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는 후대 공포문학에 많은 영향을 준 작가이다. 47년이라는 길지 않은 생애를 살다 갔으며 은둔적인 생활을 하면서 정신이상자로 매도되기도 했다. 러브크래프트는 어렸을 때 조숙했다. 그의 독서 벽은 독특한 암흑 신화, 즉 크툴루 신화(Cthulhu Mythos)의 초석을 세우는 든든한 기반이 되었다. 러브크래프트 사후에 오거스트 덜레스가 완성한 크툴루 신화는 하나의 세계관으로 격상되었다.

 

크툴루 신화의 성공에 힘입어 러브크래프트는 ‘공포문학의 아버지’로 인정받았지만, 최고의 찬사를 너무 많이 받은 탓에 그에 관한 불편한 진실이 묻히는 경우가 있다. 러브크래트프의 소설과 크툴루 신화에 열광하는 사람이라면 러브크래프트가 문제 많은 사람이라는 것을 꼭 알아야 한다.

 

러브크래프트는 극단적인 외국인 혐오증(xenophobia)이 있는 인종차별주의자다. 그가 인종차별주의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지 않아도 그의 작품들을 꼼꼼하게 읽어보면 인종차별주의적인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

 

 

 

* 그 집에 있는 그림

(The Picture in the House, 《러브크래프트 전집 1》 38쪽)

 

“생각할수록 그림들이 정말 희한해. 앞쪽에 있는 이 그림을 좀 보게. 이렇게 큰 이파리를 늘어뜨린 나무를 본 적 있나? 그리고 이 사람들, 흑인일 리가 없어. 내 생각에는 아프리카에 살긴 해도 아메리카 인디언과 비슷한 부족일 것 같네. 이쪽에 원숭이처럼 생긴 사람도 있잖아. 반은 원숭이고 반은 사람인지 모르겠지만, 이런 사람들이 있다는 얘기는 한 번도 듣지 못했어.”

 

원문 : "Queer haow picters kin set a body thinkin'. Take this un here near the front. Hey yew ever seed trees like that, with big leaves a-floppin' over an' daown? And them men—them can't be niggers—they dew beat all. Kinder like Injuns, I guess, even ef they be in Afriky. Some o' these here critters looks like monkeys, or half monkeys an' half men, but I never heerd o' nothing like this un."

 

 

19세기 유럽인들은 다른 대륙에 사는 토착 원주민들 또는 이방인들에 대한 편견을 ‘과학’이라는 경지에 올려놓는 억지를 부렸다. “강한 자가 모든 것을 차지한다”는 약육강식 이론은 동물의 세계뿐 아니라 인간의 역사까지 설명하는 자연 불변의 법칙이며 숙명으로 자리를 잡았다. 그래서 나름의 방식으로 살고 있던 원주민들을 ‘야만스러운 짐승’으로 여겼고, 그들을 처참하게 학살하고, 노예로 만들고, 그들의 땅을 빼앗았다. 유럽인들은 강한 힘을 가진 자신들이 약한 인종을 지배하는 것이 불변의 자연법칙이며 숙명이라고 전 세계 사람들을 세뇌해왔다. 이처럼 어두운 시대의 그늘 속에 살았던 러브크래프트도 예외가 아니었다. 늘 서재에서만 틀어박혀 지낸 러브크래프트에게 아프리카 대륙은 미지의 세계인 동시에 더 나아가 인간을 위협하는 야만인들이 사는 무시무시한 세계였을 것이다. '아메리카 인디언'으로 옮긴 원어는 ‘Injuns’이다. 이 영단어는 상당히 안 좋은 의미가 있다. 아메리카 원주민을 비하할 때 쓰는 속어다.

