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면역에 관하여
율라 비스 지음, 김명남 옮김 / 열린책들 / 2016년 11월
평점 :
백신은 인류의 공중보건 위생에 지대한 영향을 준 발명품이다. 제너, 파스퇴르 같은 학자들 덕분에 매년 백신으로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질병으로부터 보호받고 있다. 인류는 백신의 개발과 예방접종의 확대를 통해서 질병에 의한 사망률을 지속해서 낮추어왔다. 우리가 질병에 의한 사망률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것은 예방접종을 하기 때문이다. 물론 백신의 위험성에 대한 우려도 있다. 올해 6월 말부터 만 12세 여성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자궁경부암 무료 예방접종이 시행되자 일부 부모들은 예방접종에 사용되는 백신의 안전성에 문제를 제기했다. 예방접종 부작용을 둘러싼 논란이 일어나면 한쪽에서는 ‘백신 무용론’을 펼치고, 다른 한쪽에서는 어린이 건강과 국민보건을 위한 질병 예방 차원에서 예방접종을 의무적으로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최근 자연주의 삶을 표방하는 부모들이 늘면서 예방접종 논란이 더욱 가열되고 있다. 미국에서는 수두에 걸린 아이를 불러 파티를 여는 ‘수두 파티’가 유행하기도 했다. 자연주의 삶을 실천하는 엄마들은 수두는 어릴 때 걸리면 증상이 가볍고 자연면역이 생기기 때문에 예방주사보다 안전하다고 주장한다. 자연주의 육아법은 영유아를 키울 때 예방접종을 맞히지 않고 자신의 면역력만으로 병을 극복해내도록 유도한다. 이 같은 사회 분위기에 따라 외국에서는 예방접종의 부작용을 지적하는 전문가들도 등장하고 있다.
부모들은 자녀의 건강에 매우 예민하다. 자녀가 아프지 않고 원활히 성장할 수 있도록 부모들을 노력하기 마련이다. 부모의 걱정은 끝이 없다. 예방접종이 가능한 시기가 다가오면 당연히 걱정이 커지게 된다. 자녀를 둔 어머니이자 작가인 율라 비스도 건강에 대한 관심이 컸다. 그녀 역시 백신의 위험성에 걱정했다. 이 같은 상황을 돌파할 수 있는 그녀의 유일한 길이 바로 글쓰기이다. 누구에게도 이야기하지 못하고 가슴 속에 꼭꼭 감추어 놓은 고민이 있다. 그러한 고민을 털어내지 못하고 하나둘씩 쌓이면 병이 된다.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자신을 잃지 않는 방법은 마음을 다스리는 글쓰기다. 율라 비스의 《면역에 관하여》는 엄마로서 육아의 건강관리에 대한 자기 생각을 조건 없이 쏟아낸 솔직한 기록이다. 그녀는 글쓰기를 통해 백신이라는 단어를 생각하는 의심과 두려움을 걷어낸다.
몸에 해로울 수 있는 인공적인 것을 최대한 피하는 자연주의는 개인의 삶의 방식으로 존중할 수 있다. 그러나 자연주의 부모들에게 치명적인 허점이 있다. 백신 무용론을 지나치게 믿는 반응이다. 이는 면역에 대한 무지와 오해가 부른 편견이다. 인체는 태어날 때 받은 선천면역과 살아가면서 획득하는 후천면역이 서로 조화를 이뤄 자신을 위험에서 효율적으로 방어하도록 진화되어왔다. 즉 면역계는 바이러스, 박테리아 등 외부 침입자들과 반응하면서 면역력을 강화한다. 그런데 세균에 의한 독소가 인체에 지나치게 많아지면 인체 내에서 핵폭탄에 버금가는 해를 끼치게 된다. 합병증이 일어나서 사망으로 이어진다. 백신 부작용과 관련된 잘못된 정보, 면역계의 자가 능력을 지나치게 믿으면 아이를 괴롭히는 위험한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
이 세상에 만병통치약은 존재하지 않는다. 세상에 나와 있는 모든 약이 그러하듯 백신 역시 부작용이 있다. 전문가들은 백신에서 발생 가능한 극히 드문 부작용보다는 백신 접종으로 인한 질병 예방 효과가 훨씬 더 크다고 주장한다. 만약에 예방접종을 하지 않은 사람 한 명이 전염병에 걸리면 집단유행으로 번질 수 있다. 그 사람 건강은 물론 주변 사람들 모두의 안전을 위해서라면 예방접종을 철저히 해야 한다. 예방접종이 의무사항이 아니라서 예방접종을 거부하는 부모들을 제재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그들이 자연주의 육아를 신봉해서 초래한 최악의 결과에 스스로 책임지고 반성해야 한다. 감염 증상 및 사망률 증가의 원인을 정부의 감염관리 체계의 문제로 떠넘기는 반응은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화풀이한 격이다. 이러한 갈등이 생기지 않으려면 방역 행정에 한 치의 소홀함도 있어서는 안 된다. 일단 백신 부작용에 대한 유언비어와 불안감이 확산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백신은 우리에게 좋은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백신은 ‘우리 편’, 바이러스 등 세균은 ‘악당’이라고 여겨온 믿음이 흔들리고 있다. 인류의 역사는 전염병을 비롯한 질병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때로는 굴복하고 때로는 극복하면서 인류는 질병과 함께 살아왔다. 몸속에 좋은 세균이 늘어나면 면역력이 향상돼 각종 질병을 막는 데 도움 된다. 율라 비스는 인류와 세균을 서로 균형을 이루어 정원 속에서 살아가는 공유 관계로 비유했다. 좋든 나쁘든 우린 평생 세균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세균은 인류가 몸속에 지녀야 할 영원한 동반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