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순간이 꽃봉오리인 것을
정현종
모든 순간이 꽃봉오리인 것을
나는 가끔 후회한다
그때 그 일이
노다지였을지도 모르는데...
그때 그 사람이
그때 그 물건이
노다지였을지도 모르는데...
더 열심히 파고들고
더 열심히 말을 걸고
더 열심히 귀 기울이고
더 열심히 사랑할걸...
반벙어리처럼
귀머거리처럼
보내지는 않았는가
우두커니처럼...
더 열심히 그 순간을
사랑할 것을...
모든 순간이 다아
꽃봉오리인 것을
내 열심에 따라 피어날
꽃봉오리인 것을!
이제서야 확인했다.
평소에 친분이 있었던 서재 이웃 한 분이 어느새 몰래 블로그 방명록에
마지막 인사를 남긴 것을...
그 분은 바람처럼 그렇게 떠나셨다.
그가 쓴 차분한 글을 더 열심히 느껴보고
그가 그린 부드러운 데생들을 더 열심히 바라보고
그가 들려주는 감미로운 멜로디에 더 열심히 귀 기울이고
더 열심히 사랑할걸...
기억 속에 까마득히 잊혀질 즈음에
잠깐이라도 안부 인사 한 마디라도 남길 걸...
나의 메마른 오감에 신선한 바람을 불어 넣어준 그를
나는 우두커니 보내야만 했다...
모든 순간이 꽃봉오리인 것을
나는 후회한다, 너무나도 후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