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장 지글러 지음, 유영미 옮김, 우석훈 해제, 주경복 부록 / 갈라파고스 / 2007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제3세계에 일어나고 있는 많은 자연재해, 기근, 종족분쟁은 선진국의 정부나 국제원조 기구, 국제여론 등의 관심을 촉구하고 있어!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희생자들은 점차 망각의 제물이 되고, 문제 자체의 존재마저 잊혀버리지. 그리고 깊은 고독 속에서 죽어가게 돼. 처음에는 강했던 국제적인 연대감도 시들해지고.

 

 - 장 지글러『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갈라파고스, pp 152 -

 

 

 

 

 

 

 

 

 조용히 닫혀버린 세계의 창문

 

 

 

 

 

 

2010년 10월 29일 새벽 12시 50분 경. 광산에 69일 간 매몰되었다가 기적적으로 구출된 33인의 칠레 광부들 이야기를 끝으로 MBC '김혜수의 W'은 방송을 처음 시작한 지 5년 만에 폐지되었다. 방송에서 'W'의 마지막 메시지가 전해졌다. 평화, 반전 그리고 희망이었다. 'W' 5년의 역사를 되짚는 영상물도 공개됐다. 프로그램 진행자 김혜수는 클로징멘트로 "W에 힘이 되고 싶었다. 짧은 만남, 시청자에 감사하면서도 죄송하다"는 말로 자신의 심경을 표현했다. 오래전부터 프로그램 폐지설과 관련된 갖가지 논란이 거셌던 것과 비교해 조용했다. 종영 사실은 방송 말미 진행자의 짧은 작별인사로 전해질 뿐이었다. 'W'는 늦은 심야 시간대에 방영되었고 시청률도 그리 높지 않았지만 매주 금요일만 되면 피곤함에 눈꺼풀이 무거워져도 꼭 '본방사수'했다. 단지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빼어난 미모를 지닌 김혜수를 보려고 한 것은 아니다. 'W'는 세계 대륙별 곳곳에서부터 일어나고 있는 시사 소식들을 생생하게 접할 수 있었던 '세계의 창문'이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본 해외 시사 프로그램 중에서 기존에 있었던 해외 시사 정보를 뉴스 형식으로 전달되는 진행 방식을 탈피한 수준 높은 교양 프로그램 중 하나였다. 비록 낮은 시청률과 높은 제작비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MBC 경영진에겐 얼른 폐지하고 싶은 골칫거리였지만.  세계의 평화, 반전 그리고 희망에 대한 염원을 간직한 채 'W'는 늦은 밤 그렇게 조용히 사라졌다.

 

우연의 장난일까?  폐지된 ‘W'의 빈자리에는 '스타 오디션 위대한 탄생'이 채워지게 되었다. 그 당시 케이블 채널의 '슈퍼스타 K' 열풍을 공중파인 MBC도 무시 못했던 것이다. 오디션. 재능 있고 끼 많은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여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꿈과 목표를 위해서 경쟁을 해야 한다. 하지만 그러한 '경쟁' 시스템에서 살아남는 것은 쉽지 않다. 오디션에 참가한 100만 명의 인물들 중에서 단 한 사람이 최종 우승하게 되고 대중들의 관심과 인기는 우승자, 단 한 사람에게 집중하게 된다. ‘약육강식’의 냉혹한 논리가 지배된 지나친 경쟁주의를 강조하는 우리나라 신자유주의적 사회의 모습과 별 반 다를 게 없다. 'W'에는 신자유주의의 힘에 사로잡혀 고통과 억압을 당하는 제3세계 및 개발도상국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들은 좀 더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 자신들에게 어울리지 않는 '신자유주의'라는 화려한 옷을 걸쳐 입었지만 '자유'를 누리기는커녕 더욱 더 불평등, 빈곤 그리고 기아에 허덕여야 했다. 심지어 한정된 자원을 둘러싸고 같은 민족들끼리 서로 총을 겨눠야 하는 동족상잔의 비극을 연출하고 있다.

