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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을 멈춘 사람들 ㅣ 혁신과 잡종의 과학사 1
남영 지음 / 궁리 / 2016년 8월
평점 :
진리의 강물은 오류의 운하를 통해 흐른다. (타고르)
옛날 사람들에게 지구는 우주의 중심이었다. 해와 달 그리고 별들이 모두 지구의 주변을 도는 것으로 믿었다. 과학이 발달하면서 이러한 믿음들은 미신이라는 점이 밝혀졌다. 지구는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 그 한 부분인 태양계 중에서도 아주 조그만 위성, 즉 티끌 같은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과학자들은 엄청난 사실을 밝혀내고서도 이를 떳떳하게 주장하지 못했다.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는 미신에 사로잡힌 종교의 교리에 어긋난다. 이러한 주장은 이단으로 몰려 종교 재판의 대상이 된다. 코페르니쿠스에 의해 처음 주장된 지동설이 갈릴레이에 의해 공개적으로 지지받기까진 근 100년의 세월이 필요했다.
우리 눈에는 잘못된 미신에 집착했던 옛날 사람들이 고지식하게 보인다. 답답하기 짝이 없다. 반면에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이는 척박한 땅에서 활짝 핀 기적의 꽃처럼 느껴진다. 과학사는 위대한 천재들만 기억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과학사를 혁신의 관점으로만 바라본다. 하지만 그들이 단지 비범해서 천재가 된 것이 아니다. 과학사는 시행착오와 오류의 역사이기도 하다. 착각과 실패가 교훈을 낳고 그 속에서 독창적인 아디이어도 생겨난다.
패러다임이 바뀐다는 것은 사고의 틀이 바뀌는 것을 의미한다. 당대를 지배하는 사회체제, 보편적인 법칙과 이론 등으로 이루어진 것이 사고의 틀이다. 패러다임이 바뀌고 사고의 틀이 바뀐다면 우리의 살아가는 방식도 바꿔야 한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오랫동안 유지해온 사회 체제가 흔들리기 시작하면 사람들이 믿고 있던 가치관마저 혼란이 생긴다. 질서의 안정성에 익숙한 사람들은 이를 절대로 용납하지 못한다. “세상이 바뀌는 것은 알겠어, 그런데 나는 변하기 싫어!” 변화를 거부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과학사에서 빠지지 않는 내용이다. 따라서 낯선 변화에 대한 저항을 넘어서지 않으면 혁신은 결코 나올 수가 없다는 논리가 강조되기도 한다.
그러면 과거의 틀은 무조건 틀린 것일까. 절대 그렇지 않다. 과거의 틀은 과거의 상황에서 맞는 것이고 지금의 틀은 지금의 상황에서 맞는 것뿐이다. 갈릴레이 이전에 천동설은 옳은 것이었고, 갈릴레이 이후에는 지동설이 옳은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진리라고 믿고 있는 것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얼마든지 바뀔 수도 있다. 사실 코페르니쿠스, 갈릴레이 그리고 뉴턴은 처음부터 과거의 틀을 완전히 바꾸려는 마음으로 연구를 시작한 것이 아니다.
서양에서 유래한 대부분 학문의 뿌리를 캐다 보면 첫머리에 아리스토텔레스가 등장한다. ‘또 당신이야?’이라는 감탄이 나온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거의 모든 학문 분야의 기초를 다진 명실상부 최고의 학자인 만큼 그 영향력이 아직도 건재하다. 그는 죽어서도 ‘최고의 지식인’으로 추앙받아 세상 사람들 위에 군림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우주의 중심에 지구가 고정된 천체로 인식했고, 그를 신봉하는 학자들마저 이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였다. 코페르니쿠스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가 아리스토텔레스와 프톨레마이오스의 우주론에 의문을 제기한 것은 맞으나 과거 우주론을 완전히 폐기해야 할 ‘낡은 틀’로 생각하지 않았다. 코페르니쿠스는 과거의 틀을 참고했다. 코페르니쿠스는 우주의 질서 속에 조화로운 수학의 패턴이 숨겨져 있다고 봤다. 이는 피타고라스학파의 생각과 유사하다. 피타고라스학파도 지동설을 먼저 생각해냈는데, 코페르니쿠스는 피타고라스학파가 생각한 과거의 틀을 정확한 관측과 수학적 계산을 이용해서 증명하고 싶었다. 과거의 틀을 조금씩 고쳐서 구체적으로 나온 것이 지동설이다. 결국,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은 과거의 틀이 섞인 ‘잡종’의 이론이다.
생각의 ‘잡종’은 비단 코페르니쿠스의 머릿속에서만 나타나지 않았다. 튀코 브라헤는 천동설을 믿은 최후의 천문학자다. 그의 제자 케플러는 스승이 평생 행성을 관측해 남겨놓은 엄청난 양의 자료를 검토하여 천동설을 뒤집어 버렸다. 그리고 지구가 원을 그리며 태양 주위를 돈다고 주장한 코페르니쿠스의 이론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발견했다. 브라헤와 케플러는 여러 면에서 정반대의 인물이었지만 생각의 교배를 통해 행성 운행의 원리를 밝혀낸 대혁명을 이루었다. 데카르트는 뉴턴이 새로운 역학과 우주론을 정립하는 데 큰 영향을 주었다. 데카르트는 인간을 포함, 모든 생명체를 복잡한 기계라고 생각했다. 뉴턴은 처음에 데카르트의 생각을 이어받아 자연현상을 바라봤지만, 몇 가지 결함을 발견하면서부터 자연현상을 움직이게 하는 ‘힘’의 실체를 수학적으로 증명하기 시작했다. 뉴턴은 데카르트의 어깨를 빌려 남들이 보지 못한 생각의 영역에 한 발짝 더 내디딜 수 있었다.
과학사는 혁신의 역사가 아니다. 혁신과 잡종의 역사다. 과거의 틀과 현재의 틀이 같이 공존하다가 점진적인 검증을 통해서 더욱 더 확실한 지식만이 현존한다. 천재들이 과학을 이끈 것이 아니라, 의심과 시행착오가 과학자들이 ‘과학’을 하도록 만든다. 역사에 이름을 남긴 과학자들은 앞선 사람들의 생각을 알아가면서 새로운 지식을 획득했다. 코페르니쿠스, 갈릴레이, 케플러, 뉴턴 등은 모두 자신들의 세계에서 진실에 가장 빨리 도달한 자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 모두는 갈등에 시달리는 운명을 겪는다. 과거의 틀을 부인해야 하는 운명이다. 우리가 생각한 것과 달리 그들은 ‘급진적 발상’을 무모하게 시도하지 않았다. 그래서 앞사람들이 치열하게 생각했던 세상의 이론을 짓이겨놓지 않았다. 오죽하면 뉴턴이 자신을 ‘단지 거인의 어깨 위에 서 있는 자’라고 겸손한 말을 했겠는가. 과학의 진보는 특출한 개개인의 역량에 의해서 급작스럽게 탄생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톺아볼 때 조금씩 발현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