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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베의 사상 - 새로운 젊은 우파의 탄생 ㅣ 대한민국을 생각한다 13
박가분 지음 / 오월의봄 / 2013년 10월
평점 :
절판
거울속의나는참나와는반대요마는또꽤닮았소
나는거울속의나를근심하고진찰할수없으니퍽섭섭하오
- 이 상 「거울」중에서 -
Scene #1 대자보를 찢을 권리
고려대 경영학과에 재학 중인 주현우씨가 코레일 노조 파업,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의혹 등을 언급하며 “하수상한 시절에 어찌 모두들 안녕하신지 모르겠다”고 교내에 써 붙인 대자보의 여파가 전국으로 번지고 있다. 대학가에는 주씨 주장에 호응하는 ‘릴레이 대자보’가 나붙고, 일부 중·고등학생들까지 이 같은 분위기에 동참하고 있다.
주씨는 앞서 지난 10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 후문 게시판에 2장짜리 대자보를 붙였다. 이는 인터넷 커뮤니티 등을 통해서 급속도로 퍼졌고 대학가는 물론 중·고등학생도 대자보를 써 붙이고 사진을 올릴 정도로 확산했다.
반면 보수 성향 인터넷 커뮤니티 ‘일간베스트 저장소’(일베)에는 고려대, 서강대에 붙은 대자보를 훼손했다는 글이 ‘인증 사진’과 함께 올라와 논란이 일고 있다. 건국대에서도 일베 회원에 의해 훼손된 대자보가 발견됐다. 일베 측은 반박 대자보를 제작하려는 움직임도 보였다.
한편 교내에 붙은 대자보를 훼손하는 과정을 동영상을 촬영해 일베 사이트에 올린 사건도 있었다. 다음날인 문제의 학생은 자신이 다니고 있는 H 대학교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 ‘안녕하십니까. 대자보 찢은 본인입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이 글에서 H대생은 자신의 행위를 “소통의 묵살이 아니라 제 목소리를 낸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누군가가 대자보를 붙일 권리가 있다면 그것을 찢을 권리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어떤 대자보를 교내에 붙이면 들어있는 메시지가 한성대를 대표하게 된다. 대표성이 쉽게 얻어지는 것이라면 그것을 부정하는 것 또한 쉽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런데 H대생은 글 마지막에서는 “제 멋대로 행동을 했고 저로 인해 피해를 보신 분들께 사과드리며 대자보를 쓰신 분께도 사과드린다”고 적었다. 또 “이번 사건은 제 어린나이의 객기로 치부해주시면 감사하겠다”며 훈훈하게(?) 마무리했다.
Scene #2 일밍아웃인가, 어린 나이의 객기인가?
최근 일베 이용자들 사이에서 ‘일밍아웃’이 유행하고 있다. 과거 일베 활동 사실을 극도로 숨기던 행태를 벗고, 자신이 일베 이용자라는 것을 알리고 있는 것이다.
알리는 방식은 은밀하다. 자신의 정체를 대놓고 밝히지는 않지만, 일베를 형상화한 손가락 표식을 통해 ‘인증’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이는 과거 일밍아웃을 기피하던 일베 문화와는 대별된다. 이전 일베 이용자들은 스스로를 ‘장애인’, ‘병신’이라 부르며 일베 이용자임을 외부에 드러내는 걸 숨기며 자기비하적 유희를 즐겼다. 하지만 최근 일베가 언론에 자주 오르내리고 사회적 영향력이 있는 집단으로 묘사되면서 일부 일베 이용자들 사이에서 일베 이용을 더 이상 부끄러워하지 않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안녕들‘ 대자보를 찢은 행위를 자신의 학교 홈페이지 게시판에 고백한 H대생도 어찌 보면 일밍아웃이라고 볼 수 있다. H대생이 게시판에 남긴 글의 전문을 읽어보면 대자보를 찢는 과정을 담은 동영상을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렸다고 밝히고 있다. 그 ‘인터넷 커뮤니티’가 바로 일베인 것이다.
