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는 늘 움직이고 있다. 우리가 느끼지 못하더라도 지금 발을 딛고 있는 지각은 계속 운동하고 있다. 지구 내부에 급격한 지각변동이 생기면 그 충격으로 지진이 일어난다. 지진의 원인 중 하나로 알려진 ‘판구조론’이다. 지각과 맨틀의 윗부분으로 이루어진 두께 100㎞ 정도의 판들이 움직임에 따라 그 위에 얹혀 있는 대륙도 이동한다. 또한, 판이 갈라지거나 충돌하는 곳에 새로운 바다가 만들어지거나 습곡 산맥이 생성된다. 여기서 판을 움직이는 힘의 유래를 설명하는 학설이 앨프레드 베게너(Alfred Wegener)가 제시한 ‘대륙이동설’이다.

 

 

 

 

 

 

 

 

 

 

 

 

 

 

 

 

* 앨프레드 베게너 《대륙과 해양의 기원》 (나남출판, 2010년)

* 빌 브라이슨 《거의 모든 것의 역사》 (까치, 2003년)

* 리처드 포티 《살아 있는 지구의 역사》 (까치, 2005년)

 

 

베게너는 지도를 보다가 우연히 남미 대륙의 동쪽 해안선과 아프리카 대륙의 서해안선이 매우 비슷하다는 점을 발견했다. 지구상의 여러 대륙이 약 3억 년 전까지는 하나의 초대륙(Pangaea, 판게아)으로 이루고 있었다. 초대륙은 고생대 말에 분리되기 시작하여 현재의 5대양 6대륙이 됐다며 ‘대륙이동설’을 제시했다. 그러나 그가 여러 가지 증거를 제시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당시에는 대륙이동설을 믿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지질학자들은 대륙이동설을 비웃었다. 1950년대에 들어와서 대륙을 이동시키는 힘의 근원에 대한 여러 가지 이론과 새로운 증거들이 발표되면서 대륙이동설이 다시 주목을 받게 되었다. 그전까지만 해도 베게너는 지질학자가 아니라 기상대에 근무하는 기상학자였다. 대륙이동설이 나오기 전까지 사람들은 지구가 딱딱해서 전혀 움직이지 않는 것으로 생각했다. 강력한 믿음에 사로잡힌 과학자들은 ‘믿는 것만 보는 경향’이 있다. 대륙이동설을 무시한 지질학자들은 베게너의 이론을 검증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 칼 세이건 《코스모스》 (사이언스북스, 2006년)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It ain’t over till it’s over) 메이저리그의 전설적인 포수 요기 베라(Yogi Berra)가 남긴 명언이다. 그의 말처럼 과학은 한 번 발전한다고 해서 거기서 딱 멈추고 끝나는 게 아니다. 과학은 보편적이며 절대적인 원리들로 이루어진 학문이 아니다. 어떤 자연 현상의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서는 가설을 세우고 검증하는 작업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칼 세이건(Carl Sagan)은 지나친 믿음으로 교만에 빠진 과학자들을 비판한다.

 

“과학자가 아닌 사람들이 제시한 것만이 아니라, 과학자들이 제시한 가설들 중에도 훗날 틀렸다고 밝혀지는 것이 많다. 그러나 과학은 자기 검증을 생명으로 한다. 과학의 세계에서 새로운 생각이 인정을 받으려면 증거 제시라는 엄격한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코스모스》 195쪽)

 

상대방의 가설이 마음에 안 든다는 이유만으로 검증 과정을 거치지 않은 채 비판하는 태도는 상대방의 자유를 존중하지 않는 것이다. 검증 없는 비판은 유사과학 또는 사이비 과학의 기세를 절대로 꺾지 못한다.

