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71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지음, 최종술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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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흔한 작가의 흔치 않은 소설

 

나는『절망』에서 나의 다른 책들에서처럼 어떠한 사회적 논평도 제시하지 않고, 어떠한 교훈도 입에 담지 않는다. 이 책은 인간의 정신을 고양시키지도 않고, 인류에게 올바른 출구를 제시하지도 않는다. 

 

 - V. 나보코프,『절망』1965년 영문판 서문 중에서 (최종술 역, 문학동네, pp 239) -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는 단 한 권의 소설로 문학사에 기록되는 몇 안 되는 작가 중의 한 사람이다. '롤리타 콤플렉스'로 알려진 ,『롤리타』의 성공을 통해 문학사에 기록된다. 그러나 소설뿐만 아니라 시, 희곡, 비평 등을 남길 정도로 엄청난 다작 능력을 지닌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국내에 번역된 나보코프의 소설들은 소수에 불과할 뿐이다. 심지어 세계적으로 널리 자신의 이름을 알려준 출세작인『롤리타』가 영화로까지 만들어질 정도로 커다란 인기를 누리게 되는 바람에 그의 다른 작품들의 문학적 가치가 제대로 소개되지 못했다.

 

최근에 출간된 나보코프의『절망』은 국내에 번역된 그의 소설들 중에서 시기적으로 가장 먼저 집필된 것이다. 그동안 소개되지 못했으며 흔하게 잘 알려진 작가의 또 다른 작품 그리고 이제 막 작가적 재능을 펼치기 시작하려던 그의 초창기 문학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나보코프의『절망』은 읽혀질 가치가 있다.

 

하지만 흔한 작가의 소설치고는 『절망』의 문장과 줄거리 전개 방식은 일반적인 소설과 달리, 흔하지 않다. 나보코프 특유의 서사 구조적 치밀함과 언어적 유희가 텍스트 속에서 복잡하게 얽혀져 있는데다 주인공 화자와 그를 닮은 또 다른 분신이 등장하여 사건을 전개해나가는 줄거리라서 이 소설을 처음 읽는 독자들에게는 작품 속 서사의 흐름이 더욱 복잡하게 느껴질 것이다. 소설 속 주주인공인 게르만 카를로비치가 자신과 닯은 분신 펠릭스를 살해하는 과정을 고백 형식으로 서술하는 방식은 서로 닮은 게르만과 펠릭스의 실체를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치밀하게 구성되어 있다. 얇은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난해한 서사 구조 때문에 읽을 때 집중력을 요하게 되는 작품이기도 하다.

 

 

 

 '나보코프'를 패러디를 한 블라디미르 시린  

 

나보코프는『절망』영문판 서문에서 이 소설은 어떠한 교훈도 제시하지 않았다고 스스로 밝혔다. 이 작품은 독자들에게 유희적 텍스트 읽기의 재미를 선사하고 있으며 이러한 서사 구조 때문에 독자들뿐만 아니라 심지어 명망 있는 프랑스의 지성 사르트르조차도 나보코프의 문학적 유희에 된통 당하기도 했다. 어찌 보면 나보코프는 이 소설을 그저 재미있게 읽혀지기를 바랬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잘못된 해석으로 망신을 산 사르트르의 경우만 가지고 이 소설을 더욱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유희적 텍스트는 독자들마다 각기 다른 의미의 해석을 만들 수 있다. 독자들은 자신만의 관점으로 텍스르를 이해함으로써 소설 읽기의 즐거움을 느끼게 된다.  

