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 전에 대구 도시철도 3호선이 개통했다. 국내 처음 지상으로 운행되는 무인 모노레일이다. 모노레일을 직접 타봤는데 탁 트인 시야에, 풍경을 즐길 수 있다. 승차감도 좋았다. 도시철도 3호선을 타면 1시간 이상 걸리던 거리를 40분 만에 이동할 수 있다고 한다. 차량을 불연재로 제작했고, 화재가 발생하면 자동으로 물이 분사되는 소화설비도 갖췄다고 하지만 기관사 없이 운영되는 전동차에 안전사고가 일어나면 신속하게 대처할 수 있을지 조금은 걱정이 된다.

 

모노레일 구간은 대략 10m 정도 높이가 되는 지상에 만들어져 있다. 이제는 어딜 가면 도로 한가운데 수직으로 우뚝 솟아있는 모노레일 구간을 볼 수 있다. 나는 지금도 여전히 모노레일 구간이 놓인 도로가 낯설다. 길을 지나가다가 모노레일이 지나가는 소리에 나도 모르게 고개가 그쪽으로 향한다. 모노레일이 지나가지 않을 때 바라보는 모노레일 구간은 땅에 박힌 거대한 콘크리트 기둥 같다. 모노레일이 없었던 예전 도로의 모습을 지금의 모습과 비교하면 상당한 차이점을 느낄 수 있다. 도로 한가운데에 일렬로 쭉 세워진 구간 기둥이 건너편 보도의 풍경을 바라볼 수 있는 시야를 방해한다.

 

나는 버스를 타면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기보다는 유리창 밖으로 펼쳐지는 도시 풍경을 본다. 버스를 타고 창밖 풍경을 쳐다보는 일이 즐겁다. 버스를 타다가 괜찮은 가게를 우연히 발견할 때가 있다. 도심을 조금 벗어나 교외로 접어들면 도시에서 볼 수 없는 고요하고 아늑한 전원 풍경을 볼 수 있다. 그런데 모노레일 구간이 생기면서부터 버스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도시 풍경을 감상하기가 힘들어졌다. 내 눈에는 거대한 기둥이 풍경의 절반을 가린다. 탁 트인 풍경을 바라보는 좋아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답답하게 느껴진다. 대구 도시철도 관계자는 모노레일을 타면 경치 좋은 곳에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포토존을 설치하고, 도심 관광지를 한눈에 둘러보는 관광 프로그램을 만들 예정이라고 말한다. 그렇지만 버스 이용에 익숙해서인지 모노레일을 타면서 바깥 풍경을 즐기는 것이 낯설다. 버스처럼 좌석에 앉아서 창밖으로 편하게 보는 것을 좋아한다. 3호선 모노레일을 포함한 지하철 좌석은 중앙 통로를 중심으로 양쪽에 서로 마주 보도록 배치되었기 때문에 창밖 풍경을 보기가 불편하다. 지하철 풍경을 제대로 즐기려면 지하철을 서서 타야 한다.  

 

 

 

 

 

 

 

 

 

 

 

 

 

 

 


 
일본 도쿄에 가면 지상 모노레일을 볼 수 있다. 히요리게다를 신고 산책하는 것을 좋아했던 작가 나가이 가후가 도쿄 시가지를 지나가는 모노레일을 봤다면 어떤 심정으로 글로 기록했을까? 하늘을 나는 것 같은 열차가 신기하게 느껴지면서도 한편으로는 예전 도시 외관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낯선 문명으로 변해버린 도쿄의 모습에 엄청난 충격에 빠졌을 것이다. 가후는 도시 아무 곳이나 자라나는 풀과 나무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그것들도 도시 외관을 아름답게 만드는 풍경의 일부로 보았다.

 

 

일본이 이 땅에서 자라는 고유 식물에 대해 최소한의 심오한 애정이라도 갖고 있다면, 아무리 서양문명을 모방한다 할지라도 오늘날처럼 고국의 풍경과 건축을 함부로 훼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전선을 잇는 데 불편하다는 이유로 아무 거리낌 없이 길가의 나무를 베고, 사랑받아온 풍광이든 유서 깊은 나무든 전혀 개의치 않고 붉은 벽돌집을 높다랗게 지어버리는 오늘날 작태는 실로 자국의 특색과 예부터 계승해온 문명을 뿌리부터 파괴하는 난폭한 행위다. (나가이 가후 《게다를 신고 어슬렁어슬렁》 중에서, 48쪽)

 

 