 

 

 

 

 

 

 

 

 

 

 

 

 

 

 

 

 

 

 

 

 

 

 

 

 

 

* 다나 맥켄지 《대충돌 : 달 탄생의 비밀》 (이지북, 2006년)

* 로버트 토드 캐롤 《회의주의자 사전》 (잎파랑이, 2007년)

* 스티븐 제이 굴드 《다윈 이후》 (사이언스북스, 2009년)

* 로널드 프리츠 《사이비역사의 탄생》 (이론과실천, 2010년)

 

 

 

1950년 유대계 러시아 출신의 정신과 의사 임마누엘 벨리코프스키(Immanuel Velikovsky)<충돌하는 세계(Worlds in Collision)>라는 책에서 금성이 불과 3,500년 전에 생성되었다는 파격적인 주장을 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초창기의 금성은 목성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혜성이었다. 혜성처럼 우주를 떠돌던 금성은 두 번이나 지구를 스쳤다. 벨리코프스키는 거대한 홍해가 갈라진 모세의 기적이 지구에 가까이 다가온 혜성의 영향에 의해 실제로 일어난 역사적 사건이라고 했다. <충돌하는 세계>는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충돌하는 세계>의 출판사(맥밀런 출판사)에서 펴낸 천문학 교재의 저자인 할로 섀플리(Harlow Shapley)는 벨리코프스키의 책을 혹평했다. 섀플리는 출판사에게 <충돌하는 세계> 출간을 멈출 것을 촉구했고, 이를 지켜지지 않으면 자기가 쓴 천문학 교재의 판권을 회수하겠다고 밝혔다. 섀플리의 불매 운동에 동참하는 학자와 저자 들이 점점 늘어났다. 결국 위기감을 느낀 <충돌하는 세계>의 담당 출판사는 벨리코프스키가 쓴 책의 판권들을 다른 출판사(더블데이 출판사)에 팔아넘긴다. 판권을 손에 넣은 더블데이 출판사는 벨리코프스키의 또 다른 책들을 펴낸다. 벨리코프스키는 ‘격변론’을 지지하는 책을 발표하기도 했다. 격변론은 화산, 지진과 홍수 같은 급작스러운 자연 재난에 의해 지구가 현재의 모습으로 단 순간에 형성됐다고 보는 가설이다. 다윈(Darwin)의 진화론을 반박하는 창조론자들이 격변론을 지지한다.

 

현재 벨리코프스키의 금성 탄생설과 격변론은 과학 원리를 무시한 오류투성이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벨리코프스키는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각종 고대 신화들(그리스, 인도, 수메르 등)을 억지로 끼워 맞춰 해석했다. 벨리코프스키는 신화를 ‘역사적 사실’인 것처럼 설명했다. 당연히 그의 작업은 과학이라고 할 수 없다. 목성은 주로 수소, 헬륨 등의 가스들로 이루어졌다. 반면 금성은 암석으로 이루어진 행성이다. 목성과 금성의 성분을 비교해보면 확연한 차이가 있다.

 

벨리코프스키는 금성이 목성의 일부분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그리스 신화에 언급된 제우스(Zeus)의 머리에서 태어난 아테나(Athena)의 탄생에 빗대어 설명한다. 신화에 관심 많은 사람들도 납득하기 어려운 주장이다. 목성(jupiter)은 제우스의 로마식 이름이고, 금성(Venus)은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Aphrodite)의 로마식 이름에서 따왔다. 벨리코프스키는 아프로디테와 아테나를 동일한 존재로 취급했다. 그렇게 되면 헤라(Hera), 아프로디테, 아테나의 매력을 상징하는 ‘삼미신’의 의미가 달라져야 한다. 그밖에도 그는 아테나가 제우스의 눈썹에서 탄생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신화 속 이야기들이 ‘실제’로 일어난 일이라고 말한다. 이처럼 벨리코프스키는 신화의 원전을 무시하면서까지 자신의 입맛대로 소개, 해석했다.

 

 

 

 

 

 

 

 

 

 

 

 

 

 

* 마이클 셔머 《왜 사람들은 이상한 것을 믿는가》 (바다출판사, 2007년)

 

 

벨리코프스키와 그를 지지하는 추종자들은 ‘믿음 엔진(belief engine)’의 오류에 빠졌다. 자신들이 보고 싶어 하고, 믿고 싶은 것들이 우선이고, 그다음에 보고 싶은 것과 믿고 싶은 것에 대한 근거를 설명하려고 한다. 이렇다 보니 자신들의 믿음이 불확실해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 벨리코프스키가 작동시킨 ‘믿음 엔진’의 원료는 고대 신화였다.

