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 귀신을 무서워했던 시절이 있었다. 귀신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존재다. 사람들은 ‘귀신 싯나락 까먹는 소리’를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처럼 믿었다. 귀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 사람도 그들이 나오는 이야기를 들으면 무서워서 벌벌 떨었다. 아이들은 귀신 이야기를 잘 믿는다. 무서운 이야기 한 번 듣고는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공포에 시달린다. 예를 들면, 방 안에 혼자 잠을 못 잔다든가 한밤중에 화장실 가는 것을 무서워한다. 90년대 초에 홍콩 할매 괴담이 많이 알려지게 되자 등교를 거부하는 아이들이 생겼다. 홍콩 할매의 존재가 잊히고 나니 이제 좀 살겠나 싶었는데 이번에는 ‘빨간 마스크’의 공포가 찾아왔다. 빨간 마스크를 쓴 여자가 지나가는 아이에게 다가와서 이렇게 물어본다. “내가 예쁘니?” 예쁘다고 대답하면 여자는 마스크를 벗는데 여자의 입이 귀밑까지 찢어져 있다. 그리고 여자는 “그러면 나랑 똑같이 해줄게”라고 말하면서 가위로 아이의 입을 찢는다. 빨간 마스크 괴담을 접한 아이들은 혼자서 길을 걷지 못했다. 이게 얼마나 유명했으면 빨간 마스크를 마주칠 때 살아남는 방법까지 전해질 정도였다.
실제로 있을법한 느낌을 주는 귀신 이야기가 이렇게 어마 무시한 파급 효과를 일으킬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공포 관련 서적의 등장이다. 90년대 초중반에 저학년 어린이들이 무서워할 만한(혹은 좋아할 만한) 각종 괴담을 모은 책들이 나름 큰 인기를 얻었다. 대부분 일본에서 유행하는 괴담을 현지화하여 소개되는 경우가 많았다. 우리나라에 널리 알려지는 데 성공한 가장 대표적인 일본 괴담이 ‘빨간 마스크’다. 괴담의 원형이 많이 알려지면 내용이 새롭게 변형되어 구전되기도 한다. 꾸며낸 이야기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괴담을 접하는 것 자체를 즐긴다. 이렇다 보니 성인을 대상으로 한 괴담이 저학년 어린이들의 순진한 마음을 노리는 괴담으로 둔갑하기도 한다.
괴담집들이 잘 팔리려면 독자들을 겁줄 수 있는 비주얼을 갖추어야 한다. 으스스한 느낌을 주는 그로테스크한 그림이 있는 표지가 독자의 눈길을 끈다. 무심결에 책을 펼치다가는 독자를 노려보는 듯한 귀신 얼굴의 그림을 보고 깜짝 놀랄 때가 있다. 괴담집을 읽을 때 방심하면 금물이다. 책 곳곳에 있는 귀신 그림 또는 사진들이 우리의 심장을 흥분케 한다. 한 번 본 귀신 그림을 잊지 못하면 한동안 생활하는 데 지장이 있다. 잠을 자려고 누우면 천장 위에 희미한 잔상처럼 귀신 그림이 떠오른다. 재수 없으면 꿈속에 등장하기도 한다.
무서운 이야기에 관심이 많은 아이는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수업시간에 몰래 읽는다. 그러다가 선생님에게 걸리면 애정 듬뿍 담은 스매싱에 뒤통수를 맞는다. 현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90년대에 나온 괴담집들은 거의 베스트셀러급 인기를 얻었다고 한다. 아! 옛날이여, 괴담집도 왕년에 이런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이를 증명해줄 수 있는 자료를 찾기가 어렵다. 우리나라 역대 베스트셀러 기록들을 정리한 자료에도 괴담집의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 그저 어떤 괴담집은 수십만 권 이상 판매되는 기록을 남겼다는 뒷이야기만이 전해지고 있다. 이토록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괴담집은 어째서 베스트셀러 순위에 올라가지 못했을까?
추측하건대, 괴담집에 대한 부정적 반응이 작용했을 것이다. 괴담을 그저 말도 안 되고, 사람들을 놀래려고 만든 시시한 흥밋거리로 치부한다. 게다가 귀신이 나오는 괴담집이 아이들의 정서 건강에 해로운 책이라고 생각하는 어른들이 많았다. 어른들은 자식이 괴담집에 푹 빠지면 학업을 소홀히 할까 봐 걱정한다. 이렇듯 우리나라에서 괴담은 찬밥 신세로 대접받는다. 괴담 자체를 하나의 문학으로 규정하고, 이를 소재로 다양한 문화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일본과 비교하면 극명하게 차이가 난다. 괴담 자체를 즐기는 문화 덕분에 애니메이션 ‘요괴 워치’가 만들어졌고, 괴담을 소재로 한 장르문학은 탄탄하게 구축되어 오랫동안 독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사람들은 괴담집을 독자의 공포심을 유발하기 위한 조악한 책으로 여긴다. 그래서 이런 책을 선호하는 것에 반감을 가지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인식 때문인지 괴담집은 마이너로 분류된다. 메이저 출판물이 득세하는 베스트셀러에 반영되지 못한다. 어떻게 보면 괴담집의 인기는 길보드 차트를 점령하던 가요와 비슷한 운명이다. 길보드 차트 상위권에 차지하던 가요들이 가요톱텐 1위까지 차지했던 것은 아니었다. 정작 그 가요가 어떤 건지 알아도 그 노래를 부른 가수의 이름이나 얼굴을 모르는 경우가 있다. 괴담집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괴담을 많이 접하면서도 그 괴담을 맨처음 만든 사람이 누군지 모른다.
90년대 괴담집 열풍을 재평가할 필요가 있다. 괴담집이 대중에게 끼친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다. 그래서 대중에게 열렬히 사랑받은 공포 관련 서적을 ‘비스트셀러(Beastseller)’라고 부르고 싶다. ‘Beast’는 짐승을 뜻하는 영단어다. 그밖에도 ‘불쾌한 것’, ‘싫은 사람’이라는 의미가 있다. 비스트셀러는 괴담집을 읽어선 안 될 ‘불쾌한 책’으로 보는 차가운 시선이 반영된 신조어다. 유익한 내용의 책만 인정받는 ‘베스트셀러’에 반기를 드는 저항의 의미도 내포되어 있다. 그리고 비스트셀러의 앞 글자 ‘B’는 ‘B급’을 상징한다. 괴담은 남녀노소 향유할 수 있는 B급 문화로 볼 수 있다. 앞으로 비스트셀러에 어울릴 만한 책을 집중 조명할 생각이다. 책에는 귀천이 없다. 싸구려 괴담집도 서평으로 소개되어 정당한 평가를 받을 자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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