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술은 과학에 완전히 밀려 '사이비 학문'으로 전락했다. 신비주의적 색채가 짙은 연금술은 오컬트(Occult) 문화의 범주에 속한다. 이제는 비금속을 금과 같은 금속으로 전환하는 것을 업으로 삼는 연금술사를 찾아보기 어렵다. 혹시 어딘가에 은둔 생활을 하면서 옛날 연금술 지식을 토대로 연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연금술사의 목표가 금을 만드는 일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엘릭서(elixir), 즉 만병통치약을 만들고 싶어 한다. 하지만 연금술사들은 끝내 금과 엘릭서를 만들어내는 과업에 실패했다. 그래도 오늘날의 연금술사들은 점성술과 최면술 등 동원하여 영적 탐색을 도모한다.
앨리슨 쿠더트의 《연금술 이야기》(민음사, 1995)는 '민음의 과학'이라는 시리즈 명으로 출간됐다. 과학적 논리에 한참 벗어난 연금술이 '과학'의 범주에 포함되어 소개한 점이 이채롭다. 연금술을 '과학'으로 바라보는 시선에 대해서 호불호의 반응으로 나뉜다. 회의주의자들은 연금술이 근대 과학의 발전에 공헌했어도 마법과 미신이 반영된 오류의 학문이라고 말한다. 그럼에도 연금술이 근대과학이 확립된 19세기 말에 이르기까지 인류사에 숱한 흔적을 남긴 점은 부인할 수 없다. 합리주의의 대명사격인 데카르트는 젊은 시절에 연금술을 탐닉했고, 근대 물리학의 대부인 뉴턴도 말년에는 연금술에 심취했었다.
역사학자 브루스 T. 모런은 연금술이 과학혁명을 결정적으로 이끈 중요한 학문으로 본다. 그의 주장은 '미신' 혹은 '신비주의'로 알려진 연금술의 일반적 관념을 거부한다. 그뿐만 아니라 과학혁명을 연금술과 같은 마법 혹은 신비주의와의 단절로 보는 기존 인식과 배치된다. 연금술사들은 금과 엘릭서를 얻는 목표를 이루어지지 못해 연이어 실패하더라도 자신들만의 정밀한 관찰과 실험 방식으로 세계의 신비를 풀려고 했다. 연금술사들이 엘릭서를 얻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은 궁극적으로 인간이 무병장수를 누릴 수 있는 비결을 찾으려는 현대의 과학자들과 비슷하다.
스위스의 연금술사 파라켈수스(Paracelsus)는 의사이기도 했다. 그의 의학은 신비주의적 연금술과 과학이 결합하여 있다. 파라켈수스는 대우주와 소우주로 이루어진 천계의 조화가 무너지면 질병이 생긴다고 믿었다. 그리고 질병 치료를 위한 궁극의 비약을 만들고자 했다. 파라켈수스의 업적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과거의 과학이 합리적이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과학혁명은 이성이 압도적으로 이끌어서 이룩한 역사적 결과가 아니라 미신과 이성이 상호작용하면서 진행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연금술사들은 열심히 노력하는 데도 매번 실패하는 '노력형 바보'이다. 비록 연금술은 현실과 동떨어진 학문이 되었어도 그들이 연금술에 진지하게 임하는 자세는 공부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요즘, 귀감이 된다. 연금술사들은 현자의 돌 제조법 같은 아주 중요한 연금술 지식을 알아듣기 어렵게 기록했다. 연금술의 기초도 모르는 일반인이라면 그들이 기록한 지식이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한다. 연금술사들은 연금술 지식을 기호와 상징, 암호 등 다양한 표현 방법으로 복잡하게 기록하여 다음에 태어날 연금술사들을 괴롭혔다. 그래도 난해하면서도 사변적인 연금술이 오랫동안 학문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이유는 자연 세계를 알고 싶은 본능적인 앎의 호기심과 공부에 대한 진지한 태도 덕분이었다. 연금술사들은 연금술을 공부할 때 항상 이 격언을 기억했다.
"읽고, 읽고, 또 읽어라. 기도하라. 그리고 일하여라.
그리고 얻게 되리라."
(lege, lege, relege, ora, labora et invenies)[1]
연금술사들은 열심히 연금술 책을 읽고, 최선을 다해 인생의 지혜로움을 얻어 나간다면 궁극의 진리를 얻을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 그들의 진지한 태도는 중세 기독교 수도사들의 공부법과 유사하다. 12세기 수도사 후고는 성경 읽기의 전범을 보여주었는데, 일차적으로 성경을 자구적으로 읽었으면 그 두 번째로 알레고리를 해석한다. 이 두 가지 과정을 거쳐 성경에서 발견한 진리의 조각들을 질서정연하게 정리한다. 연금술사들은 수수께끼 같은 암호와 언어들을 자신만의 관점으로 해석했고, 그렇게 연금술을 통해 세상을 이해했다. 즉, 연금술사의 공부는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기도 했다. 우리가 연금술사보다 똑똑하다고 해도 그들의 공부하는 자세를 따라가지 못한다. 사실 연금술사를 '노력형 바보'라고 놀릴 수 없다. 가끔 우리는 말도 안 되는 미신에 쉽게 사로잡힌다. 미신을 둘러싼 진실 여부를 검증하지 않는다. 그렇게 공부와 담쌓은 인간은 이성과 합리성으로 포장한 채 똑똑한 척하면서 살아간다. 평생 죽을 때까지 공부하지 않을 자, 연금술사에게 돌을 던지지 마시라.
[1] 《도해 연금술》 14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