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전 모 일간지에서 주최한 대학생 칼럼 공모전에 당선된 적이 있었다. 페이스북 페이지에 남긴 글이 논설위원의 칼럼과 함께 신문지에 실리는 영광을 누렸다. 이를 계기로 나는 다른 칼럼 응모자들이 남긴 글을 첨삭하고, 추천하는 일까지 하게 되었다. 이 일에 매진하느라 당해 알라딘 서재 활동이 뜸했다. 하루에 페이스북 페이지에 오른 글의 수가 평균 열 편 정도가 된다. 대학생 칼럼 당선자가 해당 일간지 언론고시에 응시하면 1차 시험이 면제된다. 언론고시를 준비하는 신문방송학과 혹은 국문학과 출신 학생뿐만 아니라 자신의 작문 실력을 알고 싶은 학생들도 칼럼 공모전에 여러 번 도전했다.

 

내 역할은 칼럼에 응모하는 학생들이 글을 잘 쓰도록 돕는 것이다. 글쓴이의 주장이 얼토당토않거나 글의 주제를 뒷받침해주는 근거가 빈약하면 댓글로 알려준다. 내가 지적한 부분만 잘 고친다면 좀 더 나은 글이 될 수 있을 거라는 격려도 빼놓지 않는다. 글 첨삭 및 추천 역할을 하는 학생은 나를 포함한 총 네 명. 이 네 명이 추천한 글은 대학생 칼럼 후보작이 된다. 최종 결정은 대학생 칼럼 공모전을 총괄하는 기자가 한다.

 

남이 쓴 글을 읽는 건 쉬워도 그 글을 쓴 사람에게 내 의견을 똑 부러지게 말하는 일은 무척 어렵다. 특히 작문 실력이 좋다고 할 수 없는 내가 어찌 감히 남이 쓴 글에 이래라저래라 할 수 있겠는가. 글을 첨삭할 때 거만한 자세를 드러내지 않으려고 했다. 그리고 상대방이 쓴 글을 내 글이라고 생각하면서 애지중지 살폈다. 귀찮다고 해서 대충 읽으려고 하지 않았다. 잘못된 맞춤법과 어색한 문장이 있는지도 확인했다. 그 과정을 통해 나 역시 글 쓰는 방법을 하나씩 배워나갔다.

 

누구나 글을 쓸 때 가장 많이 하는 실수 중 하나가 길게 쓰는 문장이다. 내가 2010년에 썼던 글의 문장 하나를 예로 들어보겠다.

 

 

장영희 교수님의 에세이들은 접했을 때 여성 특유의 섬세한 문장이 쉽게 읽혀졌고 자신의 투병 생활에 대해 긍정적인 자세를 잃지 않은 점에서 왜 이 책이 많은 독자들이 읽게 하는지 알게 되었다.

 

 

쓸데없이 긴 문장은 독자의 몰입을 방해한다. 독자는 이 문장을 보자마자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이야?’라고 생각한다. 수식어도 지나치게 많다. 좋은 글이 되려면 문장이 매끄럽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간결해야 한다. 그러면 문장의 의미가 효과적으로 전달된다. 글자 수 제한을 두는 칼럼의 형식상 글의 핵심을 간결하게 표현하는 것이 좋다. 긴 문장은 짧은 문장으로 나누어 쓴다. 불필요하게 느껴지는 수식어를 삭제하면서 문장을 새로 다듬는다.  

 

장영희 교수님의 수필을 읽으면 섬세한 문장의 매력이 느껴진다. 그녀는 투병 생활 중에도 끝까지 펜을 놓지 않았다. 독자의 마음에 긍정적인 힘을 불어넣는 그녀의 글을 안 읽을 수가 없다. 

 

 

문장을 짧게 쓰는 것은 글쓰기의 기본이다. 그렇지만 아주 중요한 글쓰기의 기본을 알려줬는데도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못한 사람도 있었다. 문장이 형편없는 글을 읽고 나서 문장을 짧게 쓰라고 충고했다. 잘못된 문장을 인용하면서까지 직설적으로 문제점을 알려주는 내 태도에 글쓴이가 자존심이 상했다. 그는 깐깐하게 보는 내 첨삭 방식에 불만을 드러냈다. 자신의 글에 고칠 게 전혀 없는데도 내가 쓸데없이 지적했다면서 화를 냈다. 한번은 글쓴이의 지인에게 내 첨삭 태도에 대한 불만사항을 들어야 했다. 나는 글쓰기의 기본 방식을 숙지해서 친절하게 알려줬을 뿐이다. 유명한 작가가 글의 문제점을 알려주면 감사하는 마음을 감추지 못한다. 반면에 나처럼 평범한 사람이 충고하면 ‘니가 뭔데 내 글을 판단해’라는 표정으로 정색한다.