 

지금 (EBS를 제외한) 3사 공중파 방송 중에서 ‘W'만큼의 수준 높은 해외 시사 교양 프로그램을 찾아보기가 어려워졌다. 그나마 유일한 시사 교양 프로그램으로 남게 된 KBS 2TV의 '세계는 지금은' 마저도 존립성이 위태위태하다. 지금은 토요일 아침 8시에 방송되고 있지만 원래는 금요일, 주말을 제외한 평일에 밤 8시 20분부터 방영했다. 'W'보다는 시청자들의 눈에 띌 수 있는 좋은 시간대에 방영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역시 저조한 시청률의 부진을 면치 못했나보다. 토요일 아침으로 개편된 이후 방송 분량은 전보다 축소되었다.

 

'W'의 폐지 그리고 '세계는 지금'의 개편 확정이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 집중되어 있는 시청자들에게는 '아웃 오브 안중'에 불과할 뿐이다. 세계 지구촌의 사회 모습을 생생하게 안방으로 전달하는 공익성 프로그램들이 사라지거나 점점 방송 분량이 줄어드는 현상을 시청자들의 입맛에 맞는 방송 개편 그리고 방송 제작비용을 절감하기 위한 방송국의 선택에도 잘못은 있지만 한편으로는 대중들의 부족한 인식 탓도 간과할 수 없다. 한반도 땅 덩어리를 넘어 저 멀리 바다 건너 세상에 대한 다양한 사회적. 문화적 인식과 관심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미국, 영국, 프랑스 심지어 우리보다 경제적으로 열악하다고 생각하는 아프리카 대륙까지도 'K-Pop' 열풍의 근원지인 한국의 문화를 주목하고 있는 반면에 정작 우리는 그런 나라들의 문화를 제대로 바라보거나 알려고 하지 않는다. 관광, 여행 가고 싶은 동경의 국가 아니면 먹고 사는 데 있어서 자신과 별 상관없는 남의 나라일 뿐이다. 그나마 여행지로 가고 싶고 많이 알고 있는 나라는 미국 그리고 유럽 국가들뿐이다. 부르키나파소, 라이베리아, 르완다를 알고 있고, 가고 싶어 하는 사람은 드물다. 가난한 나라들을 찾아가 보거나 그런 나라에서 살아 보지 않은 우리는 그 곳에 사는 아이들을 죽어가게 만드는 영양실조에 대해서 무관심하다. 그들의 고통을 진심으로 함께 아파하지 못하는 것이다.

 

 

 

 

 남북 내에서 금기시되는 기아

 

 

 학교에서는 기아문제를 가르치는 일이 금기로 여겨지고 있는 건가요?

 

 

 맞아. 일종의 터부로 여겨지지. 이런 현상은 오래도록 지속되어 왔단다. 브라질의 조슈에 데 카스트로(전 FAO 이사회 의장)은 1925년에 이미 자신의 유명한 저서 『기아의 지리학』에서 이 '금기시되는 기아'를 언급했지. 그의 설명은 흥미로워. 사람들이 기아의 실태를 아는 것을 대단히 부끄럽게 여긴다는 거야. 그래서 그 지식 위에 침묵의 외투를 걸친다는 거야. 오늘날 학교와 정부와 대다수 시민들도 이런 수치심을 가지고 있단다.

 

 

 - 장 지글러『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갈라파고스, pp 82~83 -

 

 

장 지글러의『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는 단지 드라마에 출연한 현빈이 이 책을 서 너 번 읽었다고 해서 유명해진 건 아니다. 그동안 알려지지 못했던 기아 문제의 냉혹하면서도 현실적인 사정을 낱낱이 밝혀내고 있으며 이러한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여러 가지 잘못된 원인들을 다각도로 소개하고 있다.

