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미년이 시작되는 첫날을 기념하는 책으로 카렐 차페크의 단편집 『오른쪽 주머니에 나온 이야기』(모비딕, 2014년)를 펼쳤다. 새해 첫날이라서 그런지 책에 수록된 단편소설 중에 '점쟁이'라는 이야기가 무척 인상 깊었다. 줄거리를 요약하면 이렇다.

 

경찰서장이 마이어스 부인이라는 사람의 정체를 의심한다. 마이어스 부인은 점쟁이다. 그녀의 집에 매일 십여 명의 방문객이 점을 받으러 온다. 경찰서장은 마이어스 부인이 점쟁이로 위장하는 간첩이라고 추정한다. 점쟁이의 정체가 궁금한 경찰서장을 위해서 그의 부인이 직접 점쟁이를 만나기로 한다. 경찰서장의 부인은 점쟁이에게 점을 받는 척하면서 그녀의 말과 행동을 관찰한다. 점쟁이는 카드 점으로 경찰서장의 부인의 미래를 알려준다. 올해 내로 부유한 젊은 사업가와 결혼할 수 있는데, 나이 많은 남자가 이 결혼을 방해할 수 있다고 말한다. 사실 경찰서장의 부인이 점쟁이에게 얘기하는 내용은 다 거짓말이다. 부인은 점쟁이에게 자신을 미혼이라고 밝혔고, 이미 세상을 떠난 아버지를 형사과에 소속된 경찰이라고 속였다. 즉, 점쟁이의 점괘 결과는 절대로 이루어질 수 없는 내용인 셈이다. 점쟁이의 엉터리 점괘는 그녀에 대한 간첩 의혹을 더욱 증폭시키는 원인이 되었다. 점쟁이는 간첩 혐의에서 벗어나지만, 고용 허가를 받지 않은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추방당한다. 일 년 후, 점쟁이의 엉터리 점괘 내용대로 경찰서장의 부인은 남편을 버리고 젊은 백만장자와 결혼한다.

 

절대로 그럴 일이 없을 거로 생각하면서 코웃음 치던 엉터리 점괘 결과가 종종 진짜로 이루는 경험이 있다. 점쟁이의 실력에 또 한 번 놀라게 된다. 그런데 과연 이런 일이 발생한다면 점쟁이의 신기가 뛰어난 것일까. 절대로 그렇다고 볼 수 없다. 황소 뒷걸음질 치다가 쥐 잡는 격이다. 이 소설에서 점쟁이는 카드 그림을 제멋대로 해석한 것에 불과하다. 경찰서장의 부인에게 알려준 점괘 내용이 엉터리라는 사실을 밝혀지자 점쟁이는 아무렇지 않은 일인 듯이 변명한다. 점이 궁금한 사람들이 듣고 싶은 내용만 알려 주기 때문에 제 일은 정당하다고 주장한다. 점쟁이는 특별한 신기로 점괘를 내리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속내가 드러나는 말을 제멋대로 해석하고, 그가 듣고 싶은 좋은 내용만 알려주는 것뿐이다.

 

'점쟁이' 다음에 나오는 단편의 제목은 '신통력의 소유자'다. 이 소설에는 친필 글씨가 적힌 종이가 든 봉투 안에 손만 넣어도 친필 주인에 관한 정보를 정확하게 맞추는 신통력을 가진 사람이 나온다. 그의 신통력을 소문으로 알게 된 검사는 사기에 가까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의심이 가득한 검사는 자신이 직접 누군가의 친필 글씨를 준비해서 신통력이 사기임을 밝히고자 한다. 초능력자는 검사가 가져온 친필 글씨의 주인이 절대로 상대하기 껄끄러운 위선자, 기회주의자, 무자비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검사는 초능력자의 말이 사실임을 인정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초능력의 실체를 부인한다. 검사는 원래 범죄자의 친필 글씨를 준비하려다가 그만 실수로 자신의 친필 글씨가 있는 종이를 봉투에 넣고 말았다. 초능력자가 했던 말이 껄끄럽게 생각하지만, 그가 말한 얘기는 다 일반적인 사람들에게도 적용될 수 있는 내용이라고 생각하면서 애써 잊어버린다. 그런데 검사는 초능력자가 말한 내용을 재판 변론에 써먹는다. 검사의 화려한 수사 덕분에 범죄자가 유죄 판결을 받는 데 성공한다. 

 

차페크가 쓴 두 이야기는 신통력이라는 이름으로 사람을 속이는 자와 그 속임수에 믿는 자의 심리를 동시에 보여주면서 부조리한 결말로 독자에게 웃음을 준다. 자신에게 유리한 내용만 듣고 싶은 인간의 심리를 간파하여 점을 치는 엉터리 점쟁이, 초능력자의 엉터리 예측을 무시하면서도 그 내용을 자신의 변론으로 사용하는 검사. 가짜 신통력으로 사람을 속이는 자나 그 속임수를 진짜 신통력이라고 받아들이는 자를 통해 인간 심리의 약점을 희화화한다.

