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절망 불편한 희망 - 서양 좌파가 말하는 한국 정치
다니엘 튜더 지음, 송정화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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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새벽의 뒷골목에

네 이름을 쓴다 민주주의여

내 머리는 너를 잊은 지 오래

내 발길은 너를 잊은 지 너무도 너무도 오래

오직 한 가닥 있어

타는 가슴속 목마름의 기억이

네 이름을 남몰래 쓴다 민주주의여

 

(중략)

 

숨죽여 흐느끼며

네 이름을 남몰래 쓴다.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

 

 

유신정치의 서슬 퍼런 폭압에 맞섰던 젊은 김지하는 민주주의에 대한 갈망을 ‘숨죽여 흐느끼며’ 노래했다. 정치적 폭압의 모진 세월을 헤치며 살아온 민중들은 시인의 노래에 응답하여 ‘민주주의여 만세’를 절절하게 부르짖었다. 시인의 시구에서처럼 돌을 던지면 최루탄을 막는 독재정권은 이젠 없다. 그런데도 여전히 이 시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후보 시절에 자신의 애송시로 ‘타는 목마름으로’를 소개했다. 그뿐만 아니라 정치·법조인들도 김지하의 시를 좋아했다. 우리는 이제 민주주의를 기념하는 수준에까지 이르렀다. 민주주의가 그 형체도 없이 갈가리 찢겨 나가며, 다수 국민이 길게는 5년에서 짧게는 4년에 한 번씩 표 찍는 기계로 전락해 버린 오늘, 우리는 그 민주주의라는 단어를 마음껏 쓰며 부른다. 가소롭지만, 일부 정치인들 그리고 흰머리가 희끗희끗해진 시인마저도 80년대의 민주주의를 기억하는 척하고 있다. 그들의 머리는 민주주의를 잊은 지 오래되었다.

 

국민에게는 민주정치의 꽃이자 축제의 상징인 선거라는 말 자체가 그다지 달갑게 들리지만은 않는다. 매번 선거 때만 되면 ‘빛 좋은 개살구’ 같은 공약만 내세우는 정치인이 썩 믿음직스럽지 않다. 가뜩이나 비좁은 땅덩어리에서 지역감정 심화에 따른 갈등이 더욱 굳어지지나 않을까 하는 우려가 앞선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민이 주인이라는 것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하는 엄연한 진실이고 보면 나라가 망하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선거를 치를 수밖에 없는 우리 국민은 참 딱한 처지에 놓여있다.

 

정말 큰 일이다. 대통령은 아직도 국민의 불만과 걱정을 보지 못하고 있고, 그 주변 인물들은 더 말할 것도 없다. 당리당략만 있을 뿐 국가 경영을 위한 비전이나 책략 같은 건 눈을 씻고 찾아도 볼 수가 없다. 사회 각 분야의 이해와 갈등을 조정하여 국민 통합을 도출해 내기는커녕 국론을 분열시키고 정상적인 국정 운영의 발목을 잡을 뿐이다. 정작 새정치연합은 민심을 사로잡을만한 정치적 철학을 제대로 드러내 보지 못했으면서 민심을 헤아리지 못하는 새누리당을 심판하겠다고 큰소리만 칠뿐이다. 개똥 묻은 당이 소똥 묻은 당에 짖고 있다. <이코노미스트> 서울 특파원 출신 영국 기자가 보는 한국 정치는 정치적 의제를 외면한 채 어느 사람도 책임지려 하지 않는 ‘집단 이기주의’의 현장이다. 보수는 역사적으로 여러 가지 정치제도와 결합해왔던 것처럼 경제의 영역에서도 자신의 기득권 보호를 위해 기업과의 유착도 마다치 않았다. 반면에 진보는 여전히 80년대를 잊지 못하고 있다. 정계에 진출한 진보 인사들은 양복을 입은 운동권 세력이다. 합리적인 진보 의제를 내세운 적이 없어서 국민을 제대로 설득하지 못한다. 이러한 모습은 스스로 존립 기반을 무너뜨리는 결과를 가져왔다.

 

국회가 무능하다고 해서 국민 가운데 ‘무정치’의 현실을 심각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별로 없다. 민주주의와 동떨어진 정치부재의 상황이 지속할수록 일상생활에서 피부로 와 닫지도 않는 정치 불감증이 만연해진다. 정치적 냉소주의와 무관심은 원천적으로 정치인들에게 그 책임이 있다. 이는 민의를 바탕으로 국정을 이끈다는 민주주의의 기본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데 심각함이 있다. 유권자를 끌어당기기 위한 선심성 공약이나 정책 제시에 급급한 수준이다. 영국 기자는 국정 비전과 철학이 없는 바람잡이식 한국 정치를 ‘다이어트 콜라 민주주의’라고 표현한다. 열량이 적은 다이어트 콜라를 마셔도 살은 빠지지 않는다. 그냥 달기만 한 콜라일 뿐이다. 다이어트 콜라 또한 일정량 이상 마시게 되면 건강이 나빠진다. 국민은 선거철만 되면 기승을 부리는 ‘다이어트 콜란 민주주의’에 매번 속는다. 영양가 없는 공약은 국민의 목마름을 해소해주지 못한다.

