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에 사랑을 담아 아토다 다카시 총서 1
아토다 다카시 지음, 유은경 옮김 / 행복한책읽기 / 2008년 4월
평점 :
절판


 

 

공포에는 묘한 매력이 있다. 무섭고 섬뜩하면서도 왠지 모르게 호기심을 자극한다. 우리는 무서움에 떨면서도 불빛에 몰려드는 나방처럼 공포영화에 탐닉한다. 무서운 영화를 보면 소름이 돋고 식은땀이 흘러 서늘해진다. 공포감이 교감신경을 흥분시키는 작용을 한다. 이 흥분 작용 때문에 순간적으로 적은 양의 땀이 분비되고 땀은 체외로 나오자마자 바로 증발, 체온을 빼앗아 간다. 바로 이런 이유로 서늘한 느낌이 든다. 귀신이 지나가면 서늘한 기운이 느껴진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과학적으로 근거가 없다.

 

 

 

 

귀신이 정말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뉘앙스를 풍긴 공포물이 가장 무섭게 느껴질까? 꼭 그렇지만 않다. 단순한 착시 현상이거나 귀신의 실체가 조작으로 밝혀지면 실망과 허무감이 느껴진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사람 얼굴과 닮은 형상을 찾으려는 경향이 있다. 이를 파레이돌리아(pareidolia)이라고 한다. 예컨대, 화성에서 십자가, 인간 얼굴 형상, 사람 신체 형상을 찾아내는 것들은 바로 이런 인간의 심리를 반영한다.

 

귀신이 등장하는 ‘깜짝 공포’보다 상상력을 자극하는 공포야말로 더 무섭고, 진한 여운이 남는다. 러브크래프트나 스티븐 킹 같은 공포소설 작가들이 쓴 작품에 공통점이 있다. 일상생활 중 한 번쯤 공포를 느끼거나 이상한 상상력을 불러일으켰음 직한 장소와 소재를 적절히 활용, 인간의 불안의식과 공포를 극대화하는 연출방식을 사용한다. 일본의 장편소설(掌篇小說, 손바닥 소설)의 대가 아토다 다카시 역시 기묘한 상상력을 통해 현실에서 느낄법한 서늘한 공포를 선사한다. 그의 첫 단편집 《냉장고에 사랑을 담아》 에필로그 격으로 수록된 <공포의 연구>는 소품에 가까운 소설이지만, 공포소설의 기본 설정을 알려주는 ‘공포소설론’으로 볼 수 있다.

 

“공포의 문학에서도 가장 무서운 광경은 펜으로 쓰기보다는 독자들의 상상력에 맡기는 편이 알 수 없는 공포가 퍼져서 더욱 효과를 높일 수 있습니다.”

 

(<공포의 연구 - 혹은 에필로그풍의 소품> 중에서, 445쪽)

 

표제작 <냉장고에 사랑을 담아>는 인간의 잘못된 확신과 강박에서 비롯된 잔혹한 결말이 인상 깊은 소설이다. 작가는 결말에서 나오는 주인공의 대사와 행동이 정확히 무슨 의미인지 묘사하지 않는다. 결말을 보고 있는 독자들의 상상력에 맡긴다. <기묘한 나무>는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무의미한 소설이다. 이 소설에 죽은 육체를 재생시키는 오무 나무가 등장한다. 아내가 죽은 후, 아내의 조카에 애정을 느낀 남자는 조카의 빼어난 외모를 닮은 여자를 재생시키기 위해 오무 나무 씨앗을 구한다. 씨앗이 나무로 무럭무럭 자라나는 데 필요한 것은 조카의 시체. 남자는 자신이 살해한 조카를 흙에 묻은 뒤에 오무 나무 씨앗을 심는다. 여성 신체와 닮은 오무 나무가 자라나는 데 성공했지만, 나무 표피에 나타난 얼굴은 조카가 아닌 아내였다. 남자는 기대한 것과 다른 현상을 이해할 수 없게 되는데, 소설 속 남자와 그를 지켜보는 독자들조차 전혀 생각하지 못한 반전의 결말이 기다리고 있다. <나는 먹는 사람>은 폭식과 탐식의 무한 욕망에 사로잡힌 주인공의 이야기다. 이 주인공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탄탈로스(Tantalos)와 에리직톤(Erysichton)을 반쯤 섞은 특이한 인물이다. [주1]

 

《냉장고에 사랑을 담아》는 독자에게 서늘한 공포를 안겨주는 데는 어느 정도 성공했다. 귀신보다 사람이 더 무섭다는 현실적인 교훈(?)을 보여주는 블랙 코미디다. 하지만 이 책에 작가의 재능이 발휘되는 손바닥 소설이 많이 나오지 않는다. 비교적 분량이 짧은 소설은 <해초>, <마음의 여로>, <공포의 연구>다. 특히 <해초>는 손바닥 소설에 가깝다. 본문이 고작 5쪽에 불과하다. 인물 간의 대화나 상세한 묘사(특히 벌거벗은 여체나 성애 장면을 묘사한 것)를 과감히 줄였더라면 지금보다 더 서늘한 기운의 농도가 높은 작품이 되었을 것이다.

 

<공포의 연구>에 외국 작가가 쓴 공포 단편소설들이 언급된다. 결말까지 나오기 때문에 읽기 전에 주의할 것.

 

 

* W.W. 제이콥스의 <원숭이 손> [참고1]

 

* 오카모토 기도의 <기소의 여행자> [참고2]

 

* 에드거 앨런 포의 <긴 상자> [참고3]

 

* 로알드 달의 <여주인>

 

* 휴 월폴의 <은가면>

 

* 래스키의 <탑>

 

* 사키의 <열린 창> [참고4]

 

 

 

 

[주1] 탄탈로스는 신들의 음식을 훔친 죄로 영원한 굶주림과 갈증에 시달리는 벌을 받았다. 에리직톤은 아무리 음식을 먹어도 허기를 느끼는 저주를 받았다.

 

[참고1] <윌리엄 위마크 제이콥스-원숭이 손>

(2016년 5월 17일 작성, http://blog.aladin.co.kr/haesung/8499730)

 

[참고2] 《괴몽 : 일본 환상소설 단편집》(페가나북스, 2011년, e-Book)에 수록, 제목은 ‘키소에서 온 나그네’

 

[참고3] 《에드거 앨런 포 전집 2 : 공포 편》(코너스톤, 2015년)에 수록, 제목은 ‘직사각형 상자’

 

[참고4] <사키-열린 창문>

(2016년 5월 29일 작성, http://blog.aladin.co.kr/haesung/8525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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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6-08-25 14: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때문에 죽은 사람은 많았거든요..네 맞습니다..사람이 귀신보다 더 무섭 ㄷㄷㄷㄷㄷ

cyrus 2016-08-25 14:49   좋아요 1 | URL
가족도 믿을 수 없는 세상... 진짜 말세입니다... ㅠㅠ

카스피 2016-08-26 2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뭐 예전 중국고전보면 호랑이보다 사람이 더 무섭다는 말도 있더군요^^;;

cyrus 2016-08-27 14:31   좋아요 0 | URL
그래서 사람이 사람보다 큰 호랑이를 사냥했죠... ㅎㅎㅎ 그래서 우리나라에 살았던 호랑이들 절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