 

이성적이면서도 논리적인 인간도 오늘의 운세, 신년 사주를 좋아한다. 삶의 앞날을 정확하게 내다보는 것은 불가능한 일임을 누구나 다 알고 있다. 그냥 재미로 운세나 점괘를 본다지만, 내심 앞으로 일어나게 될 미래가 무척 궁금해한다. 점쟁이가 내 성격을 정확하게 맞추면, 그가 얘기하는 내용 하나하나 다 믿고 싶어진다. 반대로 좋지 않은 점괘를 들으면 걱정한다. 점쟁이의 부정적인 점괘가 엉터리라고 부정해보지만, 여전히 점쟁이의 말을 뇌리에 박혀서 잊히지 않는다.

 

 

 

 

 

 

 

 

 

 

 

 

 

 

 

 

 

 

사주와 운세가 꼭 내 이야기처럼 들리는 심리 효과를 ‘바넘 효과(Banum Effect)’라고 한다. 19세기 말 곡예단에서 사람들의 성격과 특징을 알아내는 일을 하던 바넘이라는 사람에게서 유래되었다. 심리학자인 포러라는 사람이 성격 진단을 통해 처음으로 증명한 까닭에 ‘포러 효과’라고도 한다. 포러는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성격 검사를 했다. 결과와 상관없이 신문에 난 점성술 내용의 일부만을 고쳐 학생들에게 나누어 주면서 자신들의 성격과 맞는지를 평가하도록 했다. 그랬더니 학생들 대부분이 자신의 성격과 일치하다고 답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는 성격이나 심리적 특징을 자신만의 특징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점괘는 매우 일반적이다. 그래서 점쟁이들이 하는 이야기는 다 맞는 것 같다. 많은 사람이 점괘가 마치 자신을 잘 나타내는 것처럼 받아들이고 그런 점괘가 정확하다고 착각한다. 사실 단순하게 생각해도 오늘의 운세가 들어맞을 개연성은 그리 높지 않다. 나와 같은 해에 태어난 전국의 모든 사람들이 오늘 하루 똑같은 운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은 궤변에 불과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간혹 점괘가 정확하게 들어맞는 일이 생길 수도 있다. 하지만 고작 하나 맞췄다고 해서 무조건 신통력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 재미삼아 시간 떼우기용으로 점을 보는 것은 문제가 없지만, 바넘 효과를 이용해 사이비 점성술 등으로 사람들을 현혹해 상술에 이용하는 경우는 부정적인 효과다. 돈 낭비, 시간 낭비다. 점이나 별자리, 성격테스트 등을 무조건 맹신하지 말고 바넘 효과가 아닌지 생각해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우리의 운명이 미리 정해져 있다고 생각하면 인생을 사는 것이 벌써 피곤해진다. 새해 토정비결에 나온 내용이 안 좋다고 해서 새해 첫날부터 우울하면 곤란하다. 앞으로 살아갈 일이 많고, 피하고 싶어도 안 좋은 일은 우리 곁으로 따라온다. 운세는 운세일 뿐, 너무 일희일비하지 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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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양물감 2015-01-01 2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학2학년때 여러 띠의 사람들이 모여 여행을 가던날, 부산역에 앉아 띠별 오늘의 운세를 보았는데 그날 그 내용대로 모든 일이 일어나는 희안한 경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날이후 운세를 안봅니다. 무서워서^^

cyrus 2015-01-01 23:22   좋아요 0 | URL
세상에! 운세 내용이 모두 일어나는 상황도 있군요. 저도 사실 운세 내용에 호기심은 있지만, 되도록 잘 안 믿으려고 해요. 생각해보면 운세 내용 절반이라도 제대로 맞은 적이 없었거든요. ㅎㅎㅎ

해피북 2015-01-02 08: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좋은 이야기네요ㅎ 예전에 제가 알던 동생이 어떤 아주머니에게 붙잡혀 점을보더라구요 아주머니왈 위가 안좋고 변비가 있지 뭐이런식으로 이야기하니 엄청난 점괘인듯 빠져드는 동생을보며 후에 현대인들은 다 그병이있다고 이야기해줬더니 머쩍어 하더라구요ㅋ

cyrus 2015-01-02 22:02   좋아요 0 | URL
점을 지나치게 믿는 사람이 곁에 있으면 정신적으로 피곤해요. 오히려 이런 사람들 때문에 마음의 병이 생길 것 같아요. ^^;;

수이 2015-01-03 15: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나도 사실 별자리 믿는 마음이 큰데_ 쿨럭_ 찔린다.

cyrus 2015-01-03 20:30   좋아요 0 | URL
너무 믿지 않으면 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