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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의 맛 - 비, 햇빛, 바람, 눈, 안개, 뇌우를 느끼는 감수성의 역사
알랭 코르뱅 외 지음, 길혜연 옮김 / 책세상 / 2016년 3월
평점 :
태양과 바람이 누가 힘이 더 센가를 두고 내기를 했다. 지나가는 나그네의 외투를 벗기는 쪽이 이기기는 것으로 했다. 바람이 먼저 시작했다. 센 바람을 불어 나그네 외투를 벗기려고 했다. 하지만 바람의 강도가 셀수록 나그네는 외투를 더욱 단단히 여밀 뿐이었다. 이번엔 태양이 나섰다. 태양은 따뜻한 볕을 나그네에게 내리쪼였다. 나그네의 얼굴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나그네는 외투를 벗었다. 내기에 진 바람은 얼굴이 빨개져 도망갔다.
이솝 우화의 ‘태양과 바람’ 이야기다. 원하는 행동을 하도록 하는 데는 외부의 힘으로 밀어붙이기보다는 따뜻한 감화가 더 효과적이다. 그런데 일본의 작가 요네하라 마리는 이 우화의 교훈을 뒤집는다. 그녀는 내기에 패배한 바람을 옹호한다. 나그네는 외투를 벗게 하도록 만든 태양의 의지를 마치 자신의 의지라고 착각한다. 볕이 너무 강해서 더운 건데, 나그네는 길을 오래 걸어서 땀이 생겼다고 믿는다. 반대로 차가운 바람을 맞아 외투를 여미는 나그네의 행위는 자신의 의지를 자각한 것이다. 나그네는 태양, 아니 찬바람을 피하고 싶어서 외투를 벗지 않는다. 외부에 속박된 개인은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외부’의 힘을 인식하지 못한다. 경우에 따라 외부의 속박에 대응할 줄 아는 개인의 자각이 더 좋을 수 있다. (요네하라 마리 《교양 노트》, 마음산책, 2010년)
《날씨의 맛》은 날씨라는 자연적인 속박에 맞춰 살아간 인류의 자각사(自覺史)를 그려낸 책이다. 알랭 코르뱅을 비롯한 열 명의 학자들이 날씨에 대한 사람들의 감성 변화를 추적했다. 기후 변화에 따라 감정이 예민한 인간은 ‘기상학적 자아’가 강하다. 대체로 사람들은 비가 내리는 날에 기분이 축 처진다고 생각한다. 스탕달은 며칠 동안 계속 비가 내리는 날씨를 매우 싫어했다. 그는 ‘고약하고 밉살스러운 비’라고 경멸적인 표현을 썼다. 스탕달이 유독 비를 싫어했을 뿐, 작가들은 비를 ‘슬픔’, ‘우울’과 연관 있는 소재로 자주 사용했다.
태양은 이솝 우화에서 바람을 이긴 승리자가 되었지만, 실제로 사람들은 태양을 피하고 싶어 했다. 푹푹 찌는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면 사람들은 햇빛을 싫어했다. 1793년의 폭염을 피부로 느낀 어느 의사는 햇빛이 불쾌하다고 썼다.
“햇빛에 노출된 사물들은 만지면 몹시 뜨거울 정도로 달구어졌다. 사람과 짐승은 질식사했고 야채와 과일은 햇빛에 시들거나 벌레가 먹었다. 땀이 비 오듯 쏟아져서 몸은 땀으로 줄곧 목욕을 하는 것처럼 무척 불쾌했다.” (57쪽, 서평 작성자가 임의로 편집해서 인용했음)

근대에 들어오면서 햇볕의 살균 작용이 과학적으로 증명되었다. 여전히 일광욕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남아있었지만, 프랑스 공화정은 햇볕을 이용한 공공 위생의 중요성을 널리 알렸다. 당시 수많은 어린이의 목숨을 앗아간 질병이 결핵이었다. 결핵균을 사라지게 하는 일광욕 치료법이 유행했다.

바람은 양면성을 가진 날씨다. 바람은 인간이 생존하게 만드는 힘을 불어넣어 준다. 바람의 힘을 이용해서 만든 풍차가 쉴 새 없이 움직여야 밀가루를 만들 수 있다. 이 밀가루로 빵이 만들어진다. 그러나 바람은 변덕스럽다. 바람이 세지면 빗방울이 거칠게 흩날린다. 바다에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거대한 파도가 일어난다. 급격하고 불안정한 날씨의 위험성을 아는 인간은 파괴적인 바람의 힘을 두려워했다.
롤랑 바르트는 ‘날씨만큼 이데올로기적인 것은 없다’라고 말했다. 인간은 날씨의 변화에 따라 다양한 감정을 표출했다. 가끔 날씨는 우리 일상을 불편하게 하거나 목숨을 위협하는 무시무시한 위력을 드러낸다. 처음에 인간은 대자연의 힘에 무력했다. 그렇지만 점점 두려움의 속박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기후현상을 본격적으로 이해하려는 의지가 생겨났다. 시시각각 변하는 날씨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자각하게 되었다. 내일 날씨를 예측해서 언젠가 찾아올 태풍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미리 대비책을 준비한다. 비 내리는 날에 어묵, 라면, 짬뽕 생각에 절로 생각나는 것은 날씨에 따른 긍정적인 정서 변화다. 비가 매일 내리는 우중충한 날씨가 싫어도 뜨끈뜨끈한 짬뽕 국물을 맛볼 수 있어서 좋다. 우리나라가 비 한 방울도 내리지 않은 열대성 기후였으면, 이 얼큰한 짬뽕의 맛을 알지 못한다. 인간과 날씨는 과거부터 시작해서 현재까지 ‘밀당(밀고 당기기)’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