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셀러는 영화, 드라마 같은 방송에 노출된 후 베스트셀러가 된 책을 말한다. 책이 출간되었던 당시에는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못하다가도 영상물의 흥행이나 기대 몰이에 따라 새롭게 조명을 받으며 베스트셀러로 등극하는 사례가 부쩍 늘어났다. 이러한 현상을 ‘베스트셀러 순위 역주행’이라고 보면 된다.
과거의 노래가 음원 순위를 역주행하는 현상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미디어셀러 현상도 마찬가지다. 미디어셀러는 출판 업계의 공인된 주요 공식으로 자리 잡았다. 흥행 드라마나 영화 내용에 관련된 책도 미디어셀러의 범주에 포함된다. 지난해 완간된 웹툰 단행본 《미생》은 드라마가 방영된 이후에 100만 부를 돌파했다. 기존에는 독자층이 주로 30~40대로 한정되어 있었으나, 방송 이후 20대 독자들의 비율이 늘었다. 소비자들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소개된 책을 보면 친숙하게 느끼고, 구매하게 된다. 이처럼 미디어의 덕을 본 책들은 불황에 허덕이는 출판사들에게 단비 같은 존재이다.
하지만 미디어셀러의 위상이 커진 만큼 출판업계를 더 암울하게 만드는 문제점이 늘고 있다. 미디어셀러 성공에 눈이 먼 일부 출판사들이 PPL(간접광고)을 위한 억지스러운 노출에 동참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점을 보고 있으면 “미래에는 누구나 15분 만에 유명해질 수 있다”라는 앤디 워홀의 말이 떠올릴 만하다. 자금력이 있는 출판사들은 방송 미디어와 손을 잡으면 미디어셀러를 만들 수 있다. 시청률 20%를 넘는 인기 드라마의 결정적인 장면에 딱 3분만 아무 책이나 노출한다면 그 책은 유명해질 수 있고, 미디어셀러가 될 수 있다. 이렇다 보니 책을 기획하는 단계부터 미디어 노출을 노리고 거액의 마케팅비를 투자하기도 한다. 드라마 단순 노출의 경우, 천만 원 이상 금액을 잡아 투자한다. 회당마다 꾸준하게 책을 노출하려면 마케팅 비용은 비싸지고, 많으면 억 단위까지도 나온다. 결국 미디어셀러는 어느 날 갑자기 독자들로부터 사랑을 받으면서 한순간에 대박 나는 책이라기보다는 출판사와 방송 미디어가 합작한 상품이다. 미디어셀러 열기에 독자의 관심을 먹으면서 사랑을 많이 받아야 할 책이 미디어의 파생 상품으로 전락해버리고 말았다. ‘방송’이라는 남의 손을 빌려 만들어 낸 미디어셀러의 영향력이 높아질수록 영세 출판사의 좋은 책들이 독자의 관심 밖으로 멀어질 수 있다.
미디어셀러 성공 이면에 어두운 그림자가 출판시장에 길게 드리워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림자라도 쫓으려는 일부 출판사들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화려한 성공으로 비친 미디어셀러 열광 속에 가려진 그림자를 여실히 보여준 사건이 바로 크눌프 출판사의 《데미안》 논란이다. 1919년에 나온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이 KBS 인기 드라마 ‘프로듀사’ 때문에 뜬금없이 베스트셀러 순위에 올라간 현상을 그저 좋게 볼 수 없다. 《데미안》이 베스트셀러 목록에 있다고 해서 ‘고전 도서의 역주행급 인기’ 운운하면서 미디어셀러 열풍을 예찬하는 사람이 없을 거라 믿는다. 드라마에 노출된 《데미안》이 다른 출판사(민음사, 문학동네)의 기존 번역서를 짜깁기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민음사와 문학동네는 문제의 《데미안》을 펴낸 크눌프 출판사를 상대로 강력하게 법적 대응에 나서겠다고 밝혔지만, 여전히 크눌프 출판사의 《데미안》이 알라딘 베스트셀러 순위에 버젓이 있는 것을 보면 크눌프 출판사 측은 표절번역 논란에 무심한 듯하다. 문제 있는 책은 출판사가 자체적으로 회수, 폐기하여 독자들을 농간한 점에 대해 공식 사과를 해야 한다. 크눌프 출판사가 표절번역 논란을 이슈 몰이로 이용하여 출판사 이름을 알리려는 노이즈 마케팅을 하지 않기를 바란다.
“유명해져라, 그렇다면 사람들은 당신이 똥을 싸도 박수를 쳐 줄 것이다.” 앤디 워홀의 명언으로 잘못 알려진 이 문구는 비단 사람에게만 적용하지 않는다. 우리는 쓰레기 같은 상품도 유명해지면 최고가의 미술 작품이 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저명성만 갖춰도 내용과 상관없이 대중은 열광한다. 똥 같은 최악의 책마저 대중에게 박수를 받는 미디어셀러가 된다. 출판사는 독자의 눈높이에 맞추면서 책을 만들어야지 판매 부수를 올리기 위해 방송 미디어의 눈치를 보면서 책을 만들면 안 된다. 우리 독자는 TV에 나오는 책이 똥인지 된장인지 구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