 

저자의 지적대로라면 세계를 바라보는 우리나라 대중의 잘못된 시선도 기아 문제를 금기시하려는 인식의 영향으로부터 비롯되었다는 점이라고 볼 수 있다.

 

초, 중, 고등학교를 통틀어 북한의 기아 실상을 소개하는 교육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북한의 아이들이 제대로 된 끼니를 먹지 못한 채 굶어 죽어가고 있다는 설명만 언급할 뿐 뼈만 보일 정도로 말라가는 북한 아이들이 담긴 영상을 보여주지 않을 것이다. 북한 주민들이 겪고 있는 참혹한 가난, 정부가 배급하고 있는 식량마저 손대지 못하는 기아의 실태를 우리나라 학생들이 제대로 알지 못할 우려가 있다. 비단 학생들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세계의 기아 문제를 파악할 수 있는 외국 시사 교양 프로그램의 폐지는 세계 기아의 문제에 대한 관심을 만들 수 있는 기회마저 차단하는 원인이 된다.

 

유엔 산하 세계식량계획(WFP)식량농업기구(FAO)가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 의하면 올해 굶주릴 위기에 처한 북한 주민이 300만 명으로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세계일보, 2011년 12월 1일자) 이 수치는 작년에 북한에서 굶주림에 시달린 것으로 파악된 600만명의 절반 수준으로, WFP와 FAO가 북한의 곡물 생산량이 작년보다 8.5% 증가할 것이라는 추산치를 반영한 것이다. 보고서 내용만 봐도 희망적이다. 하지만 최근의 정세를 감안한다면 죽한 민의 기아 문제가 보고서의 내용대로 낙관적으로 해결하기가 어려워보인다.

 

WFP 보고서에서 제시한 수치를 토대로 식량지원 규모를 결정한다. 곡물 생산량이 증가할 것으로 내다보기 때문에 북한에 대한 식량지원 규모가 지난 해에 비해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 굶주림에 시달리다 죽어가는 북한 주민들이 발생하더라도 자체적 핵 억지력을 포기하지 않을 북한 정권의 노선을 고수하게 된다면 아무리 곡물 생산량이 증가한다 해도 기아 문제 해결에 있어서 전혀 영향을 주지 못한다. 그리고 자연 재해의 피해를 무시할 수 없다. 홍수와 같은 자연 재해는 주민들을 먹여 살릴 수 있는 곡물 재배에 피해를 줄 뿐더러 대량으로 난민이 발생할 시, 문제는 심각하다. 물 난리 속에 살아남아도 난민들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 굶주림에 의한 죽음뿐이다. 더욱이 언제 터질지도 모르는 백두산 화산 폭발 조짐에도 어떠한 피해 방지 대책도 강구하지 못하는 정권의 태도가 북한 기아 주민을 두 번 죽이는 꼴이 되고 있다. 북한은 올해 신년 공동사설을 통해 "현시기 인민들의 먹는 문제, 식량 문제를 푸는 것은 강성국가 건설의 초미의 문제"라면서 식량 문제의 중요성을 강조했건만 이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의 길을 핵무기 문제와 결부시킴으로써 북한 내 기아 문제를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북한 기아 실상을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하고 북한 주민들의 인권을 조금이라도 보장해주지 못하고 있는 남한 정부나 굶주리는 주민들을 그대로 방치한 채 핵 무기 개발에 집중하고 있는 노선을 주민들이 '위대한 수령'의 은혜에 입고 있다는 날조된 언론으로 무마하려는 북한 정부나 상황은 다를 뿐 기아 문제를 금기시하는 인식과 태도는 비슷하다.  

