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에서 생명으로 - 인간과 자연, 생명 존재의 순환을 관찰한 생물학자의 기록
베른트 하인리히 글.그림, 김명남 옮김 / 궁리 / 2015년 11월
평점 :
절판


 


가끔 차를 타고 가면, 끔찍한 광경을 보게 된다. 도로 바닥 한가운데에 죽은 동물 사체가 있다. 도로 위에서 차에 치여 죽은 것(Road kill)이다. 도시에서 차에 치여 죽는 동물은 쥐, 고양이, 개가 많고, 야산 주변의 도로에서는 고라니, 너구리 같은 야생 동물들이 자동차에 희생된다. 이렇게 도로에서 죽어가는 동물들이 늘어나고 있지만, 사체를 적법한 과정으로 거두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썩어가는 시체를 그대로 방치해두는 경우가 많다. 죽은 고라니를 발견하고, 보신용으로 이용하기 위해 가져가는 사람도 있다. 로드 킬 당한 동물 사체를 발견하면 해당 지자체에 신고해야 한다. 신고가 접수되면 지자체 환경과와 청소업체가 협력하여 시체를 수거, 소각 처리한다. 그런데 이런 절차가 널리 홍보되지 않아서 그런지 동물 시체를 수거하는 일을 담당하는 사람들을 향한 선입견이 있다. 보신용 동물 사체를 따로 수거해서 담당 직원들이 몸보신으로 먹는다고 생각한다. 이 말이 사실인지 잘 모르겠다. 확실한 근거 없이 애꿎은 일을 하는 동물 사체 처리반 직원들을 비난하는 것은 옳지 않다. 혹시나 만약에 일부 지자체 직원들이 이런 행위를 자행했으면 법적 처벌을 받아야 한다.

 

로드 킬 사체를 오랫동안 내버려두면 제2의 로드 킬이 발생하는 우려가 있다. 지난달 말에 죽은 고라니 사체를 먹다가 천연기념물인 독수리 세 마리가 차에 치이는 일이 발생했다. 로드킬 사체를 현장에서 치울 수 있다면, 차 트렁크에 실어서 가져가는 것보다는 얼른 도로 밖으로 옮기는 것이 좋다. 내 말은 로드킬 사체를 운전자가 무조건 옮겨야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사실 일반 사람이 동물 사체를 옮기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도로 한가운데서 사체를 운반하다가 교통사고가 생길 수 있다. 그러므로 신고를 하는 것이 좋다. ‘지역 번호+120’ 또는 ‘지역 번호+128’로 전화를 하면 된다.

 

우리는 동물 사체를 지구상에 쓸모없는 것으로 생각한다. 사체는 쓰레기처럼 분류되어 소각장으로 향한다. 로드킬 당한 동물은 두 번 죽는다. 인간 때문에 차디찬 도로 바닥에서 생을 마감하고, 인간의 손에 의해 사체가 소멸한다. 그런데 이 상황, 조금 웃기지 않는가. 동물을 죽인 인간은 살인자처럼 유유히 사라지고, 또 다른 인간이 죽은 동물을 위한 장의사가 된다. 인간은 동물 사체를 처리해야 할 의무가 있을까? 자연의 생과 사를 늘 가까이 지켜본 동물학자 베른트 하인리히는 동물의 죽음에 개입하는 인간의 역할에 반문한다.

 