 

최근 미국 미시간대학의 언어학 연구팀이 발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다른 사람의 문법이나 틀린 맞춤법에 민감한 사람일수록 성격이 까칠하다고 한다. 내가 이토록 오자에 민감한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렇지만 이 실험 결과를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는다. 나는 반대로 생각하고 싶다. 글의 문제점이나 오자를 잘 찾는 사람은 글에 대한 집중력이 높다. 일간지마다 차이가 있겠으나 기본적으로 칼럼의 글자 수는 1,300자 이내다. A1 용지 한 장을 채우는 분량이다. 이 정도로 글이 길다고 말할 수 없다. 그렇지만 짧아진 글과 사진 위주의 정보가 공유되는 SNS 환경에 길들어지면, A1 용지 한 장 분량의 글이 길게 느껴진다. 우리가 인터넷이나 SNS의 글을 읽는 데 걸리는 시간이 고작 1분도 채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만큼 우리는 긴 글보다는 짧은 글을 선호한다. 글을 천천히 읽는 여유가 없다. 길지 않은 글을 대충 읽을수록 독해 집중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가끔 내가 알라딘 서재의 글을 읽다가 댓글로 오자를 알려주면 글쓴이 입장에서는 불쾌하게 생각할 수 있다. 내 실수가 남에게 들키거나 알려지면 부끄럽기 마련이다. 그러나 부끄러움은 한순간이다. 가볍게 넘겨버릴 수 있는 사소한 일이다. 대학생 칼럼 첨삭 활동했던 과거의 모습과 지금을 비교하면 깐깐스러운 성격이 죽은 편이다. 여전히 내 지적이 불쾌하면, 화를 내기 전에 이렇게 생각하면 된다.

 

아! 사이러스 저 사람은 내 글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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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6-04-14 18:0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제가 그간 cyrus 님의 글에 댓글을 단 적이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동안 글을 많이 읽어오긴 했지만 댓글을 단 기억은 거의 없네요. 이 글을 읽으니 그간 님의 글을 읽고 느꼈던 점을 오늘은 댓글로 달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상대방이 cyrus님의 지적에 화를 냈다면 그건 님이 `평범한데 충고를 해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아마 님의 태도에 `상대보다 많이 알고 있다`는 그래서 상대보다 `우위에 있다`는 것이 드러나서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간 님의 글이나 또 님이 다른 분의 글에 댓글을 다는 걸 봤을 때, 저는 님에게서 맨스플레인이 기본적으로 장착되어 있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이건 이렇게 하면 되지`, `이건 이런거다` 라고, 친절한 말투였으나 기본적으로 본인이 더 나은 걸 알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려 하시더라구요. 저는 몇차례 그걸 느꼈습니다. 지금 쓰신 이 글만 해도, 다른 사람이 어떻게 느껴야되는지를 가르치려고 하시는 것 같고요.

저는 cyrus 님이 악의를 갖고 있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상대방을 기분 나쁘게 하려고 말씀하신 것도 아니라고 물론 생각합니다. 그러나 누군가의 글에 조언을 하거나 지적을 할 때, `네가 나보다 더 많이 알 수도 있다`, `네가 나보다 더 고민했을 수도 있다`, 등을 한 번 더 생각하시고 말씀하셔야 되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cyrus 2016-04-14 19:32   좋아요 3 | URL
안녕하세요. 다락방님.

댓글을 읽자마자 얼굴이 화끈거렸습니다. 오늘 제가 쓴 글이 오만하게 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전에 서평의 정의에 관한 글을 썼을 때 오늘과 같은 실수를 한 적이 있었어요. 부끄럽게도 맨스플레인 기질을 고치지 못했습니다. 제 문제점을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 다락방님이 말씀하신 대로 글을 쓰기 전에 읽는 분들의 감정을 먼저 헤아려보도록 유의하겠습니다.

2016-04-14 18: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6-04-14 19:42   좋아요 1 | URL
저는 완성된 글을 올리기 전에 맞춤법 검사 기능을 사용합니다. 그래도 비문은 남아 있어요. 누군가가 글의 잘못된 부분을 알려주면 바로 고칩니다. 글을 고치면서 잘못된 점을 확인하는 거죠. 저도 댓글을 생각나는 대로 쓰는 거라서 띄어쓰기가 잘못 된 게 있을 거예요.

2016-04-14 19: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6-04-14 20:01   좋아요 0 | URL
제가 좀 직설적으로 말하는 편이에요. 안 좋게 보면 상대방 배려 없이 표현합니다. 잘 되는 의미에서 남을 도와준다는 게 오지랖 넓게 느껴질 수도 있어요. 잘 생각하고 행동해야겠어요.

2016-04-14 20: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6-04-14 20:19   좋아요 0 | URL
사소한 실수는 자고 나면 싹 잊힙니다. 그렇지만 큰 실수를 알려주는 다른 분들의 의견을 들으면 잘못된 점을 바로 잡으려고 합니다. 시간이 좀 지나서 잊힐 때가 되면 실수를 반복하게 문제지만, 내 자신을 바로 잡아주는 분들이 있다는 점이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만일 이런 분들을 만나지 못했으면 저는 비뚤어진 태도로 상대방을 대하고 있었을 겁니다.