하지만 H대생의 일밍아웃은 기존 일베 회원들의 악명 높은 일밍아웃 사례와 비교하면 꽤 순진한(?) 편이다. 일베 회원들이 이 사실을 본다면 그의 이중적인 태도에 ‘민주화’(일베 게시글에 대한 반대 또는 비추천. 진보적인 주장이나 일베에서만 가능하는 폭력적이고 비하에 가까운 농담을 인정하지 못하는 분위기를 의미함)한 배신자로 규정했을 것이다.
H대생은 대자보를 훼손하는 장면이 있는 동영상에서 일베를 상징하는 어떠한 손짓도 하지 않았으며 훼손한 뒤에 찍는 인증샷도 남기지 않았다. 자신이 일베 회원이라는 사실은 학교 게시판에서 너무나 정중하게 고백한다. 보통의 일베 사용자들은 모든 존칭을 생략하고 서로 반말을 한다. H대생이 대자보 훼손 동영상을 일베 사이트에 올렸을 때 반말투로 글을 썼는지 확인할 길은 없다. 그래도 자신의 행동에 대해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는 일베 회원이라면 학교 게시판에서도 반말로 일밍아웃을 당당하게 선언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H대생이 착한 일베 회원이라고 동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일베 회원이라면 써야할 표현 방식 대신에 높임말과 완곡어법을 선택한 것뿐이다. 인증샷이나 일베 사이트에서 볼 수 있는 일베 회원들의 폭력적이고 반사회적인 느낌을 덜어내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사과문을 통해 일밍아웃을 교묘하게 가리고 있다. 그리고 그는 대자보를 훼손한 행위에 대해서도 기존의 일베 회원과 비슷하게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시키고 있다.
자신의 과격한 행동에 대해서 진심어린 사과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다고 H대생이 일베 회원이라는 인식은 크게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일베 회원들은 반사회적 행동으로 경찰에 입건되거나 법적으로 처벌을 받게 될 위기에 처했을 때, 자신의 죄를 순순히 인정하는 태도를 취했다. 이들 중에는 가끔 사과문을 작성해서 공개하는 경우도 있다. H대생의 행동이 자신이 스스로 표현한대로 ‘어린 나이의 객기’로 볼 수는 있겠지만 제아무리 일베 회원들이 혐오하는 표준말을 사용해도 일베 회원 특유의 행동과 그들만의 사상적 구조는 완전히 지울 수 없다.
Scene #3 삐뚤어진 인정 욕구의 산물, 일베
일베는 “한국 사회의 또 다른 이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돌연변이 괴물”이라는 평가를 듣는다. ‘일베충’은 상식을 벗어나는 사고와 행동을 하는 사람을 빗대 이르는 말이 돼버렸다. 여성, 외국인, 다문화가정, 호남지역에 대한 일부 일베 회원들의 혐오는 도를 넘어섰다.
'여성 비하'는 그야말로 일베의 핵심 코드 가운데 하나다. 여성을 성적 도구, 심지어 성폭행 대상으로 거리낌 없이 표현하는 게시물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런 대상엔 연예인과 일반 여성들은 물론, 어린이와 종군 위안부까지 포함된다. 여성 혐오에 노소를 가리지 않는 셈이다. 초등학생 얼굴을 모자이크 처리한 사진과 함께 '로린이'란 표현으로 물의를 빚은 끝에 임용을 포기한 예비 초등 교사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로린이'는 로리타와 어린이의 합성어로, 어린 여자아이를 성적 대상으로 표현하는 일베 용어다. 한국 여성을 비하하는 표현인 '김치녀'는 그나마 점잖은 수준이다. 여성을 노골적으로 폄하해 인격체가 아닌 성적 대상으로 한정시키는 단어도 적지 않다. 대표적인 게 '보슬아치'다. 여성 성기에 빗대 '여자인 게 벼슬인 줄 안다'는 뜻이다.