 

 

 

 

 

 기아 문제를 외면하게 만드는 비합리적인 세계질서

 

 

풍요가 넘쳐나는 행성에서 날마다 10만 명이 기아나 영양실조로 인한 질병으로 죽어간다. 기아로 인한 떼죽음은 참으로 끔찍한 반인도적 범죄이다. 가장 약한 사람들이 제일 먼저 당하는 사회적 고통이 굶주림이다. 그래서 기아는 사회적 약자들에게 가해지는 구조적 폭력이다. 2005년 기준으로 10세 미만의 아동이 5초에 1명씩 굶어 죽어가고 있으며, 비타민A 부족으로 시력을 상실하는 사람이 3분에 1명꼴이다. 세계인구의 7분의 1이 심각한 만성 영양실조 상태에 있다. 120억명의 인구가 먹고도 남을 만큼 식량은 풍부하지만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이를 확보할 경제적 수단이 없다. 세계시장에서 농산품의 가격은 투기의 영향을 받는다. 투기꾼들은 가난한 나라 사람들이 높은 식량가격을 감당할 수 있을지는 고려하지 않는다. 부자나라들은 자국의 농민들에게 최저가격을 보장한다며 남아도는 농산물을 폐기처분하거나 생산을 제한한다. 식량가격이나 생산량 결정, 식량의 공평한 분배에 구호기구는 속수무책이다. 세계시장만이 힘을 갖고 있고 그 시장은 잔인하다.

 

배고픔을 무기로 삼는 자들도 있다. 칠레 대통령 살바도르 아옌데는 영양실조에 시달리는 아이들에게 매일 0.5ℓ의 분유를 무상으로 배급하겠다고 약속한다. 그러나 분유 시장을 독점하고 있던 다국적 기업 네슬레는 제값을 주고 사겠다는데도 협력을 거부한다. 미국이 사회주의 개혁 정책으로 미국기업의 이익이 침해받는 것을 꺼렸기 때문이다. 미국은 칠레 군부의 쿠데타를 도왔고 아옌데는 1973년 대통령궁에서 최후를 맞는다. 부르키나파소의 젊은 장교 토마스 상카라도 인두세 폐지와 토지 국유화로 4년 만에 식량을 자급자족하게 만들었지만 역시 프랑스의 사주를 받은 친구에게 살해당했다.

 

이 두 사건은 '민영화, 규제철폐, 예산감축'이라는 신자유주의의 경전이 어떻게 해서 제3세계 어린이들의 영양실조와 높은 유아사망률로 이어지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제국주의적 자세를 멈추지 않는 선진국과 곡물자본이 굶주려가는 나라를 둘러싸고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었던 것이다. 곡물시장의 '균형가격'을 맞추고 기업의 이익을 위해서 반군에 대한 지원도 멈추지 않았다. 여전히 되풀이되고 있는 기아의 비극이 실은 부패로 유지되는 그 나라 정부와 관료, 그리고 전략적으로 중요한 지역이거나 풍부한 자원을 갖고 있지 않으면 결코 관심을 갖지 않는 국제사회가 저지른 '범죄'라는 분석은 여러 사례로 명백하게 입증된다.

 

 

 자연도태설이 만들어 낸 잘못된 진보의 신화

 

 서구의 부자 나라 사람들을 사로잡는 신화가 있어. 그것은 바로 자연도태설이지. 이것은 정말 가혹한 신화가 아닐 수 없어. 이성을 가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류의 6분의 1이 기아에 희생당하는 것을 너무도 안타까워해. 하지만 일부의 적지 않은 사람들은 이런 불행에 장점도 있다고 믿고 있단다. 그러니까 점점 높아지는 지구의 인구밀도를 기근이 적당히 조절하고 있다고 보는 거야. 너무 많은 인구가 살아가고 소비하고 활동하다 보면 지구는 점차 질식사의 길을 걷게 될 텐데, 기근으로 인해 인구가 적당하게 조절되고 있다는 얘기지. 그런 사람들은 기아를 자연이 고안해낸 지혜로 여긴단다. 산소 부족과 과잉인구에 따른 치명적인 영향으로 인해 우리 모두가 죽지 않도록 자연 스스로 주기적으로 과잉의 생물을 제거한다는 거야. 강한 자는 살아남고 약한 자는 죽는다는 자연도태설, 이 개념에는 무의식적인 인종차별주의가 담겨 있어.

