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고픈 당나귀가 길을 걷다가 맛있어 보이는 건초 더미를 발견했다. 그쪽으로 발걸음으로 옮기는 순간, 그 옆에 있는 다른 건초 더미가 눈에 들어왔다. ‘이것도 맛있어 보이는군.’ 당나귀는 두 개의 건초 더미 모두 맛있어 보였다. 왼쪽으로 가면 오른쪽 건초가 더 먹음직스러워 보였고, 오른쪽으로 가면 왼쪽이 먹고 싶어졌다. 밤새도록 갈팡질팡하던 당나귀는 굶어 죽고 말았다. 그는 건초 한 개도 입에 대지 못했다. 자기 앞에 놓인 두 개의 건초 더미 중에서 어떤 것이 더 나은지 줄곧 고민하다가 비극적인 최후를 맞았다. 당나귀의 어리석음을 풍자한 이 우화는 뷔리당의 당나귀(Buridan’s ass)’로 알려졌다.

 

당나귀가 말해주듯 때때로 선택의 자유는 당황스러운 상황을 만들거나 개인의 삶을 좀 더 불행하게 만들 수 있다. 당나귀는 다른 건초 더미를 배제하고 어떤 한 건초 더미를 선택할 충분한 이유를 찾지 못했다. 둘 중에 어떤 것을 선택하는 순간 자신의 선택은 오직 부분적으로만 정당화될 뿐이었다. 어떤 것을 선택했다고 해서 선택하지 않고 남겨진 것이 곧바로 하찮은 것이 되어버리는 것도 아니다. 당나귀는 미련하고 욕심이 너무 많다. 우리 또한 당나귀처럼 무언가의 결정을 눈앞에 두고 우왕좌왕하는 우매한 모습을 드러낸다. 뷔리당은 당나귀를 통해 자유의지의 무력함을 조롱했다.

 

 

 

 

 

 

 

 

 

 

 

 

 

 

 

우화의 주연은 당나귀지만, 그의 최후에 영향을 준 건초 더미를 무시할 수 없다. 중세에 건초 더미는 인간의 욕심을 불러일으키는 대상으로 해석되었다. 그렇게 되면 뷔리당의 당나귀는 두 개의 건초 더미 사이에서 고민한 것이 아니라 단순한 욕심이 자유의지의 힘을 잃은 것으로 볼 수 있다. 15세기 네덜란드에는 이런 유행가가 있었다고 한다. 하느님이 인간을 위해 지상의 훌륭한 것들을 건초 더미처럼 쌓아 올렸는데, 사람들이 그 더미를 혼자 독차지하려고 서로 다툰다는 내용의 노래다. 그 노래에서 가장 유명한 가사 한 구절이 건초의 부정적 의미를 강조한다. 결국, 그것은 모두 건초일 뿐이다.” 욕심 많은 인간은 보잘것없는 건초마저 탐낸다.

 

 

 

      

 

 

히에로니무스 보스 건초 수레(1500, 삼면제단화 중앙 부분)

 

 

히에로니무스 보스는 인간의 무력함을 풍자하기 위해 건초 더미 수레를 소재로 한 똑같은 그림 두 점을 제작했다. 엄청난 높이로 쌓아 올린 건초 더미 수레가 지나가자 온갖 직업과 계급의 사람들이 뒤따라온다.

 

 

 

                    

 

 

농부뿐만 아니라 왕과 왕비(혹은 귀족 부부), 교황으로 추정되는 화려한 복장의 인물들도 행진에 동참한다.

 

 

 

                  

 

건초 더미 수레 위에는 노래를 연주하는 젊은 연인들이 앉아 있다. 그들의 모습이 부러워서인지 몇몇 사람들은 건초 더미 위에 올라가려고 시도한다. 이들의 행진은 즐겁고 유쾌하다기보다는 혼잡하다. 이와 중에 서로 싸우는 시민들도 있다.