우리로서는 도저히 상식적으로 볼 수 없는 그들의 태도와 행동에서 박가분은 일베의 사상을 규정한다. 한 마디로 “나는 누군가의 정체성을 혐오할 권리가 있다”로 압축한다. 눈살 찌푸리는 일베 회원의 행동이 혐오스럽다고 비난과 욕설로 퍼부어도 소용없다. 이들에게 씨알도 안 먹힌다. “혹시 나, 너 혐오하냐?” 오히려 상대방을 공격적으로 혐오하는 권리를 하나의 일부심(일베에 대한 자부심)으로 인식할 것이다.
인터넷 공간에서 일베가 성별·지역·정치적 지향 등에 대한 편견을 거리낌 없이 드러내고, 회원들끼리 ‘묘한 해방감’을 공유하면서 정치·문화적 해방구로 기능하고 있다. 그러면서 박가분은 일베에도 나름의 사상적 의제가 있기 때문에 그것이 컬트문화로 그치지 않고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일베 회원들의 목적은 인터넷에서 타인이 불쾌하도록 도발하는 데서 즐거움을 찾는 것이다. 이들은 현실에 나오면 우스워질 수밖에 없다는 걸 알고 인터넷 밖으로 나서지 않는다. 공론장에 대해서는 불신하고 있다. 현실의 맨얼굴을 드러내지 못하고 감추고 있다. 결국 젊은 세대의 혐오문화가 현실에서 좌절한 후 인정받고 싶어 하는 욕구로 나타난 것이다. 삐뚤어진 인정 욕구의 산물이 만들어 낸 거대한 흔적들이 모여서 바로 지금의 ‘일베’를 탄생시켰다.
Scene #4 촛불 시위자에서 일베 회원으로 변신하기까지
일베가 강경 극우의 집합소로 되는 과정을 되돌아보면 ‘갑툭튀’(갑자기 툭 튀어나오는) 일시적인 현상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일베의 시작은 201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베는 ‘디씨인사이드’에서 갈라져 나왔다. 디씨인사이드에 올라온 게시물 중 ‘19금’, ‘하드코어’, ‘지나친 비난 글’ 등 수위가 높아 삭제될 우려가 있는 게시물을 따로 모아 저장하는 사이트에서 비롯했다. 일간베스트저장소라는 이름이 붙은 까닭이다.
일베가 극우 혹은 강경 우익의 집결지로 자리매김한 것은 2012년 총선과 대선을 거치면서다. 그 전까지만 해도 온라인 여론 시장은 오랫동안 진보좌파의 전유물인 것처럼 여겨졌다. 일부 진보좌파 누리꾼들은 그간 온라인에서 보수 세력을 비방, 희화화하곤 했다. 진보좌파가 사실상 독점하던 온라인 여론 시장에 일베가 등장해 균형을 맞춘 측면도 있는 것이다.
특히 정치·윤리적 이상이 분출됐던 대규모의 촛불 시위(2002년, 2008년)가 현실 정치에서 좌절된 후 노무현 정부의 무능함을 비방하는 누리꾼이 등장했다. 이제는 촛불에 의지하는 ‘감성팔이’에 속지 않으며 불확실한 상황에서 어떤 이상과 이념을 내세우며 행동하는 것을 가장 못마땅하게 여기기 시작했다. 온라인 여론 시장의 판도가 달라진 것이다. “좌좀(진보진영을 좀비로 비하해서 지칭하는 말)의 행태를 고스란히 비방과 희화화로 갚아주고 있다.
그래서 박가분은 일베를 ‘촛불시위의 쌍생아’라고 주장한다. 일베는 과거 촛불시위에서 드러난 급진성, 욕망의 정치, 윤리적 이상주의가 변질된 형태로 계승된 것으로 본다.
Scene #5 ‘안녕들 하십니까’를 보면 ‘일베’가 보인다
일베가 보수의 온라인 공간이라고 한다면, 이와 대척점에 있는 진보의 온라인 공간은 ‘오늘의유머’(오유)가 있다. 오유와 일베가 인터넷공간을 넘어 오프라인에서도 각계의 주목을 받으며 진보와 보수 간 치열한 대결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진보와 보수라는 구도로 나뉘면서 성향이 비슷한 사용자들끼리 똘똘 뭉치는 흐름을 보여준다. 공통적으로 오유와 일베는 운영자 개입을 최소화하며 운영되고 있다. 규제가 없는 사이트에서 네티즌들은 자유로이 자신의 생각을 올리고 나눴다. 그들의 구호는 "무한 공유"였다. 때론 위험수위를 넘나드는 게시물도 넘쳐났다. 표현에 대한 규제가 없다 보니 지나친 비난과 욕설이 난무하기도 하다.
