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순간이 꽃봉오리인 것을

 

 

                                                                정현종

 

 

 모든 순간이 꽃봉오리인 것을
 나는 가끔 후회한다
 그때 그 일이
 노다지였을지도 모르는데...
 그때 그 사람이
 그때 그 물건이
 노다지였을지도 모르는데...
 더 열심히 파고들고
 더 열심히 말을 걸고
 더 열심히 귀 기울이고
 더 열심히 사랑할걸...

 

 반벙어리처럼
 귀머거리처럼
 보내지는 않았는가
 우두커니처럼...
 더 열심히 그 순간을
 사랑할 것을...

 

 모든 순간이 다아
 꽃봉오리인 것을
 내 열심에 따라 피어날
 꽃봉오리인 것을!

 

 

 

 

이제서야 확인했다.

평소에 친분이 있었던 서재 이웃 한 분이 어느새 몰래 블로그 방명록에

마지막 인사를 남긴 것을...

 

그 분은 바람처럼 그렇게 떠나셨다.

 

그가 쓴 차분한 글을 더 열심히 느껴보고 

그가 그린 부드러운 데생들을 더 열심히 바라보고

그가 들려주는 감미로운 멜로디에 더 열심히 귀 기울이고

더 열심히 사랑할걸...

 

기억 속에 까마득히 잊혀질 즈음에

잠깐이라도 안부 인사 한 마디라도 남길 걸...

 

나의 메마른 오감에 신선한 바람을 불어 넣어준 그를

나는 우두커니 보내야만 했다...

 

모든 순간이 꽃봉오리인 것을

나는 후회한다, 너무나도 후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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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 2012-05-20 2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시도 학교에서 배운 적이 있는 터라 더욱 공감이 가네요.
모든 순간이 꽃봉오리인 것을...
저도 주위에 잊고 사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것을 새삼 깨달았어요.
그들이 언젠가 내게 먼저 마지막 인사를 하기 전에 제가 먼저 안부 인사를 건네야 겠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오랜만에 뵈는군요, 시루스님! 요새 알라딘에 저 혼자 있는 느낌이에요... 심심해요 ㅠ

cyrus 2012-05-20 22:58   좋아요 0 | URL
심심하면 가끔 카스토리에 오십시요 ㅎㅎㅎㅎ
근데 저도 요즘 카스토리에 글 쓸만한 소재가 고갈 중이에요.
뭔가 쓸게 많은데 가끔 영양가 없는 내용을 쓸까봐 항상
고민하고 글 써요, 그렇다고 제가 지극히 개인적인 사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쓰는 것도 좋아하지 않고요. 쓸게 없다보니
딱히 쓸만한데 시 밖에 없네요 ^^;;
어느새 카스토리도 알라딘 블로그처럼 쓰고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ㅎㅎㅎ

차라리 방학이 빨리 왔으면 좋겠어요. 뭐 그 때도 저도
공부에 매진해야겠지만 그래도 지금보다 한가로워서 좋아요 ^_^

마녀고양이 2012-05-20 2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처럼 날아가셨더군요.
서재 홀랑 삭제하고,, 정말 바람결만 남았더라구요.

인연이란게, 머 그런거지 하다가도, 살짝 스산해지기도 하네요. ^^

cyrus 2012-05-21 14:30   좋아요 0 | URL
맞아요, 잘 알면서도 한편으로는 슬프네요..

조선인 2012-05-21 08: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결님이 왜 갑자기 떠난 건지, 그 단호함이 부럽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고. 그러네요.

cyrus 2012-05-21 14:31   좋아요 0 | URL
정든 장소를 단번에 떠난다고 인사하는 것도 정말 쉽지 않죠.

카스피 2012-05-23 2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생만사 공수레 공수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