 

과학과 신화에 대한 기초적인 내용만 알고 있어도 벨리코프스키의 주장이 터무니없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진리에 대한 검증 시도가 가능하다. 물론, 상대방의 신념이나 의견을 강압적으로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한다. ‘열린 자세’를 유지하면서도 이성적으로 신중하게 검증하는 것이 올바른 회의주의의 원칙이다. 섀플리와 그 외의 학자들이 <충돌하는 세계> 불매 운동을 이끄는 대신에 과학적 지식을 동원해서 조목조목 반박했으면 벨리코프스키의 추종자들의 기세를 충분히 꺾을 수 있었을 것이다. 과학자들의 ‘검증 없는 비판’이 오히려 벨리코프스키를 ‘기성 과학에 도전하는 천재’ 또는 ‘과학의 순교자’로 과대 포장하는 데 간접적으로 도움을 주고 말았다.

 

 

 


댓글(9) 먼댓글(0) 좋아요(2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페크pek0501 2017-05-02 13: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과학자들이 제시한 가설들 중에도 훗날 틀렸다고 밝혀지는 것이 많다.˝
ㅡ 그래서 문학은 고전을 읽고 과학은 최신 서적을 읽어야 하나 봅니다.

cyrus 2017-05-02 13:24   좋아요 1 | URL
문학, 특히 번역본은 새로 나올 때마다 읽어야 합니다. 요즘 홈즈 시리즈를 읽으면서 느꼈습니다. 어렸을 때 읽은 (축약본) 셜록과 완역본 셜록의 번역을 비교해서 읽어보니까 차이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 제가 생각한 셜록은 ‘진짜 셜록‘이 아니었어요. ^^;;

yureka01 2017-05-02 14: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재미있네요..태양계도 은하를 중심으로 볼텍스 운동을 하거든요...아마 우주 전체가 단 가만 있는적이 없을듯~~에너지는 곧 움직임~^^..

닷슈 2017-05-02 15:43   좋아요 2 | URL
이거 아는사람이 거의없죠 일전읽은책은 지구빙하기는 태양빛을 많이차단하는 지역으로태양계가진입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이야기가있어서 인상적이었습니다

cyrus 2017-05-03 07:16   좋아요 1 | URL
To. yureka01님 / 별과 행성을 움직이게 하는 에너지의 실체를 몰라서 옛날 사람들은 지구뿐만 아니라 우주 전체가 고정되어 있다고 생각했어요. ^^

cyrus 2017-05-03 07:18   좋아요 0 | URL
To. 닷슈님 / 가설이지만 그럴 듯합니다. ^^

yureka01 2017-05-03 08: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ttps://www.youtube.com/watch?v=b4LzhlDcB-U 찾아 보니 이거 였네요..ㅎㅎ 재미있어서 찾아 봤습니다. 맞습니다.몰랐던 게 맞죠..^^

transient-guest 2017-05-06 0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벨리코프스키 책을 좋아해서, 영문으로 여러 권 구해 읽었지요. 대학교 땐 책을 구할 수 없어서 도서관에서 빌려다가 복사를 뜨기도 했구요. 과학과는 확실히 거리가 있는 일종의 SF나 유사과학이지만, 그 직관이랄까, 뭔가 의문을 던지는 그런 부분은 무시할 수가 없더라구요. 아직 과학적으로 풀리지 않은 태양계의 행성배열의 missing link나 자전방향이 다른 금성 같이, 당시만 해도 아무도 의문을 던지지 않던 것들에 대해 깊이 파고들어갔는데, 문제는 그가 과학자가 아니었다는 사실일 수도 있어요. 어쨌든 진지한 과학자들이 논증을 하기 보다는 그냥 부정해버린 점, 그리고 일부분 그가 제기했던 가설들이 현대에 들어와서는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하니까요.

cyrus 2017-05-08 11:04   좋아요 0 | URL
댓글을 뒤늦게 확인했습니다. 못 보고 그냥 지나칠뻔했어요.

《대충돌 : 달 탄생의 비밀》의 저자는 벨리코프스키의 상상력을 부분적으로 인정합니다. 행성의 충돌로 또 다른 행성이 탄생했다는 벨리코프스키의 가설이 달 탄생 가설과 유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