 

 - 장 지글러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갈라파고스, pp 38 -

 

 

 

성직자였던 토머스 맬서스는 1798년에 인구 법칙에 관한 내용이 담긴 『인구론』을 발표했는데, 세계 인구가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하여 25년마다 두 배가 되지만, 식량의 증가는 산술서열을 따르므로, 가난한 가정은 산아제안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사회보조가 지원은 중단되어야 하고, 질병과 배고픔은 가슴 아픈 일이기는 해도 이 사회에 필수적인 기능을 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 책이 출판되자마자 유럽의 지배층에서 널리 읽혔고, 산업화 초기의 국민경제학자들과 기업인들에게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더 안타까운 것은 맬서스의 주장이 오늘날에도 막강한 힘을 발휘하여 기아 문제에 있어서 왜곡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1859년, 찰스 다윈은 『종의 기원』을 통해 지구의 여러 가지 환경 요인이 변화함에 따라 생물 종은 변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당시 유행하던 맬서스의 『인구론』에서 아이디어를 가져와 종이 변하는 원인을 설명했다. 생존을 위한 투쟁에서 나타나는 '적자생존의 원리'를 통해 종의 변화를 설명한 것이다. 이러한 생물학적 원리는 사회도태 논리에도 적용하게 된다. 허버트 스펜서는 '사회진화론'을 주장하여 자연에서의 적자생존처럼 사회에서도 사회도태가 발생하고 경쟁에서 생존한 자들의 역사는 진보해 나간다는 생각했다. 기아의 위협이 없는 국가에 사는 사람들은 지구촌 기아 문제에 대해 일정한 선입견을 가지게 된다. 자연도태설에서 비롯된 잘못된 '기아예찬론'은 기아 문제에 대한 책임회피일 뿐이며 비양심적 자기합리화에 불과하다. 저자는 그러한 인식 속에 숨겨진 무의식적 인종차별주의가 기아 문제를 외면하거나 잘못 이해하고 있는 원인으로 보고 있다. 
 

 

 

 

 간단하게 해결할 수가 없을 정도로 심각해진 세계의 기아 문제

 

 

식물이든, 동물이든, 인간이든, 이 세상에 살아 있는 모든 것의 최우선 과제는 먹을 것을 섭취하는 일이다. 너무도 뻔한 말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가 않다. 굶주리는 기아의 어린이들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은 식량을 지원해야 한다?  이 말 역시 기아 문제를 해결할 때 자주 나오는 말이지만 현실적으로는 쉽지가 않은 일이다. 그러나 끝없이 반복되고 있는 비극을 방관할 수만은 없다.

 

저자는 기아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 각국이 자급자족 경제를 스스로 이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휴머니즘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신자유주의, 시장경제 원리의 구조를 개선할 수 있는 대안이 자급자족 사회인 것이다. 하지만 그의 대안은 현실성이 떨어져 보인다. 그리고 자급자족 경제를 고집하다가 국가 경제가 몰락하고 주민들을 굶주리게 만든 북한의 역사를 기억해본다면 썩 설득력이 있는 대안이라고 볼 수 없다.

 

그리고 이 책의 에필로그에는 기아문제를 대처할 수 있는 세 가지 방안들도 제시하고 있는데 그 중에 '인프라 정비'에 대한 그의 설명은 다시 한 번 재고해볼 필요가 있다.