 

 

 

* 벽 속의 쥐 (The Rats in the Walls, 《러브크래프트 전집 1》 113쪽)

 

 

역자 정진영 씨는 원문의 ‘Nigger Man’‘고양이 깜씨’로 번역했다. 그리고 이 단어에 대한 주석을 달았고, ‘러브크래프트를 인종차별주의자로 보는 단적인 예’로 설명했다. 과거에 흑인 차별이 심했을 때, 백인들은 흑인을 비하하는 단어인 ‘Nigger’를 많이 썼다. 오늘날 이 단어를 사용하는 것은 인종차별을 의미하는 것이다. 특히 공개적인 자리에서 이 단어를 사용했다간 평생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비난받는다.

 

 

 

 

 

 

 

 

 

 

 

 

 

 

 

 

 

 

 

황금가지 번역본보다 먼저 러브크래프트 작품들을 소개한 동서 미스터리 북스의 《공포의 보수》에 『벽 속의 쥐』가 수록되어 있는데, 《공포의 보수》의 역자는 주인공 델라포어의 고양이 이름을 ‘네로’라고 썼다. 《공포의 보수》 113쪽에 보면 확인할 수 있다. 동서문화서 번역본은 일본어로 번역된 것을 중역한 것이다. 1970년대에 박혜령이 부른 동요로 널리 알려진 ‘검은 고양이 네로’와 연관성이 있다. ‘검은 고양이 네로’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엄청나게 큰 인기를 끌었는데,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일찍 이 노래를 번안해서 불렀다. 러브크래프트의 작품을 번역한 일본인이 흑인을 비하하는 의미가 담긴 검은 고양이 이름 때문에 일부러 ‘네로’라고 썼을 것이다. 그리고 일본어 번역본을 참고한 《공포의 보수》의 역자는 ‘네로’가 워낙 우리나라에도 친숙한 이름이기 때문에 그대로 옮긴 것으로 추정한다. 그런데 《공포의 보수》 114쪽에는 고양이 이름을 ‘깜돌이’라고 썼다. 136쪽에는 다시 ‘네로’로 썼다. 역자 한 사람이 쓴 문장이 맞는지 의문이 들 정도다. 이래서 동서문화사 번역본이 러브크래프트 마니아들로부터 외면받은 이유가 있다.

 

 

 

* 크툴루의 부름 (The Call of Cthulhu,《러브크래프트 전집 1》 148~149쪽)

 

 

웹 교수는 48년 전에 고대 비문 발견에는 실패했지만 그린란드와 아이슬란드를 탐사한 일이 있다고 했다. 그때 그린란드 서부 해안의 고원 지대에서 쇠락한 에스키모 부족을 만났다. 그들의 종교는 악마를 숭배하는 기묘한 형태의 이교로서 무엇보다 극도로 잔인한 특성을 가지고 있어 웹 교수는 간담이 서늘해지고 말았다. 다른 에스키모 부족들은 그 종교에 대해 거의 몰랐고 설렁 거의 아는 이가 있다고 해도 몸서리를 치며 입에 올리기 꺼려했다.

 

 

 

* 북극성 (Polaris, 《러브크래프트 전집 3》 15쪽)

 

 

이누토스는 땅딸막한 황색의 흉악한 악마로서 5년 전에 미지의 서쪽에서 나타나, 우리 왕국의 국경지대를 유린했고 결국 도시들을 포위했다. (중략) 그 땅딸막한 종족들은 전투력이 막강했다. 키가 크고 눈이 회색인 우리 로마인들이 명예를 존중하여 무자비한 정복을 자제해 온 반면, 그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러브크래프트가 묘사한 이방 민족이나 혼혈 민족은 원주민을 침략하고 약탈하는 흉악한 존재 또는 악마숭배론자들이다. 이누토스(Inutos)는 에스키모(Eskimo)로 잘 알려진 이누이트(Innuit)를 모델로 한 가상 종족이다. 에스키모는 ‘날고기를 먹는 사람’을 의미하고, 이누이트는 ‘인간’을 의미하는 단어이다. 전자는 캐나다 원주민들이 붙인 이름인데, 북극 원주민을 비하하는 의미가 있다. 러브크래프트는 이누이트를 악마를 숭배하고, ‘인간’의 모습과 거리가 먼 무자비한 종족으로 묘사했다. 특히 『북극성』에서 ‘키가 크고 눈이 회색’인 로마인과 ‘땅딸막한 종족’인 이누토스를 비교하는 묘사에서 백인우월주의적 성향을 엿볼 수 있다.

