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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에 나를 담다 - 한국의 자화상 읽기
이광표 지음 / 현암사 / 2016년 12월
평점 :
자화상은 회화적 기량과 깊은 통찰력이 있어야 하는 장르다. 자화상이라는 주제는 다른 장르와 달리 자의식에 대한 고통스러운 성찰을 화가에게 추가로 요구한다. 얼굴엔 일생동안 찍어낸 한 사람의 발자국, 욕망과 좌절 등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 얼굴을 표현한 자화상엔 화가의 내면세계를 엿볼 수 있다. 그게 자화상의 매력이다.
그러나 한국 미술에 있어서 ‘자화상’이라는 주제는 회화의 영역을 훨씬 넘어서는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결코 많은 화가에 의해 다루어지지 않았다. 18~19세기에 제작된 일부 화가들의 자화상이 남아있지만, 서양화의 전통이 투영된 자화상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시기는 1910년대다. 고희동(1886~1965)이 동경미술학교에 건너가 서양미술을 공부함으로써 한국의 근대미술은 막을 올린다. 서양화를 배운 동경 유학생들의 졸업 작품에 자화상이 필수적으로 요구되었다. 이종우(1899~1981), 나혜석(1896~1948) 등이 구미 각국에서 미술수업을 하고 돌아오면서 자화상 제작이 더욱 활기를 띠게 되었다.
《그림에 나를 담다》의 부제는 ‘한국의 자화상 읽기’다. 이 책의 저자는 조선 시대부터 근대에 이르는 내로라하는 화가들의 자화상 작품을 한데 모아 분석했다. 시대와 양식, 기법을 넘어서서 ‘자화상’이라는 독특한 주제에 대한 화가들의 다양한 이해와 접근방식을 살펴볼 수 있고 나아가 비교까지 할 수 있다.
조선 시대에 그려진 강세황(1713~1791), 윤두서(1668~1715)의 자화상은 역대 조선 회화사를 통틀어 가장 빼어난 작품이다. 저자는 이 두 사람의 자화상이 자의식을 강렬히 드러낸 이례적인 작품으로 주목했다. 일반적으로 조선 시대의 인물화는 별다른 배경을 두지 않았고, 실제 인물 이상의 회화적 효과나 과장을 추구하지 않았다. 조선 시대에 활동한 화가들의 사회적 지위가 그리 높지 않았고, 과장된 모습으로 표현되기를 꺼렸기 때문이다.
이러한 일반적 흐름을 벗어난 윤두서의 자화상이 파격적일 수밖에 없다. 자기 내면을 투시하는 듯한 형형한 눈매, 불꽃처럼 꿈틀거리는 수염이 압권인 이 자화상은 목과 상체는 물론 귀도 없이 머리만 그려져 있다. 윤두서의 자화상에 원래 상체가 그려졌다는 것은 이미 학계에 알려진 사실이다.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의 저자인 故 오주석 씨가 상체 윤곽이 보이는 윤두서의 자화상 도판을 발굴해 원래 자화상에 있던 윤두서의 상체 그림이 실수로 사라져버렸다는 견해를 밝혔다. 여기에 미술사학자 이태호 씨가 오주석 씨의 견해에 반박했다. 두 주장 가운데 한쪽에 당장 손을 들어주기 어려울 정도로 자화상을 둘러싼 논쟁은 현재진행형이다.
저자는 폴 리쾨르(Paul Ricoeur)의 관점을 빌려 자화상의 의미를 재고한다. 앞서 말했듯이 자화상은 화가의 내면세계를 고스란히 담은 그림이라고 했다. 관람객과 미술사학자들은 자화상을 바라볼 때 캔버스 속 화가의 얼굴에만 집중한다. 그런데 리쾨르는 ‘자화상을 그린 사람(화가)’과 ‘자화상에 그려진 사람(화가의 모습)’이 동일하다고 말할 수 있는 근거가 있냐고 문제를 제기한다. 이 리쾨르의 질문은 일반적인 자화상 감상법을 거부한다. 과연 그 얼굴이 정말 화가의 진짜 얼굴일까, 또 그 속에 화가의 삶이 묻어나 있을까. 이 두 가지 질문이 《그림에 나를 담다》의 핵심 주제이다.
저자는 자화상에 그려진 배경과 소품을 주목했다. 자화상의 진짜 의미는 붓으로 재현한 화가의 얼굴뿐만 아니라 화가를 둘러싼 배경과 소품에도 숨어 있다. 그것은 화가만의 자의식을 간접적으로 표현한 상징물(attribute)이다. 1910~1920년대 자화상이 인물 표현 위주로 그려졌다면, 1930년대 이후부터 배경과 소품이 등장하는 자화상이 제작되기 시작했다. 화가들은 배경과 소품을 적절히 배치해 개인적 서사(화가의 자의식)뿐만 아니라 시대적 서사(조선의 근대화, 일제 강점기, 분단 상황)까지 담아냈다. 동경 유학생 출신 화가들은 조선 지식인으로서의 자부심을 드러내기 위해 자화상을 그렸는가 하면, 이쾌대(1913~1965)는 『두루마기 입은 자화상』을 통해 전통과 근대에 혼재된 해방 이후 격변기의 상황과 그 속에 살아가면서 느꼈던 개인적 고뇌까지 표출했다.
인간의 의식은 자기의 발견에서부터 출발하면서 자아가 확립되고, 더 나아가 자기로부터의 세상으로 의식이 확대되어 간다. 이 과정을 모두 거친 화가의 자화상과 피상적인 이해만으로 자의식을 인식한 화가의 자화상은 엄연한 차이가 있다. 전자의 화가는 그림을 통해 세상을 배웠고, 세상을 통해 자화상을 그리는 법을 배운다. 끊임없이 변하는 세상에서 붓 한 자루로 자기 자신을 증명하고 살아가는 일은 어렵고도 굉장한 일이다. 훌륭한 자화상은 ‘화가의 내면세계를 바라보는 창’이 아니다. 그 자화상에는 ‘세상을 이해한 화가의 눈빛’이 살아있다. 관람객은 자화상에 화가의 눈을 마주쳐야 한다. 그 눈 속에 화가가 담으려는 시대상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