 

영국 기자는 민주주의의 위기를 분석하면서 무조건 정치인에게만 책임을 돌리지 않는다. 정치적 냉소주의를 극복하지 못해서 ‘익숙한 절망’ 속에서 살아가는 국민의 태도에서도 잘못한 점을 지적한다. 그는 ‘토크 콘서트’ 인기를 부정적으로 본다. ‘문제’를 열심히 지적만 할 뿐, ‘해결책’을 마땅히 제시하지 못하는 토크 콘서트는 정치적 냉소주의를 사라지게 하는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정치 문제를 전적으로 특정 정치인이 해결하기를 바라는 갈망이 클수록 그것에 대한 실망도 커진다. 토크 콘서트에 지나치게 의존한다면 고전적인 의미의 정당정치가 제대로 뿌리를 내리지도 못한 우리나라의 경우 국민의 정치 냉소주의를 더욱 부채질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 영국 기자는 독자에게 제안한다. 정치 이슈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술집에서 지인들과 토론을 해보라고 권한다.

 

무엇을 어떻게 해주겠다는 선심성 공약보다는 새로운 세상을 만들려면 어떤 고통이 따르고, 어떻게 그 고통을 분담할 것인가를 솔직하게 호소하고 국민의 동의를 구하는 자세로 나와야 한다. 이런 ‘성의와 진심이 있는 민주주의’에 우리는 모두 목말라 있다. 한국 정치를 요목조목 지적한 영국 기자의 신랄한 글을 읽으니까 그가 운영하는 맥줏집에서 파는 수제 맥주를 마신 기분이 든다. 이렇게 속 시원한 글은 오랜만에 본다. 그렇지만 통쾌한 기분의 여운은 오래가지 않는다. 맥주를 원샷한 뒤에 입안의 혀에 떨떠름한 끝 맛이 남는 것처럼 책을 덮고 나면 ‘익숙한 절망’으로 가득한 정치 현실의 쓴맛이 느껴진다. 이 쓴맛을 지우려면 절망에 무기력한 모습에서 벗어나야 한다.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 세상을 떠나기 직전, 마지막으로 자신의 블로그에 남겼던 말이 떠오른다. 오로지 참여하는 사람들만이 권력을 만들고, 그렇게 만들어진 권력이 세상의 방향을 정한다. ‘권력’이라는 단어가 있는 자리에 ‘민주주의’를 넣어 보자.

 

 

 

 

※ 15쪽에 조슈아 쿨란트칙이 쓴 책 《후퇴하는 민주주의》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이 책은 《민주주의는 어떻게 망가지는가》(동녘)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었다. 저자명은 ‘조슈아 컬랜칙’으로 표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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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5-07-30 1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 우리나라가 그렇게 작은 나라가 아닌 것 같아.
요즘엔 그런 생각이 든다.
말에 의하면 세계지도에서 그 나라를 크게 잡느냐 작게 잡느냐도
그 나라의 국력이나 위상에 비례한다는 말이 있대.
그러니까 우리나라는 아직 위상이 그리 크지 못한데다
나라간의 알력도 있으니 크게 그릴 수가 없는 거지.
우리나라 작은 나라 아냐. 목포에서 만재도 들어가는대도 5시간이 걸린다는데 뭐.ㅋㅋ

요즘 난 어셈블리란 드리마를 보고 있는데 재밌어.
너도 시간되면 함 봐봐.
정도전을 집필한 작가가 쓴 작품인데 진상필이란 사람이
실제로 국회에 있을 것 같지는 않지만 어쨌든 인물들이
잘 녹아들었단 생각이 든다. 모쪼록 카타르시스라도 느끼게 해 주길 기대하고 있다.^^

cyrus 2015-07-30 20:35   좋아요 0 | URL
이상하게 저는 드라마나 영화를 잘 안 봐요. 뉴스, 예능, 스포츠는 많이 보는데. ^^

페크pek0501 2015-07-30 17: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읽어 보는 시입니다.

저자가 한국인이 아니어서 한국에 대해, 한국인에 대해 우리가 몰랐던 것들을 잘 관찰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어요. 외국인의 눈에 비친 한국인의 모습이나 한국 정치는 우리가 보는 것과 많이 다를 것 같아요. 그래서 박노자 님이나 홍세화 님처럼 외국 생활을 많이 한 분들의 책에서 객관성을 기대하게 되나 봅니다.

cyrus 2015-07-30 20:36   좋아요 0 | URL
저는 외국인이 보는 관점을 무조건 옹호하지 않습니다. 가끔 그들도 우리나라 사회의 이해 관계를 모르고, 잘못 평가하는 경우가 있거든요.

오쌩 2015-08-01 0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세히는 모르지만, 이글보면서
황현산교수가 김지하의 시 `타는 목마름으로 `가 표절이라고 주장한게 생각나네요.

cyrus 2015-08-01 20:08   좋아요 0 | URL
네, 맞습니다. 시가 발표했던 시기가 민주화의 열기가 강했던 터라 확실히 제기를 못했다고 하는군요. 그런데 이 중요한 논의가 신경숙 사태와 함께 조용히 묻히고 말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