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0퍼센트 인간 - 인간 마이크로바이옴 프로젝트로 보는 미생물의 과학
앨러나 콜렌 지음, 조은영 옮김 / 시공사 / 2016년 2월
평점 :
어느 날 갑자기 잇몸이 심하게 아플 때가 있다. 대부분 사람은 가벼운 통증으로 생각하면서 참는다. 그런데 치통이 하루 이틀 이상 계속된다면 증상의 원인을 의심해봐야 한다. 치주염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치주염 환자가 겪는 고통은 우리와 생각한 것 상상 이상이다. 최소 10분 이상 지속하는 진통이 하루에 세 번 이상 일어난다고 상상해보시라. 엄청 고통스러워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을 지경에 이른다. 치주염은 치아와 잇몸 사이 경계 조직에 염증을 일으키는 질병이다. 심하면 치아가 많이 흔들려서 음식물을 씹을 때 힘을 주지 못한다. 치아 관리가 허술할수록 뇌졸중이나 치매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 입안에 있는 세균들은 치아 사이에 낀 음식물 찌꺼기를 만나 치석으로 변한다. 그 속에 있는 세균들이 치주염을 일으키는 원인이다. 세균들은 잇몸 속 혈관으로 침투해 몸 구석구석에 위협을 가한다. 심하면 관절염, 암까지 일으킬 수 있다. 치주염은 단순한 치과 질환이 아니다.
우린 건강을 아주 중요하게 여기면서도 한편으로는 너무 단순하게 생각하기도 한다. 건강에 좋은 음식을 잘 먹고, 운동을 규칙적으로 하면 병에 걸리지 않는다고 믿는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틀리지 않은 믿음이다. 영양분 많은 음식을 섭취해서 몸을 활발하게 움직일수록 면역 체계가 높아져서 병을 유발하는 세균이 몸속에 침투하지 못한다. 그런데 우리가 한 가지고 놓치고 있는 사실이 있다. 우리를 아프게 하는 세균이 몸속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기만 하면 건강할 수 있다고 착각한다. 이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우리가 숨 쉬고 있는 1초의 순간에 적지 않은 수의 세균들이 코와 입속으로 들어간다. 그들 중 일부는 몸속 환경에 적응해서 정착한다. 그렇게 되면 우리 몸에 엄청나게 많은 세균이 장기 거주하고 있는 셈이다. 이 중에 못된 녀석이 말썽 한 번 일으켜서 우릴 집요하게 괴롭힌다.
생물학자 앨러나 콜렌은 인간과 체내 미생물의 동거 상태를 ‘10퍼센트 인간(10% Human)’이라고 표현했다. 청결에 강박관념이 있는 결벽증 환자들에게 상당히 애석한 말이지만, 자주 손을 씻는다고 해서 절대로 세균이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신체 부위 또는 몸속 내부기관에 당신이 혐오하는 세균들이 득시글하다. 우리는 10퍼센트 인간이다. 나머지 90퍼센트는 인간의 몸 전체에 거주하는 세균 즉, 미생물로 구성되어 있다. 박테리아, 곰팡이, 기생충 등이 현재 우리 몸속에 거주 중인 가장 작은 거주자들이다. 콜렌은 자신의 책에 미생물에 곰팡이, 기생충도 포함해서 설명했다. 그러므로 지금부터는 세균 대신에 미생물이라는 단어를 쓰기로 하겠다. 우리는 그동안 미생물을 오해하면서 살아왔다. 미생물이 지구 상 생물 중에서 가장 하등에 속하며 건강을 위협하는 불법 체류자로 인식한다. 서민 교수처럼 미생물을 사랑하는 미생물학자가 있었더라면 몸속 미생물들을 강제로 추방하는 일이 없었을 것이다. 앨러나 콜렌이야말로 미생물학계의 서민 교수 같은 존재다. 악의 한 축으로만 바라보던 미생물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지우려고 한다. 다만 그녀는 서민 교수처럼 재미있게 글 쓰는 스타일이 아니다. 서민 교수 팬들은 내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한다.
콜렌은 인간 마이크로바이옴(Human Microbiome) 프로젝트에 참여한 학자 중 한 사람이다. 그녀는 여태껏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했던 미생물의 실체를 밝혀내려고 미생물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그녀가 특별히 주목하고 있는 것이 ‘21세기형 질병’이다. 이전 세기에 없었던 새로운 질병(비만, 자폐증, 음식 알레르기 등)을 의미한다. 이 질병들은 의학자들이 개발한 백신과 치료제의 힘을 무력화한다. 콜렌은 항생제의 등장으로 몸속 미생물 절반이 사라지는 바람에 건강의 적신호가 생겼을 것이라 본다. 인간의 장에 서식하는 박테리아들의 무게를 재면 15kg가 나온다. 아커만시아 뮤시니필라(Akkermansia muciniphila)는 장에 거주하는 유익한 박테리아다. 비만과 제2형 당뇨병과 같은 대사질환을 조절하는 역할을 해준다. 이 박테리아의 수가 감소하면 비만에 걸리기 쉽다. 대변 속에 있는 4,000여 종의 박테리아로 건강 상태를 확인할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콜렌은 대변의 박테리아도 소홀히 여기지 않는다. 그녀는 다른 사람의 대변에 있던 좋은 미생물을 자신의 장에 주입하는 치료법을 구상 중에 있다.
인간의 몸에는 수많은 미생물이 거쳐 간다. 그런데도 이들을 불결하게 여기는 인식 탓에 항생제 같은 각종 치료제를 몸속에 대량 투여했다. 이러면 우리 몸에 이로운 미생물마저 쫓겨난다. 신약이 계속 나와도 이전에 없었던 질병들이 발현돼 우리를 끊임없이 괴롭힌다. 콜렌은 인간은 미생물과 함께 진화했다고 주장한다. ‘100%에 가까운 완벽한 건강’에 대한 집착은 90% 미생물들을 화나게 할 수 있다. 그들이 몸 밖으로 나가면 우리는 새로운 질병에 속수무책으로 당한다. 무게나 부피가 작을지 몰라도 그들은 오랫동안 우리를 지배한 직소(Jigsaw) 같은 존재다. 우리는 미생물의 존재를 소중히 여기지 않았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은 인간의 생존 전략을 밝혀 줄 열쇠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다. 우리는 그 열쇠를 찾기 위해 10%의 미생물이 주는 의학적 신호를 무시해선 안 된다.
※ 책 중간에 컬러 사진들이 배치되어 있다. 책 160쪽과 161쪽 사이에 천연두 환자가 있는 사진과 기생충에 감염되어 기형 다리를 가진 개구리 사진이 있다. 독자들에게 다소 불쾌감을 줄 수 있는 사진이므로 이 책을 고르거나 읽을 때 유의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