 

 

 제3세계 나라들의 인프라를 정비하기 위해 시급한 지원이 필요하다. 그들에게는 자본, 도로, 적당한 종자, 비축식량, 농경 전문지식 등 모든 것이 부족하다.  (중략)  아프리카 남쪽에는 엄청난 땅들이 놀고 있다. 그 땅들은 투자가 없이는 경작되지 못할 것이다. FAO의 통계에 따르면 개발도상국에서 정상적으로 경작되는 땅은 7억 헥타르 정도인데, 작은 투자로도 경작 면적을 두 배 이상으로 늘릴 수 있다고 한다. 나무를 베거나 보호 구역에 손대지 않아도 말이다. 현재 북아프리카에서 사용하고 있는 농경 기술이 있다면 토지를 중대하게 손상(살충제를 많이 사용하거나, 다량의 비료를 사용하거나)하지 않고도 민감한 지역을 보호하고 환경 시스템의 재생력을 고려하면서 남쪽에서 경작지를 늘릴 수 있다.

 

 - 장 지글러『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갈라파고스, pp 167~168 -

 

 

 

 

기아 문제가 발생하게 되는 원인에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황폐한 자연 조건, 전근대적 농업 시스템이나 후진적 정권의 미숙한 국가 운영 등도 무시할 수 없는 배경이다. 아프리카 대륙에 식량을 손쉽게 운반할 수 있는 철도를 세우거나 인간의 손길이 거치지 않은 땅에 농작물들을 심는다면 주민들을 먹여살릴 수 있는 식량이 창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앞에서 지적한 자급자족 경제 대안의 허점처럼 '인프라 구축'을 강조하는 대안 역시 과거의 실례를 이해하지 못한 무지의 상황에서 비롯된 오류로 이루어져 있다. 19세기 후반 제국주의의 바람이 유럽 대륙을 휩쓸게 되면서 너도나도 할 것 없이 아시아, 아프리카 등의 세계로 진출, 자본 창출의 영역을 확장하기 시작했다. 특히 서강 열강들은 그 당시 미개한 아프리카 대륙을 개척하기 위한 사업 수단으로 철도를 건설하였다. 넓은 땅에 철도를 세워 놓음으로써 그 곳에서 자라나고 생산되는 식량들을 손쉽게 운반하기 위해서였다. 서강 열강의 기업들은 철도 건설 목적을 아프리카의 토착민들에게 식량을 쉽게 제공할 수 있고 배 불리게 먹을 수 있는 '공공 사업'이라고 말했찌만 거짓일 뿐이었다. 주민들을 위한 공공 사업은커녕 철도 건설에 수많은 토착민들의 노동을 착취했다. 결국에는 철도 사업은 식량 생산을 통한 이익을 극대화시키기 위한, 지극히 기업을 위한 사업의 일환인 것이다.

 

세계 여론을 동원하면서까지 모든 경제 지배자들이 서로 합의 하에 기아 문제가 심각한 제3세계 국가의 경제적, 사회적 인프라를 지원한다는 것은 긍정적인 대안이 될 수도 있지만 단순히 기아 무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강대국들이 인프라 구축에서 자발적으로,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협약과 회의를 통해서 인프라 구축을 마련하는 데 힘 쓰면 좋겠지만 19세기 제국주의 시대의 사례처럼 악용되어서는 안 된다.

 

장 지글러의 대안은 기아 문제 해결에 있어서 분명히 현실에서 필요한 해결책인 것은 사실이나 벌
써 자본의 무시무시한 힘에 이끌려 간 채 '경제 불황'의 질환을 낳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현 세계의 상황을 봐서는 현실성이 떨어질 수 밖에 없는 낙관론에 불과하다. 그만큼 세계의 기아 문제는 모든 국가가 서로 머리를 맞싸매어 오랜 고민을 해야 할 정도로 심각해져버린 것이다. 이제는 식량지원이 기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답이라는 대안은 현실과 동떨어진 진부한 논리가 되어버렸다.

 

 

 

 

 가까이 있었지만 제대로 보지 못했던 불편한 진실

 

 

 

 

세계의 부를 탐식하고 있는 '사회지도층'들이 주원처럼 가난을 이해하기 위해서

자신들의 텃밭이나 다름없는 '신자유주의' 비판서를 소파에 앉아

편안하게 읽게 될 날이 과연 찾아 올까?