가후가 걸어 다니면서 바라봤던 백 년 전의 도쿄는 서양문명을 모방하려고 과거의 미를 난폭하게 훼손하고 있었다. 가후는 《게다를 신고 어슬렁어슬렁》(원제: 히요리게다 / 정은문고, 2015)을 통해 도시가 발달할수록 자연 풍경의 미를 소중히 보존해야 한다고 누누이 강조했다. 도시 속 자연 풍경도 도시의 품격을 높일 수 있는 랜드마크가 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자연 풍경이 점점 사라지면 도시는 예전 모습을 되찾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한가롭게 걸으면서 풍류를 즐기는 자세마저 잊어버리게 된다. 가후는 산책의 미학을 아는 최후의 도시인이었다. 요즘 길의 주인은 사람이 아니다. 자동차다. 도심을 걸어보면 수많은 신호등이 사람의 보행을 방해한다. 바퀴를 위한 길들은 넓고 단단하다. 목적지에 일찍 도착하기 위해서 땅 밑으로 지나가는 지하철을 이용한다. 발바닥을 위한 길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법정 스님도 개발 도상이 한창이던 시절에 시골의 정취가 사라지고, 보행의 반경마저 좁아지는 세상의 변화를 걱정했다. 《무소유》(범우사, 1999)에 수록된 ‘흙과 평면 공간’이라는 제목의 경수필은 1972년 중앙일보에 발표되었다. 스님에게 걷기는 단순한 몸의 동작이 아니라 활발한 사고 작용이 이루어지는 행위다. 즉 걷기는 온몸으로 표현되는 ‘생각하기’에 가깝다. 스님은 ‘수직 공간’에 속하는 아파트와 엘리베이터가 보편화할수록 우리 삶은 편리하게 되지만, 탁 트인 ‘평면 공간’을 걸으면서 흙의 기운을 느낄 기회가 사라진다고 말한다.

 

문명이 편리해지고 좋아지면, 흙과 평면 공간은 잃어버리게 된다. 바퀴에 의지하지 않고 살던 시절 사람의 발가락은 돌과 자갈, 흙길의 촉감을 느낄 줄 알았고, 눈으로 자연 풍경을 확인해야 마음이 편안했다. 지상 모노레일이 전국에 개통된다면 스님이 불편하게 여겼던 현대 문명의 ‘수직 공간’이 도시를 지배하게 될 것이며 도시를 산책할 기회가 우리 삶에 더 멀어질 것이다. 두 발로 걸을 때 머리와 가슴은 자유로워진다. 걷기는 발바닥을 위한 아니, 가슴과 머리에 이로운 건전한 행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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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5-04-25 1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풍경도, 냄새도, 소리도 점점 미워져서 걷기보다 어서 차를 타고 빨리 들어가자 하는 여러 날이라 참 공감됩니다

cyrus 2015-04-26 23:23   좋아요 0 | URL
세상이 미워질 때 혼자 피할 수 있는 안락한 공간에 있으면 좋은데 이런 곳을 찾기가 쉽지 않네요.

만병통치약 2015-04-25 2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지난 주말에 간만에 유딩 아들하고 지하철이랑 버스탔는데 둘이 같이 사람구경하느라 정신없었습니다. 동대문 보여주려고 일부러 돌아가는 코스로 잡았는데 계속 졸더군요 ㅋㅋ 요즘은 예전에 비해서 돌아다닐 곳이 많아진듯합니다.

cyrus 2015-04-26 23:25   좋아요 0 | URL
네, 맞아요. 돌아다닐 곳이 많아지고, 사람들이 이 곳을 알고 찾아가니까 성황을 이루는 것 같습니다. ^^;;

보슬비 2015-04-25 2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핸드폰도 놓고 다니면 참 좋아요. 가끔씩 잊고 돌아다닐때가 있는데, 왠지 모를 해방감이...ㅋㅋ
음식도 풍경도 오로지 제 기억으로만 간직하는것도 나쁘지 않았어요. ^^

cyrus 2015-04-26 23:26   좋아요 0 | URL
네. 저도 되도록 스마트폰을 멀리하려고 노력합니다. 스마트폰 접속 횟수를 줄이니까 책 읽는 시간이 늘어났어요. ^^

붉은돼지 2015-04-26 0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그래도 오늘 혜림씨랑 3호선 타러 갈려다 다른 일정 때문에 못갔어요...

타본 다른 분 말씀은 케이블카 타는 기분이라고 ㅎㅎㅎ

cyrus 2015-04-26 23:28   좋아요 0 | URL
혜림양이랑 같이 타보세요. 아주 좋아할 겁니다. 너무 좋아서 내리기 싫을 정도였어요. ㅎㅎㅎ

transient-guest 2015-04-29 05: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모노레일이라니, 참 멋들어진 것이 생겼네요.ㅎ 놀이공원에서만 타보던 것을요.. 녀석을 타고 대구시내를 한 바퀴 돌면서 이런 저런 생각에 잠기는 것도 즐겨볼만한 풍류가 아닌가 싶네요.

cyrus 2015-04-29 22:34   좋아요 0 | URL
그런데 모노레일을 직접 타보면 평소에 타던 지하철보다 좁다는 느낌이 들어요. 그래서 밖을 내다보면서 느낄 수 있는 풍류가 오랫동안 지속되지 않다는 것이 단점이에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