 

『절망』의 '분신' 주제는 게르만과 펠릭스라는 서로 닮으면서도 다른 양면적인 인물를 통해 현실과 상상을 구분하도록 설정되어 있다. 하지만 게르만과 펠릭스의 실체를 분간하기가 쉽지 않는 것처럼 게르만이 직접 서술하고 있는 모든 사건들이 실제로 일어난 현실인지 구분하기가 어렵다. 게르만은 자신이 일으킨 행동과 생각들 그리고 자신의 주변에 일어난 일들을 꼼꼼히 기록하고 있지만 그의 행동들, 즉 분신 펠릭스를 살해하는 행위를 실행하고 마는 과정과 그에 대한 결과들은 실제로 일어난 현실이 아닌 상상 속의 현실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는 펠릭스를 살해함으로써 불행했던 이전의 인생의 굴레를 벗어나 또다른 제2의 인생을 살아보려고 한다.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 『어떻게 그들은 자신을 만났는가?』 1864년

 

 

 

서양에서의 분신의 출현, 즉 도플갱어는 실제적 존재의 죽음이 가까워졌다는 불길한 징조로 여겨지고 있다. 게르만의 입장에서는 분신 펠릭스는 행복한 삶을 원하는 자신의 소원을 방해되는 존재이다. 게르만은 도플갱어의 저주를 극복하는 것, 즉 펠릭스를 살해하는 것만이 자신이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기회라고 인식하게 된다. 부질 없는 자기합리화적 몽상의 늪에 헤어나오지 못하는 펠릭스는 예술가들에게 발견할 수 있는 창조적이면서도 허구적인 자아와 현실적 자아 간의 갈등에서 야기되는 괴리감을 상징하고 있다. 펠릭스를 살해하고 난 뒤에도 게르만은 자신의 존재을 끊임없이 부정적으로 여김으로써 본인 스스로 절망의 나락으로 빠져들게 되는데 분신 살해에 의한 도플갱어의 무서운 저주를 피할 수 없었던 것이다.

 

어찌 보면 분신을 주제로 하는 한 편의 우화 소설로 볼 수도 있겠지만『절망』의 주인공 게르만에는 절망적 인물을 창조시킨 장본인, 작가 나보코프의 삶이 투영되어 있다.

 

나보코프는 초창기 창작 활동 당시, 잘 알려져 있는 본명 대신에 '블라디미르 시린'이라는 필명을 사용했다. '시린'이라는 필명 속에는 나보코프의 인생과 연관된 두 가지의 함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전자는 귀족 정치인이었던 아버지의 이름과 혼동을 피하기 위한 것과 후자는 정착하지 못한 채 방랑 생활을 하면서 아름다운 노래를 부른다는 고대 러시아 신화에 등장하는 괴물 시린을 의미한다.

 

볼셰비키 혁명이 일어나기 전까지 지낸 18년 간의 러시아에서의 유년 시절은 나보코프에게는 행복한 삶의 기억이었다. 유복한 귀족 집안에서 자랐기에 부족할 것이 없었던 화려한 시절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볼셰비키 혁명으로 인해 러시아의 귀족들은 몰락하게 되었고 엎친데 덮친 격으로 아버지마저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하게 됨으로써 나보코프의 인생에 있어서 일대의 전환점을 맞게 된다. 생활고가 찾아오는 동시에 나보코프는 행복한 유년 시절의 추억을 뒤로 한 채 조국 러시아를 떠나게 되었다. 그 후로 나보코프는 유럽과 미국을 전전한 떠돌이 생활을 하게 되었고 다시는 러시아로 돌아갈 의향도 없었다. 결국 그는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고국의 땅을 다시 밟아볼 수 없게 되었다.

 

갑작스런 시대의 변화에 한순간에 사라져버린 행복했던 유년 시절의 기억들, 아버지의 비극적인 죽음, 그러한 정신적 상처로 인해 고국 러시아를 외면한 채 나보코프는 스스로 '문학적 경계인'으로서 삶을 선택했다. 정처없이 떠돌아다니면서 아름다운 노래를 불렀다는 시린이라는 상상 속 동물의 이름으로 필명을 정함으로써 나보코프는 또다른 분신을 만들어 '문학'을 통해서 과거의 정신적 상처를 치유하는 동시에 경계인으로 겪어야 할 양면적인 정체성의 갈등을 극복하고자 했다.