 

 

 

콜럼비아 대학 최우수 졸업생으로 졸업한 수재에다가, 가난한 사람을 한 번도 가까이서 본 적이 없는 김주원(현빈 분). 그는 자신이 지금까지 만나온 모든 여자들과 달라도 너무 다른 길라임(하지원 분)에게 호감을 느끼기 시작하자 그녀의 가난을 이해하기 위해 책을 읽는다. 그는『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을 서 너번 정도 읽어가면서 접해보지 못했던 '또 다른 현실'에 대해서 깊은 고뇌에 빠진다. 그러나 그의 시도는 가상하지만 그녀의 가난은 책 한 권으로 이해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평생 '몸'으로만 먹고 살아온 길라임과 달리 평생 '머리'로만 세상을 이해해 온 김주원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강이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서로의 육체가 뒤바뀌는 기괴한 현상을 겪고 나서야 두 사람은 서로를 완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다른 성별의 몸을, 그것도 전혀 다른 계급과 전혀 다른 세계관을 가진 상대방의 몸을 '입고' 살아가야하는 비현실적이고도 우발적인 사고가 역지사지의 상황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만약에 두 사람 간의 신체가 서로 바뀌지 않는 일이 생기지 않고 현실적인 이야기가 진행되었다면 주원은 라임의 삶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고 그녀에 대한 사랑을 쟁취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가 아무리 장 지글러의 책을 세 번 이상 읽는다고 해서 자신의 삶과 동떨어진 '가난'이라는 단어의 진짜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으리라.

 

어쩌면 우리가 남의 '가난'에 대해서 어떠한 동정심이나 연민의 감정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은 최첨단의 미디어를 향유하고 있으면서도 어느 때보다도 서로를 '이해'하기 힘들어진 무관심과 몰이해에서 비롯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으로부터 멀리 있지 않은, 가까운 곳에 있는 '가난'의 비극을 잘 알지 못한다. 

 

우리는 어려움을 겪는 이웃이 있다는 것을 지각하지 못하는 무지에 너무 관대했다. 우리는 학교에서 사람의 목숨을 빼앗아 가는 것은 전쟁이라고 배웠지 기아에 대해서는 배운 바가 없었다. 이런 무지를 확실하게 깨닫게 해준 책이다. 딱딱한 문체가 아니라 가슴으로 지구촌 최악의 문제에 대해 말하고 있다. 출간된 지 몇 년이 지났지만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은 새롭게 대학생 필독 도서로 입에 오를 정도로 대중에게 널리 알려졌다.

 

그러나 주원처럼 단순히 '가난'을 이해하기 위해서 이 책을 읽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주원 역을 맡은 현빈처럼 나름 폼 나게 독서하기 위해서 유식해 보이면서도 심각한 제목이 달린 이 책을 '읽은 척'하지 않길 바란다. 실제로 읽어보면 알겠지만 이 책은 '가난'에 대해서 소개한 것이 아니라 미래에 우리가 목도해야 할 전지구적인 사회 문제, 바로 '기아'인 것이다. 이 책을 통해서 텔레비전 속 다큐멘터리나 해외 토픽을 통해 볼 수 있는 '타인의 삶'만으로는 결코 알 수 없는 불편하고도 잔혹한 진실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기아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그리 녹록치 않음을 알게 될 것이다.

 

비록 책에서 소개되는 사례들은 조금은 오래된, 세계적인 시차가 어긋나 있지만 시간만 다를 뿐 최악의 상황은 여전히 되풀이되고 있다. 책은 금융자본이 신자유주의라는 이름을 내세워 인권을 외면하는 현실을 보여준다. 세계의 불편한 진실을 생생하게 볼 수 있었던 'W'의 창은 닫혀버린만큼 기아 문제의 심각성과 신자유주의 사회의 문제점을 보여주는 이 책만큼은 특히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할 대학생들이라면 이 책을 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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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트랑 2012-03-14 2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참 무지 맘에드는 리뷰를 만나는군요.
이 책은 고등학교 교실에서도 추천도서로 널리 알려져있습니다.
기아문제는 단순한 굶주림의 문제가 아니라
세게 경제가 굴러가는 작동원리인 것을 알게합니다.