 

 

 

                  

 

 

그림 오른쪽 밑에 시골 아낙네들이 건초 더미를 자루에 실어 넣는다. 뚱뚱한 수도원은 아낙네들의 일을 앉아서 지켜보기만 하고 있다. 건초 더미 수레는 어디로 향하는 걸까? 괴상한 짐승처럼 생긴 악마들이 수레를 끌고 있다. 그들은 건초 더미에 욕심을 부리는 인간들을 유혹하여 지옥으로 이끈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운명을 감지한지 못한 채 행진한다. 하늘 위의 예수도 개판 5분 전인 속세의 상황을 말리지 못한다.

 

기독교의 일곱 가지 대죄 중 하나가 탐욕(Avaritia)이다. 보스는 죄악 앞에서 무력한 인간들의 세상을 보여준다. 그들의 눈에는 건초는 소유하고 싶은 물화(物貨). 탐욕은 갈등을 초래한다. 탐욕에 눈이 먼 사람들은 더 많이 가지려고 폭력을 불사하면서까지 빼앗으려고 한다. 탐욕을 경계하라고 강조하던 종교인들마저 악덕의 그림자에 점령당했다. 수도승은 아낙네들이 바치는 건초 더미를 받으면서 자신의 욕심을 채운다. 건초 더미 꼭대기 위의 연인들은 환락의 잔치를 즐긴다. 사람들은 그들을 동경한다. 재물이 많을수록 달콤한 삶을 누릴 수 있다는 확신에 사로잡힌다. 이들의 욕심은 부질없다. 어차피 죽으면 소유할 수 없다. 하나뿐인 인생에 헛된 욕심만 부리면서 살기에는 너무 짧다. 탐욕은 자꾸만 우릴 부추긴다. 하나도 모자라서 하나 더를 원한다. 내가 가진 것에 만족하지 못해 남이 가진 것을 노린다. 그래서 내가 남보다 얼마나 가졌는지 비교해보기도 한다. 뷔리당의 당나귀 같은 사람은 양적으로 질적으로 비교하면 별반 차이 없는 두 개의 재물 앞에 생각이 많아진다. 둘 중 하나를 쉽게 포기하지 못한다.

 

그런데 이보다 더 어리석은 당나귀가 있다. 뷔리당의 당나귀처럼 그 역시 두 개의 건초 더미 앞에서 무엇을 먹을까 고민한다. 두 개의 건초 더미의 양은 동일하다. 양쪽 건초에 가격표가 있다. 왼쪽 건초의 가격은 5만 원, 오른쪽 건초의 가격은 천 원이다. 당나귀는 고민하지 않고, 왼쪽 건초를 먹는다. 건초의 양이 비슷해도 높은 가격으로 매겨진 건초가 맛있어 보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당나귀는 5만 원짜리 건초 더미를 실컷 먹고 왔다고 동료 당나귀들에게 자랑할 것이다. 그런데 이 당나귀의 이름이 무엇이냐고. 베블런(Veblen)의 당나귀. 당나귀 이름의 의미가 이해가 안 되는 분은 인터넷 검색창에 '베블런 효과'를 검색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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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6-03-08 2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베블런효과..이거 사진 찍다보면 뽀대주의자를 간혹 보게 됩니다.
사진 실력이 자신이 가진 카메라 가격과 동일시하는 착각....
돼지목에 진주인지는 고려한 바가 없었거든요..

cyrus 2016-03-09 14:20   좋아요 1 | URL
사진 찍는 일에도 베블런 효과가 작동되고 있었군요. 사진 실력이 그저 그런 수준인데 값비싼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사람이 있긴 합니다.

림스네 2016-03-09 1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세시대에는 건초더미를 인간의 탐욕의 대상으로 해석했네요.
그림 해석이 재미있어요.
베블런 당나귀도 재미있고,

cyrus 2016-03-09 14:24   좋아요 0 | URL
중세 역사를 공부할 때 재미있는 내용이 중세에 유행한 상징들에 관한 것입니다. 중세 사람들은 이 세상의 모든 자연과 사물이 신의 의미가 들어있는 피조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중세 상징에 종교적 분위기가 남아있습니다.

서니데이 2016-03-09 17: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세시대 사람들이 생각하는 종교적 의미가 강조된 그림이네요.^^
잘 읽었습니다.
cyrus님 좋은 저녁시간 되세요.^^

cyrus 2016-03-09 20:26   좋아요 1 | URL
고맙습니다. 서니데이님도 편안한 밤 보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