 

'블라디미르 시린'이라는 또다른 이름으로 시작된 작가 생활은 평탄치 않았다. 러시아 문학 비평가들로부터 '러시아적이지 않다'는 비난을 받아야했다. 그러한 비난을 맞서기 위해서는 나보코프가 택한 방식은 아무,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경계인'으로서의 고독을 문학 창작의 필요조건으로 내세운다.

 

행복한 삶을 이루어내기 위해서 자신의 비도덕적 행위마저 '예술'로 승화시키며 자기합리화하는 게르만의 행위과 그가 겪는 절망은 결국에는 고독한 문학적 경계인이 되어 작가로서의 재능을 인정받지 못했던 나보코프 아니, 블라디미르 시린이 만들어 낸 절망적 분신이었다. 자신의 불행했던 삶의 경험을『절망』을 통해 '시린' 그리고 '나보코프'를 패러디하고 있는 것이다. 또는 자신이 직접 분신이 되어 제대로 된 평가를 받는 소설가 그리고 실존적인 존재 '나보코프'가 되고 싶었다. 그러한 창작 의도가 만들어 낸 성공의 결과물이 바로 『절망』이었다. 결국 그는 이 소설을 통해서 이전에 그를 비난했던 러시아의 문학 비평가들로부터 인정을 받을 수 있었다.

 

 

 

 

 『절망』, 잃어버린 정체성을 찾고자 한 문학적 경계인의 수기 

 

독일의 대문호 괴테는 젊은 시절, 자신에게 실연의 아픔을 남겨 준 샤를로테로 인해 정신적인 절망에 사로잡혀 혼자서 거리를 방황하던 도중에 자신과 닮은 분신을 목격했다. 그야말로 도플갱어를 체험한 것이다. 세월이 지나 유명한 소설가로 성공한 괴테는 젋은 시절에 살았던 고향의 거리를 다시 찾게 되는데 그 곳에서 그동안 잊혀지고 있었던 젊은 시절의 도플갱어를 떠올리게 되었다. 그리고 자신이 지금 입고 있는 옷이 젋은 시절, 자신과 빼닮은 분신이 입었던 복장과 비슷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괴테의 경험담은 실제로 일어난 사례인지 출처를 확인할 수는 없지만 도플갱어를 소개할 때 자주 소개하는 유명한 일화로 알려져 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서양에서의 도플갱어는 죽음의 징조로 여겨지고 있지만 반대로 유대인들은 이러한 신비한 체험을 선지자가 될 수 있는 길운의 징조로 보고 있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피타고라스는 분신을 '또 다른 나라고 할 수 있는 친구'와 같은 존재로 생각했다.  

  

괴테의 일화를 비추어 볼 때 절망의 시기를 보내고 있었던 나보코프는『절망』의 성공 덕분에 소설가로서의 능력을 인정받기 시작했다. 이 때부터 그는 소설가로서의 새로운 인생을 보장받을 수 있게 되었다. '가수는 노래제목 따라 간다'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가수가 부른 노래제목이 부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면 그 노래를 부른 가수도 제목처럼 부정적인 운명을 맞이한다는 속설이 있다. 그런데 이와는 반대로 나보코프는 '절망'이라는 소설 제목 덕분에 아이러니하게도 소설 속 게르만처럼 절망적인 삶의 운명을 조금이나마 피할 수 있게 되었고 그 후부터 성공의 탄탄대로를 걷게 된다.

 

『절망』에는 현실과 상상을 분간하지 못하는 게르만의 자아 분열 양상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곳에는 작가가 의도적으로 숨긴 '블라디미르 시린' 그리고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라는 두 자아의 정체성이 숨겨져 있다. 전자는 소설가로서의 제2의 인생을 꿈꾸는 현실적이면서도 예술가적 정체성이며 후자는 러시아에서의 행복한 유년 시절의 기억이 간직하고 있는 내면적 정체성이다. 