2016-04-14 20: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6-04-14 20:40   좋아요 0 | URL
님의 말씀에 동의하는 마음에서 ‘좋아요’를 누르고 싶은데, 비밀댓글이라서 안 되네요.

stella.K 2016-04-14 2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맨스플레인의 가능성은 누구에게나 다 있는 것 같아.
특히 블로그질을 하면 할수록. 더구나 많은 추천과 댓글을 받으면 받을수록.
아무리 개인블로그라고 하지만 누군가에게 읽여질 것을 생각하고 글을 쓰는 거거든.
쓰면서도 느끼잖아. 내가 지금 아는 척하고 글을 쓰는 거지 하는.
나만해도 서재질을 많이 하니까 일기같이 아주 나만 보는 글은 못 쓰겠더군.
지난 번 서재 달인이라고 받았던 다이어리도 처음엔 어떻게든 써 보려고 했는데
못 쓰겠더라구.ㅠ
그리고 오탈자 맞춤법은 정말 기가 막가 막혀.
나도 가끔 지적을 받곤 하는데 기분 나쁘기 보다 귀찮다는 생각이 들고.
그냥 대충 알면 됐지 뭘 이걸...
그러다 나중에 다시 보면 이걸 글이라고 썼나 화끈거릴 때가 많지.
사람들한테 미안하고, 어쩌다 아는 이의 서재에서 오탈자 발견하면
마치 내가 틀린 것처럼 마음은 편치 않은데 함부로 지적하기도 뭐하고
대충 그렇게 되더군. 지금 여기까지 댓글 쓰면서도 신경 쓰인다.
그렇다고 안 쓸 수는 없고...ㅠ

cyrus 2016-04-15 12:54   좋아요 0 | URL
제일 한심한 착각이 누구나 아는 정보를 마치 자신이 제일 먼저 발견한 것처럼 소개하는 태도예요. 예전부터 지금까지 제가 그런 마음으로 글을 쓰는 느낌이 들었어요. 친절하게 오류를 알려줬다고 생각하지만, 익명성의 세계에서는 그런 선의의 진심이 전달되지 못해요. 그래서 상대방의 지적으로 인해서 불화가 생기기 쉬워요.

2016-04-14 21: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6-04-15 13:02   좋아요 0 | URL
누구나 갑작스러운 공개 지적을 받으면 순간적으로 당황하거나 화가 나기 마련입니다. 솔직히 저도 처음에 얼굴이 화끈거렸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나면 결국 상대방이 알려준 내 문제점이 무엇인지 보이기 시작해요. 어제 쓴 글을 다시 읽어보니까 오히려 이 글을 보는 사람의 감정이 더 상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님처럼 오류를 지적하는 자세를 호의적으로 보는 사람이 있는데도 저는 알라디너 전체를 지적 받는 상황 자체를 꺼리고 회피하는 존재로 봤습니다. 이건 당연히 심각한 오류고, 상대방이 기분 나쁠 수 있는 부분입니다.

영혼을위한삼계탕 2016-04-15 07: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문 맞춤법 은 소통할 때 쓰이는
하나의 약속이죠
이런 걸 다 의식하면
움츠러 들 수 있드라구요~
글 잘 읽고 갑니다^^

cyrus 2016-04-15 13:04   좋아요 0 | URL
맞아요. 맞춤법 가지고 너무 까다롭게 굴 필요도 없고, 집착이 심하면 상대방을 피곤하게 만들어요. 까다로운 성격을 고쳐야겠어요.

마립간 2016-04-15 08: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과 꼭 같지는 않지만, 무관하지 않은 것 같아 글을 남깁니다.
이와 비슷한 댓글대화가 balmas 님의 서재에서도 있었지요.

http://blog.aladin.co.kr/balmas/8398715
http://blog.aladin.co.kr/balmas/8397854

댓글에는 `토론 상대를 미니멈으로 상정하지 마세요`라는 글도 보입니다.

남의 감정을 자극하지 않으면서 남의 오류를 지적한다는 것이 원리적으로 옳지만, 실제적으로 얼마나 가능한지는 의문입니다.

`페미니스트의 주장의 오류를 감정의 자극없이 지적한다.`, `새누리당을 지지하는 할아버지께 감정을 자극하지 않고 오류를 지적한다`, `개신교도들에게 감정을 자극하지 않고 개신교의 오류를 지적한다.` 이와 같은 상황이 잘 상상되지 않습니다.

cyrus 2016-04-15 13:10   좋아요 0 | URL
어제 제가 balmas님과 같은 실수를 저질렀어요. 저 같은 경우에 알라디너 전체를 올바른 비판과 지적을 회피하고 싫어하는 존재로 설정하고, 제 행동을 정당화하는 논리를 펼쳤으니까요. 상대방을 자극하지 않으면서 오류를 지적하는 일이 정말 어려워요. 어떠한 하나의 주장을 받아들이고, 해석하는 관점에 조금이라도 차이가 있으면 서로 다른 의견으로 양분되고, 갈등을 불러일으킬 수 있으니까요.

2016-04-15 14:18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