누군가가 굶주려줘야 다른 누군가의 배가 부르다는
그야말로 인간 최악의 걸작품 인 것이죠.

저는 이 책을 읽고 기아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그 작동원리에 영향을 끼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정말 무기력감을 느꼈습니다.

언제 그 희망이 보일지...

cyrus 2012-03-16 01:07   좋아요 0 | URL
고등학생부터 시작해서 대학생들도 읽어보면 좋은 책이죠.
이 책뿐만 아니라 국내에 번역된 지글러의 다른 책들도 좋고요 ^^

저는 기아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식량 조달 문제가 이렇게 복잡하면서도
쉽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하는 수 없이 기아 문제를
미화하여 낙관적인 전망을 내릴 수 밖에 없는 것도 안타깝고요.
무엇보다도 식량을 무기로 삼아 자신들의 세력을 유지하려는
정치권력들의 작태가 씁쓸했습니다.

stella.K 2012-03-15 1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김주원이가 콜롬비아 대학교 출신이었나? 웃겨.ㅋㅋ
이책 참 불편했어.ㅠ

cyrus 2012-03-16 01:09   좋아요 0 | URL
제가 그냥 지나치는 작은 정보도 기억하고 있는 편이에요.
웃긴 게 사실 장 지글러의 책을 읽는 현빈의 모습을 TV에서 본 것도
친구들이랑 곱창 먹다가 잠깐 봤던거에요. 제가 은근히 기억력이
좋은 편이거든요 ^^

그런데 막상 현빈처럼 책을 읽어보니 그리 편안하게 읽을 책이
아니더군요 ^^;;

아이리시스 2012-03-15 2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에 제목 기억 안나던 책이네요ㅋㅋㅋ 한비야님의 추천도서라 꽤 오래 전에 읽었는데도 충격이 아직도 남아 있어요. 이후로 음식은 웬만해선 적게 먹고(꾸역꾸역 먹어도 결국 탈나거나 도로 나온다는;;) 조금만 해서 버리지는 말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실천도 노력해요!! 책 읽는 동안에는 쌀을 좀 싸들고 여행을 가야하나;; 가서 밥을 해줘야지;; 생각까지 들었던 슬픈 책이었어요.

cyrus 2012-03-16 01:13   좋아요 0 | URL
아~~~ 알겠어요! 아이리시스님 서재 댓글 남기다가 장 지글러의 책에
대해서 잠깐 언급한 적이 있었던 걸로 기억해요 ^^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기아 문제를 직접적으로 도움을 줄 수 없다는 게
불편했어요. 막상 기아 문제 해결은 이렇게 해야 된다고 말하는 건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쉬운 일지만 한비야씨처럼 직접 그 곳에 가서
적극적으로 해결한다는 게 어렵잖아요. 최근에는 몇 몇 아프리카 국가에
여행을 금지하는 규정도 내리게 되었고요, 그나마 도움을 줄 수 있는게
유니세프 같은 곳에서 기금하는 것 밖에는 달리 방법이 없는거 같아요 ^^;;

차트랑 2012-03-16 08: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더 암울하게 하는 것은
화폐전쟁의 쑹홍빈은 유니세프마저도 첨단 경제 저격수의 일부라더군요
제가 아는 학생 중 하나가 유니세프에서 일하는 꿈을 가지고 있는데...ㅠ.ㅠ
정말 이거..ㅠ.ㅠ

하긴 케인즈가 세상을 더 굶주리게하는 데 앞장서는 인물인데
말다했지 뭡니까요

그나저나 그 기억력,
쩜 많이 부럽습니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