베른트 하인리히는 동물 사체를 처리하는 존재가 따로 있다고 말한다. 그들이 바로 ‘청소동물’이다. 청소동물은 자연의 장의사다. 이들은 사체를 먹으면서 생활한다. 동물 사체는 먹잇감을 찾지 못한 청소동물들을 위한 오아시스와 같다. 사체가 클수록 거기에 달려드는 청소동물이 많다. 송장벌레와 파리가 그곳에 알을 낳는다. 늑대, 여우 등의 포유류가 사체의 냄새를 맡아 찾아오면, 그다음에 독수리와 큰까마귀가 만찬에 참여한다. 베른트 하인리히는 자신의 책 《생명에서 생명으로》에 황홀한 자연의 만찬을 생생하게 기록했다. 동물학자는 자연의 만찬을 담담하게 묘사하면서도 따뜻한 유머를 잊지 않았다. 하인리히는 에드거 앨런 포가 큰까마귀를 무서운 존재로 설정했다면서 불평한다. 사체 앞에서 날갯짓하며 남김없이 살점을 처리하는 큰까마귀가 명랑한 동물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여전히 청소동물이 사체를 먹는 광경을 불편하게 여긴다. 구더기가 쉴 정도로 심하게 썩은 사체를 제대로 보는 것마저도 힘들다. 그러나 하인리히는 청소동물의 역할을 재평가한다. 청소동물은 우리가 쓰레기로 여기는 동물 사체를 먹잇감으로 삼는다. 청소동물은 동물을 사냥해서 죽이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는 청소동물을 사냥으로 먹잇감을 찾는 포식동물과 동등하게 생각한다. 청소동물에 대한 인간의 편견이다. 청소동물 대부분은 사체에 영양분을 얻으면서 살아간다. 시체를 손대는 행위를 금기로 생각하는 인간의 시선이 죄 없는 청소동물을 불길한 동물로 만들어버렸다. 

 

청소동물의 역할은 자연 순환 과정 일부다. 생명이 죽어서 남긴 것을 다른 생명이 이어받는 것뿐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자연이 만들어 낸 경이로운 재생의 순간이다. 동물은 죽어서  다른 동물의 생명을 연장해주는 영양분을 남긴다. 그런데 우리는 자연스러운 광경을 잘 모른다. 너무 몰라서 자연의 장례식을 방해한다. 청소동물 같은 자연의 장의사가 버젓이 살아 있는데도, 우리가 장의사가 되어 그들의 소중한 양식들을 불태워 없앤다. 그렇게 되면 청소동물의 생존마저 위태롭다. 야생의 청소동물이 우리가 사는 도시에 내려오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그들을 도시의 불청객, 밭을 망치는 골칫덩어리로 대한다. 청소동물마저 인간의 손에서 죽임을 당한다. 인간이 지구의 주인이라고 해서 동물 사체까지 손댈 필요가 없다. 동물 사체를 청소동물에게 양보해야 한다. 우리는 먹을 게 너무 많아 풍족하게 살고 있다. 그런데 동물들의 먹이가 되는 동물 사체를 굳이 가져가서 먹어야 하는가. 진짜 쓰레기는 동물 사체가 아니라 탐욕에 눈이 멀어 그것마저도 먹으려고 하는 인간이다.

 

 

 


댓글(8) 먼댓글(0) 좋아요(3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서니데이 2016-01-11 20: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cyrus님, 편안한 밤 되세요.^^

cyrus 2016-01-12 19:16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님도 편안한 밤 보내세요. ^^

북다이제스터 2016-01-11 21: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스케빈져 란 영어 단어 열심히 외우던 때가 기억납니다. ^^

cyrus 2016-01-12 19:19   좋아요 0 | URL
`scavenger`가 뜻이 많습니다. 청소동물, 청소부, 넝마주이, 지저분한 일을 하다, 추잡한 글을 쓰는 작가. ^^;;

나비종 2016-01-12 01: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로드킬`이란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아메리카 선주민을 연상한 적이 있습니다.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이 선주민의 입장에서는 핏빛 역사인 것처럼, 삶의 터전에서 희생당하는 야생 동물들이 안타깝더라구요.
동물 사체를 처리하는 분들에 대해서는 아주 따뜻한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만 했었는데, 청소 동물과 관련하여 이런 시각으로 바라볼 수도 있는 거로군요.
인간이란 참 오만하고 이기적이고 근시안적인 존재입니다. 이렇게 여기저기 순환의 고리를 끊다보면, 언젠가 돌이키기 어려운 대자연의 역습을 당할 텐데요. 이미 빙하나 꿀벌이나 기상 이변에서 보여지고 있지만요.
`미안하다, 물려줄 것은 쓰레기 밖에 없다.` 아이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워지네요.

cyrus 2016-01-12 19:22   좋아요 0 | URL
인간도 지구에 사는 동물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여전히 인간을 지구의 지배자라고 생각합니다. 오만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재앙에 이르는 자연 파괴를 초래합니다.

찔레꽃 2016-01-12 2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좋은 책을 소개해 주셨네요. 이것도 꼭 읽어봐야 겠습니다. ^ ^

cyrus 2016-01-13 16:27   좋아요 0 | URL
2015년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어야 할 책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