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네 멋대로 읽어라 - 작가를 꿈꾸는 이들을 위한 독서 에세이
김지안 지음 / 리더스가이드 / 2016년 9월
평점 :
독서의 계절이 다가온 까닭일까. 또다시 몇 가지 의문이 고개를 들기 시작한다. 책이 독자들에게 외면받는 이유가 무엇인지, 책 읽는 인구수가 줄어드는 현상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나는 이제 정색을 하고 스스로 묻는다. 독자들이 자꾸만 줄어드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솔직히, 독서를 부추기는 사회가 잘못되었다고 본다.
사람들은 독서를 지적 능력을 높여주는 행위로 생각한다. 능력(ability)은 역량(competence)과 재능(talent)과 유사한 개념으로 사용된다.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책을 읽으면 사고력, 어휘력, 논리력 등이 향상된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교육열이 강한 부모의 관심은 무엇보다 아이의 성장 발달이다. 그중에서도 책 읽는 아이로 키우고 싶은 부모가 많다. 독서가 인지적 능력을 향상하는 것은 맞다. 다만 책을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독서 효과의 도움을 받기도 하지만, 동시에 악영향을 받기도 한다. 책 읽는 부모는 독서의 즐거움을 안다. 독서를 즐기는 부모는 아이에게 독서가 즐겁고 가치 있는 것임을 늘 인식시켜 줄 수 있다. 그러나 책 안 읽는 부모는 독서가 만능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아이에게 독서를 강요한다. 집에서 책만 읽는 아이는 사회성 및 대인관계, 의사소통에서 특징적인 저하를 보인다. 책은 아이의 생각과 행동반경을 관심사 이상으로 확장하지 못하도록 방해한다. 따라서 아이는 타인과의 감정을 교환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이러한 단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독서 영재를 키우려는 사회 풍토가 독서 만능주의를 초래했다. 독서 영재 열풍이 한풀 꺾여도 여전히 우리 사회는 ‘독서 능력자’를 예찬한다. ‘한국독서능력검정’이라는 시험까지 등장했다. 시험 합격을 위한 독서가 평생 독서 습관으로 이어질지 미지수다.
한 권의 책은 우리 내면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 한다고 카프카는 말했다. 애서가들이 무척 좋아하고, 많이 인용하는 유명한 말이다. 그러나 새로운 형태의 날렵한 도끼를 사용한다고 해서 그 바다가 깨지지는 않을 것이다. 겉은 멀쩡하게 생겼는데, 철근이 부실하거나 자루가 썩어 부러지는 도끼도 있기 마련이다. 단순한 이분법에 가까운 비유를 하자면, ‘좋은 책’은 ‘튼튼해서 쓸 만한 좋은 도끼’, ‘나쁜 책’은 ‘불량 도끼’다. 도끼를 만드는 사람은 ‘책을 쓰는 작가’와 같은 의미다. 독자는 내용이 불량인 책에 문제점을 제기할 수 있고, 비판할 수 있다. 비판적으로 책을 읽어내는 작업은 도끼 만드는 사람에게 불량 도끼에 불만을 제기하는 자세와 같다. 비판적 독서는 내용이 부실한 책, 즉 불량 도끼가 맞는지 아닌지 분별하는 자세다. 그런데 일부 독자들은 작가의 생각에 반박하는 비판적 독서를 기피한다. 비판적 독서가 책 많이 읽는 독자만 할 수 있는 특별한 능력으로 인식한다. 그리고 작가를 존중하는 마음이 앞서서 비판이 어려운 것도 있다. 비판적 사고가 없는 독서는 우리 내면의 바다를 더 딱딱하게 만든다. 그래서 책을 많이 읽었으나 생각하는 힘이 달린 ‘돌머리’가 나온다.
독자는 두려움이 없어야 한다. 작가 혹은 다른 독자들에게도 욕먹는 위험을 무릅쓰면서 비판해야 한다. 독자는 작가를 우러러 보기만 하는 사람이 아니다. 독자의 자존감을 높여주는 책이 바로 《네 멋대로 읽어라》다. 비록 이 책은 ‘작가를 꿈꾸는 이들을 위한 에세이’지만, 비판적 독서를 원하는 독자들의 어깨에 힘을 실어준다.
이 책에 소설가 김탁환이 글 쓰는 목적을 솔직하게 밝힌 문장이 인용되었다. 그 문장을 간단하게 요악하면, 작가의 삶은 온갖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덤벼드는 ‘투쟁하는 삶’이다. 독자는 작가처럼 투쟁적으로 치열하게 글을 쓰지 못하더라도 작가에게 덤벼드는 ‘투쟁하는 독서’를 할 수 있다. 작가에게는 불편하게 느끼겠지만, 독자는 작가를 괴롭혀야 한다. 독자도 투쟁적으로 글을 쓸 수 있다. 장석주는 ‘글을 쓰고자 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졸작이라도 쓸 수 있는 용기다’라고 했다. 그러면 독자에게 필요한 것은 졸작이라도 서평(독후감, 리뷰)을 쓸 수 있는 용기다. 문장 표현이 서툰 서평은 졸작이 아니다. 작가와 책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서평이 졸작이다. 책에서 발견한 사소한 문제점을 글로 밝히는 일은 독자가 내는 목소리다. 그런데 독자 위에 군림하는 작가는 독자의 목소리를 외면한다. “니들이 뭔데 내 책을 판단해?” 심지어 다른 독자들마저 비판의 목소리를 쓸데없는 소음쯤으로 여긴다. “니가 뭔데 작가의 책을 판단해?” 우리 사회에 ‘독서 만능주의’만큼 심각한 것이 ‘작가 만능주의’다. ‘독서 만능주의’가 책 안 읽는 사람들에게 볼 수 있는 착각이라면, ‘작가 만능주의’는 다독가들이 빠지기 쉬운 착각이다. 이런 착각을 당연하게 여기는 세상에, 누가 책을 읽으려고 하겠는가. 우리 사회는 독자의 입장을 존중하지 않으면서 책을 읽으라고 강요한다.
책은 살아 있다. 독자 앞에 다가선 책은 살아 있다. 독자님들아, 책 위에 대고 침을 뱉자.[참고] 작가에 대한 황홀경을 버리자. 작가와 책을 괴롭히자. 그게 바로 ‘내 멋대로 읽기’다. ‘내 멋대로 읽기’는 작가의 아우라를 거슬리는 독자 고유의 자세다. 무언가를 깨뜨리기 위해 무모하게 달려 들어본 독자만이 책 속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건져낼 때, 비로소 익숙한 삶의 균열이 시작되는 것이 아닐는지.
[참고] 김수영의 시 ‘눈’을 패러디했음.
※ 딴죽 걸기
“가장 안타까운 내용은 존 케네디 툴의 《바보들의 연합》이었다. 작가는 너무 아까운 삶을 살았으며 책도 제대로 빛을 보지 못했다. 더구나 우리나라엔 절판된 상태다.” (52쪽)
존 케네디 툴의 소설 《바보들의 연합》은 ‘바보들의 결탁’이라는 제목으로 도마뱀출판사에서 나왔다. 이 책은 현재 절판되지 않았다.
과거에 《조롱》이라는 제목으로도 나온 적이 있었는데, 절판되었다. 알라딘 대구 동성로점에 《조롱》 2권만 있다.
※ 숨은 cyrus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