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기록 160715 악어 프로젝트
토마 마티외의 만화(《악어 프로젝트》)와 관련된 마립간님의 글에 대한 반론입니다.
반론을 펼치기 전에 《악어 프로젝트》를 아직 안 읽은 분들을 위해 책을 간략하게 소개하겠습니다. 이 만화에서 남성은 악어로 그려졌습니다. 여기서 ‘악어’인 남성은 여성을 성희롱하고, 위협하는 포식자로 묘사되었습니다. 만화가는 왜 남성을 못된 악어로 묘사했을까? 만화를 보면 그 의미를 알 수 있습니다. 성폭력, 성희롱을 경험한 여성들은 모든 남성이 무시무시한 포식자인 악어로 느껴집니다. 그렇다고 피해 여성들이 모든 남성을 잠재적 범죄자인 마냥 대하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남성을 악어로 묘사한 게 절대로 아닙니다. 성폭행은 피해자에게 절대로 잊을 수 없는 트라우마가 되며 많은 고통을 줍니다. 성폭행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피해 여성들은 길거리에 마주치는 남자에게도 두려움이 느껴집니다. 그래서 악어를 묘사한 만화가의 의도를 이해하려면 여성의 입장에 서서 만화를 봐야 합니다.
마립간님의 주장 1)
남자를 악어로 표시한다고 했다. 내가 탐탁지 않게 생각하지만 글쓴이 나름의 의도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악어 얼굴이 ‘말’ 같기도 하고 ‘코뿔소’ 같기도 하고, 그리고 웃는 얼굴이 귀엽거나 우스꽝스럽거나 멍청해 보인다. 주제에 맞게 그린다면 좀 공포스럽게 그러야 하지 않나.
누군가가 저에게 이런 질문을 합니다. “《악어 프로젝트》에 나오는 악어 중에 무섭게 생긴 것이 있습니까?” 그러면 저는 서민 교수님의 유행어(?)를 빌려서 이렇게 답했을 겁니다.
“우글우글합니다.”

13쪽에 있는 그림입니다. 저는 이 그림에서 ‘호모소셜’(Homo Social)이 떠올렸습니다.
호모소셜은 ‘너를 남자로 인정한다’는 남성 사이의 유대를 의미합니다. 남자들만의 유대감이 강화될수록 여성 또는 동성애자를 향한 혐오 의식이 형성됩니다. 남자가 성적 주체로 인정받기 위해서 ‘여자를 소유’해야 합니다. 호모소셜의 경계 속에 자란 남자는 여자를 자신의 욕망에 종속되는 열등한 존재로 인식합니다. 만약 악어 무리 중 한 마리가 ‘걸레’라는 표현을 쓰는 것을 거부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나머지 악어들이 그를 공격할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호모소셜을 거부하는 악어는 ‘남자다움’의 정체성을 잃어버린 상태가 되기 때문입니다. 호모소셜은 성적 주체가 되지 못한 남성을 배제합니다. 저는 악어 떼가 무섭게 느껴졌습니다. 제가 호모소셜 속에 있었다면, ‘걸레’ 표현을 단호히 거부하기가 힘들었을 겁니다.

33쪽에 나오는 악어 그림도 무서웠습니다. 악어의 행위는 여성에게 성적 수치심을 유발합니다. 이런 상황에 당황한 여성들은 악어의 행위에 문제 삼기 전에 실제 자신이 느끼는 두려움과 수치심, 불안감을 애써 누릅니다. “과도하게 반응하면 안 돼”라며 문제를 피하려고 합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여성들은 두려워합니다. 여성이 겪는 고충을 이해한다면, 악어 그림이 상당히 무섭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마립간님의 주장 2)
p13 “으으, 웬일이니. 재 좀 봐.” “정말 아니다. 애” “그러게”
이 말은 여성이 한 말이다. 남성이 했다면 충분히 성폭력에 해당하는 말이다.
마립간님이 인용한 문장이 있는 만화 한 장면을 공개합니다.