서로 다르면서도 유사한 일베와 오유를 마르셀 모스의 ‘증여와 답례의 호수성’으로 설명할 수 있다. 모스의 관점에서 본다면 선물의 증여와 답례는 단순한 경제적 가치의 교환이 아니라 사회를 유지시키는 의사소통의 방법이다. 관계를 맺고 사는 모든 인간과 집단에는 주면 받아야 하고 받으면 되돌려주어야 하며, 받지 않으면 상대의 의사를 거부하는 것이고, 되돌려주지 않으면 관계를 단절하겠다는 의미로 잠재적 전쟁상태에 들어가게 된다.
과거 진보 세력 누리꾼이 많았던 다음 아고라나 지금의 오유를 보면 보수 세력을 비하하는 짤방이나 글을 만들어 공유하면(증여) 그것에 대해서 동의하고 공감하는 반응(답례)을 하면 서로에 대한 결속력을 확인하고 더욱 견고하게 만든다.
일베도 이와 유사한다. 일베 회원들은 진보 세력, 여성, 5.18의 역사적 의미를 비난한다. 이에 대해서 서로 존댓말이 아닌 반말을 섞는 불손한 태도로 댓글을 달면서 ‘우리 모두 병신’이라는 논리가 전제된다. 자기를 혐오하면서도 타인을 함께 혐오하는 커뮤니케이션 형태는 일종의 동질감과 평등주의를 형성한다. 따라서 서로를 혐오할 수 있다는 것이며 상대방에 대한 적대와 폭력성을 너무나 쉽게 표면 위로 드러낼 수 있었던 것이다. 즉, 이념 성향이 다른 ‘일베 vs 오유’ 또는 최근에 일어난 인기 아이돌 그룹 샤이니의 팬클럽과 일베 간의 대립은 부정적인 호수성으로 설명할 수 있다.
이러한 커뮤니티의 부정적 호수성은 대자보를 통해 부조리한 사회문제 관심을 촉구하는 ‘안녕들 하십니까’ 현상과 일베 간의 대립에서도 존재한다. ‘안녕들’의 대자보 열풍은 그동안 사회문제에 대해 무관심과 무감각 상태에 빠져 있던 대학생들에게 일종의 각성제 역할을 해줬다. 젊은이들이 앞 다퉈 응답자보를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할수록 젊은이들의 공감과 동참도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그러자 여기에 맞서기 위해서 일베는 자신의 눈에 보이는 족족 대자보를 찢는 행위를 하고 있다. 대자보를 훼손한 상태에 일베 손가락 표시가 있는 인증샷을 공유함으로써 폭력적인 행동도 대자보 현상에 반박하는 소통의 행위로 정당화한다.
여기에서도 언제 어디서든 누구든지 혐오할 수 있다는 일베의 사상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응답자보를 읽고 그 내용에 공감하는 대학생들은 ‘안녕들’ 집회에 참여한다면, 반대로 반박자보를 붙인다거나 ‘안녕들’ 자보를 훼손하는 인증샷은 일베 회원 그들 나름대로 공감하게 만들어 ‘안녕들’ 운동을 ‘좌좀이 주도하는 선동질’로 인식하게 만든다. ‘안녕들 하십니까’와 ‘일베’. 이들이 서로 지향하는 입장은 정반대지만, 그들은 각자 자신들만의 ‘증여와 답례의 호수성’을 통해 세력을 확장시켜 나가고 있다. 서로 합의적 협점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대화와 소통이 불가능한 단절된 상태가 지속된 채 말이다.
