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가나북스 무크지 창간호를 보다가 ‘플레이버와이어(Flavorwire)’라는 외국 웹사이트를 알게 되었다. 플레이버와이어는 미국에서 만들어진 대중문화 사이트다. 이 사이트에 책, 영화, 대중가요 등 다양한 문화를 주제로 다룬 기사들을 볼 수 있는데, 기사 내용이 리스트 형식이다. 예를 들면,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책 50권’, ‘세상에서 가장 슬픈 내용의 영화 30편’ 같은 방식으로 되어 있다. 플레이버와이어에 재미있는 내용의 기사가 많은데, 내가 가장 흥미롭게 본 것이 <Flavorwire 50 of the Scariest Short Stories of All Time>이다. 우리말로 옮기면 ‘플레이버와이어가 선정한 가장 무서운 단편소설 50선’이다. 이 글은 2014년에 작성되었다. 사실 이 기사 내용을 알리고 싶어서 지난주에 단편 공포소설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그 첫 번째 작품이 윌리엄 W. 제이콥스의 <원숭이 손>이다. 이 작품은 ‘가장 무서운 단편소설 50선’에 포함되었다. ‘가장 무서운 단편소설 50선’ 중에 번역된 작품을 엄선하여 매주 한 편씩 소개하고 싶다. 이번 주에 소개할 두 번째 작품 역시 ‘가장 무서운 단편소설 50선’에 선정된 것이다.

 

 


No. 2 사키 – 열린 격자문 (The Open Window)

 

 

 

 

 

 

 

 

 

 

 

작품 전문 출처는 《스레드니 바쉬타》(43~48쪽, 페가나북스)

 

 


분량이 아주 짧은 작품이다. 이 작품 원문이 대한교과서 <고등 영어 I> 교과서에 실려 있다고 한다. 페가나북스 대표가 사키 단편집 제작을 준비하다가 이 사실을 발견했다. 이 작품은 흔히 ‘열린 유리창’이라는 제목으로 알려졌다. 사키의 단편소설을 번역한 페가나북스 대표(다시 한 번 말하지만, 페가나북스는 1인 전자책 출판사다. 출판사 대표가 작품을 혼자 번역한다)는 ‘열린 격자문’으로 번역했다. 원문에는 ‘French window’로 적혀 있다. 실제로 프랑스식 창문은 여닫이 형식으로 되어 있다. 사소한 단어까지 세밀하게 번역한 페가나북스 대표의 노력이 돋보인다.

 

줄거리를 간략하게 요약하면 이렇다. 조카가 프램턴에게 격자문을 내다보는 이모와 관련된 으스스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저녁만 되면 이모는 3년 전에 행방불명된 남편과 두 아들이 돌아올 거라 믿는다. 조카는 열린 창문을 뚫어지게 바라보면서 죽은 이들을 기다리는 이모의 모습을 볼 때마다 섬뜩한 기분이 느껴진다고 말한다. 신경이 예민한 프램턴은 소녀가 들려주는 무서운 사연을 쉽게 믿어버린다. 이모는 프램턴에게 조금 있으면 가족들이 사냥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올 거라고 말한다. 프램턴은 조카가 얘기한 대로 곧 펼쳐질 무시무시한 상황에 불안해한다. 때마침 열린 창문 밖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행방불명되었다던 세 사람이 이모의 집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죽은 이들의 영혼이라고 생각한 프램턴은 무서움에 벌벌 떨면서 황급히 집 밖으로 나가 도망친다. 집으로 돌아온 세 사람은 도망가는 프램턴이 누구냐고 묻는다. 이모는 유령을 만난 것처럼 겁에 질려 도망가는 프램턴을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한다. 그러자 조카는 프램턴이 과거에 잊지 못할 충격적인 경험을 겪고 난 후 트라우마에 시달렸다고 말한다.
 

작품 전문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열린 격자문>의 결말은 허무하다. 조카가 들려준 무서운 이야기는 전부 ‘뻥’이다. 이 작품이 왜 ‘가장 무서운 단편소설’로 선정되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열린 격자문>은 공포소설, 괴담, 무시무시한 음모론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작품이다. 공포소설은 일상적으로 만나는 대상과 공간을 이용, 인간의 내면에 잠재된 공포의식과 공격적 본능을 끌어낸다. <열린 격자문>의 조카는 일상생활 중 한 번쯤 공포를 느꼈음 직한 상황을 적절히 활용하여 프램턴의 불안의식과 공포를 극대화하는 데 성공한다. 지극히 일상적인 순간이 무시무시한 악몽으로 둔갑시킨 데에 이 소설이 갖는 특별한 매력이 있다. 괴담과 음모론이 발생하는 이유도 그렇다. 불안한 사회일수록 허구의 이야기들은 인간의 음습한 심리를 파고들기 쉽고, 괴담과 음모론이 마음 놓고 춤을 출 수 있다. 괴담들이 사람들의 불안 심리를 쉽게 파고든다. 근거 없이 눈덩이처럼 부풀려진 괴담의 위력에 지배당한 대중은 진위를 가리지 못할 정도로 이성을 잃는다. 프램턴이 사실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부리나케 도망가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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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6-05-29 14: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ㄱ 동네에 늪지대는 악어가 사나...그런 늪지대가 있는 음습한 곳은 땅값도 낮겠네요...ㅎㅎㅎ별상상 다 합니다.ㅎㅎㅎ

cyrus 2016-05-29 18:19   좋아요 0 | URL
상상력의 힘이 무섭습니다. 어느 정도냐면 한 사람의 일상생활을 방해하기까지 합니다. 90년에 ‘빨간 마스크’ 괴담이 유행했을 때 골목길에 혼자 못 가는 아이가 많았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