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블로 네루다의 처녀시집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 제목을 내 식대로 해석하자면 인생이란 많은 사랑의 시와 오직 하나의 큰 절망의 노래로 표현할 수 있다. 『절망의 노래』는 절망 속에 빠져 침잠하지 않고 무거운 인생 위로 가볍게 띄워 올린다는 의미가 들어 있다. 천근 무게의 절망을 띄워 올리기 위해 인간은 얼마나 강력한 희망의 힘을 발휘해야 할까. 네루다는 인간이 역경을 극복하는 과정을 ‘우리가 녹아들고 절망한 / 희망과 힘의 미친 결합’이라고 썼다. 육체적인 큰 고통에 비하면 사소하다 할 만한 것들, 이를테면 사회생활에서 빚어지는 온갖 오해와 갈등들, 그리고 그것들이 자기 비하의 감정과 뒤범벅이 되었을 때 삶은 내던져버리고 싶을 정도로 느껴진다. 그러나 육체적 고통 속에서도 정신적인 건강함을 유지하며 희망을 생각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떠올리면 절망은 잠깐일 뿐이다.

《시, 희망을 노래하다》는 삶의 고통이나 위기를 늘 행복으로 전환하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는데 뜻하지 않게 찾아온 편지처럼 시인들의 시는 세상살이에 시달리는 독자들에게 안도감과 편안함을 느끼게 한다. 일상과 평범함 속에서 느끼는 작은 즐거움 같은 것을 준다. 이 시집을 통해 우리들의 누추한 삶 또한 삶의 아름다움임을 깨닫게 되는 것은 시를 읽는 우리 독자들의 즐거움이자 기쁨이다.
새벽에 창을 사납게 두드리던 비도 그치고
이른 아침, 햇살이 미친 듯 뛰어내린다
온몸이 다 젖은 회화나무가 나를 내려다본다
물끄러미 서서 조금씩 몸을 흔든다
간밤의 어둠과 바람 소리는 제 몸에 다 쟁였는지
언제 무슨 일이 있기라도 했느냐는 듯이
잎사귀에 맺힌 물방울들을 떨쳐 낸다
내 마음보다 훨씬 먼저 화답이라도 하듯이
햇살이 따스하게 그 온몸을 감싸 안는다
나도 저 의젓한 회화나무처럼
언제 무슨 일이 있어도 제자리에 서 있고 싶다
비바람이 아무리 흔들어 대도, 눈보라쳐도
모든 어둠과 그림자를 안으로 쟁이며
오직 제자리에서 환한 아침을 맞고 싶다
(이태수 『환한 아침』, 14쪽)
삶이 내던져진 채로 바쁘게 살다 보면, 살아가는 나날의 의미 같은 것을 물어볼 틈이 없다. 여유가 없다고 말하지만 풍요로운 삶에 대한 욕망과 안타까움이 교차하는 것을 보면 시간이 없다고 마냥 엄살만 떨 일도 아니다. 오롯이 나만의 공간, 나만의 시간이 없다는 것이 하루를 맞아서 그냥 흘려보내는 것에 대한 합당한 이유일 수는 없다. 무릇 어떤 것에나 비교에는 다양한 층위가 있지만, 어떤 삶이 더 낫고 잘 사는 삶인지 딱 잘라 말하기는 어렵다. 시인에게 삶의 아름다움이란 예술에 있지 않다. 사소한 일상, 익숙한 자연 등 흔한 것들에서 건져 올린 그 무엇이다. 시인은 세상의 탁함에도 찌푸리지만은 않는다. 맑은 언어로 걸러내서 희망의 증거를 찾으려 한다. 그것이 바로 ‘제자리에서 맞이한 환한 아침’이다. 시인이 맞은 아침은 세상과 쉽게 통정(通情)하지 않겠다는 고고한 결의로 읽힌다.
모처럼 저녁놀을 바라보며 퇴근했다
저녁밥은 산나물에 고추장 된장 넣고 비벼먹었다
뉴스 보며 흥분하고 연속극 보면서 또 웃었다
무사히 하루가 지났건만 보람될 만한 일이 없다
그저 별 것도 아닌 하찮은 존재라고 자책하면서도
남들처럼 세상을 탓해보지만
늘 그 자리에서 맴돌다 만다
세상살이 역시 별 것 아니라고
남들도 다 만만하게 보는 것이라고
자신 있게 살라고 하시던 어머니 말씀 생각났다
사실 별 것도 아닌 것이 별 것도 아닌 곳에서
별 것처럼 살려고 바둥거리니 너무 초라해진다
한심한 생각에 눈감고 잠 청하려니
별의별 생각들 다 왔다 갔다 한다
그래도 오늘 하루 우리 가족
건강하게 잘 먹고 무탈한 모습들 보니
그저 고맙고 다행스러워
행복의 미소가 눈언저리까지 퍼진다
(공영구 『오늘 하루』, 122쪽)
이 시에서 언급된 행복은 그리 요란하지 않다. 가족들이 건강하게 지내는 사소한 일상 자체가 행복이다. 새해에 의례적으로 나누던 덕담은 ‘복 많이 받으세요’다. ‘복’이라는 말에는 재물 복, 자식 복, 부인 복, 남편 복 등 많은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이 중에 사람들이 제일 좋아하는 것이 제물 복이다. 물질적 풍요가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재물은 쉽게 들어오지 않는다. 자신의 벌이로 자신이 풍요로운 삶을 누리지 못한다고 생각할 때 상대적 상실감은 매우 깊어진다. 돈이나 명예는 자신이 추구하는 삶의 참된 의미를 발견함으로써 부수적으로 얻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은 행복이나 쾌락을 추구할 필요가 없으며, 그것들은 자동으로 무의식적으로 따라온다. 삶을 제대로 바라보기만 한다면 덜 가지고 덜 욕망해도 자유롭고 행복할 수 있다.
희망이 있는 사람은 살아있는 사람이며 내일이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절망에 빠진 사람은 살아있어도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 비록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생의 위기,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생의 고통을 당했더라도 내게 있는 희망을 찾을 수 있다면 그 인생은 언제든지 새롭게 일어날 수 있다. 자기 자신에게, 가족에게, 이웃에게 절망한 순간 이 삶의 끝에 있는 희망을 생각해보자. 견뎌야 할 삶이 남아 있다는 것은 진정한 복이다.
※ 정경진의 『꽃자리 한때처럼』 9행(34쪽)에 ‘달아나는 베꼽’이라는 표현이 있다. ‘배꼽’의 오자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