Scene #6 희망 없는 불안은 혐오의 괴물을 낳는다
혐오의 가장 중요한 뿌리는 '불안'이다. 현재 일베 회원들을 잠식하고 있는 극단적인 혐오들 역시 결국 궁극적으로는 '불안'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불안들은 '여성의 사회적 진출 상승에 대한 남성의 불안', '민족 정체성의 불안', '갈수록 힘들어지는 취업에 대한 희망에 대한 불안' 등 여러 가지 모습을 지니고 있으나 그 내용을 모아 보면 결국 이는'세상에 대한 집단적인 불안'과 연결되어 형성된 것임을 확인할 수 있다.
물론 각각의 대상에 대한 혐오는 하나의 맥락으로만 뭉뚱그릴 수 없는 각기 다른 불안과 윤리적, 사회적 맥락을 내재하고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혐오의 맥락은 각기 달라도 혐오의 조직화는 ‘일베’라는 이름으로 더욱 견고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사회적, 경제적 위기 속에서 사람들이 자신의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이를 활용하는 조직화된 혐오와 비하는 점점 극단으로 치닫기 마련이다. 점점 일베가 판을 치는 한국 사회는 이제 극단화된 혐오의 시대를 맞이할 것인지 혹은 혐오로 표출된 불안을 다른 곳을 향해 분출시킬 것인지의 기로에 서 있다.
혹자는 요즘 확산되고 있는 '안녕들 하신가요'라는 안부의 인사가 개인들의 불안이나 정치적 호소를 넘어, 차별과 혐오 속에 존재해 왔던 서로를 확인하는 더 세심한 인사로 확대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을지도 모른다. ‘안녕들’ 현상은 우리 사회의 다양한 문제에 대한 젊은이들의 생각을 풍부하게 담아내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일이다.
그러나 ‘안녕들’ 현상이 미묘하게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사회적 촉매가 될 수 있을 것인지 지켜봐야 한다. 어떤 변화를 일으킬지, 단발적으로 끝날지 알 수 없다. 다만 대자보에 적힌 주장이 논리가 부실한 감성 호소에 불과한 채 긍정적인 호수성이 이어진다면 그들만의 자율적인 공론의 장이 될 수 있다. 현실 사회에서 요구하고 싶어 하는 대학생들의 열망을 대자보로 표출하는 것으로만 그친다면 촛불 시위의 실패가 재현될 수 있다. 촛불시위에서 보여준 변화와 개혁에 대한 희망 섞인 열망이 현실 정치에서 좌절되어 사라지자 불신과 불안만 남았다. 민주주의에 대한 열정이 식고, 다시 예전 상태로 돌아가면 불안정한 미래에 대한 불안을 직면하게 된다. ‘안녕들’ 현상이 단발성으로 끝난다면 비극적인 쌍생아가 태어날 것이다. 그 이름이 바로 ‘일베’다.
희망 없는 깊은 불안은 혐오의 괴물을 낳는다. 십여 년 전 변화된 세상을 바라는 희망을 양초에 피웠던 그 작은 불씨들은 어느새 사라지고, 거기에 동참했던 일부는 ‘일베’라는 이름의 가면을 쓴 채 오늘도 불확실한 이상에서 벗어나기 위한 괴상한 몸부림을 친다. 가상의 온라인 공간에서 희망 없는 불안을 숨기려고 나 자신을 ‘병신’ 취급하면서 타인을 혐오한다. 그들을 ‘일베충’이라고 혐오하고 업신여겨도 소용없다. 이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자기비화와 혐오을 먹고 살면서 낯짝 두꺼운 ‘근자감’(근거 없는 자신감)의 내성을 지녔으니까.
박가분은 희망하는 사회에 대해 소통하는 공간을 많이 만들어가거나 진보좌파가 일상에서 자신의 이상을 실현할 수 있어야 일베의 사상을 극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글쎄, 그의 대안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현재로선 그것마저도 현실에 적용하지 못하는 미완의 ‘이상’으로 남게 될까봐 한편으로는 걱정되기도 한다. 우선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일베의 ‘조직화된 혐오’의 위험성을 방지하는 것이 시급하다. 혐오를 혐오로 맞선다고 해결되는 일이 아니다. 知彼知己 百戰不殆. 그러기 위해서는 일베의 사상을 이해하고 그들의 의도를 간파하고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