지하철에 탄 여자 두 명이 못생긴 외모의 악어로 묘사된 남자를 쳐다보면서 속닥거립니다. 여자들은 우두커니 서 있는 남자의 외모가 마음에 들지 않은 것 같습니다. 만약에 남성 두 명이 여성의 외모를 지적한다면 이는 성폭력에 해당할까요? 저는 남성이든 여성이든 상대방의 외모에 '못생겼다'라고 표현한 말이 성폭력이라고 보지 않습니다. 물론, 외모 비하는 상대방에 불쾌감을 유발하는 올바르지 않은 언행입니다. 저는 외모 비하가 성폭력으로 적용되는지 궁금했습니다.
형법에서는 성폭력에 대한 범죄 유형을 강간, 유사강간, 강제추행, 준강간, 준강제추행, 미성년자 등에 대한 간음, 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간음, 미성년자 의제 강간죄 등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된 자세한 내용이 있는데, 이야기가 옆길로 샐 수 있기 때문에 간단히 언급만 하겠습니다. 《지금 여기 페미니즘》에 보면 성폭력의 정의를 누구나 이해하기 쉽게 설명했습니다.
“성폭력은 헌법에서 규정하는 강간이나 성희롱, 성추행 등의 성적 폭력뿐만 아니라, 여성에 대한 폭력 일반을 가리키는 개념으로 사용한다. 이는 여성억압을 지속시키는 태도 및 관행, 실천들을 모두 포괄하는 개념이다. 성폭력이란 여성을 인격체로 대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성욕을 표출하여 폭력을 가하는 행위이다.” (《지금 여기 페미니즘》 39, 43쪽 요약)
13쪽에 여자들이 대화하는 말을 살펴보면, 남자의 못생긴 외모를 문제 삼는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느 신체 부위를 가리키는지 파악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성적 수치심이 유발하는 표현도 없었습니다.

마립간님의 주장대로라면 가수 요조가 여성 스태프의 외모를 비하한 태도는 성폭력으로 비난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요조의 태도를 ‘외모 비하’라고 비판했지, 성폭력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았습니다. (사진 출처: YTN 2016년 3월 24일)
그러니까 단순히 ‘못생겼다’라는 말은 외모 비하로 볼 수 있지만, 성폭력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특정 신체 부위와 관련된 성적 표현을 써가면서 외모를 비하했으면 ‘언어 성폭력’에 가깝습니다.
지하철 좌석에 앉은 두 명의 남자가 서 있는 여자들을 보면서 이런 대화를 했다고 상상해봅시다.
“저 여자 다리 봐. 완전히 코끼리 다리야. 저런 여자랑 자고 싶지 않아.”
“야, 저기 몸매 좋은 년 있어. 옆에 있는 년은 친구 같은데. 그런데 두 년 가슴의 빈부 격차가 너무 심한데. 몸매 좋은 여자는 딱 내 스타일이야. 넌 옆에 가슴 작은 년이랑 잘 어울리겠다.”
남자들끼리 있으면 이런 말을 서슴없이 주고받습니다. 지금 여기서 반성하는 의미에서 고백한다면, 저도 철없던 시절에 동성 친구들과 했던 대화 중에는 성희롱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는 부적절한 표현이 많았습니다. 그때는 그냥 가벼운 농담으로 생각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부끄럽습니다. 여성을 향해 성적 표현을 쓰는 말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되고, 여기에 동조해서도 안 됩니다. 그리고 성적 표현이 없더라도 이성의 외모를 가지로 상대방을 무시하고, 조롱하는 외모 비하는 바람직하지 않은 언행입니다.
※ 페미니즘 또는 성폭력을 주제로 한 글은 신중하게 생각하면서 써야 합니다. 표현을 잘못 쓴다거나 주장 논리가 정립되지 못하면, 피해자에게 마음의 상처를 주는 표현이 될 수 있고, 본의 아니게 여성 혐오, 반페미니즘에 동조하는 논리로 비판받을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가 발생하지 않기 위해서 저는 이 글을 쓰느라 나름대로 생각을 많이 했으며 지금까지 읽었던 책들을 다시 살펴봤습니다. 그러나 제 능력이 부족하여 비판받을 대목이 있을 거로 생각이 듭니다. 비판은 언제나 환영합니다. 저와 마립간님의 생각에 대해 반박하셔도 좋습니다. 다만, 비판하려면 닉네임을 밝혀야 합니다. 제 블로그에는 ‘비로그인 댓글’ 기능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비판하되, 상대방을 무시하거나 깔보는 표현은 자제해주셨으면 합니다. 그건 상대방을 불쾌하게 만들고, 서로 간에 의미 없는 설전이 일어납니다. 제 글에 반박하는 분을 모욕하거나 무시하는 댓글, 댓글 싸움의 원인인 ‘편 가르기’를 유도하는 댓글은 용납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