 

 

 

 

* 고 아서 저민과 그 가족에 관한 사실

(Facts Concerning the Late Arthur Jermyn and His Family, 《러브크래프트 전집 4》 157쪽)

 

 

웨이드 경은 가문에 전해지는 불안증 면에서도 유별났다 .아프리카로 다시 여행을 떠났을 때, 기니 출신의 볼썽사나운 흑인 여자(원문: loathsome black woman from Guinea) 외에는 누구도 자신의 어린 아들 곁에 얼씬하지 못하게 했다.

 

 

작년에 브렉시트 찬성론자이자 친 트럼프 인사로 알려진 나이절 패러지 영국독립당(영국의 극우 정당) 전 대표는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을 ‘역겨운 생물체(loathsome creature)’라고 심한 발언을 한 적이 있다. ‘loathsome’은 ‘혐오스러운’이라는 의미를 뜻하기도 한다.

 

 

 

* 레드 훅의 공포 (The Horror at Red Hook, 《러브크래프트 전집 4》 372쪽)

 

체구가 땅딸막하고 전매특허처럼 눈이 째진 이들 무리는 야릇한 미제 옷을 걸쳐 입고 기괴한 분위기를 자아내며, 시청 인근의 부랑자와 뜨내기 폭력배들 사이에서 무수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 레드 훅의 공포 (《러브크래프트 전집 4》 378쪽)

 

경찰이 현장을 급습하는 동안, 눈이 째진 동양인들(원문: squinting Orientals)이 문마다 몰려들어 소극적으로 저항했을 뿐이다.

 

 

* 레드 훅의 공포 (《러브크래프트 전집 4》 391쪽)

 

아시아의 원숭이들이 공포의 전율에 맞춰 춤을 추고(원문: Apes danced in Asia to those horrors), 무너져가는 벽돌집마다 숨어든 수상한 자들 사이에 암적인 요소들이 둥지를 틀고 퍼져 나가고 있다.

 

 

러브크래프트의 전 작품과 그가 남긴 수많은 분량의 편지를 연구한 인도계 미국인 비평가 S.T. 조시(S. T. Joshi)는 『레드 훅의 공포』를 ‘끔찍하고 나쁜(horrendously bad)’ 작품으로 평가했다. 『레드 훅의 공포』는 러브크래프트의 외국인 혐오증이 노골적으로 드러난 작품이다.

 

러브크래프트가 크툴루 신화의 성공으로 불멸의 명예를 얻었어도 인종차별주의와 외국인 혐오에 대한 비판은 피할 수 없다. 이게 얼마나 심각하냐면, 그의 문학을 선호하는 작가들도 러브크래프트의 인종차별 문제를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스티븐 킹은 러브크래프트의 인종차별적인 면모를 비판했고, 《사이코》의 작가이자 러브크래프트와 편지로 교류했던 로버트 블록은 러브크래프트의 흑인 차별이 서구사회를 지배했던 구시대적 인식이었기 때문에 별 문제가 없다고 옹호했다.

