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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로버트 하일브로너 & 윌리엄 밀버그 지음, 홍기빈 옮김 / 미지북스 / 2016년 9월
평점 :
시장경제론자는 “시장은 자유이다”라고 정의했다. 이 정의는 시장은 자유로워야 한다는 주장을 넘어서서, 우리 시대의 삶을 결정하고 있는 선언에 가까운 표현이다. 시장의 자유에 지배되는 사회를 시장경제 사회라고 부른다. 시장경제 사회는 자본주의가 가장 발달한 단계에 찾아온다. 경제적 측면에서, 발전된 자본주의는 이른바 신자유주의로 명명되어 생산의 국제화와 초국적 금융자본의 전 지구적 지배로 특징지어진다. 이제는 우리에게 매우 익숙해진, 세계화, IMF, WTO, 노동시장의 유연화 등은 모두 이러한 변화를 반영하고 있는 말들이다.
우리 사회에 ‘시장경제’ 체제의 해석을 둘러싼 혼란이 깊어가고 있다. 재계는 될 수 있는 대로 정부의 간섭 없는 자유주의적 시장경제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진보 진영 경제학자 일각에서는 적극적인 분배정책 구사 등 보다 광범위한 정부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문제는 시장경제에 대한 논의가 논쟁을 벗어나 이념 싸움으로 비화해 사회분열을 초래할 뿐만 아니라 이 같은 혼란은 궁극적으로 기업의 경영환경 악화로 연결돼 경제 회생을 더욱 더디게 할 수 있다.
주류 경제학자들은 경제성장을 가능케 한 것이 생산 효율성 증가와 같은 산출요소(output)라고 생각한다. ‘박정희식 경제성장’을 앞세워 박정희 대통령을 한껏 추켜세우는 사회적 분위기 탓에 대부분 사람은 권위주의적 산업화 모델을 그리워한다. 향수(鄕愁)의 근저에 박정희식 경제성장의 그늘이 짙게 드리워져 있다. 박정희 정권의 경제정책이 비약적인 경제성장의 주춧돌과 촉진제가 됐음은 부인할 수 없지만, 재벌 위주의 성장정책은 값싼 임금 노동자의 희생과 착취에 기반을 뒀다. 그리고 경제성장의 환경이 박 대통령이 추진했던 산업화 시대와 완전히 달라졌는데도 정부와 기업은 ‘몸에 맞지 않은 옷’을 버리지 못한다.
현 정부의 경제관은 신자유주의의 핵심인 트리클 다운(trickle-down, 낙수 효과)의 덫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트리클 다운이란 ‘물방울이 뚝뚝 흐른다’는 뜻이다. 열심히 혜택을 퍼 줘서 대기업의 성장을 촉진하면, 거기서 떡고물이 물방울처럼 뚝뚝 흘러 국민도 덩달아 잘살게 된다는 이론이다. 이 허접스러운 생각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파산선고를 맞았다. 미국 등 선진국에서도 트리클 다운 정책은 실패했다는 게 학계의 정설이다. 생산만이 경제 문제 해결을 위한 답이 되지 못한다. 재벌 세습이 관행화된 한국 사회에서는 아무리 대기업이 성장해도 국민에게 떨어질 떡고물 따위 나오지 않았다. 자유경제원 소속 뉴라이트 학자들은 그저 대기업에 퍼주기만 하면 다 해결될 것이라고 믿는다. 이는 한국 경제의 엄청난 재앙이다.
경제학사가 로버트 하일브로너는 전통에 의한 생산과 분배 문제의 해결이 경제적 변화를 저지하는 ‘거대한 제동 장치’와 같다고 비유했다. 지금은 생산과 성장보다는 일자리의 중요성 등이 강조되는 경제정책 전환기인데 최근 정부의 경제동향을 보면 과거를 답습하고 있다. 위기를 겪고도 과거 위기를 불러온 정책을 답습해 온 것은 경제정책 인프라가 현재 제대로 작동하지 못함을 의미한다. 지금 과거에 머물러있다 보니까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생산성이 자꾸만 정체되고 있다.
하일브로너는 사회경제적 제도가 사회적 노력(경제 성장, 부의 확대 등)을 확보할 뿐만 아니라 적재적소에 배분되도록 보장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즉 자본주의 시장경제란 한마디로 사유재산제도를 인정하면서 시장가격을 통해 자원이 배분되게 하는 제도를 의미한다. 그런데 이상하게 우리 사회는 시장경제를 논할 때 ‘배분’(또는 분배)이라는 단어를 쏙 뺀다. 국민의 불만을 단순히 재분배하는 것으로는 해소하기 어려울 수 있다. 분배의 기회에 뒤처지는 집단이 없도록 평등한 기회 제공이 중요하다. 다른 사람이 부를 쌓지 못하게 하면서 특권을 얻으려는 불평등은 제한돼야 한다.
시장은 완벽하지 않다. 시장은 완전경쟁 상태가 아니며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동시에 나타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는 존재이다. 같은 시장경제라도 정부의 성격이 진보냐, 보수냐에 따라 다른 것으로 진보적인 정책을 쓴다 해서 시장경제가 아니라고 하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는다. 성장과 분배는 원칙적으로 같이 가야 한다. 경제 수익을 대기업과 초국적 금융자본에만 편중된다면, 경제적 권력에 주어지는 보상에 불과하다. 고대 사회의 부는 경제적 활동의 보상에 따라서 분배되지 않았다. 오로지 권력자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별한 보상이었다. 우리나라 경제의 시곗바늘은 ‘경제’라는 단어조차 등장하지 않았던 고대 사회로 거꾸로 향하고 있다. 자본주의는 보통 사람들이 만들거나 고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자본주의는 끊임없이 움직이는 역동적인 현실이다. 그러나 현재 겪는 고통이 심하면 심할수록 그것을 뛰어넘고 싶은 충동은 강할 수밖에 없다. 동서양의 경제사가 이것을 보여준다. 자본주의는 우리에게 가야 할 현실의 길을 알려주지 않는다. 변화의 고통을 이겨내고 내일의 희망에 도달하기 위해 우리에게 이성과 분별 그리고 인내심의 발휘를 요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