 

나보코프는 이 소설을 통해서 문학적인 성공을 얻을 수 있었지만 러시아에서 남겨 둔 잃어버린 행복의 추억들 그리고 러시아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찾는 데에는 실패했다. 게르만이 자신의 존재를 부정했듯이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는 '러시아 소설가 나보코프'가 되지 못했으며 그러한 존재를 스스로 부정하고자 했다. 그리고 『절망』은 아무런 의미도, 교훈도 없는 흥미진진한 소설이라고 단언한다.

 

그러나 난해한 소설을 작가 스스로 어떠한 교훈이라고 찾아볼 수 없는 재미있는 소설이라고 가볍게 치부하기에는 작가의 평가가 진중하지 않다. 현실과 상상을 분간할 수 없게 만드는 게르만의 이중적인 속임수와 분신 모티브는 자신의 의도대로 독자와 사르트르를 혼란케 만드는 데 성공했겠지만 '시닌'과 '나보코프'로 구분되는 정체성의 실존적 고뇌 그리고 러시아의 추억에 대한 향수를 숨길 수가 없었다. 소설의 문맥 곳곳에는 러시아 문학의 흔적을 찾아 볼 수 있고, 소설 속의 소설은 게르만이 쓴 미친 일기가 아니라 '문학적 경계인' 나보코프가 쓴 수기(手記)다. 

 

 

 그래요, 난 전부 의심하게 되었소. 핵심을 의심하게 된 거요. 그리고 길지 않은 여생을 온전히 단 하나, 이 의심과는 헛된 싸움에만 쏟게 되리라는 사실을 알아버렸소. 나는 사형수의 미소를 지었소. 그리고 고통스러워 비명을 질러대는 뭉특한 연필로 첫 페이지에 재빨리 그리고 단호하게 '절망'이라는 단어를 썼소. 이보다 나은 제목은 찾을 수 없소.

 

 - V. 나보코프 『절망』중에서, pp 226 -

 

 

 

나보코프는 양면적인 정체성의 자기 모순에 대해서 끊임없이 의심했지만 결국에는 헛된 싸움이라는 것을 인식했던 것일까?  완전히 분리된 자아 정체성에 대한 합일의 시도를 하지 못한 채『절망』 이라는 제목처럼 '절망'이라는 단어로 성급하게 결론을 짓고 만다. 그리워했을 러시아의 땅을 밟아보지 못한 채 '미국인'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로 남게 되었다. 그나마 위안이라고 할 수 있는 사실은 나보코프가 세상을 떠난지 9년 뒤에 그가 남기고 간 문학적 결과물들만이 러시아에 갈 수 있었다. 물론 '블라디미르 시린'이라는 이름으로 쓴『절망』도 포함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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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2012-02-11 1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cyrus님의 글을 읽고 책꽂이에 있는 <절망>을 다시 흘겨보고 있습니다^^
선물받은 책인데 그대로 있네요.
여튼 롤리타,에 가려 다른 작품들을 더 읽어 볼 생각을 못했던 것 아닌가 싶네요.
주말에 이책을 슬쩍 읽어야겠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cyrus 2012-02-11 19:38   좋아요 0 | URL
저는 이제 <롤리타>를 읽어보려고 해요. 유명한 소설을 드디어
읽어보게 되네요. 주말 잘 보내세요. 굿바이님 ^^

stella.K 2012-02-11 1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끌렸는데 난해하다니 역시 망설여지는군.ㅠ

cyrus 2012-02-11 19:41   좋아요 0 | URL
현실과 상상을 복잡하게 설정하고 있는 내용이라 읽는 내내 어려웠어요.
누님도 주말 잘 보내세요 ^^

꼬마요정 2012-02-13 1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는 내내 어려워서 혼났더랬죠... 하지만 표현력이 너무 대단해서 열심히 읽었구요, 읽다보니 저도 모르게 다 읽었더라구요... 50페이지만 지나면 흡입력 대단한 소설이었어요. 그런데.. 정말 게르만이 펠릭스를 살해하는 과정이 망상이었던거에요? 왜 저는 몰랐을까요 ㅠㅠ