 

러브크래프트는 어렸을 때부터 극단적인 인종차별주의자가 될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성장했다. 일단 그가 외출을 멀리하고, 책을 너무 많이 읽은 것이 문제였다. 책 속에 있는 세상이 어린 러브크래프트가 세계를 이해하는 유일한 통로였다. 그는 인종에 대한 서구의 편견을 비판 없이 그대로 흡수했고, 죽을 때까지 인종에 대한 편견이 얼마나 잘못된 건지 깨닫지 못했다. 그의 은둔 생활은 타인과의 친밀한 관계를 제대로 형성하지 못하게 만든 원인이었고, 성장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외모와 언어가 다른 민족을 두려워하는 감정으로 형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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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0 16: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1-10 17:09   좋아요 2 | URL
제가 러브크래프트 작품을 읽기 시작한 때가 2011년이었습니다. 오랫동안 글을 여러 번 읽었는데도 인종차별적인 표현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최근에 러브크래프트 관련 자료를 검색하다가 알게 됐습니다. 이미 외국에서는 러브크래프트 문학을 비판하는 논의가 이루어졌습니다. 국내에 러브크래프트 작품이 알려지게 된 시기가 다른 나라에 비해 늦은 편입니다. 그래서 러브크래프트 작품에 관한 비판 논의가 많이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아쉬운 소리를 더 하자면 우리나라에 러브크래프트 평전조차 나오지 않았습니다. 암울한 출판시장 현실과 장르문학의 인지도를 생각하면 나오기 힘들어 보입니다.

지금행복하자 2017-01-10 17: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작품은 작품이고 비판받아야 할 점은 분명히 비판 받아야죠~

cyrus 2017-01-10 17:15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박사모가 평소에 생각하고 다니는 것처럼 책을 읽으면 항상 좋은 것, 자기가 믿고 있는 것만 보려고 합니다.

책한엄마 2017-01-10 2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에 말씀하신 차별적 요소가 있던 책이 바로 이 러브크래프트군요-

이렇게 사람은 외부 영향을 많이 받는 존재라는 생각이 들어요.
러브크래프트가 현 시대에 살고 요즘 책을 읽으며 집 안에 있었더라면 그 시대와 다룬 사상을 가지고 있었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cyrus 2017-01-10 22:17   좋아요 1 | URL
러브크래프트가 사람 만나는 것을 싫어해서 지인들과 편지로 주고 받으면서 지냈어요. 그래서 생전에 그를 한 번도 만나지 않고, 편지를 주고 받아서 친하게 지낸 작가도 있어요.

러브크래프트가 이 시대에 살아서 작가가 되지 못했으면 키보드워리어가 되었을 것이고, 작가였다면 우익 계열 쪽으로 활동했을 겁니다. ^^;;

캐모마일 2017-01-11 0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많은 공포증후군과 결함이 있엇던 작가로 알고 있긴 했었는데, 덕분에 인종차별 요소 알고 가네요. 전집은 갖고 있지만 유명한 편만 흥미위주로 읽어서 파악을 못했나 봅니다.

cyrus 2017-01-11 10:39   좋아요 0 | URL
저도 처음에 러브크래프트 전집을 읽었을 때 인지도 높은 작품 위주로만 봤습니다. 전집 4권은 단편이 많은데, 작품의 퀄리티가 1~3권보다 떨어집니다. 그래서 4권을 제대로 보지 못했어요.

캐모마일 2017-01-11 01: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장점뿐 아니라 결함과 오점까지 알고 종합적인 판단을 하는 게 작가를 알아가는 과정 같습니다. 공포와 편견, 결함 속에서 크툴루 신화의 토대가 완성됐나 봅니다.

2017-01-11 10: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잠자냥 2017-01-11 1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항상 쓰신 글에서 많은 것 배웁니다!

cyrus 2017-01-11 18:12   좋아요 0 | URL
부족한 글을 좋게 봐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

transient-guest 2017-01-20 14: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갑자기 러브크래프트가 싫어집니다 그런데 은근 많죠 그런 서구작가들 그 시대엔 특히

cyrus 2017-01-20 15:30   좋아요 0 | URL
저도 이 사실을 알게 됐을 때 실망했습니다. 많이 부끄러웠어요. 지금까지 이 사실을 모르고, 알라딘 서재에서 러브크래프트 좋아한다고 자주 언급했으니까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