 잊어 버린 것 같네요.

여가용 낚시에 미늘 없는 낚시바늘 써야 한다는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cyrus 2017-05-24 16:13   좋아요 0 | URL
낚시 마니아들의 말로는 물고기를 낚아챌 때 느껴지는 손맛이 좋다고 하더군요. 제 친구도 가끔 저한테 낚시 같이 가자고 조릅니다. 며칠 전에 <물고기는 알고 있다>를 읽고 나서 낚시에 대한 생각이 달라졌어요. ^^;;

2017-05-24 16: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5-24 16: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5-24 16: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5-24 16: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5-24 16: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5-24 16: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transient-guest 2017-05-25 07: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물고기는 흔히 brainless로 보긴 하는데, 예전에 관상어도 주인이 들어오면 좋아서 마구 움직인다는 얘기를 듣고, 생각을 해본 적이 있어요. 결국 생명이 있는 건 우리가 이해를 못할 뿐이지만, 어떤 지성체라는 생각이 듭니다.

cyrus 2017-05-25 07:32   좋아요 0 | URL
일반 가정에서 기르는 관상어들은 불쌍해요. 그저 사람이 주는 먹이를 받아 먹고, 물속을 헤엄치면서 지내는 게 전부죠. 인간은 물고기의 지능이 단순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관상어가 혼자서 즐길 수 있는 놀이기구를 만들지 않아요.

transient-guest 2017-05-25 07:28   좋아요 0 | URL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네요. 연장선상에서 보면 산업축산이 얼마나 비참한 건지 새삼 인지하게 됩니다. 소나 돼지 닭은 좀 멀게 느끼지만 사실 사진으로 보는 보신탕으로 사육되는 개농장이나 수송을 보면 업자가 옆에 있으면 두들겨패고 싶을 정도로 화가 날 때가 있어요. 사실 깊이 생각하면 힘들어서 그렇지 동물학대 이상으로 나쁜 산업형축산을 보면서 채식주의자가 되어야하나 고민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cyrus 2017-05-25 07:33   좋아요 0 | URL
생선회, 낚시 좋아하는 사람은 조너선 밸컴의 책을 읽어선 안 돼요. 정말 고민이 많아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